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비주얼 클래식 Visual Classic
제인 오스틴 지음, 박희정 그림, 서민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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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은 첫 만남에서 서로에 대한 편견으로 오해를 낳고 서로 엇갈린 두 남녀의 이야기로, 사랑과 결혼 등을 둘러싼 다양한 당대 사람들의 인식과 비판적인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려낸 고전 로맨스 작품이었다.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은 아니었는데, 만화가 박희정 작가님의 삽화가 수록된 리커버 북이라는 소식에 궁금하기도 했고, 오랜만에 우리(?) 다아시 씨도 보고 싶어 읽게 되었다. 원래 삽화가 있으면 간혹 몰입을 방해해서 조금 걱정이 있었는데, 박희정 작가님이 그려준 다아시도 묘한 분위기를 풍겨내서 읽는데 색다른 묘미가 있었다.

특히 아이라이너와 눈 밑의 다크 서클이 느른하고 섹시하고 퇴폐적인 눈매를 연출해서 초반에 그려지는 오만한 이미지가 잘 느껴졌달까. (그래서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도 갑자기 리커버 북으로 읽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오랜만에 읽은 <오만과 편견>은 이전과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중학생 때 뭣도 모르고 읽었을 때는 수행평가 하느라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읽고, 대학생 때는 교양 수업으로 듣느라 논문 분석하는 것 마냥 기계적으로 읽은 것이 다였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신분 차이를 넘은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로맨스에 빠져서 일반 로맨스 소설처럼 읽어버렸고, 조금 나이 들고 때가 묻어 다시 만났을 때는 다아시의 재산을 환산하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영화로 만났을 때는 (솔직히 캐스팅이 조금 아쉬웠지만) 로맨스에 조금 집중했는지 그 오만한 남자가 엘리자베스를 위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간질거리는 마음 붙잡고 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책을 읽을 때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읽게 되었다. 흔히 갖게 되는 편견이나 섣부른 선입견, 함부로 속단하는 것의 위험성과 인간이 지닌 성격의 결함들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주로 읽었던 것 같다.

처음 무도회에서 다아시의 발언이나 이후 빙리와 제인의 관계를 속단하고 움직인 모습들은 분명 잘한 행동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종일관 당차고 씩씩하고 자신의 신념에 확고하게 움직이는 엘리자베스 역시 마냥 옳은 것은 아니었다.

 

다아시의 나쁜 첫인상 하나로 엘리자베스는 그 이미지에 갇혀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오만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무례한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단다. 때문에 어쩌면 엄청난 것들-두 사람 사이의 신분, 지위, 권력, 재산 차이 등-을 걸고 고심 끝에 했을 진심어린 그의 고백에도 상대방의 입장은 고려하지도 않고 매몰차게 거절하고 만다.

물론 다행히 엘리자베스를 위해 움직이는 모습을 통해 그의 진심을 확인하고 서로 다시 마음을 확인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만. 결말을 알고 다시 읽어서 그런지, 편견에 사로잡혀 시종일관 다아시를 나쁘게만 보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조금 불편한 것도 사실이었다.

한편, 조금씩 제 마음을 깨달으면서 쩔쩔 매는 다아시의 모습을 보는 것은 재밌었다. 전형적이고 진부한 멘트지만, ‘이런 여자 네가 처음이야.’의 고전격인 모습을 보여주신 다아시 씨의 내면 갈등은 참으로 흡족했다.

처음 고백하는 장면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다아시의 애절한 모습이 짠한 한편, ‘그런 남자’가 절절히 고백하는 모습이 또 감동이고 만족스러워서(?) 웃다 찌푸리다 하면서 읽었기 때문.

그래도 이런 로맨스도 재밌었지만 역시나 제목이 제목인 만큼, ‘오만과 편견’에 대해 캐릭터가 뱉는 대사나 내면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난 오만함이란 인간에게 아주 흔한 결함이라고 생각해.” - p.35

엘리자베스의 시점으로 주로 전개가 되다보니, 으레 ‘오만’한 사람은 다아시와 같은 상류층, 소위 가진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조금 강하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었다. 실제로 작품 속에 나타난 빙리 양이나 캐서린 드 버그의 모양새가 그러했던 것도 있었고.

