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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의 불확실성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월
평점 :
➰제목: 그해 봄의 불확실성
➰지은이: 시그리드 누네즈
➰펴낸곳: 열린책들
우리 사회는 산업혁명 이후 줄곧 질주해왔다. 자연이 주는 혜택을 당연한 것인 양 여겨왔다. 파괴하고, 태우고, 변형시키며 인간에게 유리하게 모든 것에 도전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자연 또한 그에 맞게 진화한다. 미지의 그곳은 결국 인간의 취약점을 건드렸고, 인류는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회 전반의 시스템이 멈추었다.
그해 봄, 동생과 뉴욕으로 여행 갈 계획을 세웠었고, 코로나의 심상치 않음을 인식한 후 여행을 취소했다. 그리고 급하게 한국으로 귀국했다. 곧 뉴스에서 종교 단체로 인한 코로나의 확산을 보도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사람들은 단체로 모이는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여행을 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침을 하는 사람은 주변인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아주 잠시 미국에 다녀온 후 일주일간 격리되어 있기도 했다. 텅 빈 거리와 집 안에서 갇혀 생활했던 시기, 자연은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나는 인간의 바이오필리아(자연과 생명에 대한 본능적 사랑)를 믿는다. 다른 생명체들에 대한 친밀감, 그들과 가까이하고 연결되고 싶은 갈망,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 우리 DNA에 새겨져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세상을 점점 더 흉물스럽게 만들고 종내는 완전히 망쳐 버리려는 인간의 욕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 117쪽
뉴욕에서 코로나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의 시체를 처리하는 뉴스 영상은 유난히 뇌리에 깊이 박혀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지역 중 하나가 바로 뉴욕이다. <그해 봄의 불확실성>에서 그려낸 뉴욕의 풍경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디스토피아적인 장면은 그때 우리의 일상이었으니까. 동양인을 향한 반감 역시 심심찮게 보도되었다.
격리로 인해 혼자가 되었어야 할 독거노인이자 작가인 주인공은 지인의 앵무새 ‘유래카를 돌봐주기로 하면서 거처를 옮기게 된다. 그리고 그 공간에 Z세대인 대학생 베치가 찾아오면서 원치 않는 동거가 시작된다. 매일 아침마다 하던 산책은 공격적인 행위 “기침테러”로 인해 그만두게 된다. 침대 위에서만 지내다 베치의 아이스크림을 다 먹어치운 후로 둘은 서서히 벽을 허물어 간다.
코로나 시대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 삭막했으며 적막했고, 외로웠으며 적대적이었다. 인간이 사라진 공간은 자연이 채워갔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글을 읽는 내내 그때 그 시절이 여과 없이 떠올랐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고된 시련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시절의 겨울이었다.
🔖한동안 나는 책을 읽을 수가 없었고 다시 글을 쓸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건 그해 봄의 많은 불확실성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내가 아는 작가 중에 그런 체험을 하지 않은 이가 없다.) 나는 왜 평생 애도하며 사는 기분인지 알고 싶다. 그 감정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고 도무지 사라지려 하질 않는다. - 19~20쪽
코로나 봉쇄령이 내려지기 전, 친구들과 만나서 나누었던 일상의 대화들도 인상 깊었다. 주인공이 작가인 만큼 문학작품들과 수많은 작가들이 언급되었다. 글에 대한 작가의 사유가 간간이 녹아있다. 작법에 대한 생각 역시 엿볼 수 있었다.
그해 봄,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이대로 코로나에 묻혀 살아갈지, 인생의 다음 걸음을 제대로 걸어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시간이 흘러 각자의 자리를 찾았고 지금 우리는 다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인간의 바이오필리아(자연과 생명에 대한 본능적 사랑)를 믿는다. 다른 생명체들에 대한 친밀감, 그들과 가까이하고 연결되고 싶은 갈망,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 우리 DNA에 새겨져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세상을 점점 더 흉물스럽게 만들고 종내는 완전히 망쳐 버리려는 인간의 욕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 P117
한동안 나는 책을 읽을 수가 없었고 다시 글을 쓸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건 그해 봄의 많은 불확실성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내가 아는 작가 중에 그런 체험을 하지 않은 이가 없다.) 나는 왜 평생 애도하며 사는 기분인지 알고 싶다. 그 감정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고 도무지 사라지려 하질 않는다. - P19
나는 사랑이 끝난 후 나는 일찍 그 사랑에 대한 글을 쓰는 실수를 범한 적이 있다. 마음이 얼음처럼 차갑게 식은 후에야 글을 쓰라는 체호프의 권고를 잊은 것이다. - P181
내가 아는 글쓰기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작가가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극히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으니, 나는 기억한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것이다. - P237
결론: 우리가 사는 이 반진실의 시대에, 갈수록 노골적인 위선이 판치고 이야기는 현실을 왜곡하고 모호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현실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의 역사와 성찰을 담은 문학일지도 모른다. 직접적이고, 진짜이며, 사실을 세심하게 다루는.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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