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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딩 - 그곳에 회색고래가 있다
도린 커닝햄 지음, 조은아 옮김 / 멀리깊이 / 2025년 7월
평점 :
'사운딩: 그곳에 회색고래가 있다'는 BBC 기후 전문 기자 도린 커닝햄이 두 살배기 아들과 함께 북극해까지 회색고래의 이주 경로를 따라 떠난 16,000km의 여정을 기록한 에세이다. 출산 후 자산과 일자리를 모두 잃은 저자는 삶의 새로운 전환점을 찾아 멕시코에서 북극까지 직접 길을 나서고, 길 위에서 만난 자연과 사람, 특히 북극의 이누피아트 가족과의 시간을 통해 고래와 인간, 자연과 여성 그리고 엄마와 아이가 함께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간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자연, 특히 고래의 생태를 통해 인간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데 있다. 어미 회색고래가 갓 태어난 새끼에게 헤엄치는 법과 숨 쉬는 법을 가르치고, 범고래의 공격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보호하는 모습은 저자의 모성과 겹쳐지며 강렬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기후 변화로 인해 녹아내리는 빙하와 위협받는 고래의 서식지는 인류가 직면한 현실을 직시하게 하며 묵직한 경고를 던진다.
저자는 이누피아트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배운다. 그들은 고래를 단순한 사냥감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신성한 존재로 존중한다. 고래의 모든 부분을 소중히 사용하고, 그 영혼을 기리는 그들의 모습은 자연을 착취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현대 문명에 문제점을 짚는다.
그녀는 단지 탐험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이해하며 회복하고자 한다. 그 과정 속에서 아이와 함께하는 삶의 방식, 인간과 자연의 경계, 그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사운딩은 그런 구조적 한계에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묻는다. 결국 소리 낼 권리와 들리는 존재로서의 가치를 스스로 확인해 간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인 사운딩(Sounding)이 더욱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 고래의 소리이기도 하고, 여성의 목소리이기도 하며, 세상에 대한 회답이기도 하다. 고래가 깊은 바닷속으로 잠수하는 행위를 통해 우리에게 삶의 깊이를 탐색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때로는 거친 파도에 휩쓸리고, 때로는 깊은 어둠 속을 헤매더라도, 결국 우리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쉬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회색고래의 장엄한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 자신의 삶을 위로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가디언선정 ‘2022 최고의 자연 에세이’, 영국 왕립문학회 자일스 세인트 오빈상 수상작으로 그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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