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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라이트 ㅣ 토치 3부작 1
모이라 버피니 지음, 강동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6년 5월
평점 :

모이라 버피니의 송라이트는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읽는 능력이 철저하게 금지된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독특하고 매혹적인 소설이다. 여성의 목소리가 금지된 세계라는 문장이 먼저 눈길을 끌었고 책장을 넘길수록 그 암울하고 통제된 세계관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수천 년 뒤의 지구가 배경인 이곳에서 소년들은 무조건 전쟁터로 향해야 하고 소녀들은 글조차 읽을 수 없는 억압적인 삶을 살아간다. 이런 가혹한 세상 속에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두 소녀 라크와 나이팅게일이 텔레파시를 통해 서로 연결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이 책의 저자인 모이라 버피니에 기대감이 있었다. 영국을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그녀가 집필했던 영화 제인 에어를 과거에 무척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인물의 복잡한 내면 묘사와 극적인 전개를 훌륭하게 이끌어냈던 극작가의 첫 소설인 만큼 이야기의 흡입력이나 소설의 서사가 얼마나 더 흥미진진할지 읽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그리고 다 읽고 난 지금 그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켜 주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송라이트라는 텔레파시 능력이 발각되면 뇌를 절개당해 수조에 갇히는 크리설리드가 되거나 같은 능력자를 사냥하는 사이렌이 되어야만 하는 잔혹한 설정은 두 소녀의 은밀한 소통을 더욱 아슬아슬하게 만든다.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하고 서로에게 닿으려 애쓰는 두 소녀의 연대는 감동과 해방감을 선사한다.
특히 이 소설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시각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압도적인 전개 속도와 몰입감이다. 종이 위에 적힌 텍스트를 읽고 있을 뿐인데도 마치 거대한 스케일의 영화나 드라마를 눈앞에서 보고 있는 듯한 생생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이 작품은 출간 직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이미 TV 시리즈 제작까지 확정되었다고 하니 영상으로 구현될 디스토피아 세계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유명한 넷플릭스 시리즈를 만든 제작사에서 영상화를 진행 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 이야기가 가진 상업적인 재미와 탄탄한 작품성이 이미 증명된 셈이다.
송라이트는 작가가 야심 차게 구상한 거대한 서사인 토치 3부작의 화려한 포문을 여는 첫 번째 책이다. 1부에서 보여준 눈을 뗄 수 없는 흥미진진한 전개와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역동적인 서사가 너무나도 강렬해서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곧바로 다음 이야기가 미친 듯이 궁금해졌다. 억압과 철저한 통제 속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인간의 자유 의지와 연대의 힘을 섬세하게 그려낸 훌륭한 수작이다. 단순한 영어덜트 소설의 범주를 훌쩍 넘어서서 깊이 있는 사유와 강렬한 오락성을 동시에 쟁취한 작품이다. 디스토피아 세계관이나 속도감 넘치는 스릴러 전개를 선호하는 독자라면 푹 빠져서 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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