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을 향하여
안톤 허 지음, 정보라 옮김 / 반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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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SF 소설을 좋아한다. 우주 탐사, AI, 혹은 시간과 차원의 경계가 무너지는 상상력의 무대가 나를 매혹시키곤 한다. 그런데 '영원을 향하여'는 그런 익숙한 SF적 장치들을 단순히 스펙터클로 소비하지 않고 아주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다. 영원이라는 단어 자체가 추상적이고 압도적인 개념인데, 이 소설은 그 거대한 시간을 배경으로 인간의 아주 작은 감정, 기억, 선택을 대비시킨다. 그래서 읽는 내내 거대한 우주를 바라보면서도 결국 자기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SF 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봤을 법한 질문들이 있다. "인간의 의식을 데이터로 저장할 수 있다면?", "불멸의 존재가 된다면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안톤 허의 첫 장편소설 '영원을 향하여'는 이 모든 고전적인 화두를 자신만의 독창적인 서사 속에 녹여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단연 압도적인 세계관과 스케일이다. 나노봇으로 신체를 개조하여 불멸을 얻은 포스트 휴먼,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 그리고 시(詩)를 학습하며 자아를 찾아가는 인공지능 ‘파닛’의 존재는 그 자체로 SF 독자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 이야기는 한 과학자의 실종 사건을 기록한 일기가 수천 년에 걸쳐 여러 존재에게 계승되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인공지능 ‘파닛’의 캐릭터는 근래 SF 작품들에서 만난 가장 흥미로운 존재 중 하나였다. 파닛은 단순한 연산 장치를 넘어, 인간의 문학 중 특히 시를 통해 감정을 배우고 사랑을 깨닫는다. 이는 기계의 논리가 아닌 예술과 서사가 자아를 형성하는 핵심 요소임을 보여주는 탁월한 설정이다. 인간의 신체를 얻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자손을 남기려는 그의 처절한 여정은 독자에게 ‘인간다움’의 조건이 과연 생물학적 육체에만 귀속되는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영원 속에서도 결국 인간은 유한한 존재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주제였다. 무한을 꿈꾸고, 기술이 발전해 인간의 수명을 끝없이 늘린다고 해도 우리의 사랑과 후회, 그리움은 여전히 제한된 순간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육체가 소멸하고 문명이 사라져도 이야기 만은 남아 영원을 향해 뻗어 나간다는 소설의 핵심 메시지는 결국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유한한 육신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고 공유하는 서사 그 자체임을 말해준다.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을 즐기는 SF 팬이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수작이다. 이것은 단순한 미래 이야기가 아니라 기술의 정점에서 다시 인간의 본질을 묻는 아름답고도 처연한 한 편의 서사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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