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가장 보통의 인간 - SF 작가 최의택의 낯설고 익숙한 장애 체험기
최의택 지음 / 교양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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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시민은 자신들이 "예외" 보이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는다. '소수자' 라는 말도 껄끄럽고 '장애인' 이라는 말도 별로 탐탁치는 않다. 그저 '다른' 구석이 있을 뿐인데 이리들 유난이람.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사항도 아니고, 비소수자에게 '누가 누가 장애가 심한가' 라는 잣대로 세워질 이유는 더더욱 되지 한다. 그저 남들이 하는 없는 것이 있는 사람들이고, 생활이 대다수의 사람과 다른 구석이 있을 뿐인데 소수시민에 대한 차별은 각자의 장애나 상태에 대한 선입견과 잘못된 지식을 비판 없이 채용한 데서 오는 무조건적인 배제, 혹은 소수자가 참여하는 활동에 예외행동을 짜야 하는데 대한 귀찮음에서 우러나는 증오 표현으로 나타난다. 이런 시선에 대해 비주류의 사람이 아무리 설명하려고 외쳐도, 심지어는 공권력 있는 기관에서 바른 지식을 설파하려고 노력해도, 결국은 '같잖은 변명' 정도로 치부되는 현실이다.

 

📖 p.9 : " 자신을 끊임없이 증명해내야 하는 이러한 고통은 [...] '일반적'이지 않은 특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있는 문제다."

 

신체장애인이 아니더라도 다른 형태의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 특히 정신장애인의 차별 피해도 크다. 조현병 계통을 앓는 사람이 아무리 자신은 '안전한 공간에서 일에 집중할 있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이 고성과를 있다' 설득해봤자 인사권이 있는 사람은 사람이 일하다 말고 벌떡 일어나 묻지마 칼부림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있고, "나는 두려움을 느끼는 장애가 있다" 설명하며 어떤 활동을 거절 때에는 병명부터 그의 의학적 근거까지 학회 수준의 설명을 반복해야 하고 후에 결국 돌아오는 답은 "그래서 사회생활 어떻게 , 참을 줄도 알아야지" 라는 말이다. 마치 출근해야 때는 책임감 있게 생리를 참았다가 퇴근하고 나서 집에서 피를 쏟아야 한다는 처럼 들린다. "시각장애인이에요" 라고 하면 음성, 혹은 점자로 서비스로 바꾸듯이 "ㅇㅇ정신병이에요" 라고만 하면 증명과 합리화 없이 정보 전달이 올바르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해서 신체 장애인의 장애가 가시적이기 때문에 그들이 전부 어떤 시각장애인 유튜버처럼 존경, 배려, 기타 긍정적인 반응으로만 대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게다가 외부의 차별 스트레스 없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체장애인들은 하루 깨어 있는 시간은 전부 비장애인 위주의 세상에서 불편을 겪으며 사는데 자모씩 힘들게 글을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은 그런 면을 세세하게 보여준다. 속에서 작가가 가진 고민 또한 여실히 보여주는데 장애인이라는 것에 대한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내려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 p.53 "장애인 유튜버 (지나치게 비장애인 관점의 수식어지만 [] 순전히 효율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수식어를 사용 []"

 

장애인을 장애인이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 장애인이라는 말이 차별적이라고 장애우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었고, 여전히 사람들은 "저는 시각장애인이에요" 보다 "제가 눈이 불편해서요" 라고 하는게 작위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라는 책에 등장한, 외국인에게 "한국인 됐네요" 라는 표현이 불쾌한 이유가 '외국인은 한국인보다 좋은 ' 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생각난다. 그런 상용되는 긍정적 의도의 표현을 쓰지 말자는 움직임보다는 '외국인' 이라는 개념에 잘못 붙어있는 부정적 감정을 제거해서 불쾌할 이유를 없애는 것이 우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게이' '정신병자' 욕으로 쓰이고 있는데 '여자' 혹은 '어린이' 같은 특성 묘사의 단어에 그릇되게 달라붙은 부정적 의미를 제거하는데 주력하지 않고 '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을 찾아 헤매는 것은 불이 났는데 불을 끄는 대신 문을 닫아 불이 보이지 않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장애인' 역시 단순히 사람의 어떤 특성을 의미하는 중립적인 단어에 지나지 않게 되면 가뜩이나 사는 자체가 힘든 장애인들이 임포스터 신드롬까지 겪으며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게 것이다.

