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씨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송은주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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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씨>_마거릿 애트우드
출판사_현대문학


 


 


 

우리의 연회도 이제 끝났도다.
우리의 배우인 치아여....... 그러면 우리의 굴욕도 완전해질 것이다.

됐다. 어깨 죽 펴. 받아 들여.
아직 할 수 있다.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해내고 말 것이다.

먼저 그들을 매혹시켜야 한다. 그 결과를 보고 즐기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가 배우들에게 말하듯이, 그들을 경탄으로 열광시켜야 한다.
마법을 부리자! -p.25



<마녀의 씨>는 고전 작품의 독창적인 재해석으로 유명한 예술 감독 필릭스 필립스가 자신의 부하 토니의 음모로 극단에서 쫓겨난 뒤, 자신의 복수와 사랑하는 딸에 대한 애도를 위해 자신만의 <템페스트>를 완성하는 이야기다.

필릭스는 공연마다 파격적인 연출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그것이 자신의 고결한 목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사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잃어버렸고, 그로 인한 슬픔과 고통의 기간을 잊기 위해 더욱 일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그가 작품 연구에 미친듯이 몰두하는 사이, 그 외 모든 제반 활동을 담당하던 그의 부하 직원 토니가 그를 배신했다. 필릭스는 한 순간에 예술 감독의 지위를 실추하고 만다. 

마치 마법 연구에 몰두하다 동생 안토니오에게 배신당한 프로스페로처럼, 결국 토니의 작당으로 필릭스는 그가 자리하던 세계에서 추방당하고 말았다. 그는 이제 가명을 쓰고, 허름한 판잣집에서 망령처럼 자신의 근처를 유영하는 딸, 미란다의 환영과 함께 살아가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9년 뒤. 플래처 교도소의 교사 자리를 얻어 '셰익스피어'를 가르치게 된다.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읽고 배역을 주며, 공연을 계획하겠다는 것이었다. 무모한 도전으로 보였지만, 수업은 예상 외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또다시 4년의 시간이 흘러, 자신이 있는 곳으로 그의 적들이 오는 기회가 찾아오는데......


잘 들어라, 그들이 울부짖는다.
저들이 좇기게 하여라. 이제 나의 모든 원수들이 내 자비 하에 들어왔다. -p.192
(* 템페스트 4막 1장 중 프로스페로의 대사.)
 

 

 


 

#뮤지컬 영화가 떠오르는 작품

작품을 읽는 내내 뮤지컬 영화의 원작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하이스쿨 뮤지컬>이나 <레미제라블>이나 <라라랜드>를 보았을 때의 기분도 느꼈다. 처음에 배치된 태풍 장면, 작품에 녹아있는 <템페스트>의 대사, 그리고 희극 작품 속 대사같은 필릭스의 독백들이 만들어낸 분위기였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작품이 전개되다가 갑자기 음악이 흘러 나올 것 같았고, 영화 <레미제라블> 오프닝 'Look down'과 같은 장면이 상상되었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어두운 조명에 번쩍이는 가운데 어두운 분위기의 조명, 갑판에 매달린 인물들 주변으로 파도를 연상케 분장한 배우들의 플래시 몹이 눈앞에 어른거릴 것 같았다.

그러다 다시 현실 장면,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은 슬픔 때문에 정말 미친듯이 작품에 열정을 쏟아야하는 감독의 쓸쓸한 모습이 연상된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고 쫓겨난 한 남자의 모습이 처연하게 그려진다.


#현실과 극의 경계가 허물어질 때
그런데 이 작품의 묘미는 앞서 말했던, 저 부분들이 아니었나 싶었다. 필릭스의 현실 이야기와 극 <템페스트>가 교차하면서, 동시에 그 경계가 오묘하게 일그러지는 부분들이 드러날 때 말이다.

