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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용왕의 신부
나루미 미오 지음, 이아미 옮김, 우에하라 타이치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4년 10월
평점 :
판매중지
... ...부디 그대만은 나를 배신치 말아달라고.
권력의 정점에 선 그 왕이 애정결핍[!!]에 시달리고 있다는 건, 모두가 암묵적으로 입을 다물고 있는 비밀 아닌 비밀[...]
일종의 모성애로 인한 학대를 당한 아이들이 자라 보이는 반응은 이런 겁니다. 여자를 극도로 혐오함으로써 자신의 상처를 정당화시키거나, 끊임없이 여성을 찾음으로써 부족한 애정을 채우려 하거나.
그리고 이 왕은 여성을 혐오하면서도 수많은 후궁들을 곁에 둡니다.
왜?
잃어버린 것을 끝끝내 버릴 수 없기 때문에.
갈구하고 갈구하고 매달리다 상처만 받았던 어린 날의 상처를.
왕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언젠가 반드시 그 어미로부터 얻어야 할 다정한 애정을 기대해왔던 겁니다. 그리고 이런 어린 시절에만 드러내는 게 가능했던 약한 면모를 감추기 위해, 더욱 공격적인 방식으로 여성들을 시험합니다.
사람은 일평생 어릴 때 받았던 상처를 무의식 속에 끌어안고 산다고 하죠.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해소되지 않는 한, 본인이 인지하지 못한 공포가 되고 공격성의 기반으로 자리해,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그 사람을 휘두릅니다. 사람을 보는 눈, 사람을 대하는 방식, 생활 패턴... ...등등. 사람이 사람으로서 완전한 만족을 이룬다는 건, 바로 이 상처를 치유해내는 순간이죠.
제가 이 작품을 칭찬하고 싶은 건 이런 부분들을 침착하게 서술해나갔다는 점입니다.
주요 등장인물은 왕과 연화, 그리고 왕이 드러내지 못한 과거를 대변해주는 시녀 소령. 배경 또한 여 주인공인 연화가 지내는 방에 거의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미 첫 만남에서부터 여 주인공만이 '나를 치유해줄 지도 모른다'는 독점욕을 내보였던 왕이었으니. 두 주인공만이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방'이란 공간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죠. 외부와 격리된, 그러나 왕만이 허락없이 드나들 수 있는 이 방이야말로 [왕이 감춰두고 있는, 감춰두고 싶은 내면]인 겁니다.
그래서인지 여기서만큼은 매우 솔직한 방식으로 왕은 자신의 상처를 드러냅니다. 소령의 '말'을 통해, '다른 여자들과 똑같이 굴어보라'는 왕의 '시험'을 통해.
처음에는 소령의 '말'을 통해 왕의 내면을 볼 수 있었던 여 주인공은 왕으로부터 듣게 된 어린 시절의 추억을 통해 '물질적인 보상' 또한 왕의 또 다른 애정방식이란 걸 알게 됩니다. 그를 이해함으로써 사랑에 빠진 여 주인공은 목숨을 걸고 왕과의 맹세를 지키려 합니다.
TL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삽화 스타일 만큼이나 글 자체도 독특한 편입니다. 등장인물과 배경을 한정시켜 인물의 내면 심리를 풀어가는데 집중하는 점도 그렇고요. 씬 또한 내면을 드러내는 도구로 잘 녹아들어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하나를 깎아내야 했던 건.
초반부의 중복되는 장면과 지루한 세계관에 대한 설명으로 도입부가 늘어진 점. 그런 반면 뒷마무리는 절벽에서 밀어버린 것처럼 뚝 끊어진 느낌이라 작가가 속도 조절에 실패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또한 위기 - 사건 해결의 과정이 편협했습니다. 섬세하게 드러내려 했던 두 주인공의 심리와 달리 후궁의 암투나 독살 사건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극에 대한 흥미를 떨어트렸죠. 소령의 '말'에서도 느꼈지만, 이 '말'만으로 너무 많은 걸 축약시켰습니다.
좀 더 자를 건 자르고 보태야 할 건 보태가며 정돈된다면 꽤 좋은 작품을 쓰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가분이 자기 개성을 가진다는 건 매우 큰 장점이거든요.
제가 무슨 편집부도 아닌데 이런 말이나 하고 있고;;;
그냥 여러모로 아쉬운 마음에 끄적여 보았습니다.
"내게 거역하는 건 허락할 수 없다, 연화. 내가 하라는 대로 울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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