 

📖 p.121 "너는 왜 우영우처럼 귀엽고 사랑스럽고 무해하지 않지? 나는 너를 장애인으로 인정하지 않겠어"

작가가 이 부분에서 의식의 흐름이 끊기고 전이되어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정확히는 이해하지 못 했으나 대충 우영우의 시청자들 중에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니 이런 불편한 반응에 대해 우영우 제작진이 책임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시청자들이 매스컴의 허구의 작품의 허구성을 받아들이는 범위는 배우 박은진의 이름이 우영우가 아니고 직업도 변호사가 아니라는데 그친다. 그 외의 배경이 되는 '설정' - 인물들이 외계인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 부터 외부 장면이 실제 한국의 거리인 것, 그리고 변호사로 일 한다는 것은 어떻고 변호사들은 어떻게 말 하고 행동하며, 자폐인들은 어떤 모습인지 등은 비판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 그것이 매스컴의 파급력이다. 그렇다고 자폐가 스펙트럼 장애고 하위 분류가 십수가지라는 것 까지 설명하면 드라마가 아니라 다큐멘터리가 될 터이지만 "너는 우영우 같지 않아서 자폐 장애인이 아닐 거야" 라는 반응과 맞서야 하는 피해자들을 양산할 가능성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면 이는 명백히 드라마 제작사의 실책이다.

 

📖 p. 211 "나도 장애인은 처음이라서"

작가가 지은 이 책 제목 1안이었단다. 난 솔직히 지금 제목보다 이게 훨씬 더 마음에 든다. 수 많은 출판사의 제목과 표지 투표에 참가했는데 내가 뽑은 선택지가 한 번도 최종적으로 선택 된 적이 없는 걸 보니 내가 책을 쓰면 독자들의 눈길을 끌긴 어렵겠구나 싶다.

 

그리고 본문에서 작가도 지적했듯이 저자가 장애인인데 비장애인이 주류를 이루는 어떤 활동 (= 집필) 했다고 해서 책을 사회운동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대다수의 독자는 선천성 근위축증을 경험해 적이 없을테니 장애인의 브이로그를 관람하는 기분으로, 저자의 눈을 통해 보는 세상을 구경하면 것이다.

 

다수와 다른 소수로 산다는 , 그리고 그에 따른 차별과 불공평에 관한 이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면 읽어봐야 하나다. 거시적 관점에서 차별 행태와 현황에 대해 논하는 책은 많지만 독자로서 피부로 느끼고 공감할 있는 이런 소수시민 명의 눈으로 보는 삶의 이야기는 값지다. 그리고 내가 겪었던 차별의 설움이 있었다면 책을 읽으면서 작가와 공감을 대화를 나누는 경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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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종말은 투표로 결정되었습니다
위래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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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 같은 노인네들은 노스트라다무스, Y2K, 마야 달력 등 각종 지구 종말에 대한 공포스러운 예언을 들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사실 확실한 근거가 없는 예측들이어서 그 때마다 사람들은 "그거 들었어? x x일에 지구가 멸망한대" 라고 하면서도 속으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는 생각은 떨쳐버리지 못 했다. 지구의 종말이 오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흥미 위주의 토론은 있어도 실제로 종말을 대비하기 위해 그 동안 못했던 것을 한다거나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더 보내려고 한다거나 하는 실질적인 대비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종말이 확정되면 그 때의 우리 사화의 풍경은 어떨까? 바로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우리 동네, 서로아는 친구와 이웃이 같이 숨 쉬는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는 공기는 어떻게 바뀔까? 이 호기심에 대한 해답으로 여섯 명의 작가가 모여 '종말 앤솔러지'를 집필한 결과물이 [인류의 종말은 투표로 결정되었습니다] 이다. 어떤 단편은 종말의 원인을 깊이 설명하는데 주력하고 어떤 편은 한없이 장면을 확대하여 종말을 앞둔 지구상의 단 몇 명의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그들의 마지막 며칠을 조명하기도 한다. 신기하게 각 작가가 전경, 혹은 최소한 배경으로라도 묘사하는 종말 직전의 사회상이 전부 다르다. 순순히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사회도 있고, 온 힘을 다해 불쾌감을 표현하는 사회도 있었고, 또는 종말 직전에는 너무나 아수라장이 되어 종말에 대해 생각 할 겨를도 없는 사회도 보였다.

