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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레시피 ㅣ 빈페이지 YA
소피아 리(이세리) 지음, 고수현 옮김 / 빈페이지 / 2026년 7월
평점 :
우리는 종종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 속에서 뜻밖의 깊은 의미를 발견하곤 한다. 매일 먹는 밥 한 끼나 누군가 무심코 알려준 음식 조리법 같은 것들 말이다. 소피아 리 작가의 할머니의 레시피는 바로 그런 일상적이고 소박한 한국 음식들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를 더듬어가는 아주 뭉클한 자전적 에세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저자의 독특한 성장 배경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가족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민을 떠난 그녀는 전형적인 이민 1.5세대로 자랐다. 겉모습은 한국인이지만 미국 문화 속에서 교육받고 성장하며 겪었을 정체성의 혼란으로 힘들었을 것으로 예상한다. 완전한 미국인일까 아니면 여전히 한국인일까 하는 질문 속에서 방황하던 그녀에게 길잡이가 되어준 것은 거창한 철학이나 이념이 아니라 다름 아닌 할머니가 남겨준 낡은 레시피 수첩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할머니의 레시피 속에는 단순한 요리 순서 이상의 것들이 담겨 있었다. 떡국 김치찌개 잡채 같은 평범한 한국 음식들을 서툰 솜씨로 하나씩 따라 만들어 보는 과정은 작가에게 단순한 요리를 넘어 자신의 뿌리와 조우하는 의식과도 같았다. 음식을 만들며 피어오르는 냄새와 혀끝에 닿는 맛은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고 가족의 역사를 복원해 낸다. 요리라는 행위를 통해 이민자로서 겪었던 소외감과 상실감을 치유하고 마침내 온전한 자신을 긍정하게 된다.
특히 책을 읽는 내내 할머니라는 존재가 주는 맹목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의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이 따뜻해졌다. 타국에서 힘겹게 뿌리내리려 고군분투하는 가족들을 위해 묵묵히 부엌을 지키며 음식을 만들어냈던 할머니의 모습은 우리네 할머니들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투박한 손으로 무심하게 썰어 넣은 재료들 속에 담긴 웅숭깊은 사랑과 희생이 느껴져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작가에게 할머니의 레시피는 단절된 세대와 문화를 이어주는 따뜻한 끈이자 결코 사라지지 않을 든든한 마음의 안식처였던 셈이다.
낯선 세상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의 위로를 건네며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위로의 기록이다. 이민자로서의 치열한 삶의 궤적과 가족에 대한 짙은 향수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 책은 음식이 가진 치유의 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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