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에 대한 이미지는 예스럽다는 것이다. 그리 오래 전 이야기도 아닌데 말이다.
박범신 작가의 글은 촐라체 이후 두 번째이다. 30페이지 가량 읽다가 덮은 것이 수 년 전이니 실제 읽은 것은 소금이 처음이라 볼 수 있다. 은교는 영화가 만족스러워 소설로 읽지는 않았다.
소금을 읽고 나니 촐라체를 왜 다 읽지 못했을까... 생각했다. 소금은 아버지들의 이야기이다. 몇 명의 아버지들의 삶을 따라 읽으며 수를 헤아리다가 그만 뒀다. 모두가 누군가의 아버지 혹은 그들의 자녀이기에.
소금의 달고 시고 짜고 쓴 맛 중 소설을 덮으며 다가온 것은 쓴 맛이다. 철저한 자본주의의 굴레에서 삐져나온 듯한 인물들의 모습이 씁쓸한 현실을 보여줬다. 사회를 소설 속에 녹여내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닌 비판 기능을 하려 한다는 작가의 의도에서 비롯한다. 불편함의 극대화로 소설의 강렬함은 살아났지만 그 속의 희망이라 볼 수 있는 세희누나의 등장과 퇴장은 보여주기식인 듯 했다.
아버지와의 연결고리인 소금을 통해 흘러가는 인생을 붙잡고 살아가는 선명우. 가족의 해체 끝에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시우와 도시의 삶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온 시인인 나. 그들은 무척 현실적인 이웃의 모습과 기이하고 짐승같은 이면의 모습을 보여준다. 굉장히 입체적이다.
소설의 문체도 좋았다. 너저분하거나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된 느낌도 없고 한글의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박범신 작가에 대해 잘 모르지만 계속 새로운 작품으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