 

📖 죽이는 것이 더 낫다 :: 위래

가장 상상력이 돋보이는 단편이면서 가장 읽으며, 읽고 난 후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편이었다. 내용 때문이 아니다. 인류의 종말을 야기시키는 '책 한 권' 형태의 '신비'에 대한 연구 보고서 형식을 띄고 있는데, 수상할 만큼 SCP 세계관의 보고서 형식과 닮아 있었다. 물론 '기이한 물건, 혹은 대상', 그리고 그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내용은 상상력이 있는 작가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지만 전 세계의 작가들이 모여 구축한 방대한 SCP 세계관의 입지가 너무 견고해 자꾸 이 단편에 대한 비교와 부정적인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객관적으로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읽기만 해도 살육 기계가 되어버리는 책과 그 책이 확산되며 전 인류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얼마 전 수도권 각지의 '묻지마 칼부림' 사건들을 떠올리니 이 단편의 내용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아 진지하게 이 단편에 묘사된 종류의 종말이 온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 침착한 종말 :: 유권조

AI가 인류를 지배하는 수준이 되어버린 세계에서 UN의 역할을 하고 있는 세계의회를 구성하는 안드로이드의 집단적 연산으로 인위적으로 세계를 멸망시키는 것이 옳다는 결론이 나와 종말이 확정된다는 이야기다. 사실 지구와 자연을 위해서 인구수는 줄어야 하는게 맞지만 이를 오만한 인간에게 자기들의 운명을 다른 존재가 결정했다는 식으로 통보하니 전 세계적으로 반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 캐시 - 이아람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주제와 목적지와 과정이 명백한 일반적인 소설과 달리 순문학과 예술적 글쓰기는 아직 내겐 어려웠다. 미래를 예견할 있는 주인공과 그녀의 표준에서 한참 벗어난 가족의 가족관계라는 속박에서 그녀가 벗어나는 이야기다. 단편 중간에 갑자기 시점이 '2인칭' 시점으로 전환되는데 상대방이 명확하지 않다. '친구' 라고는 하지만 이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고 흐릿한 안개 너머로만 보이는 '친구' 행동 묘사만 있는 것으로 보아 간신히 시야의 초점을 붙들고 종말 이후의 세계를 힘겹게 죽지 못해 살아가는 주인공의 시점을 두서없이 보여주는 의미가 아니었나 싶었다.

 

📖 시네필()의 마지막 하루 :: 김도연

지구가 한 달 후에 멸망하면 넌 마지막에 뭘 할거야?” 에 대해 작가는 이 단편을 답으로 내놓았다. 영화광을 뜻하는 cinephile 들은 종말을 어떻게 맞을까? 외계인들로 인해 종말이 예견된 어느 시점에서 한국 사회는 차분히 순차적으로 종말 이후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미리 안락사나 자살을 조용히 하는 사람이 있는 한 편, 기업은 곳간을 열어 마지막 순간까지 인류가 자신이 해보고 싶었던 것을 원 없이 하도록 해 준다. 종말이 몇 시간 남지 않은 순간, 영화광 주인공 세 명은 모여서 그 중 한 명이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었던 영화를 찾아 그 영화를 봐야만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뒤지고 다닌다. 나는 종말이 몇 시간 앞으로 다가온다면 무엇을 하고 싶을까? 침몰하는 타이타닉에서 발견된 노부부의 유골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쥐고 그의 존재를 오롯이 느끼는데 집중하고 있을까 아니면 캡사이신 가루에 밥을 비벼 먹고 차라리 종말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빌고 있을까?

 

📖 멸망을 향하여

단편은 흥미롭게도 '외부의 힘에 의해 우리가 아는 세계가 멸망' 하는 것이 아닌 '우리 인류의 힘으로 우리에게 의존하는 세계가 멸망하는' 이야기다. 게임 속의 세계에서 게임 캐릭터들과 '주인공' 이라 불리는 플레이어의 상호작용을 그리는 것과 동시에 '서버 종료'라는 형태의 세계 멸망을 맞이하는 그들의 태도도 보여준다. 서버 종료때까지 게임을 적도 없거니와 인기가 떨어진 게임이 서비스를 종료한다는 것에 대해 별로 생각을 적이 없는데 사고 능력이 있는 고도화된 AI 등장하는 세계에서는 그들도 '서버종료' 인류의 멸망처럼 받아들이고, 그런 서버 종료를 행하는 인간측의 플레이어들은 단편에서처럼 캐릭터들을 보며 아쉬움을 느낄까?

