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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사상 - 일상을 뒤집는 빛과 춤의 다큐멘터리
이준희 지음 / 스미다 / 2025년 11월
평점 :
준희 작가의 '춤추는 사상'은 제목만 보고 난해한 철학 서적일 것이라 짐작했던 나의 예상을 뒤집은 반전의 사진집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상은 골치 아픈 이념이 아니라 부산의 지명인 사상구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몇 장 넘기지 않고 알게 되었다. 낡은 공장과 기름때 묻은 기계들이 돌아가는 회색빛 공단이 무용수의 우아한 몸짓과 화려한 조명을 만나 예술적인 무대로 변모하는 순간은 경이로웠다.
평소 스윙 바에서 린디합을 추거나 감미로운 주크 음악에 몸을 맡기는 춤 애호가로서 이 사진집은 단순한 시각적 유희를 넘어 온몸으로 전해지는 감정이 있다. 거친 시멘트 바닥이나 쇠파이프 같은 삭막한 공간이 댄서의 숨결로 채워질 때 그곳은 그 어떤 화려한 무도회장보다 더 뜨거운 텐션을 뿜어낸다. 춤을 출 때 파트너와 주고받는 교감과 자유가 멈춰버린 차가운 기계들 사이에서 생생하게 피어나는 모습을 보며 묘한 동질감과 벅찬 해방감을 동시에 느꼈다.
책에 실린 사진들은 이질적인 것들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묘한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거친 쇠붙이와 부드러운 춤선 그리고 삭막한 산업 현장과 몽환적인 빛의 대비는 익숙한 공간을 낯설게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작가는 쇠락해가는 공단 지역을 단순히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역동성과 미학을 발굴해 낸다. 멈춰버린 기계 앞에서 생동감 넘치게 뛰어오르는 무용수의 모습은 마치 죽어가는 도시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으려는 심폐소생술처럼 느껴진다.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공간들도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얼마든지 특별한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흔히 멋진 풍경을 찾아 멀리 떠나려 하지만 진짜 보물은 어쩌면 가장 누추하고 평범한 곳에 숨어 있을지 모른다. 사상이라는 지역이 품은 세월의 흔적과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땀방울이 예술과 만나 빛나는 유산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은 도시 재생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듯했다.
사진 한 장 한 장이 전하는 메시지는 텍스트보다 더 강렬한 느낌을 준다. 낡고 오래된 것들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그것들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의 시선에 깊은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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