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 이울다
이영희 지음 / 청어람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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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작품 소개



 

키워드

시대물(일제 강점기 1930년대) / 엇갈린 만남 / 순정 남녀

    


작가님 작품들

북에서 온 지니, 화가야에 피어나다, 화가야의 백일홍(연재완결), 화가야의 홍매화(연재중)


 

주인공 소개


김지안

십 수 년 농촌계몽에 바쳐온 김씨 집안 외동딸.

10년 전 어머니를 여의던 날, 자신을 위로해 준 남자를 마음에 품었다.

 그의 옷에 있던 명찰 ‘윤두현’. 그 이름만 가슴에 새기고 10년을 보냈다.

두 집안의 조부 간 이루어졌던 정략결혼으로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두현과 결혼을 했다.

그런데,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계속 밀어내는 두현 때문에 가슴이 미어진다.


허단

바깥으로는 경성의 경신중학교 음악 선생님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계몽운동과 함께 독립 운동 단체에서 운동 중이다.

10년 전, 차마 울지 못하는 한 소녀를 다독이며, 그녀를 마음에 품었다.

그렇게, 그리운 마음에 10년 만에 돌아온 이곡리.

하지만 그녀는 이미 친구의 아내가 되었다.

 


윤두현

친일의 길로 변절한 윤 참판 집 둘째 아들. 단과 십년지기이다.

아버지의 실종과 할아버지가 변절을 이후, 할아버지와 틀어지며

다소 안하무인이 되었다.

어느 순간 지안에게 흔들리는 걸 발견하지만,

자신의 복합적인 속마음, 아픈 과거로 애써 밀어내고 또 밀어낸다.




 

 

 

 2  줄거리



 

 

십 수 년 농촌 계몽에 바쳐 온

아버지의 신념을 버리고 서방님에게 왔습니다.


10년 전의 작은 기억 하나가

무에 그리 소중하더냐고 모두 말리셨지만

...... 그 세월이 무색하게 당신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왜 당신은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시는 건가요?

 

 


............


 

1936년 4월, 진주군 문산면 이곡리의 밤.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배꽃이 이울어 흩날렸다.

별당에서 첫날밤을 맞은 지안은 혼자 앉아 있었다.



 

 

‘나로 하여 당신의 꿈이 어지러울 것을 아는데.

모질 수밖에 없는 나의 번민을 꿈에라도 모를 테지?

앞으로 더 많은 날을 홀로 잠들며 아파 할 당신.‘

.......


어리석은 놈! 치졸한 놈! .......

하지만... 난 이런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잖아.‘

 

 



첫날밤, 은은한 달빛을 받으며 배꽃이 수를 놓던 밤.

그 풍경을 뒤로하고 술에 잔뜩 취한 남자가 지안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이제 그녀의 남편인 윤두현이었다. 친일로 변절한 윤 참판네 아들이자, 자신이 처음으로 연모의 감정을 품은 사내였다.

 

농촌계몽을 하는 아버지를 둔 여인이라는 자신의 처지와 친일파 집안이라는 손가락질에도 버티고 그의 앞으로 왔다.


그 예전, 오랜 기억의 자락을 부여잡고.



 

 

‘눈물을 참는 건 좋은 일이 아니라고 했잖니.’


 

 

10년. 꽃잎이 바래 바스라질 정도의 시간이 흘렀건만, 지안의 연정은 더욱 선명해지기만 했다. 그렇게 따스한 위로와 상처를 여며준 손수건을 고이 간직하며, 그렇게 그의 앞에 섰다.


 

하지만, 두현, 그는 도통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러던 차에, 경성에서 음악 선생을 하고 있던 두현의 친구 단이 이곡리를 방문한다.


단은 한동안 두현의 집에서 머물게 되고, 자연스레 지안과 자주 마주치게 된다.

 


그런데 자꾸 자신의 서방님에게 느끼고 싶었던 익숙한 정취를 단에게서 느끼기 시작하며, 지안은 혼란스럽기 시작한다.

 


한편, 두현을 보려 내려왔다던 단의 본래 목표는 10년 전, 마음에 품었던 소녀를 보기 위함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내려온 이곡리.

 

배꽃과 자운영꽃이 한데 어우러져 피던 그 곳. 풀내음 가득 꽃잎이 흩날리던 그 길.



하지만 그 아름다운 추억이 무색하게,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

 

 


이미 친구의 여자가 된 소녀, 가여운 사람.


 


‘왜 자꾸 아픈 모습만 보이시는 겁니까?

왜 아직도 10년 전 그때처럼 눈물을 참기만 하면서 사시는 겁니까?


이제는 작은 손수건 하나도 나서서 묶어줄 수도 없는 나는

어떡하라고 이리 상처투성이의 모습입니까.

 

 




배꽃이 어지러이 흩날리는 이곡리.


풀벌레가 찌르르 울고,

개구리가 뜀박질하는 향토적 풍경이 정겨운 마을.