 

📖 가위바위보 세이브 어스

단편의 주인공은 초능력이 있다. , 그게 '가위바위보에서 절대 지지 않는' 어쩌면 하찮아 보이는 초능력이라는 것이 반전이다. 그런데 이런 아닌 같은 능력이 세계에서 가장 값진 능력이 되는 순간이 온다. 외계인들이 지구인들에게 가위바위보 승부를 걸어왔고 대결에서 진다는 것은 멸망을 의미한다. 어처구니 없이 유머러스 단편은 앤솔러지를 마무리하기 없이 완벽하고 깔끔한 디저트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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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이동윤 옮김 / 푸른숲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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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나 영상 작품에서 가장 두려움을 유발하는 것은 무서운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독자, 혹은 시청자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다. 독자로서 나까지 작중 주요인물 조앤에게 휘둘리며 책을 읽어 나가다가 정점에서 조앤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눈이 뜨이는 순간 등에 소름이 끼쳤다.

 

소설의 시작은 20세기 초반의 미스터리처럼 순수하게 시작한다. 현재 사립탐정 일을 하고 있는 고등학교 은사 헨리를 찾아온 조앤은 자기 남편이 직장 동료와 불륜관계인 같다며 증거를 수집해 것을 요구한다. 남편 '리처드'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부터 책의 반이 아주 천천히 타들어가는 양초처럼 고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조앤이 '리처드' 친해진 경위와 현재 시점에서 헨리가 '리처드' 미행하며 그와 그의 불륜상대 팸에 대해 알아내는 과정이 번갈아가며 서술된다. 그리고 책의 정도 되는 시점에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이 되며 독자는 작가의 서술트릭에 속았다는 번째 충격을 받고 시작한다. 시점부터 지금까지 읽었던 모든 것이 뒤엎어진다.

 

소설은 진정한 사이코패스에 관한 소설이다. 점을 깨닫는 순간이 공포의 순간이다. '사이코패스' 하면 진부한 표현으로 거의 만화적인 미치광이처럼 살육을 즐기고 살인하는 외엔 아무런 삶의 자극제가 없는 사람처럼 묘사되는데 의학적 의미의 진정한 사이코패스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살려 마땅한 사람들]이다. 은근하게 정신속으로 프리온처럼 스며들어 사람을 조종하는 사이코패스의 모습을 꺼풀 각도씩 벗기고 돌려가며 독자들이 서서히 자신이 마주한 존재가 무엇인지 눈을 뜨게 하는 작가의 기법이 예술적이다.

 

전형적인 영미유럽식 서스펜스 소설이다. 사건을 보여주고 사건의 배후나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 목적인 후더닛 스타일과는 달리 장르에서 사건 후에 이면에 관한 정보는 거의 주고 공격자와 진실을 좇는 자의 공방전이 줄거리를 이룬다. 마치 폐가에서 희생자를 뒤쫓는 살인마와 살인마를 피해 방에서 방으로 뛰어 다니며 숨죽이는 주인공을 보는듯한 소설이다. 사실 이런 유형은 가능한 결말이 가지 뿐이라 본격 추리소설 같은 대단한 반전은 없었으나 결말까지 가는 과정에서 여러 혹시 내가 이해한 것이 틀리지 않았나 의심도 해보고 인물의 숨겨진 면모도 뜯어보며 즐거웠다.

 

