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 - 2004년 제28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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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죽었다.

남자는 하늘을 원망하지도 삶을 비관하지도 않는다.

당면한 상황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그는 장례를 치르기 위한 준비를 한다.

그런데 금세 그가 장례를 위해 할 일이 거의 없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주어진 역할이라야 먼저 간 아내를 그리며 눈물짓는 일이 전부다.

그러나 그는 그 역할은 수행하지 못한다.

아내가 죽은 건 당연한 일이지 슬픈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대신 아내를 생각하기로 한 것 같다.

그는 맞절을 하곤, 종종 아내를 떠올린다.

나는 그의 내면여행 속에서 대비와 상징을 수두룩 긁어모았다.

아내와 추은주라는 죽음과 생명의 대비.

내면여행과 가벼워진다.

그 밖에도 남자의 붉은 오줌과 부인의 파르스름한 민 머리.

따뜻한 밥 냄새를 싫어하는 아내와 아기 새 같이 밥을 흘리면서도 열심히 받아먹는 추은주의 딸이 있다.

추은주 역시 볶음밥과 짬뽕국물을 번갈아 가며 맛있게 먹는다.

남자는 그 모습이 황홀한 듯 길고 자세하게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중년 남자가 젊은 여자에게 느끼는 애정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남자에게 추은주라는 존재는 어디까지나 생명의 상징이다.

그녀는 객관적 묘사를 종합해 볼 때 회사에서 꼭 필요한 직원이 아니다.

오히려 사표를 내주어 고마워할 만한 직원이다.

그러나 그녀는 죽어가는 아내에게서 느낄 수 없는 생명력이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모습만으로 그녀의 생명력은 짙어진다.

이것은 색채로도 드러난다.

남자는 추은주의 이미지로 ‘울트라 블루 마린’이나 ‘생선의 푸른 등’을 연상한다.

그녀는 사회생활에 서툴지만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반면 아내는 죽어가기 때문에 꺼져가는 불빛처럼 겨우 ‘파르스름’한 빛을 낼 뿐이다.

이상한 점은 생명력을 상징하는 '울트라 블루 마린'과 아내의 '파르스름'한 핏줄이 같은 계열의 색상이라는 점이다.

소설 내내 상징을 만들기에 여념 없던 작가가 이점을 놓쳤을 리 없다.

그렇다면 뭘까. 나는 이것이 생명의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분홍색의 산도에서 나온 추은주의 딸은 입 속도 분홍색이다.

싱싱한 젊음인 추은주는 빛나는 파랑, 죽음과 가까운 아내는 빛바랜 파랑이다.

분홍색에서 파랑색으로 변하며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고, 파랑색이 옅어지며 생명을 다한다.

그러나 남자의 ‘붉은’ 오줌이 미지수로 남는다.

이것을 나는 남자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다는 상징이라 생각했다.

몸도 삶의 방식도 일견 어른 같지만, 병간호를 제외하면 그에게서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나 애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남자는 아내를 보내며 자신의 삶을 반추해본다.

하지만 반추되는 것은 아내와 딸과 함께 보낸 ‘가족의 삶’이 아니라 철저한 ‘자신의 삶’이다.

화장품회사 중역이 되기까지 아내의 희생도 결국 그를 위한 희생이다.

투병하는 모습조차 결국 자신에게 괴로움을 선사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는 무거운 마음을 주는 대상을 별로 달갑게 여지지 않는다.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괴롭히던 대상인 아내가 죽은 것이 그는 별로 슬프지 않아 보인다.

아내를 닮은 딸도 무겁고 꺼려지긴 마찬가지다.

고민 끝에 그는 '가벼워'질 것을 결정한다.

가족에 대한 모든 책임을 내려놓은 그는 이제 한없이 날아갈 것만 같다.

가족이라는 무거운 중압감을 내보내고 스스로 ‘울트라 블루 마린’이 되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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