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잊어도 돼요. '사진'이 당신 대신 기억할 테니."


4년 전 치명적인 실수로 사진작가의 꿈을 접은 마유

남겨진 사진 속 비밀과 함께 드러나는 그녀의 과거.


 

 1. 줄거리

 

도쿄 남쪽의 섬 에노시마.

주인공 마유는 할머니 유품 정리를 하기 위해, 할머니의 사진관이 있는 에노시마 섬에 들어섰다. 하지만, 과거 사건으로 인해 더 이상 카메라에 손대지 않는 마유에게 그 섬과 사진관은 뼈아픈 추억을 되새김질 하는 공간이었다.

 

사진가의 꿈을 안게 된 아련한 추억의 공간이자, 카메라를 놓을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가진 장소였다.

그렇게 텁텁한, 혹은 씁쓸한 기분을 안고 할머니 유품을 정리하러 온 사진관에서 마유는 유품을 정리하던 중에 특이한 사진을 발견한다.


족히 100년은 되어 보이는 사진 속 배경에서 시작되는 사진.

 

사진을 넘길 때마다 시간의 흐름을 지나 점차 발전하는 에노시마 섬의 풍경이 그려진다.

하지만 사진 속 배경이 변하는 동안, 세월을 타지 않은 얼굴을 가진 사진 속 피사체 때문에 마유는 아연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모두 한 사람 같아'

 

서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말도 안 되었다. 자세히 보니 남자들은 모두 오른쪽 눈꼬리 밑에 커다란 점이 있었다. 우연히 같은 곳에 점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네 명 모두 같은 점이 있다는 건 우연치고는 너무 기묘했다.

   

 

바로 그때, 그 사진을 찾으러 사진 속 주인공이 찾아왔다. 자신의 할아버지 사진을 찾으러 왔

다는 남자의 모습에 마유는 놀라고 말았다.

   

 

마유와 비슷한 또래인 것 같은 남자.

짧은 머리에 단정한 생김새.

오른쪽 눈꼬리에 또렷한 점.

 

바로 사진 속 남자였다.

"지금 영업 중입니까?"

 

가슴의 고동이 빨라졌다.


 

 

2. 리뷰

 

오랜만에 또 만족스러운 작품을 만났다. 내가 좋아하는 특유의 일본 냄새(?)나는 미스터리 추리소설이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향수 돋는 섬마을의 정취를 바닥에 깔고, 약간의 미스터리한 분위기 속에서 사연 있는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며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이야기였다.

 

한 때 인생의 꿈이었던 사진가의 꿈을 놓은 마유의 아픈 과거가 계속해서 호기심을 자극해 왔고, 그 와중에 의문의 사진으로 자아내는 미스터리한 요소가 긴장감을 자아낸다. 또한, 마유의 섬세하고 예리한 관찰력이 더듬어가는 사건들과 이야기도 흥미로워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과거의 현재의 매개이자 추억의 기록, 사진

사진은 여러모로 쓰인다. 주로 추억할만한 일이나 기념할 일 등을 남겨두기 위해 많이 남겨둔다. 혹은 수사용으로 증거 이미지 기록을 남기거나, 사건 정황을 포착해 두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는 등. 특정 대상에 대한 과거 기록을 남기기 위해 주로 쓰인다.

그러다보니 사진에는 이야기가 담기는 것 같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우리는 만남과 사랑, 이별, 슬픔 등 많은 추억들을 담기도 한다. 그래서 다시 사진을 꺼내보면서 많은 이야기와 추억을 되새김질 하고는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은 사진을 통해 꿈이 가득했던 과거와 혹은 창피했던 젊은 시절의 향수, 그리고 과거의 아픔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마을 사람인 겐지 이야기를 통해 현재를 있게 한 웃지 못할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아련한 향수에 젖기도 하고, 또 숨겨진 이야기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진이 주는 의미가 작품 전반을 주도하고,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사연에 몰입하게 만들어 주었다.