번역사로서 책의 역자의 오타, 오기, 오역이 눈에 띄지 않을 없었다. 군데 군데 직역투가 많이 보여 약간 거슬렸으나 피터 스완슨 작가의 문장이 워낙 시원시원하고 직설적이고 복잡한 수사법이나 문장성분 도치 등의 화려한 단어샐러드를 쓰지 않는 작가라 글이 단순한 구조라서 읽기가 쉬웠다. 줄거리가 너무 재미있어서 페이지가 저절로 마구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빠져들어 읽다보니 시간이 많이 흘러 있었다. 작가의 이전 소설 <죽여 마땅한 사람들> 더욱 호평을 받았던데 책도 조만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내가 독서력이 딸리는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작품에서 사람을 살리고 구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데 제목과 내용의 연관성이 무엇인지, 혹은 그냥 시리즈처럼 전작과 이어주기 위해서 붙인 제목인지 판단이 되지 않아서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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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궁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시공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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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에 앞서 저는 출판사로부터 정식 출간 이전에 가제본 판을 받았음을 알려 드립니다. 단, 해당 번역 오류가 단순히 한 군데에 나온 오기나 오타 수준이 아닌 수십 페이지에 걸쳐서 나오는 명백한 오역이기에 이를 짚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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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이 한국사에 기반해 소설을 쓴다면 독자층이 아주 넓어진다. 한국사를 알고 정서적으로 공명하는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과 애매하게 알고 있는 같은 교포 2세까지 즐길 있는 작품이 된다. 이야기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당시 이야기를 미리 알고 시작하고자 다른 책을 먼저 찾아봤는데, 추천할만한 것은 한국사에 익숙한 독자라면 <한중록> 읽으면 것이고 나처럼 한자어로 직책, 직위, 부서 등의 용어를 어려워하는 독자라면 이규희 작가의 역사동화 <사도세자의 슬픔> 너무 짧지도 않고 적당한 디테일을 쉬운 말로 풀어 주었다.

 

줄거리는 실제 일어났던 일을 조금 확장하고 미스터리를 더한 것으로, 내부에서 근무하는 의녀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의녀들이 교육을 받고 수련하는 밖의 기관에서 의녀들과 궁녀 하나가 살해된 발견되고 도처에 이는 사도세자의 살인행각이라는 방이 붙는다. 주인공 의녀 백현은 포도청에 새로 부임한 종사관의 비밀 수사에 말려들어 진실을 찾는 모험을 떠난다.

 

원래 어려운 한글과 한자로 되어 있는 문헌을 외국인이 어렵게 영어로 번역하여 공부하고 뜻문자인 글을 풀어쓰고 각색하여 영어로 표현한 내용을 다시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필터를 번이나 통과하다보니 교포에겐 다소 어려울 있는 내용도 쉽게 현대적으로 풀어졌다. 애초에 토대가 한글 문헌이다보니 번역도 수월하게 같았다. 하지만 사실기반으로 각색한 소설을 다룰 주의할 점은 영어는 가족 구성원을 지칭하는 용어가 한국어에 비해 매우 적어 내가 남자든 여자든, 상대방이 손윗누이든 손아랫누이든 모두 sister라고 칭하기 때문에 번역가는 화협옹주가 최소한 사도세자의 누나인지 여동생인지 정도는 알아보고 적절한 용어를 골랐어야 했다. 화협옹주는 왕녀 일곱째이지 사도세자 밑으로 일곱번째 여동생이 결코 아니다. 번역사는 50:50 확률에서 패배했다. 번역의 수준을 가늠할 없어 독서를 보류한 <봉제인형 살인사건> 시리즈가 있었는데 같은 번역사의 작품이라 역시 깔끔하게 포기하고 원서로 읽어야겠다.

 