<템페스트>의 프로스페로 역인 셈이지만, 현실의 필릭스는 지금 이곳의 필릭스들을 보여준다. 인생을 모두 바쳐 쌓아올린 공든 탑이 무너진 때의 인생의 허탈함. 사랑하는 이들을 그저 보낼 수밖에 없었던 죄책감과 상실감과 슬픔. 그래서 공감이 간다. 고전을 모티프로 했지만 어려운 감 없이 술술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려고 애썼다. 그것으로 충분치 않았다.

그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렸다. 이 기회를 이용해 젊은 시절 결국 끝까지 읽지 못한 고전들을 읽을 생각이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안나 카레니나』, 『죄와 벌』...... 그러나 읽을 수가 없었다. 너무 많은 진짜 인생이 있었다. 너무 많은 비극이 있었다. 고전 대신 행복한 결말을 맺는 아이들 소설에 저도 모르게 이끌렸다. 그것이야 말로 그가 간절히 바라는 바였다. 운명의 반전. -p.64


그러다가 죽은 딸 미란다와 혼자 대화하는 장면이 나올 때면, 자신이 망상을 보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그녀가 있다고 믿으며 대화를 하는 것을 볼 때면. 갑자기 프로스페로가 슬그머니 나타난다. 이 현대의 일상적인 드라마가 판타지가 만들어 낼 법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선사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교도소에서 <템페스트> 연극을 준비하는 동안, 배우들이 배역에 몰입하다가 점차 일상에서도 <템페스트> 속 인물들처럼 생각하고 대화하고 행동하는 모습들도 흥미로웠다. 각 배역들이 맡은 캐릭터가 다채로워서, 대화를 읽고 있으면 지루할 틈도 없었다.

특히 필릭스가 복수극을 펼치는 장면 묘사는 완전 몰입해서 읽었는데, 극적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음향 효과나 기타 도구와 약 등을 사용해서 복수의 대상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흥미로웠다.

 


 

#기타/마무리_원작이 읽고 싶어지는 작품


이 작품은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중 한 작품이었다. 호가스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하며, 그의 작품을 현대 작가들이 자신의 개성을 더해 재해석해서 작품을 집필하는 프로젝트였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원작 <템페스트> 읽고 나서 읽으면, 더 깊은 감상을 할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의미심장한 대사들이나 상징들이 숨어져 있었던 것 같았고, 원작을 알아야 마거릿 애트우드가 원작을 어떻게 풀어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을텐데, 그런 아쉬움도 조금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원작에 대한 호기심도 왕왕 일어났던 글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고사하고서라도, 필릭스의 복수와 예술 인생, <템페스트>를 구현하기까지 그가 보여준 숱한 노력들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냥 인상적인 문장이 있었는데, '이 어둠의 존재를 나의 것으로 인정하겠소.'라는 프로스페로의 대사였다. 연극을 마친 후, 연극 후기를 발표하는 수업 중에 '마녀의 씨'팀이 발표한 내용 중에 나온 이야기였다. 마녀가 낳은 '칼리반'이 '프로스페로'의 아이였을지도 모른다는 해석. 책 제목이 <마녀의 씨>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과잉해석하는 걸까.

무튼 이 마녀의 씨이자 섬의 첫 주인이었던 '칼리반'과 그런 그를 멋대로 이용하고 섬을 장악한 프로스페로. 이 두 캐릭터에 작가의 재해석이 숨어있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을 조심스레 해보았다.

 
참고로 베토벤의 곡 중에 <템페스트>라는 곡이 있는데, 그 중 3악장(폭풍우)를 들어보면 왠지 폭풍우 장면을 보면, 정말 폭풍우가 막 몰아치는 느낌이 든다. 나머지 악장도, 작품이랑 분위기가 너무 잘 어울려서 소름이 돋았는데. 이 곡을 베토벤이 청력을 거의 잃어가던 때에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베토벤이 이 곡을 이해하려면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읽으라고 말했다고 하던데.

곡을 썼을 베토벤의 상황과, <템페스트>에서 섬으로 쫓겨난 프로스페로, 그리고 마녀의 씨에 나오는 <펠릭스>가 너무 잘 떠오르는 곡이었다.


<본 서평은 현대문학(출판사)의 문학독후로 활동하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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