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강박쟁이 데븐
조지 해러 지음, 김예리나 옮김 / 꿈의열쇠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한창 '안녕, 프란체스카'가 유행했을 때, 사람들은 그 '안녕'의 의미가 굿바이가 아닐까 하고 떠들곤 했었다.

하지만 난 그 반대이길 바랐다. 슬픈 건 싫으니까, 헤어짐도 - 그래서 굿바이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결국 결말은 굿바이였지만.)

 
이번에도 - 왜인지 나는 굳게 이 '안녕'은 Hi 쯤으로 믿고 있었는데, 역시나 Good bye. 랄까 -

 

이름만 봐도 명백히 주인공 데븐은 남자아이일텐데,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겨 읽으며 데븐에 대해 알아가는데 난 갑자기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저 여자라서 가지고 있는 성격적 특성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모습과 비슷했기 때문일까?


 

나는 데븐과 모든 증상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데븐에게 크게 공감이 갔다.

지금은 많이 희미해졌지만, 한 때는 나도 비슷했다.

 

내 방에 누군가 들어오는 것도 싫었고, 사소한 것에 집착했다.

일이 망쳐지는 일 없기를, 제발 내 눈 앞의 일이 내가 원하는대로 잘 풀리길 바라면서 반복하던 행동들도 있었다.

신호등을 건널 때면, 하얗게 페인트 칠이 되어있는 면을 밟지 않으려고

큰 보폭으로 새까만 아스팔트만 밟아대던 적도 있었다.

인도에 놓여진 블럭도 금을 밟지 않으려고 하는 날도 있었고, 반대로 금을 밟으려고 하는 날도 있었다.

 

이상하게 갑자기 불쑥 예감이 좋지 않은 - 잔인한 장면이나 사고 같은 것들이 떠오르면

그게 너무 싫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그런 일들은 제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데븐에게는 계기가 된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

할아버지랑 같이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 잠시 그런 생각을 한 이후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된 -

그것이 못된 생각을 했던 자신의 탓인 것만 같다는 이유 말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저 어렴풋이 모든게 하얗게 느껴질만큼 햇살이 좋았던 날의 단편적인 기억,

나이에 비해 일찍 느꼈던 우중충하고 무거운 기분들이 남아있는 전부다.

시작이 희미했던만큼, 끝도 희미한건지 - 나는 그 때 내가 해야만 한다고,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던

그런 행동들을 언제부터 하지 않게 된걸까?

 

어쨌든 데븐은 나보다 훨씬 착한 아이인 것 같았다.

나는 급작스런 낙서 사건에 휘말린 데븐을 보면서 속으로 외쳤다.

"고함을 쳐!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고 말을 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뛰쳐 나가란 말이야!" 따위의 말을

데븐에게 보냈다.

 

아마 나라면, 내가 데븐이었더라면,

나는 그냥 집을 나갔을지도 모르겠다.

 

왠지 모르게 데븐이 낙서 사건에 휘말리기 시작한 장면부터 나는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내가 어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시각은 책 속의 묘사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믿어주지 않는, 믿어줄 생각조차도 않는 어른들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정말로 싫었다.


그래도 다행히 데븐은 그럭저럭 주변의 어른들과 화해한다.

더불어 강박쟁이였던 자신과도 서서히 멀어져가게 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어쩌면 그 부분은 아직도 내게 남은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 마음이 아직 - 열여덟에서 조금도 자라지 못했음을 느낀다.

 

어느 날 갑자기 스무살이 되었을 때도 전혀 적응을 하지 못했던 건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 내가 내 나이답다고 생각하지 못하니까.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의 데븐과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은, 그리고 그 시기를 지나온 어른들도 그 때는 -

누구라도 데븐과 비슷했을까? 나와 비슷했을까?

 
데븐은 낙서사건을 겪으면서, 친구나 믿음, 부모님, 그리고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느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일들, 상처에 적응하는 법도 배웠겠지?!


데븐을 보며 생각해보니 아무리 내가 애써봐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늘 도망쳤던 내가 보인다.