가지 지적할 점은 편집이다. 번역서에서 고딕체를 쓰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비문학에서 원문에 굵은 글씨로 강조된 것을 한국식으로 옮겨 온 것인데 이 경우는 문제 없다. 두 번째는 문학에서 기울인 글씨로 강조된 것을 한국식으로 옮겨 온 것인데, 원문에서의 의도는 마음 속 생각을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표현하거나 소리내어 글을 읽는다는 가정 하에 음을 높여 강조하는 문구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둘 다 불필요하고 한글에 네이티브 한 표기법이 아니라서 원문에서 강조한 그대로 고딕체를 적용한다면 읽기 매우 불편하고 좋은 번역을 덜 좋은 번역으로 보이게 한다. 마음 속 생각은 작은 따옴표로 표시하면 될 것이고, 한국말은 인토네이션 (음의 높낮이) 가 없기 때문에 강조를 해도 차이가 없다. 이럴 경우 쉼표나 강조어를 덧붙여서 강조 표현을 하거나 현지화의 일환으로 강조표시를 제거해도 문제되지 않는다. 책에서 한 페이지에 열 몇개의 단어가 고딕체로 표시되어 있다보니 저렴한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처럼 보일때도 있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책을 '좋은 ' 으로 판단한 것은 이유야 어쨌든 간에 다른 영한 번역서와는 달리 글이 읽기에 매끄러운 편이어서 일단 끝까지는 읽을 있었고, 무엇보다 내용이 굉장히 탄탄하고 재미있는데다 교육적인 면까지 있다는 점이다. 로맨스 섞여있는거 정말 좋아하는 편인데도 [붉은 ]에서는 설레이는 사랑 감정의 날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어서 본연의 줄거리를 해치지 않는다. 실제 있었던 사건의 흐름에 원래 없던 살인사건과 사건 수사를 끼워넣으면서 재미는 물론 해외 독자들에게 한국 역사의 장면과 시대상을 효과적으로 보여준 것이 감탄할만했다. 한자어로 자료를 가지고 내용을 영어로 표현하기 굉장히 어려웠을 같은데 작가는 대체 어떻게 한건지 궁금해서 책은 원서로 다시 읽어봐야겠다. 뿐만 아니라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모든 정황이 세자가 우울로 비롯된 정신질환으로 폭력적인 이상행동을 보인 것이 분명함에도 저자는 "정신병 환자가 위험하다는 인상을 있어 정신병 관련 내용은 피했다" 라고 점이다. 저자의 다른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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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 미스터리 시리즈 8 1
스카이마린 지음 / 파란문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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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를 사기죄로 고소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싶다. 천재작가라는 문구를 띠지에 떡하니 붙이고 부끄럽지 않았나 싶다. 이 작품은 천재작가는 커녕 끝까지 읽을 가치도 없는 소설이다. 워드프로세서라는 프로그램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 게임 대기 시간에 한 줄씩 생각없이 끄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에는 추리소설 관련 상과 공모전이 너무 많아서 그런데서 상을 받았다거나, 혹은 어떤 출판사의 경우처럼 "후보작 선정"을 했다는 사실이 공신력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공민철 작가의 작품처럼 그냥저냥한데 이게 왜 대상을 받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작품들도 꽤 있다. 그러기에 그러한 상과 공모전과 관련이 없는 신선한 작가와 신선한 출판사의 작품을 발굴 해내고 싶어서 신간 소설인 [원룸]을 정가를 주고 새 책으로 샀는데 너무나 억울하다. 그리고 깨달았다. 공모전류는 적어도 여러 작품의 비교를 통해 개중에서 그나마 나은 작품을 골라 상을 수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 망작이 나올 가능성은 적다는 것.

어떤 영화 감독이 어떤 장면의 카메라 앵글을 어떻게 잡아야 할 지 몰라서 카메라를 직접 들고 이리 저리 돌리고 흔든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그동안 녹화 기능이 켜져 있다. 당연히 현재 대사를 읊는 화자를 비추는 것도 놓치고 도대체 뭘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 모를 영상이 찍힐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작품을 가공도 없이 그대로 표지를 둘러 책으로 출간한 것이 [원룸]이다. 일인칭 시점인지 전지적 작가 시점인지,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면 어떤 인물의 어깨 뒤를 따라다니는지, 혹은 완전한 제3자의 눈으로 서술하는지 알 수가 없다. 모든 시점이 다 섞여 있는데 이는 추상화가 아니라 그냥 난잡한 단어 설사일 뿐이다. 전지적 작가 시점에도 분명 카메라의 위치는 존재한다. 그리고 영상물과는 달리 소설에서 시점이 자주 바뀌면 독자가 굉장히 피로하다. A의 입장에서 B의 행동을 관찰하는 줄 알았더니 이번에는 A의 속마음을 보여주고 A를 따라다니는 시점이 나온다.

이 외에 띄어쓰기 오류는 물론이고 80년대 이후에 보기 힘들었던 인물의 성과 이름을 띄어 쓰는 표기법 ("그의 이름은 홍 길동 이다"), 그리고 굳이 넣지 않아도 될 외국어나 한자 표기 ("전前여자친구", "정어리 통조림 sardines in a can")까지, 어딘가 모르게 묘하게 나이대가 높은 작가가 어거지로 '요즘말'을 쓰려고 하는 시도같은 말, 요즘 시대의 소설에 맞지 않는 "서울시 내부의 허구의 구 와 동" (낙원구 행복동이 연상되었다) 등등, 일부러 독서를 하지 못 하게 흐름을 뎅강뎅강 끊는 시도 같다. 30페이지를 읽는 동안 이만큼의 단점이 발견되어서 더 이상 이 책에 내 귀중한 시간을 쏟고 싶지 않았다. 추리소설 좀 읽은 독자로서 "독자가 어떤 사람이든 결말을 맞히지 못 한다" 는 홍보문구에 끌려서 책을 구매했는데 끝까지 읽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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