 

과거와의 대면, 그리고 트라우마의 극복


한편, 사진이 놓아주는 현재와 과거의 다리는 주인공에게 계속해서 작용한다. 작품이 진행되는 동안, 마유는 계속해서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할머니의 ‘니시우라 사진관’은 그녀의 과거가 잔류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를 또다시 ‘사진’을 통해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과거 사건의 전말을 풀어가는 마유의 모습은 참 안쓰럽다.

 

과거를 마주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특히나 후회가 남는 일이라면 더더욱. 또, 자신이 잘못한 일을 바로 잡는 것은 더욱 힘들다. ‘그때 도대체 왜 그렇게 살았을까?’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몰려들고, 내 마음 편하자고 다시 묻힌 사건을 들쑤신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마유는 계속해서 드는 의문과 단죄에 대한 무거운 마음, 그리고 우연히 발견한 ‘사진’을 보며 과거의 진실을 마주하기로 한다.

비록 그 과정은 아팠지만, 전말을 알고 난 뒤의 마유의 모습을 읽으며 왠지 모를 후련함이 느껴져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까지 느꼈다. 또, 한층 성숙해진 마유의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를 뿌듯함마저 자리하고 있었다.


 

향수와 긴장의 오묘한 조합이 좋았던 작품

이처럼 작중 사진을 통해 이야기가 하나하나 풀려가기 때문에, 처음에는 생각과는 달라서 약간 의아했다는 점이 사실이었다.

‘사진’이 사건의 실마리로 나온다는 것과 과거 사진 속 인물이 그대로 나타난다는 작품 소개를 보고는 솔직히 처음에는 약간 ‘기담’같은 느낌의 작품일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세피아 톤의 사진들, 곡성느낌 돋는 섬마을 배경, 그리고 수십년 전 사진과 똑같은 얼굴로 나타나는 사람.

딱 여기까지만 보면 약간 사진을 소재로 하는 호러 스타일의 미스터리 추리물인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약간 온다 리쿠 작가의 <여섯 번째 사요코>나 <금지된 정원>이라던가 기시 유스케의 <13인의 인격>같은 작품을 먼저 떠올렸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약간 잔잔한, 담담하게 서술되는 문장으로 과거 사연이 오묘하게 교차되는 것이, 기담류의 추리물은 아니었다. 다만, 그럼에도 사진들이 함축하고 있는 사연 때문에 긴장감은 놓을 수 없었고, 또 예리한 관찰력으로 섬세하게 사건을 정리하는 마유의 추리력에 추리 소설의 매력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 사건 해결 후 오는 후련함, 추억에의 향수, 상처에 대한 치유 등이 선물 같이 찾아와서 괜히 마음 한 켠이 뭉클해졌다. 추리물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쉽지 않은데, 이상하게 읽는 동안 ‘오오’하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 가보았던, 푸르고 드넓은 바다가 앞에 펼쳐진 곳에 갔던 추억이 살풋 떠올랐다. 짭쪼름한 바다냄새, 멀리 드문드문 보이는 작은 섬들, 옆에는 바다를 끼고 정갈하게 정리된 도보, 그리고 그 반대편에 자리한 현대식 건물 사이로 언뜻 보이는 옛날 사진관들.

그런 것들이 떠올라서 기분이 오묘해지는 작품이었다.

......


시간이 흐르면서, 변해가는 와중에도 사진처럼 아직 남아있는 과거의 공간들은 가끔 의미 모를 감정과 추억에 휩싸이게 만들곤 하는 것 같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과거의 추억 한 자락들, 때론 잊는 게 약이기도 하지만 그 사건들이 있기에 더욱 성숙해지고, 잘못을 바로잡을, 혹은 다시 일으키지 않을 용기를 얻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너무나도 소중한 사진들. 그리고 추억.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은 그런 사진 같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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