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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히어로즈
기타가와 에미, 추지나 / 놀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주식회사 히어로즈_기타가와 에미
출판사_다산북스

누구의 인생이든, 평생에 히어로 한 명쯤은 존재한다.
어, 어, 어? 하는 사이 휘말려 나도 모르게 활약하게 된다.
덮어놓고 재미있는 남의 인생 응원스토리!
<주식회사 히어로즈>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슈지가 주식회사 히어로즈에 입사하면서 벌어지는 재미있고 감동스러운 이야기였다.
‘아무런 재미도 없는 인생이었어.’
90년이라는 엄청난 세월을 거쳐 온 할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며 그렇게 말했을까. -p.33
슈지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급한 대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할아버지 병문안을 다녀오면서, 매미에 얽힌 할아버지와의 옛 추억에 잠긴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편의점 직원 알바생인 다쿠로부터 수상한 아르바이트를 소개 받게 된다. 구인 광고에는 ‘당신도 히어로가 될 수 있다!’라는 커다란 글자가 있었다. 딱 봐도 수상한 문구였지만, ‘히어로 제작’이라는 업무와 함께 안내된 설명을 보고는 ‘히어로 코스튬 제작 따위의 업무’로 생각하고 나가기로 한다.
그리고 첫날, 그가 맡은 일은 그가 평소 좋아하던 만화, ‘톤 앤 톤’의 작가인 도조 하야토를 히어로로 만드는 일이었다.
“만화의 내용에 관한 협력은 프로 편집자가 합니다. 그 부분은 제가 나설 부분이 아닙니다. 제 업무는 그 밖의 서포트로 도조 선생님을 ‘히어로로 만드는’ 일입니다.”- p.59
"도조 선생님께서 재미있는 만화를 그려주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저희는 뭐든 합니다.“p.103
그 ‘히어로로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 참 아리송하다. 히어로가 되고 싶다고 의뢰한 사람을 돕는 일인 건 확실한데, 그렇게 만들어내는 히어로가 슈퍼맨이나 배트맨과 같은 그 ‘히어로’가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다. 왜냐하면 ‘누구든’ 히어로즈에 의뢰하는 사람은 히어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은 작가를 히어로로 만들기 위해 만화 제작을 위한 모든 서포트를 한다. 그런데 그 서포트라는 것이, 독특한 스트레스 해소법을 받아주는 것,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들이다. 혹은, 원하는 배역을 얻기 위해 평범한 삶을 느끼고 싶은 여배우를 위해 ‘펑범한 생활’을 느끼게 도와준다. 망한 나사 공장 직원들을 도와 유명한 파이 가게를 열도록 만들어주었다.
어쩌면 사소한 일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일들이고, 또 사소한 일들이기에 더욱 공감이 갔던 일화들이었다. 또, 문득, 담담하게 오는 위로 같은 문장들이 가슴을 울리는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수상한 회사 아르바이트에 엮이면서 벌어지는 다소 유쾌하고 독특한 이야기 모음이라고 생각했는데, 담백한 문장들 속에서 은은한 감동이 나오는 작품이었다.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네요.“
“사는 건 아주 쉽답니다.”
“하지만.....”
“슈지군. 숨을 한번 들이쉬어보세요.”
“숨을? 이렇게요?”
나는 코로 후욱, 하고 소리를 내며 숨을 힘껏 들이쉬었다.
“그다음에 뱉어보세요.”
시키는 대로 이번에는 입으로 하아, 하고 숨을 뱉었다.
“당신은 지금, 살아 있습니다.”
미치노베 씨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보세요, 사는 건 아주 쉬운 일이지요?”
그러고는 씩 웃었다. - p.109
갈수록 살기 힘들다는 생각이 더욱 부쩍 들었다. 한 고비를 넘기면 새로운 고비가 나오고, 또 고비가 나오고, 그러더니 겨우 다 올라왔나 했더니 이제 산맥이 보인다. 넘어야 할 고비가 끝이 없구나, 싶은데 달리 갈 곳이 없다. 이렇게 살려고 그 고생을 하고, 해야 했고, 앞으로 더 해야 하나 싶고, 이게 사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이 문장을 만난 거다.
사는 것, 저 문장처럼 훈훈하게만 답을 낼 수 없지만, 요즘 괜히 울컥 울컥하고, 아무 것도 하기 싫을 때면 깊게 숨을 내쉬어 보기 시작했다.
"만약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다면 방법은 딱 한 가지일 겁니다.“
“뭐죠?”
