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에 밑줄 치지 말 것 - 정답만 찾는 시대, 농담처럼 읽는 삐딱한 예술 이야기
오후 지음 / 서스테인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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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가면 항상 작품 자체보다 옆에 작게 붙어 있는 설명 캡션을 먼저 읽었었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만 예술을 제대로 감상하는 것이라는 생각했다. 오디오 도슨트를 듣는 것도 마찬가지다. 오후 작가의 '아름다움에 밑줄 치지 말 것'은 표지에 적힌 정답만 찾는 시대, 농담처럼 읽는 삐딱한 예술 이야기 라는 부제처럼 예술 앞에서 늘 진지한 태도로 무언가를 느껴야 하는 것을 내려놓을 필요도 있다고 한다.

​저자는 예술을 마치 정답이 있는 시험 문제처럼 대하는 현대인들에게 "그냥 즐기면 안 되나요?"라고 반문하면서 거침없는 입담으로 예술의 본질을 파헤친다. 목차를 따라가며 읽다 보면 굳어져 있던 예술에 대한 편견이 깨지는 경험을 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다음 세 가지 부분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첫째, 1장의 예술은 장르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다. 우리는 흔히 순수 예술과 대중문화를 엄격히 나누고 예술을 고상한 그 무엇으로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연극이 사실은 당시 대중들이 열광했던 '종합 엔터테인먼트'였음을 상기시킨다. 예술을 특정 틀에 가두고 억지로 분석하려는 시도 자체가 애초에 예술의 시작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달으며 예술을 대하는 부담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둘째, 2장의 모든 건 다다 파트다. 예술의 뻔뻔하고 통쾌한 정체성을 가장 잘 대변하는 장이기도 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기존의 이성과 질서를 조롱하며 무의미를 추구했던 다다이즘의 파괴적인 에너지를 통해 저자는 예술의 의미 찾기에 중점이 된 우리에게 일침을 가한다. 해석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때로는 이성적 판단을 내려놓고 날것의 감각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예술적 체험임을 배울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4장의 실수인가, 퍼포먼스인가는 현대 미술의 모호함을 알려준 흥미로운 주제였다. 바닥에 떨어진 누군가의 안경이나 쓰레기를 심오한 현대 미술 작품인 줄 알고 감탄하며 사진을 찍는 관람객들의 촌극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무엇이 예술인지 그 경계조차 희미해진 오늘날 억지로 중요한 예술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우리의 얄팍한 태도를 돌아보며 씁쓸하면서도 유쾌한 웃음을 짓게 한다.

​이 책이 전하는 '날 것 그대로의 감각'은 최근 다녀온 데이미언 허스트의 전시에서 구체화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포름알데히드에 박제된 상어나 수많은 나비 날개로 덮인 캔버스 앞에서 도슨트의 설명이나 작가의 심오한 철학을 찾느라 바빴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준 해방감 덕분에 캡션에 얽매이지 않고 작품이 뿜어내는 '삶과 죽음'이라는 원초적인 감각에 온전히 압도될 수 있었다. 기괴하면서도 아름답고, 잔혹하면서도 경건한 그 모순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는 어떤 평론가의 언어로도 대체할 수 없는 진짜 예술적 체험이었다.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예술의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춰주기 때문이다. 평소 미술관이나 전시회에 가는 것을 공부나 과제처럼 무겁게 느끼던 사람, 혹은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 사람에게 이 책은 완벽한 해독제가 될 것이다. 딱딱한 미술사 지식이나 평론가들의 난해한 언어 대신 저자 특유의 유머러스하고 도발적인 문장들이 책장을 술술 넘기게 만든다. '예술을 몰라도 괜찮다'는 위로를 넘어, 내 느낌이 곧 정답이라는 해방감을 선물하는 매력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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