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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싫을 때 읽는 책 - 마감과 고갈 사이에서 건진 스물네 개의 문장들
금정연 지음 / 북트리거 / 2026년 3월
평점 :
금정연 작가의 글쓰기 싫을 때 읽는 책은 제목부터 글을 쓰는 사람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대변한다. 마감과 고갈 사이에서 건진 스물네 개의 문장들이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16년 차 전업 작가가 빈 모니터 앞에서 겪는 막막함과 두려움을 아주 솔직하고 유쾌하게 얘기한다. 글을 업으로 삼는 사람뿐만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팍팍한 일상 속에서 무언가를 억지로 해내야만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와 깊은 공감을 주는 산문집이다.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을 가장 공감가는 부분은 첫 번째 글인 야구의 무서움이었다. 골수 야구팬인 나는 작가가 묘사한 한국시리즈 1차전의 그 끔찍하고 절망적인 순간에 너무나도 깊이 몰입해 버렸다. 물론 나의 팀은 한국시리즈를 못 간지 너무나도 오래되었다. 그나마 아내가 응원하는 팀의 한국시리즈 직관을 가곤 했었다. 초반에 역전하고 트리플플레이까지 나오며 분위기를 탔음에도 결국 9 회 초에 믿었던 마무리 투수가 허무하게 무너지며 패배를 맛본 그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역대 한국시리즈 1 차전 승리 팀의 우승 확률이 74.4 퍼센트라는 잔인한 통계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작가의 고백은 야구를 지독하게 사랑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처절한 고통이다. 잘 풀릴 것 같다가도 한순간의 실책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야구의 그 무서운 속성은 마음대로 써지지 않아 끊임없이 좌절하게 만드는 글쓰기의 고통 그리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우리네 힘든 인생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
‘무서움은 늘 거기에 있다. 하지만 무서움 뒤에는 다른 많은 것도 있다.’는 문장이 이 책의 핵심을 보여준다. 작가는 재능이 없다고 한탄하며 도망치고 싶어 하면서도 결국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와 허리를 세우고 빈 화면을 마주한다. 두려움은 재능의 반대말이 아니라 여전히 이 일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징표라는 작가의 따뜻한 해석이 글쓰기를 넘어 하루하루 버거운 삶을 버텨내는 모든 노동자들에게도 응원으로 다가왔다. 두려워도 도망치지 않고 다시 돌아와 묵묵히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이미 훌륭한 재능임을 깨달았다.
대단한 글쓰기 비법이나 완벽한 문장력을 가르쳐주는 딱딱한 작법서가 아니다. 그저 쓰기 싫은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백지가 된 스스로를 받아들이라고 다독이는 아주 인간적인 책이다. 내일의 삶이 두렵고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올 때면 눈물이 날 만큼 억울했던 야구의 9회 초를 털어내고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는 작가처럼 나 역시 묵묵히 내 인생의 다음 타석에 들어설 용기를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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