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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의 상자
정소연 지음 / 래빗홀 / 2025년 2월
평점 :
➰제목: 미정의 상자
➰지은이: 정소연
➰펴낸곳: 래빗홀
일상에 판타지 한 스푼 뿌렸더니
몰입도 최강의 소설이 되었다.
장편소설과 단편소설 중 고르라고 하면,
역시 내 취향은 장편 소설이다.
그 이유는 아직 취향을 저격당한 단편 소설을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소연 작가님의 <미정의 상자>는
장편에서 단편으로 무게의 추를 옮겨 놓았다.
카두케우스 이야기 - 9편
무너진 세상에서 우리는 - 5편
총 14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미정의 상자>는 재밌다.
그냥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과 탄식과 뒷이야기에 대한 궁금증까지
복합적으로 휘둘리고 말았다.
SF인 <카두케우스 이야기> 속 단편은
미래를 살아가는 건 우리 인간이고
인간의 삶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비슷한 딜레마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에게도 꿈이 있고, 사랑이 있고, 죽음이 있다.
우주선 기술을 오롯이 독점하고 있는
’카두케우스 사‘를 보고 있노라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 속 ’빅브라더‘가 떠오른다.
핵심 기술의 독점은 통제의 독점을 의미했다.
이렇게 숨 막히는 곳에서도
사람들은 제자리를 찾아 살아남는다.
🔖 그의 시간은 언제나 일정한 속도로 흘렀고 그에게는 30여 년 치의 과거가 온전히 남아 있었다. 그의 기록은 한 해 한 해 일정한 간격으로 순탄히 남아 있었다. 나는 내가 보지 못한 그 모든 과거의 그를 그리워했다. 나는 나에게 없는 그 연속성을 탐닉했다. <210쪽>
우주선을 조종하는 비행사들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시공간을 가르는 ‘도약’을 하기 때문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남아 있는 기록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난 후의 상실감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을 것이다.
혼자 남은 이의 장면들은 애달프다.
🔖 우주비행사가 되는 것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모든 상황을 대비하고 모든 경우의 대응을 준비한 특별한 사람들만 우주비행사로 우주에서 죽을 기회를 얻는다. 나는 우주인의 방식을 배웠다. 본사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의심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죽음을 준비한 사람을 사랑한 사람의 죽음까지는 준비하지 못했다. [215쪽]
‘무너진 세상에서 우리는’의 배경은
코로나로 인해 무너져내린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여인들이 주인공이다.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가 노멀하다고 여기는 남녀 사이의 애정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오히려 서로에게 더욱 진심이 느껴졌다.
‘처음이 아니기를’ 편은 신종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다.
고백도 못 해 본 친한 친구의 죽음과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마음
그리고 새로운 생명을 위하는 마음까지
우리가 바라는 그런 마음이 그려졌다.
🔖 이 아이가 언젠가 누군가를 잃어야 한다면, 비명 같은 기억으로 남아 잔상처럼 눈가를 떠도는 사랑에 고통스러워하는 때가 온다면, 그 사람이 내가 아니기를. 내가 누구에게도 처음이 아니길.
‘미정의 상자’가 왜 책의 제목인지도 알 것 같다.
홀로 서울을 탈출해 시골로 향하는 도중
여주에서 우연히 미정은 상자를 습득한다.
그리고 그녀의 시간은 과거를 향해 흐른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주인공의 선택이 더욱 궁금해졌다.
그만큼 가슴을 졸이며 읽었다.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14편의 단편의 파편들이 이리저리 머릿속에서 돌아다닌다.
<미정의 상자>를 읽는 내내
상상력의 비명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헤세드의서재(@hyejin_bookangel)님의 서평단에 당첨되어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