그리고 최근에 친구와 함께 다짐했던 - 우리 앞으로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앞으로' 도망치자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것들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아직 내 안에서도 설명이 잘 안되니까 -

분명한 건 이 책으로 인해 내 안에서 뭔가 느껴지는게 있다는 것, 아마 나는 스스로 눈치채지 못할 지도 모르지만

내 안에도 뭔가 변화가 생길 것 같다는 것 뿐.

 


안녕 - 강박쟁이 데븐,

나도 늘 성격이라고만 생각했던 조급하고 불안해하는 나, 늘 긴장하고 있는 나,

항상 모든걸 완벽하게 처리해야만 하는 나, 조금도 위험한 일은 못하는 나와 이별해야 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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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
고트프리드 뷔르거 지음, 염정용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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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내용이길래 그렇게 극찬이 자자(?)한 책인지 궁금했던 이 책.
"수많은 판본, 끊임없는 영화 제작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뮌히하우젠 남작의 모험과 판타지"
라는 문구가 띠지에 적혀있다.
사실 나는 이번에서야 이 책에 대해서 처음 들어봤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건가?'하는 생각에
괜히 조바심이 났던 거 같다.
게다가 국내 최초 독일어판 원본 완역이라기에 의미도 깊어보여서 자연스레 마음이 쏠렸다.

꽤 두꺼운 양장의 책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딱 내 손만한 작은 사이즈에 200페이지 조금 넘는 아담한 이 책.

책 속의 일러스트는 채색은 여미경씨가 했지만,
1788년의 원본에 실린 에른스트 루드비히 리펜하우젠의 동판화 작품으로 그것도 꽤 의미가 있었다.
눈으로 보여지는 풍경과 사물 외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 상상력이 동원된 그 때의 그림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더불어 텍스트를 읽으면서 나라면 어떤 형태를 그려냈을지 상상해보고 비교할 수 있는 묘미도 있었으니까~)

처음엔 뮌히하우젠 남작의 허풍을 읽으면서 그 어이없음에 웃음이 피식피식났다.
솔직히 약간 지루한 감도 있어서 '그게 뭐 어쨌다구?'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책 속에 묘한 재미들이 자잘하게 숨어있었다.

이 책 역시 남작이 직접 우리에게 말을 거는 듯한 화법으로 쓰여졌다.
남작은 우리에게 존댓말을 해주지만, 절대로 자기 자신을 '저'라고 낮추지 않는다.
'나'라고 자신을 말할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모험담을 남에게 들려줄 때 거짓말을 보태는 사람들을 비꼬기 위해서
더 지나친 허풍으로 응수하는 남작의 태도에 감탄했다.
위협적으로 금방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은근하게 웃는 얼굴로 발톱을 들이미는 것 같달까..?

아무튼 이 책에는 다른 동화나 책 속에 있는 이야기들이 간접적으로 언급이 된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들이 어떤 식으로 등장할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 수록 이 책이 만만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서나 신화, 다른 이야기 책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지만 완벽하게 이 위트를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서야 내가 모르는게 너무 많다는걸 깨달을 수 있었다.

게다가 러시아 이야기는 나에게 굉장히 낯선 것이어서 주석을 읽었음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솔직히 돈키호테조차도 읽어본 적이 없어서 내용을 잘 모른다.;;
앞으로 더 많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책도 좀 더 읽어야 겠다고 새삼 다짐하게 되버렸다. ㅎㅎ

그의 굉장한 허풍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상상하느라 무던히도 애를 먹었다.
문득 - 나의 일상에 허풍을 보태면 어떤 모습이 될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스친다.
허풍도 허풍이지만, 책 속에서 남작의 인품을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있었는데
그런 점에서 또 그에게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사람들에게, 지나치지 않으면서 진실된 마음으로 즐거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모험이 사실이든 그저 허풍일 뿐이든, 아직 떠나보지 못해 두려움이 앞서는
나의 모험심에 불이 붙는 것만 같다.
나도 두려움을 이겨내고 일상에서 벗어나 사람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찾아 - 조만간 가까운 곳에라도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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