“내가 한 행동이야말로 정말 비열했어! 난 사람 볼 줄 아는 안목이 있다고 자부했지! 누구보다 똑똑하다고 자만했어! 언니의 너그럽고 공평무사한 마음을 자주 비웃었어. 쓸데없이 다른 사람들의 흠을 찾고 불신하면서 내 허영심을 세웠어. 이제야 그걸 깨닫다니 너무 창피해! 사랑에 빠졌어도 이렇게 덮어놓고 판단력을 잃지는 않았을 거야.”-p.320

하지만 그런 ‘오만’에 대한 생각 역시 너무 프레임에 갇혀 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잘못을 깨달으면서 느낀 ‘자만심’, 오만과 자만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저 대사를 읽으면서 나 역시 엘리자베스처럼 자신의 판단을 믿고 실수했던 날들이 떠올라 조금 부끄러워졌다.

오만함은 어떤 지위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있는 것인데, 저마다의 편견 속에 자신이 그러한 것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혼.

재산이 많은 남자가 미혼일 경우 사람들은 누구나 마치 당연한 진리처럼 그에게 아내가 필요하다고 믿는다.-p.9

이제 너무나도 유명해진 오만과 편견 첫 문장.

다아시와의 로맨스도 로맨스지만, 오만과 편견 전반에 걸쳐 담긴 ‘결혼’에 대한 사실적이고 풍자적인 이야기가 또 작품을 읽는 내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분명 시대적 배경이 달라서 지금과 차이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소름 돋게 별반 다를 바 없는 결혼에 대한 태도나 인식이 담긴 부분들도 있다. 어떻게든 결혼을 시키려고 아등바등하는 베넷 부인의 행동은 아직도 눈살 찌푸리게 만들었지만 아직도 그런 태도가 남은 경우가 있다는 게 조금 소름이었고, 여전히 충격인 것은 리디아의 결혼을 축하하는 사람들의 태도. 이 부분은 아무리 다시 읽어도 충격적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또, 콜린스와 엘리자베스의 결혼이 무산된 것으로 하소연하는 베넷 부인의 태도라던가, 줏대 없이 재산 좀 있다고 허세 부리며 ‘결혼해주겠다.’고 덤비던(?) 콜린스의 캐릭터도 영영 밉상 캐릭터로 남을 듯. 하지만, 그런 콜린스의 물질적인 면모를 보고 결혼을 선택한 샬럿의 태도를 아주 비난할 수도 없기에 조심스러운 점들.

이런 부분들은 솔직히 이제 슬슬 결혼 접어드는 시점에서 다시 읽으니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와서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나는 제인이 잘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 그리고 제인이 내일 당장 그와 결혼하든, 1년 열두 달 동안 그의 성격을 파악한 두에 결혼하든 똑같이 행복하게 지낼 거라고 믿어. 결혼해서 행복은 순전히 운이거든.

두 사람의 성격을 서로가 아주 잘 알고 있다거나 결혼 전부터 두 사람이 잘 맞는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건 절대로 아니야. 성격이란 늘 변하게 마련이라서 나중에는 서로에게 질릴 정도로 완전히 달라져 버리기도 하거든.” - p.39

그리고 결혼할 사람에 대한 생각들. 요새 친구들과 나누었던 대화 주제라 그런지 너무나도 대사 하나하나가 예리하게 다가왔다.

사랑은 어떻게 찾아오는 걸까. 어떤 사람하고 결혼하는 것이 옳은, 아니 좋은 걸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오만과 편견의 잣대로 타인을, 타인과의 관계를, 감정을 함부로 속단해버린 것은 아닐까.

이제는 마냥 로맨스 소설만으로 읽을 수 없었던 <오만과 편견>이었다.

 

 

 

  <위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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