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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 책
김희선 지음 / 현대문학 / 2017년 6월
평점 :
한국문학에 전례 없던 새로운 리얼리즘 소설의 탄생
지구 종말의 묵시록일까?
음모 서사일까?
시간 여행 SF일까?
편집증 서사일까? 아님 해석망상?
" 충고 하나 해줄까?
앞으론 책을 읽을 때, 과연 이걸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먼저 던지는 게 좋을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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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강림했을 땐 모두가 놀랐다. -p.22
신이 강림했다. 그것도 평일 대낮에, 어디든 가리지 않고 떼지어 내려왔다.
그리고 기이하게도 그 신들의 강림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
스티브는 도축 공장에서 일하다 햄-소시지 영업사원으로 승진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연이은 승진의 가능성, 새로운 자리를 꿈꾸는 그저 평범한 삶을 살던 스티브에게, 이 사건은 황당 그 자체였다.
스마트폰에 '계시'라는 이름의 앱이 깔렸다. 이 기이한 앱은 신나는 음악과 기묘한 새들의 합창과 함께 활성화 되었다. 곧이어, 요란법석한 화면이 난무하는 가운데 궁서체의 정중한 문장이 나타났다.
'기.뻐.하.라. 경.배.하.라. 2.0.1.5.년. 1.2.월. 1.2.일. 그.리.니.치. 표.준.시.로. 오.후. 두.시.에. 신.이. 하.늘.에.서. 내.려.올. 것.이.다.' -p.81
스티브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앱을 닫았다. 그러나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앱은 말풍선을 만들어 냈다.
"퀴즈! 지금 바로 당신의 믿음지수를 체크하세요!" -p.81
앱을 당장 지워야겠다고 다짐한 스티브는 앱을 '삭제'한다. 하지만 '계시'는 다시 나타났다.
"시스템 앱은 삭제할 수 없습니다." 라는 무한 반복되는 메시지만 나타난 채.
그러던 중, 황당한 일이 발생한다.
'신'이 찾아왔다.
'파충류'의 모습을 하고!
**
<혼란하다혼란해>
책을 읽는 동안 혼란의 연속이었다. 책의 띠지에 있던 글처럼, 지구 종말이라는 소재를 다룬 글이며 음모 서사이기도 하고, 시간 여행 SF이면서 편집증 서사와 해석망상이 공존하는 작품이었다.
책은 세 개의 시공간을 배경으로하고 있다. 2015년 경기도 용인, 그리고 2015년 미국의 트루데, 1958년 경기도 용인.
이 중 주된 배경은 미국의 트루데. 그리고 간혹 경기도 인에 나타난 한 소년의 책을 아르바이트 생이 번역하며 풀어가는 2015년 경기도 용인 시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물론, 처음 난데 없이 나타난 용인의 소년과 트루데의 스티브를 잇기는 정말 어려웠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긴가민가하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큰 틀을 가지고 전개가 되나보다 싶어서 읽다보면, 그 속에 이야기1, 이야기2, 이야기3.....이 계속해서 이어지기도 했던 것 같다. 마치 마트로시카 인형처럼.
문제는 이 마트로시카 인형이 여러 개로 보인다는 것! 이 혼란한 상황에 주인공 '스티브'의 '의식의 흐름기법'식 대화는 더욱더 혼란의 도가니로 이끌어 갔다. 갑자기 '왜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라니.
그리고 보통 특정 사건이나 인물의 대화, 행동, 서사 등을 통해서 이야기의 흐름을 추리해보거나 예측하며 읽는 걸 즐기던 나로써는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아니면, 혹시 이런 반응을 원했던 걸까. 마치 주인공 스티브의 하루하루 일과를 한데 모아 소설로 엮은 느낌이었다.
<흥미로운 소재들의 향연>
소재 자체는 매우 신선했다. 처음 책을 읽고 정리가 안되서 친구들 몇 명에게 줄거리를 알려줬는데, 평소 무표정이던 친구 한 명이 반색하며 호기심을 보였다. '완전 신기해! 더 이야기 해봐!'라는 표정이었다.
기괴한 새의 모습으 한 천사들, 파충류 모습의 신, 그리고 신의 강림을 예고하는 앱, '계시'. 그리고 그 비밀을 파헤치는 주인공과 해방불명 된 주인공의 지인. 주인공의 끔찍한 과거와 불안정한 기억들. 닿을 듯 닿지 않는 서로 다른 시공간의 교차. 그리고 조금은 잔혹한 묘사들과 몽환적인 느낌의 전개까지.
아. 정말이지 소재만 보면 너무너무 흥미롭다. 생각보다 잔인한 장면들도 있고, 주인공의 기억과 뒤에 나오는 나름 충격적인 전개와 연이어서 스산한 느낌까지!!
꾹 참고 끝까지 읽었을 땐, 정말 정말 간만의 또 취향 작품이었을텐데....싶었다.
블로그 글이나, 기사, 교수의 회고록, 등등 발췌문을 활용한 다양한 양식을 통한 장치들도 흥미로웠던 것 같다.
<의식의 흐름? 편집증적 서사?>
첵 소개글과 작품 해설에서 여러가지 언급을 했지만, 그 중에서 편집증적 서술이라는 설명이 가장 와닿았다. 스티브의 끊임 없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주인공이 이상한 건지, 글을 읽고 있는 내가 이상한 건지. 이해를 잘 하고 있는 건지. 계속해서 책을 펄럭이게 된다.
가볍게 말하면 정말 아무말 대잔치, 의식의 흐름같은 우리네식 대화를 보는 것 같기도하고. 흔히 일기나 블로그에 쓰는 일기장을 쭉 연이어 붙여놓은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가, 갑자기 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가, 비밀스런 이야기를 해주더니 갑자기 사라진 지인 이야기를 했다가. 신과 대화를 했다가.
정말이지 나무 하나에서 뿌리로 뻗어나가는 전개는 처음이라 종잡을 수 없는 흐름이 신기하면 신기하고 어렵다면 너무 어려웠던 작품이었다.
신기한 것은 이 막무가내로 펼쳐질 것 같은 이야기가 종지부에는 한 곳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아직도 답을 쉽게 내리기가 어렵다. 스티브의 망상이었다고만 치부하기에 용인에 나타난 소년의 이야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뒤에 나오는 그의 행적을 보면 그 결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 정말이지 독자를 무한의 이야기 세계로 끌고 들어오는 <무한의 책>이었다.
<본 서평은 현대문학(출판사)의 문학독후로 활동하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