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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사라진 세계에서 ㅣ 바일라 27
이병승 지음 / 서유재 / 2026년 5월
평점 :
이병승 작가의 문장이 사라진 세계에서를 읽고 현 시대의 상황을 더욱 깊게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은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검열하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청소년 장편 소설이다. 표지에 그려진 거대한 책더미 속에 숨어있는 얼굴이 마치 금지된 문장들을 몰래 지켜보는 듯한 긴장감을 주면서 첫 장을 넘기기 전부터 강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독특하고 튀는 생각을 좋아한다는 작가의 소개 글처럼 거대한 세계의 억압과 그에 맞서는 개인의 충돌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소설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검열 시스템 아르고스와 금서 목록에 대한 묘사는 무척 강렬하고 무서웠다. 아르고스가 허락한 것들만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설정은 숨을 막히게 만든다. 특히 AI 검열위원회가 사람들에게 해롭다는 핑계로 수많은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자유로운 독서를 통제하려는 모습은 과거 우리나라의 뼈아픈 역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다. 군사 정권 시절 불온서적이라는 억지스러운 이름표를 붙여 책을 빼앗고 지하실에 모여 몰래 책을 읽으며 토론하던 독서 모임 청년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그 어두운 과거의 폭력이 소설 속 최첨단 미래 사회와 똑같이 겹쳐 보였다.
무엇보다 이 소설이 단순한 허구의 공상과학으로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변화 속도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인공지능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이미 각종 알고리즘이 우리가 매일 보는 기사와 영상들을 교묘하게 선별하고 통제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 보니 책 속에서 묘사되는 지능적인 통제 상황이 결코 허무맹랑한 거짓말이나 먼 미래의 일처럼 들리지 않았다. 기술이 조금만 더 고도화되면 정말로 AI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 담긴 문장을 위험 요소로 간주하고 무단으로 검열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더해졌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마치 곧 일어날 실화를 미리 보는 것처럼 무섭도록 생생하고 실감 났다.
작가는 이 숨 막히는 통제 사회 속에서도 은밀하게 저항하는 우아한 금서 클럽 사람들의 추격전을 통해 인간의 자유 의지를 보여준다. 존 스튜어트 밀의 문장처럼 어떤 의견도 그것이 진리일 가능성이 있다면 결코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인물들의 고군분투를 통해 보여준다. 시스템이 아무리 완벽하게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으려 해도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자유를 향한 갈망과 진실을 탐구하려는 문장들은 결코 완전히 삭제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지금 역사상 가장 편리하고 엄청난 기술적 풍요 속에서 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는 힘은 점점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장이 사라진 세계에서는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진정으로 지켜내야 할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경고를 던지는 훌륭한 작품이다. 과거의 독재적 탄압이 미래의 매끄러운 기술로 모습을 바꾼 세상에서 나는 과연 어떤 문장을 꽉 붙잡고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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