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2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비 오는 날 전화가 걸려온다.

소설가에게 우편을 보낸 한 명의 여인이다.

그녀는 다짜고짜 자신이 보낸 소포를 꼭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소설가는 비가 추적추적 오는 밤 여인이 보낸 소포를 뜯어 읽기 시작한다.

꽤 흥미로웠는지 정리해서 독자에게 이야기해 주려고 한다.

여기서부터 주인공은 여인으로 바뀐다.

둘 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소위 액자식 구성이다.

이제 여인이 쓴 글이 그녀의 목소리가 된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옛날이야기를 장황하게 몇 장 읊고서야 비로소 '흡혈귀임이 거의 분명한 그녀의 남편' 이야기를 한다.

여인의 성격을 짐작하게 해주는 부분이지만 너무 길다.

남편이 얼마나 '흡혈귀스러운지'에 대한 이야기는 장황한 앞의 분량과 비슷하다.

그의 서재에서 얼굴 부분이 오려진 옛날 사진들이 발견되고,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박식하며, 성관계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고, 밥도 죽지 않을 만큼만 먹는다.

대충 그녀의 남편이 인생에 회의적이며 달관한 자세를 보이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이 소설, 뭔가 어색하다.

김희연이라는 1인칭 주인공이 굉장히 주관적이어서 일까?

그녀는 남편이 '김치를 안 먹는 점'과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점'을 흡혈귀스러움의 예로 든다.

요즘 아이들 중에는 김치를 싫어해서 전혀 먹지 않는 아이들이 많다.

물론 사람이라 불리는 족속들 중에 컬트영화광들도 많다.

그들이 존재하기에 컬트영화가 존재한다.

또, 아직 내가 아는 한 지구상에는 애초에 인간이 아니라면 영화라는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생명체가 없다.

백보 양보해서 그 안에 루마니아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흡혈귀들이 존재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김희연이라는 주인공이 이야기한 사실을 모두 믿겨질 만큼 신빙성 있게 느껴지진 않는다.

나는 읽어가며 사소한 것들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과연 이 여인이 서재에서 본 나무상자가 관이 맞을까, 사진에서 얼굴만 오려낸 것이 그녀 남편의 것일까.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녀가 그렇게 주장할 뿐이지 남들도 그렇게 느낀다는 객관적 지표가 너무 불충분하다.

심하게 표현하면 정신병원에 가기 직전인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렇게 미심적은 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일 것 같았던 소설가가 아무 의심 없이 여인의 이야기에 흠뻑 빠진 것도 어색하다. 실망스럽다.

과연 김희연이라는 여성의 어느 부분이 흡혈귀 같았던 것일까?

그녀가 환자가 아니라, 진짜 흡혈귀여서 자신의 이야기를 남편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이야기한 것이라 가정해보자.

여인은 강한 매력을 가진 인물에게 끌려 다닌다.

화가 나도 자신이 불쌍해 보이는 것이 싫어 애써 외면한다.

소포로 장황한 이야기를 적어 보내고, 비 오는 날 전화하는 효과를 냈지만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면부지의 소설가에게 물을 정도의 사람이다.

그에 비해 남편은 다른 사람들이 일정한 격을 둘 정도로 어려워하지만 자기주장이 강하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는 인물이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낸다면 누구나 자신과 닮은 인물을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여인이 흡혈귀 같다는 작가의 가설을 납득하기엔 두 사람의 이미지가 너무 동떨어져 있다.

그래서 작가의 짐작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내게 이 소설은 마치 실패한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전형같이 느껴진다.

독자인 나는 전혀 소설에 경도되지 않았다.

그녀가 흡혈귀인 것도, 그녀의 남편이 흡혈귀인 것도 나는 믿지 못하겠다.

내 짐작으론 그녀는 소설가 지망생이다.

지어 보낸 편지글 형식의 미숙한 단편소설, 그런 느낌이다.

아예 여인이 등장하지 않고 작가가 전설이나 민담을 들은 것과 같이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썼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뭐 이것도 어디까지나 그저 내 짐작일 뿐이다. 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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