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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후
정여랑 지음 / 위키드위키 / 2020년 11월
평점 :
너희는 너희 시대의 페미니즘을 실천하면서 살면 돼.
미영이 말했다.
그러면 될까. 정말, 그러면 될까. 그러면 내 엄마가, 할머니가, 그 할머니의 엄마가 겪었던 여성 착취의 역사가 위로받고 보상받을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세상이 정말 올까봐 가슴이 떨리고, 절대로 오지 않을까봐 두렵다. “예전에는 누가 밥한다고, 설거지한다고 월급을 주길 했어요? …… 내 새끼 내가 먹이고 씻기고, 내 집 내 살림 내가 건사한다고 누가 그걸 돈으로 쳐 줬냐고요. 돈 못 버니 살림이나 한다 소리나 들었지. ……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을 위해서, 또 계속 늙어 갈 우리들을 위해서 이 나라가 돌봄 노동이 귀하다는 걸 인정해 주겠대요.(105쪽)” 꿈같은 이야기다. 출산 후 직장 재계약이 요원해지며 느꼈던 막막함을 국가가 보상해줄 수 있다면, 아기를 돌보고 가사노동을 수행한 시간을 경력으로 쳐 준다면 돌봄이나 가사가 폭탄 돌리기가 되지 않고 좀 더 기꺼이 할 수 있었으려나.
예비 생활동반자들에게 시행하는 의무 이수 교육 내용도 정말 좋았다. 이런 교육을 당장 시행하지 않고 국가는 뭐 하는 걸까 생각될 정도다. 책에 나온 리스트를 바탕으로 배우자와 대화해 보니, 많은 부분이 일치했고, 또 많은 부분이 달랐다. 배우자는 결혼 전부터 이상적인 결혼 후 청사진을 ‘아이가 있는 생활’로 그려왔었다. 그러니 지금의 생활은 배우자의 청사진과 부합하는 부분이 많은 편이다. 그에 반해 나는 한 번도, 결혼 후엔 아기를 낳고 키우는 삶이 내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란 청사진을 그려본 적이 없었다. 마음의 준비 정도가 다르니 지금의 생활에서 수없이 일어나는 갈등을 해결하는데 지혜가 부족할 때가 많다. 결혼을 해서 이성애자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좀 더 고민했어야 했다. 과거의 결정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충분한 준비를 한 후의 선택이냐 아니냐.
‘정상’이라는 건 하나든 둘이든 책임질 이가 책임을 다하는 것을 말하는 거(150쪽)란 문장이 가슴을 친다. 보는 부너미 글에도 썼지만 나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깊이 얽매였던 사람이다. 지금도 가부장제에 대한 불온한 순종을 깨뜨리기 어려워한다. 하지만 <어떤 것들의 자리>에 나오는 형숙 샘의 이야기처럼 평생 몸에 익혀온 ‘정상’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삶으로 깨뜨려나가고 싶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 시대의 페미니즘이 다 뭐란 말인가. 비혼주의로 살면서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일? 결혼은 했지만 가부장제 구조를 거부하며 살아가는 일? 여성의 어떤 형태의 삶도 페미니즘의 범주에 속할 수 있지만, 어떻게 살아야 더 큰 범주의 페미니즘을 누리고/적용시키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는 고민해보아야 한다. 물론 구조 안에서 그 누구도 단번에 온전한 해방/자유를 누릴 수는 없다. 하지만 구조의 전형성 안에서 아무 것도 의심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큰 문제이다. 정여랑의 <5년 후>는 그런 맥락에서 구조의 전형성을 깨뜨리고, 의심한다. 우리의 페미니즘도 계속해서 의심해야 한다. 우리의 페미니즘이 시대를 뛰어넘지 못하는 어떤 전형성을 띠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비혼/기혼/이성애자/비장애인/청년 중심으로 가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페미니즘 안에도 결국 권력이 존재하지는 않는지 따져 보아야 한다. 성소수자/장애인/어린이/이주민/동물/노년에 접어든 이들이 누릴 페미니즘의 결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내가 당면한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급급하느라 이성애자, 자국민, 젊은이로서 누리고 있는 권력에 대해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5년 후>는 매번 구조를 깨뜨린다. 결혼 갱신제, 청소년 임신 및 출산, 장애인, 이주 여성, LGBTQ의 삶을 이야기한다. 세상에서 논의되어야 하지만 번번히 혐오나 진영논리로 점철되어버리는 이야기들. 그 삶들에 오롯이 조명을 비추어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다.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당연함, 정상, 논리 같은 것들이 정말 옳은 것이었는지. 재고의 여지가 없는지 말이다.
내가 생각한 한시적인 결론을 말하자면, 내 삶에서 이 시대에 나의 페미니즘을 실천하며 사는 일은 과거의 수많은 여성들의 피 맺힌 삶을 모두 구원하진 못한다. 나 자신의 삶이나 내 자식의 삶도 모두 구원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5년 후>같은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기에 애쓰는 이유는, 우리의 지경을 넓히기 위함이다. 내가 생각했던 세상이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지금까지 의심해보거나 궁금해하지 않았던 내 범위 밖의 삶과 구조에 관심을 가지고 변화시키기 위함이다. 나의 페미니즘의 범위를 넓힌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나의 페미니즘이 내 자식을 감싸고, 내 배우자를 감싸고, 내 직장을 감싸고 포용할 수 있도록 내 지경을 넓히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여성 해방에 그치지 않고 모든 인간의 해방으로 나아가야 한다. <5년 후>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별과 노동에 관련 없이 모든 인간이 그 자체로서 나름의 사명을 다하고 살 수 있도록 내가, 내 공동체가, 국가가, 구조가 기꺼이 변화되는 것. 그것이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가 짊어지고 갈 사명이다.
(표지 설명,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부분인데 지금까지 간과해온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이렇게 비장애인으로서 권리를 당연히 누리고 있었던 것을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