배가 잘 자라도록 열심히 꽃을 솎아내는 농촌 마을의 정다운 일상.


일제 강점기, 변절자로 변해버린 이웃의 배신과 술수라는 암울함 속에서도

계몽 운동으로 민족정신을 잊지 않은 농민들이 고고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그곳.

 

그곳에 세 남녀의 10년 전, 그대로 얼어붙었던 강물이 다시 유유히 흐르기 시작했다.

 

 



 3  리뷰

* 주의 : 약간의 스포가 담겨있습니다. 쪼끔이라도 스포가 싫으신 분들은 넘겨주셔요. *

 


먼저 읽자마자, 이수영 <꽃들은 지고>, 준서 <허락(태왕사신기 OST)>이 떠오르는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동양풍 뉴에이지인 두 번째 달의 <얼음 연못>이나 <비익련리>라는 음악도 떠오르는 작품이었다.


 

<꽃들은 지고>는 잠시 떠났던 그 님을 기다리는 지안의 마음이 이입 되서 좋았고, <허락>은 항상, 마음 속 그녀가 무엇을 할지 하염없이 그리던 단의 마음이 너무 느껴져서 좋았다. 또, 가사 내용이 초장 어긋난 인연으로 가슴앓이 했던 단의 마음이 투영되서 애절하게 들렸던 것 같다.

    

 

※ 주관적인 감상 포인트


1) 장면이 머릿속에 자연스레 그려지는 문장

-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이곡리, 향토적 색채


2) 장소, 시대적 배경이 잘 느껴지는 인물묘사와 진행

- 느리지만 괜찮아, 시대적 상황이 주는 분위기와 잔잔함.

다소 먹먹한 애잔한 인물들의 감정의 흐름을

천천히 따라가는 느낌을 좋아하면 맞을 듯


3) 단, 취향을 탈 수 있는 점 포함

- 다소 느린 전개로 루즈함을 느낄 가능성

- 작중 인물들이 외치는 혼잣말 몇 개에서 느껴진 (연)극작품 vs 오글오글 종이 한 장 차이


(적절한 비유가 맞을까요.)마치 시그널 초반부 이제훈의 ‘연극톤’을 두고 분분했던 기억

하지만, 마치 1920-30년대 문학작품을 읽던 느낌이 나기도 했음.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이곡리

처음 작품 발췌 문장들, 작가님 소개 등을 통해 작품 소개를 읽었을 때, 머릿속에 꽃이 막 흩날리는 서정적인 느낌과 애절한 두 남녀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었다.


 

시대물은 요즘 빠르게 읽기 힘들고, 왠지 읽고나서 감정의 여운이 클 것 같아서. 현대물을 주로 읽고는 했는데. 오랜만에 만난 시대물이라 그런지 쑥 읽혀 들어갔던 것 같다.


 

매번 현대를 배경으로 하다가, 농촌 마을을 만나니, 예전에 할아버지가 가꾸시던 논도 떠오르고, 이모가 가꾸던 버섯 재배 현장도 마구마구 떠오르고, 그때마다 느꼈던 풀빛과 흙냄새, 그리고 찌르르르 울던 귀뚜라미 소리도 떠올랐던 것 같다.


 

또, 씩씩하게 살아가는 농촌 사람들의 이야기도 즐거웠고, 서로 가족처럼 인심좋은 사람들의 모습도 그려져서 정겨웠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단연 뇌리에 잊히지 않는 건, 배꽃과 자운영꽃. 작중 정말 꽃의 작가님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원래 꽃을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했지만. 꽃으로 그리는 묘사가 정말 많다.


 

여하튼, 김영랑 시인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이라던가, 김유정 작가님의 <봄봄>이나 황순원 작가님의 <소나기>같은, 그런 향토적인 느낌을 가져다 준 작품이었다.

    

 

느리지만 괜찮아, 장소‧시대적 배경이 잘 느껴지던 인물 묘사와 진행

사실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조금 갈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부분이다.

그도 그럴게, 인물들 실타래가 정말 천천히 풀려 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시대는 1930년대. 일제 강점기 말미가 배경이고, 계몽 운동과 함께 이제 막 신여성이 등장하기 시작하던 그 과도기다.

 

특히나 문물과 멀리 떨어진 농촌의 삶을 묘사하는 만큼, 전통적인 그 시대 여인들의 순애보적인 사랑을 잘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 사무친 그리움과 애절함, <임의 침묵>의 가사처럼 ... 님은 떠났지만 나는 보내지 아니했다는. <아리랑>에 나오는 날 두고 떠나면 병 날거라던. <가시리>에 나오는 날 두고 가시면 어쩌냐는. 그런 사랑과 약간의 ‘한’의 느낌. 전통적인 문학에서 보던 애증과 한의 정서.

 


거기에 하필 모진 자신에게 시집와서는 시들어가는 아내를 보며, 마음 줄 수 없어 속으로 한탄하는 남자와 10년 만에 왔더니 친구의 여자가 된 소녀.


