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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머물던 자리
김임수 지음 / 메이킹북스 / 2025년 9월
평점 :
'시간이 머물던 자리'는 제목 그 자체로 한 편의 시처럼 잔잔한 울림을 주며 아련한 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책의 표지를 장식한 물감이 흘러내린 듯한 여린 선들은 마치 글의 결처럼 부드럽고 우리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과거의 어떤 순간을 상징하는 듯하다. 이 책은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의 시간 속에서 잠시 멈춰,우리가 잊고 지냈던 삶의 본질과 기억의 온기를 돌아보게 만드는 따뜻한 산문집이다.
'시간이 머물던 자리'가 고향임을 암시하듯 보여준다. 고향은 조건 없는 그리움이다." "가난했더라도, 환경이 초라해도 상관없다"는 문장에서 고향이 그 모든 조건을 뛰어넘는 "꿈과 희망의 요람"이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힌다.
저자의 시선이 참 따뜻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삶을 평가하거나 꾸미지 않고 자신이 지나온 길과 그 길 위에 남은 사람들의 숨결을 들여다본다. 저자가 그리는 어린 시절의 풍경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다. 500년 수령의 느티나무 가지에 깃든 새와 박쥐, 서산에 둥지를 튼 눈부신 백로 한 쌍. 그 "에덴동산처럼 아름다운 곳"에서 사색 공부를 하던 때가 그립다는 그의 고백은 세속에 지친 우리에게 마음의 안식처로 다가온다.
나 자신의 '시간이 머물던 자리'는 어디였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 자리는 결국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 사라져간 순간, 잊지 못할 풍경이 함께 머물던 곳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저자가 묘사하는 동화 속 낙원 같은 시골 풍경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친구들과 뛰어놀던 낡은 아파트의 놀이터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그런 '꿈과 희망의 요람'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머물던 자리는 단순히 한 개인의 추억을 담은 수필집이 아니다. 그것은 삭막하고 빠른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당신의 삶을 지탱해주는 근원은 무엇인지 묻는 질문을 던지는듯 하다. 화려한 수사나 거창한 담론 없이도 잔잔한 문장만으로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힘은 바로 이 공감에서 나온다. 저자의 문장은 그저 회상에 머물지 않고 우리에게 잊히지 않는 기억을 다정히 품은 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법’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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