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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평점 :
화성인, 금성인, 기린.
알바생, 푸시맨, 인류.
박민규 소설의 힘은 낯설게 보기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인물이 그러하다.
‘화성인’이야 그렇다 쳐도, 금성인이나 기린, 인류라는 말을 어디 가서 이렇게 자주 들을 수 있을까.
또, 낯설게 해서 얻는 효과는 도대체 뭘까.
출근시간에 늦을까봐 우는 사람도, 지하철에서 정액을 분사하는 사람도, 본드를 불다 유체이탈을 경험해본 사람도, 갑자기 소년가장이 된 청소년도, 따지고 보면 모두 인류다.
반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기. 1인칭 주인공 시점이지만 하나의 분류로 묶는다.
이것이 독자에게 등장인물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입체안경을 장착해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우는 여자와 변태 남자, 비행청소년, 불우청소년은 너무 멀게 느껴져 같은 의미가 숨어있으리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그러나 각각의 인물들을 모두 합해 ‘인류’라고 부르는 순간 그들은 함께 의미를 획득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주인공 ‘나’ 또한 인류이기 때문이다.
크게 보면 이 소설에서 인물은 ‘인류’와 ‘그 외’로 나눌 수 있다.
화자는 지하철에서 여러 인물들의 군상을 바라보다, 그들을 합해 ‘인류’라고 표현함으로써 자신 또한 지하철 안에 탑승해 버린다.
이는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편의점 사장이 여자애의 허벅지를 만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는 대번에 ‘만지는 게 나쁜 게 아니다. 그리고 고작 천원을 주는 게 나쁜 짓이다’(70p)라고 말한다.
자신이 인류이기 때문에 같은 인류가 당한 일에 감정이입이 쉽게 되는 것이다.
그저 물질만능주의의 신봉자의 대사 같다고?
그럼, 물어보자. 지구라는 행성 안에서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것이 인류 외에 도대체 누군가.
작가는 계속해서 각박한 경제상황과 유복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류의 군상들을 독자에게 들이민다.
이제 독자는 각박한 현실을 가볍게 풀어낸 글을 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한 치수 작은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불편해진다.
그리고, 아버지가 나온다.
마치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와 같이 소설 속 아버지는 부재를 통해 비로소 존재감을 획득한다.
함께 있으면 귀함을 모르는 존재, 오랜만에 다시 만난 아버지는 자신이 기린이라고 말한다.
작가가 기린의 속성까지 염두하고 썼는지, 겉모습만을 중심으로 썼는지, 관용어의 뜻에 기대서 썼는지는 책 어디에도 써 있지 않으므로 알 길이 없다.
그러니 내가 아는 기린만 말해본다.
‘후각, 청각, 시각이 뛰어나며 다양한 소리를 내나 그 소리를 듣기는 쉽지 않은’ 존재.
옛날부터 ‘귀하고 상서롭다’고 여겨진 존재.
이것이 사전적인 기린이다.
인류로서 자신을 기린이라고 칭한,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한 화자의 아버지는 인생점수가 거의 0점에 가까워 보인다.
돈도 못 벌어오던 무능력한 아버지는 일이 터지자 뒷수습을 하다 결국 도망치고 만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다시 만났을 때는 존재 자체가 도움이 된다고 말하며 끝까지 아버지의 존재를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말은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다.
인류와 그 외. ‘그 외’에서 가장 큰 역할을 차지하는 것이 마지막에 한 번 등장하는 ‘기린’이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보다 나은 삶을 꿈꾸며 끊임없이 전진하는 것만으로 좋다고 생각하는 인류와 존재 자체가 상서로워 환영 받는 기린.
아버지는 현실 속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인물이다.
‘나’도 지금은 아버지의 존재 자체만으로 힘이 된다고 하지만, 집에 돌아와 그 전처럼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모습만 보여준다면 아예 없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래서 아버지를 ‘기린’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존재 자체로 환영받는 존재, 그 자체로 긍정되는 인물.
환영받지 못하던 아버지는 스스로 기린이 되어 환영해 마지않는 상서로운 동물로 변한다.
‘풉-’하고 웃는 독자 뒤에서 작가는 이제 함께 새로운 인류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반갑습니다! 소설갑니다’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