가여운 모습에 뒤에서 가슴만 치는 남자. 겨우 만났더니, 민족을 위해 한 몸 불사하러 만주 벌판에 가야하는 남자. 이런 사람들이 그려진다.

 

그래선지 읽는 내내 따뜻하다가도 먹먹해지고 욱신거리기도 몇 번을 왔다갔다했던 것 같다.


 

그리고 주요 인물들 외에도, 주변 인물들도 인상적이었는데, 변절자 조부를 두었지만, 애국 계몽에 눈뜬 손녀라던가. 또 한/일 반쪽자리 핏줄과 시대적 상황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 인물들 등, 그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고뇌와 일반 농민들과 같은 소시민적 삶의 모습이 재현된 것 같아 잘 읽힌 것 같다.

 


여기서는 윤동주의 시나,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같은 시가 막 떠오르고 그랬던 것 같다.

 

이렇게 시대 상황을 극적으로 다루면서,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에 너무 치중하지 않고, 주변 인물들까지 공감 되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또, 인연끼리는 통하는 게 있나? 싶을 정도로.

독자들만 아는 그 안타까운 상황에서, 둘이 아슬아슬한 감정과 의식하는 태도가 묘하게 떨리게 하는 게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얘들 좀 알아보게 해주세요, 돌고 돌아온 엇갈린 인연.

(여운과 아쉬움 한끝 차이)

 


방금 앞에서 느림의 미학을 잔뜩 찬양했다.

그런데 사실은 두 사람이 좀 더 일찍 알아봤으면, 두 사람 사랑하는 모습이 더 나왔으면 했던, 이율배반적인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작가님이 감질맛나게 딱 적당히 쓰셔서 더 여운이 남았던 것 같다는 생각도 마구마구 들어 갈등을 일으켰던 것 같다.

 

진짜 나쁘지 않았는데. 좋았는데!


요즘 LTE 급으로 진행되는 진도와 의아하게 만드는 ‘금사빠’ 주인공들을 너무 봤을까. 하지만 혹시 그런 주인공들과 전개가 취향이라면 약간 조심스럽게 대여먼저 추천을 권하고 싶다.

 

 



문학 작품 같아vs연극하는 남주들?

유모라던가, 농촌 마을 어르신들의 사투리가 좀 나오기는 하지만, 주인공들은 거의 표준 말투고. 가끔 ‘~했소’가 나와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 다만, 음. 설명하기 어려운데. 싫다기보다는 당혹스러웠던 표현들이 있었다면.

 


남자 주인공들이 혼자 막 한탄하는 대사들이 많이 나오는데.

‘아아!! 난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가여운 사람!’, ‘어리석다! 나는! 어리석다!’라던가. 막 갑자기 여주 이름을 외치는 남자 주인공들이 나온다.

 

마치 셰익스피어 비극을 읽는듯한 문장이 조금 나오긴 하는데, 가끔 가다가 말투 때문에도 취향이 갈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떠올라서 남겨본다.

 

 



+덧) 그 외

사실 초반부에는 책을 몇 번 들었다 놨다 했다. 상당히 슬픈 비밀 가지고 있을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두현이긴 했으나, 아내를 너무 박하게 굴려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 보면서 ‘나쁜 남자/후회남’ 작품인가 싶어 약간 걱정까지 들었다.

 


근데 단이 나오고, 이 세 사람의 꼬인 인연을 보고나서는, 도대체 이 세 사람의 기구한 인연이 어떻게 풀리는 걸까. 그런 생각에 책을 넘기고, 넘기고, 넘겼던 것 같다.

 


그러다가 새벽 2시. 3시간 만에 완독을 했다.

초반의 조금 어리둥절한 부분을 지나고 나면, 어느 순간 몰입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연달아 현대물을 읽던 중에 거의 몇 개월 만에 만난 시대물이라 그런지 더욱 여운이 남는다.

 


특히나, 향토적 배경에 순박한 시골 남녀의 10년 순애보.

물론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이 있긴 했으나, 그게 감정에 영향을 준다기보다는 가끔 위기의식을 느끼게 해주던가, 시대적 정서를 자아내는데 도움을 준 것 같다.

 


얼마 전, 판타지 듀오에서 장윤정이 노래가 그 시대로 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타임머신 같다는 말을 남겼는데.

그 말이 떠오르는 작품이었다. 문학 작품도 그 시대로 데려가 주는 일종의 타임머신이니까하고.


그 시대 정서를 고스란히 간접 체험한 느낌. 또, 새로운 경험을 한 것 같다 흥미로웠다.

 

시대물을 정말 너무 오랜만에 봐서 그럴 수도 있는데.


너무 변해 버린 도시와 현대 문명, 그리고 거기에 맞춰 변해버린 감정 속에서 오랜만에 느껴진 향토적 내음이라 좋았던 모양이다.

 

 



<본 서평은 ‘청어람’에서 진행한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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