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가 입고 싶었던 소녀 - 북에서 배운 감정, 남에서 선택한 삶
손정란 지음 / 미다스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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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당연하게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야만 얻을 수 있는 간절한 꿈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손정란 작가의 청바지가 입고 싶었던 소녀는 북한에서의 고단했던 삶을 뒤로하고 남한이라는 낯선 땅에 정착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담담하면서도 묵직한 어조로 그려낸 에세이다. 책의 제목처럼 그저 남들처럼 자유롭게 청바지 하나 입고 싶었던 소녀의 소박한 소망 뒤에 숨겨진 거대한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북한을 떠나 남한으로 오기까지 작가가 겪어야 했던 극적인 심경의 변화다. 1장과 2장에서 묘사되는 북한에서의 일상은 내가 막연히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답답하고 암울했다. 사소한 자유마저 억압당하는 묘사들을 보며 그동안 북한 주민들의 실상에 대해 내가 얼마나 문외한이었는지 부끄러웠다. 하지만 3장 남쪽으로 가는 길을 지나 마침내 남한에 정착하게 되면서 작가의 글에는 미세하지만 분명한 희망의 빛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자유의 공기를 마시며 처음으로 자신이 온전한 삶의 주인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의 환희와 감격이 생생하게 전해져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행복은 내 안에 있다라는 글이 무척이나 마음에 와닿았다. 목숨을 건 탈북과 혹독한 정착 과정을 거치면서도 작가는 결코 세상을 원망하거나 과거의 상처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이곳 남한에서 소소한 일상의 기쁨을 찾고 스스로 행복을 발견해 내는 강인한 내면의 힘을 보여준다. 숱한 고난을 이겨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하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보며 툭하면 현실을 불평하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무엇보다 이 책의 밑바탕에 짙게 깔려 있는 가족을 향한 애틋한 사랑이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작가가 그토록 혹독한 과정을 견뎌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가족이었다. 서로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버텨온 가족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는 나 역시 가족을 둔 입장에서 깊이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념이나 체제를 넘어 결국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힘은 가족 간의 끈끈한 사랑과 연대라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진리를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청바지가 입고 싶었던 소녀는 단지 탈북이라는 특수한 경험을 다룬 책이 아니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끝내 자유와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한 인간의 눈물겨운 기록이자 매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따뜻한 성찰의 책이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 삶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거나 가족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는 분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선사할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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