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 범죄 너머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낙관
정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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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20여 년간 검사로 재직하며 마주했던 수많은 사건 이면의 풍경들을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는 시선으로 풀어낸다.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저자가 경험한 실제 사건들을 바탕으로 '사건 외곽의 풍경들'을 들여다보고, 검사로서의 일상과 내면의 성찰을 담은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을 이야기하며, 마지막으로 시골 지청에서의 경험을 통해 '느리게, 그러나 깊이 있게'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을 그린다.

범죄와 법, 옳고 그름, 유죄와 무죄로만 세상을 나누는 것이 과연 충분한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법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 '두부 공장 횡령 사건, 존속살해예비죄 사건, 다채로운 법정 인물들' 을 통해, 작가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무책임, 체념, 합리화 등 이면의 감정과 사연들을 조명한다. 우리가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모습들조차 상처와 선택, 연민과 용서가 스며 있음을 보여주며, 범죄의 현장 그 자체가 결국은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임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아버지를 살해하려 했다는 '존속살해예비죄'의 차가운 죄명 뒤에는 차마 자식을 신고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피눈물 어린 통곡이 숨어있다. 평생을 두부 공장에서 헌신했지만 결국 횡령죄로 기소된 공장장의 기구한 사연은 우리에게 죄의 무게와 삶의 무게 중 무엇이 더 무거운가 하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처럼 흑과 백으로 명확히 나뉘지 않는 회색지대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단순한 구도를 넘어, 그들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와 상처를 들여다보며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과 이해를 드러낸다.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가해자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며 선처를 호소하는 피해자 가족의 모습은, 법의 잣대를 넘어선 사랑의 또 다른 형태를 보여주며 깊은 울림을 준다.

저자가 어떤 순간에도 절망하지 않고 작은 공감과 연민,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각 사건 속 인물들의 불완전함과 아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들을 따뜻하게 묘사한다. 냉철한 옳고 그름의 잣대가 전부가 아니라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한다.

정명원 작가의 글은 건조한 사건 기록이 아닌, 한 편의 서정적인 산문처럼 읽힌다. 섬세한 문체는 자칫 무겁고 어두울 수 있는 주제를 따뜻한 온기로 감싸 안는다. '작가 지망 검사'라는 별칭처럼 글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찰력이 녹아 있어 독자들에게 차가울법한 법의 세계 이면에 존재하는 뜨거운 삶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법은 흑백 논리로 세상을 나누지만, 인간의 삶은 늘 회색지대에 있다고 정명원 작가는 말한다.
'사람을 이해하려는 상상력을 잃는 순간, 법은 공허해진다.'
이 말처럼 법과 정의는 결국 사람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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