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의 맛
그림형제 지음 / 펜타클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형제 작가의 책 '퇴근의 맛'은 퇴근 후의 저녁 식사를 배경으로 스무 가지 인생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낸 작품이다. 하루 종일 고단하게 몸과 마음을 소모하다가도 우리는 퇴근 후 작은 한 끼의 식사에서 위로와 안정을 얻는다. 책 표지에 그려진 하루의 일을 마치고 허기진 발걸음으로 작은 식당을 향하는 한 사람의 모습은 곧 우리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 저녁이라는 시간에 깃든 소중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말 대신 삼킨 것들이 저녁 식탁 위에 하나둘 놓입니다."

책 속의 이 문장은 작품의 핵심을 관통한다. 우리는 종종 회사에서 혹은 일상에서 꾹꾹 눌러 담았던 서러움과 분노, 말없이 자축하고 싶었던 작은 성취들을 안고 살아간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와닿았던 점은 저녁 한 끼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삶의 기록 이라는 것이다.

고된 3교대 근무를 마치고 얼얼한 마라탕으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간호사의 이야기는 같은 의료인으로서 깊은 인상을 남긴다. 환자의 고통을 곁에서 지켜보고 회복을 위해 온 힘을 쏟아붓는 일은 다른 의료인에게도 깊은 공감을 산다. 하루 종일 타인의 아픔에 집중하다 보면 정작 자신의 몸과 마음은 무감각해진다. 그럴 때 마라탕의 강렬하고 짜릿한 매운맛은 닫혀있던 모든 감각을 깨우고, 땀과 함께 하루의 피로와 감정의 찌꺼기를 씻어내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다. 이는 단순히 음식을 먹는 행위를 넘어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치유의 시간인 것이다.

매일 퇴근 후 아내가 차려주는 따뜻한 저녁을 마주하는 나에게도 새로운 의미를 던져준다. 당연하게 여겼던 매일 달라지는 식탁 위의 메뉴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사랑과 정성이 담긴 표현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오늘 저녁은 무엇일까' 기대하는 마음이 곧 행복이었음을 그리고 그 식탁을 준비해주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이는 책 속 인물들이 홀로 해결하는 식사와는 또 다른 결의 나만의 '퇴근의 맛'이며 집이라는 공간에서 나누는 온기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그림형제 작가의 따뜻한 그림은 글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퇴근길의 쓸쓸한 풍경,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의 온기와 인물들의 지친 표정들이 서정적인 그림체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 역시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퇴근 후의 시간은 짧고 소중하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저녁을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작은 의식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작은 식탁 위에서 피어나는 대화와 웃음 이 얼마나 값진 순간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이 서평은 서평가 지스( @jisiknn.book)의 '지식인 독서단'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