“멀리 돌아가는 겁니다.”-p.176
성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이란 무엇일까. 슈지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보면서는 ‘행복’에 대한 생각을 하고, 히어로 업무를 하는 슈지를 보면서는 ‘성공’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좋은 성적을 받고, 명문대에 진학해서 좋은 직장을 갖는 걸까, 아니면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걸까. 자신만의 사업을 갖는 것,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
성공과 행복에 대한 정의가 너무나도 다르고 다를 수밖에 없는데, 생각보다 나만의 성공과 행복을 정의하고, 그것들을 강단 있게 지키기 힘든 것 같다.
"모든 사람이 누군가의 ‘대타’가 될 존재임과 동시에 모든 사람이 ‘유일무이’한 존재이기도 하다고 봅니다.“-p.175
그러다보니 대게 꿈도, 행복도, 성공도 그 기준이 비슷비슷해지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당연히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지만, 내가 강단이 없는 편이라서인지, 더욱 더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집착하고, 항상 누군가와 비교하게 되면서 더 힘들지 않았나 싶었다.
난 유일한 사람이지만, 동시에 충분히 누군가의 대타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바로 내 자리를 빼앗긴다는 뜻이니까.
그런 생각 때문에 더 타인을 의식하고, 세상의 기준에 집착하고, 그래서 더 사는 게 힘들었던 것 같다. 모 작품처럼 ‘화성에 가서 살지 않는 한’, 이 고민은 끝나지 않을 것 같지만.
아무런 재미도 없는 인생이었어.
나는 할아버지의 나이가 되었을 때 어떤 일을 떠올릴까.
옛날에는 좋았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더없이 평범한 인생이었다 싶을까. 어쩌면 옛날에는 너무 괴로웠으니 차라리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대체 어떤 인생이 ‘정말 행복한 인생’이라 할 수 있을까.-p.193
행복한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슈지에게 할아버지는 자신의 인생은 재미없었지만, 행복한 인생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인생은 어떤 인생이었어?“
할아버지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무런 재미도 없는 인생이었지.”
지난번과 똑같은 말을 했다.
“일만 죽어라 하고, 사치도 한 번 못부렸어.”
그래도 말이지, 하고 할아버지는 말을 이었다.
“정말로 행복한 인생이었어.”
그렇게 말하며 내가 사 온 쿠키와 사과를 번갈아 먹는 할아버지는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p.295
사랑하는 손자와의 추억을 끌어안고, 사랑하는 손자가 사준 쿠키와 사과를 맛있게 먹으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할아버지의 말은 가슴 한 켠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나도 먼 훗날, 지금 힘든 일도 웃으면서 그땐 그랬지, 하고 말할 수 있을 날이 왔으면 싶었다.
이 외에도 좋은 문장들이 너무 많았던 <주식회사 히어로즈>
"슈지 씨가 신용 받지 못한 것이 아니에요. 슈지 씨 주변 사람들은 다들 생각하기를 포기한 거에요. 인간은 휩쓸리는 동물이죠.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의견이 많은 쪽으로 흘러가요. 그러는 편이 편하니까요. 슈지 씨의 예전 애인도 상사도 다들 휩쓸린 거에요. 인간은......“
미야비는 뭔가 심키듯이 말을 끊더니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인간은 생각하기를 포기한 순간, 인간이 아니게 됩니다.” -p.140
한번쯤 무리에서 겉돌던 때, ‘내가 문제일까?’하고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어울리지 못한 내가 잘못한 걸까, 왜 나는 언변이 좋지 못한 걸까, 책을 읽고, 말 잘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배워보려 해도, 무리에 잘 어울리지 못하던 일로 우울해 하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잘못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른 조직이나 팀에서는 별 탈 없이 잘 지냈던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그 순간만큼은 내가 사회 부적응자가 된 것 같아 속이 쓰리고,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이미 패한 것만 같은 무력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지금은 아닌 걸 알지만, 그래도 우울한 기억은 어쩔 수 없었는데, 그때의 슬픔을 위로 받은 기분이 들었다.
“인간은 항상 누군가와 엮이며 살아갑니다.”-p.270
누군가가 나의 히어로가 되듯, 나 역시 누군가의 히어로 일지도 모른다. 나는 스스럼없이 툭 던진 말이 엄청난 의미로 다가갔을지, 그건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모를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히어로가 되어 엮여 살고 있다.
인간이지만 인간답게 대우받고 살기 힘든 현실이지만, 상상 이상으로 얽히고설킨 인연의 매듭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면. 훗날, 나도 조금은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회고할 수 있을까.
슈지도, 이치노베씨도 보고 싶었다던, 시가를 입에 물고 의자에 앉아 있는 날개달린 남자를, 재능이라는 이름의 그 남자를 나도 빨리 만나보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