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궁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시공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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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에 앞서 저는 출판사로부터 정식 출간 이전에 가제본 판을 받았음을 알려 드립니다. 단, 해당 번역 오류가 단순히 한 군데에 나온 오기나 오타 수준이 아닌 수십 페이지에 걸쳐서 나오는 명백한 오역이기에 이를 짚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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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이 한국사에 기반해 소설을 쓴다면 독자층이 아주 넓어진다. 한국사를 알고 정서적으로 공명하는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과 애매하게 알고 있는 같은 교포 2세까지 즐길 있는 작품이 된다. 이야기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당시 이야기를 미리 알고 시작하고자 다른 책을 먼저 찾아봤는데, 추천할만한 것은 한국사에 익숙한 독자라면 <한중록> 읽으면 것이고 나처럼 한자어로 직책, 직위, 부서 등의 용어를 어려워하는 독자라면 이규희 작가의 역사동화 <사도세자의 슬픔> 너무 짧지도 않고 적당한 디테일을 쉬운 말로 풀어 주었다.

 

줄거리는 실제 일어났던 일을 조금 확장하고 미스터리를 더한 것으로, 내부에서 근무하는 의녀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의녀들이 교육을 받고 수련하는 밖의 기관에서 의녀들과 궁녀 하나가 살해된 발견되고 도처에 이는 사도세자의 살인행각이라는 방이 붙는다. 주인공 의녀 백현은 포도청에 새로 부임한 종사관의 비밀 수사에 말려들어 진실을 찾는 모험을 떠난다.

 

원래 어려운 한글과 한자로 되어 있는 문헌을 외국인이 어렵게 영어로 번역하여 공부하고 뜻문자인 글을 풀어쓰고 각색하여 영어로 표현한 내용을 다시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필터를 번이나 통과하다보니 교포에겐 다소 어려울 있는 내용도 쉽게 현대적으로 풀어졌다. 애초에 토대가 한글 문헌이다보니 번역도 수월하게 같았다. 하지만 사실기반으로 각색한 소설을 다룰 주의할 점은 영어는 가족 구성원을 지칭하는 용어가 한국어에 비해 매우 적어 내가 남자든 여자든, 상대방이 손윗누이든 손아랫누이든 모두 sister라고 칭하기 때문에 번역가는 화협옹주가 최소한 사도세자의 누나인지 여동생인지 정도는 알아보고 적절한 용어를 골랐어야 했다. 화협옹주는 왕녀 일곱째이지 사도세자 밑으로 일곱번째 여동생이 결코 아니다. 번역사는 50:50 확률에서 패배했다. 번역의 수준을 가늠할 없어 독서를 보류한 <봉제인형 살인사건> 시리즈가 있었는데 같은 번역사의 작품이라 역시 깔끔하게 포기하고 원서로 읽어야겠다.

 

가지 지적할 점은 편집이다. 번역서에서 고딕체를 쓰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비문학에서 원문에 굵은 글씨로 강조된 것을 한국식으로 옮겨 온 것인데 이 경우는 문제 없다. 두 번째는 문학에서 기울인 글씨로 강조된 것을 한국식으로 옮겨 온 것인데, 원문에서의 의도는 마음 속 생각을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표현하거나 소리내어 글을 읽는다는 가정 하에 음을 높여 강조하는 문구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둘 다 불필요하고 한글에 네이티브 한 표기법이 아니라서 원문에서 강조한 그대로 고딕체를 적용한다면 읽기 매우 불편하고 좋은 번역을 덜 좋은 번역으로 보이게 한다. 마음 속 생각은 작은 따옴표로 표시하면 될 것이고, 한국말은 인토네이션 (음의 높낮이) 가 없기 때문에 강조를 해도 차이가 없다. 이럴 경우 쉼표나 강조어를 덧붙여서 강조 표현을 하거나 현지화의 일환으로 강조표시를 제거해도 문제되지 않는다. 책에서 한 페이지에 열 몇개의 단어가 고딕체로 표시되어 있다보니 저렴한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처럼 보일때도 있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책을 '좋은 ' 으로 판단한 것은 이유야 어쨌든 간에 다른 영한 번역서와는 달리 글이 읽기에 매끄러운 편이어서 일단 끝까지는 읽을 있었고, 무엇보다 내용이 굉장히 탄탄하고 재미있는데다 교육적인 면까지 있다는 점이다. 로맨스 섞여있는거 정말 좋아하는 편인데도 [붉은 ]에서는 설레이는 사랑 감정의 날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어서 본연의 줄거리를 해치지 않는다. 실제 있었던 사건의 흐름에 원래 없던 살인사건과 사건 수사를 끼워넣으면서 재미는 물론 해외 독자들에게 한국 역사의 장면과 시대상을 효과적으로 보여준 것이 감탄할만했다. 한자어로 자료를 가지고 내용을 영어로 표현하기 굉장히 어려웠을 같은데 작가는 대체 어떻게 한건지 궁금해서 책은 원서로 다시 읽어봐야겠다. 뿐만 아니라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모든 정황이 세자가 우울로 비롯된 정신질환으로 폭력적인 이상행동을 보인 것이 분명함에도 저자는 "정신병 환자가 위험하다는 인상을 있어 정신병 관련 내용은 피했다" 라고 점이다. 저자의 다른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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