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24시』, 확신을 가진다는 것에 대하여

  

대학교 3학년의 마지막 기말고사를 남겨둔 내가 요즘 들어 받는 질문은 대개 비슷한 종류의 것들이다. 쓸데없이 나의 미래까지 걱정하는 이들이 늘어났다고 해야 할까. 사실 꽤 어릴 때부터 내가 가고자 했던 길은 명확한 편이었다. 책 읽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았고, 책 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미래에도 책을 곁에 두는 직업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막연했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꿈과 현실이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곤 했다. 한 마디로 나 또한 확신이 흐려져 있었다. 어느새 여느 취업준비생들과 다를 바 없이 확신 없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 때 나에게 누군가가 이 책을 추천해 주었다. 아마도 그 사람이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은, ‘이래도 출판사 가고 싶어? 넌 아직 현실을 몰라.’였던 것 같다. 글쎄다. 어떤 의도로 추천해준 책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이 책을 읽는 순간 출판사는 내게 확신을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길을 가야할지 비로소 명확해진 느낌이었다.

『출판 24시』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많은 이들이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어떤 일들을 꾸려가고 있는 지 현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치열한 사회에서 책을 만든다는 성취감, 자부심만으로 버텨내고 있는 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내 가슴을 뛰게 했다. 설레고 흥분되게 했다. 박봉에 복지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며, 갑을 관계에 쩔쩔 매며 때로는 할 말을 다 하지 못해 답답한 마음을 홀로 삭혀야 할 때도 많지만 이들이 지닌 열정이 나에게는 더 크게 다가왔다. 때로는 화려한 무대 앞보다 진정성 있는 무대 뒤가 더 매력적이니까.

어떤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가 되기란 쉽지 않다. 오랜 노력을 거치고 시간을 거쳐서 완성되는 것이다. 이 책의 인물들도 언젠가 ‘처음’을 겪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낯설고 새로웠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나 또한 힘들겠지만 ‘처음’을 겪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내 분야’에서 힘들지만 지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보고 싶었다. 누군가의 일터를 들여다보는 행위는 생각보다 더 많은 순간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한 번이라도 이들처럼 치열하게 살아가본 적이 있던가. 끝없이 되묻게 해주었다.

꼭 출판 분야가 아니더라도 그렇다. 모든 일터는 치열하고, 쉬운 직업은 없다. 마찬가지로 쉬운 꿈은 없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이들이 나처럼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미래에 대한 확신이 흐려지고 있을지 모른다. 이 책의 인물들도 아직 고민한다. 아직도 확신하지 못하지만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치열하게 답을 찾고 있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끊임없는 고민들을 읽어나가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 현역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도 다를 바 없이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은 꽤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용기 있게 내가 옳다고 생각한 길을 걸어가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그들의 세상을 잠시 엿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추천해준 누군가의 의도가 ‘이래도 이 길을 택하겠어?’였다면 이제 이렇게 답하겠다. ‘이래도 이 길을 택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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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같이 쌀쌀한 날씨에 이불 속에 들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기 좋은, 쉽고도 따뜻한 책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천천히 오랜 시간을 두고 읽어나가길 권했지만, 나의 경우 책장을 넘김과 동시에 무서운 속도로 끝까지 읽어내 버렸다. 그 만큼 순식간에 몰입하게 된 책. 가끔씩 반전 아닌 반전들에 입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실 이 책은 2000년도에 쓰인 책으로, 이 책의 배경은 무려 15년 전쯤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인물들은 나와 매우 가깝게 느껴졌다. 친근하고 익숙했다. 아마도 15년 전에 비해 훨씬 각박하고 살기 힘든 세상으로 변해버린 지금의 우리 또한 아직은 따뜻한 가슴을 지니고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승차권을 사기 위해 지하철 매표소로 걸음을 옮기던 그녀는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아기 엄마에게로 다가가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새파랗게 얼어버린 아기 얼굴을 감싸주었다.

 

“옷이 없어서, 엄마 춥겠다. 그치?”

“아냐, 엄마 안 추워. 집에 다 왔잖아. 근데 소라야, 엄마가 사 준 새우깡 어딨어?”

“응, 아까 엄마가 아가한테 옷 덮어줄 때 아가 옆에 놓고 왔어. 아가 먹으라구…….”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늘 우리를 성숙하게 만든다. 비록 책 속의 인물들이 우리보다 가난하거나, 많이 배우지 못하였다 하여도 그것이 그들이 미성숙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이들을 도울 줄 아는 보다 성숙한 마음을 가졌을지 모른다. 이렇듯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괜스레 나까지 갑자기 훌쩍 커버린 느낌이 들곤 할 때가 있다. 그리곤 나도 이들처럼 조금이라도 누군가를 따뜻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록 살아가는 데에 있어 굉장한 일이 아닐지라도 하루하루 소소한 일상 속에서 맞이하는 가슴 따뜻해지는 만남들 혹은, 나눔들은 얼마나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가.

 

상처를 주지 않고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소리 없이 아픔을 감싸준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사랑은 의식 깊은 곳에서 숨을 쉬다가 우리가 잘못된 길을 걸어 갈 때면 기어코 우리들의 곁으로 다가온다는 것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사랑은 끝끝내 우리의 길을 인도한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화석처럼 굳어진 우리의 사랑까지도……. 사랑은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다.

 

<연탄길>을 읽으며 가장 와 닿았던 구절들이다. 상처를 주지 않고 사랑하는 것, 우리는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매일같이 상처 주며 살아간다. 사랑하기 때문에 상처 줄 수밖에 없는 삶이란 얼마나 모순적인 것일까. 이 구절들을 읽으며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많이 배우고 깨달으며 마음으로 새길 수 있게 되었다.

 

부모가 없는 세상에서 민수는 가슴을 뜯으며 사랑을 찾아 헤맸었다. 그러나 사랑은 그에게로 오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곧 자신을 사랑하는 것임을 그는 알게 되었다. 자신을 버릴 때 사랑은 비로소 자신에게 온다.

 

때론 어렵고 두꺼운 전문서적들보다도 이웃들의 소소한 일상을 다룬 책들로 인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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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자꾸만 가슴 한 쪽이 뻐근해지는 책이었다. 사실 이 책은 눈물을 쏙 뽑을 만큼 절절하게 슬픈 구절이 없다. 그런데도 난 이상할 정도로 여러 번 슬펐다. 엄마와 위녕, 둥빈과 제제, 서저마 아주머니와 막딸 아주머니,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에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 한 마디로 비정상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들이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일상이 어느 누구의 삶보다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여러 번 눈물을 흘렸었다.

 

돌아오는 길에 벌써 바람은 아주 차가웠다. 엄마의 팔짱을 끼고 걸어오면서 나는 문득 가족이란 밤늦게 잠깐 집 앞으로 생맥주를 마시러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팔짱을 끼는 사람들, 그리고 편안히 각자의 방에서 잠이 드는 그런……사람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사랑스럽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참으로 여러 번 이들이 참 사랑스러운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그 중에서도 단연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은 엄마였다.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가진 여성, 이미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써낸 프로페셔널한 작가는 이 글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소녀 같았다.

 

엄마의 뺨은 보기 좋게 상기되어 있었다.

“엄마 술 먹었어. 늦어서 미안해……. 그러니까 우리 춤출까?”

미안해, 에서 그러니까 춤출까, 라는 논리의 비약은 또 뭔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엄마는 내가 뭐라 대답할 새도 없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내 앞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반쯤 일으킨 채로 엄마가 촌스런 포즈로 춤을 추는 것을 보았다. 대체 저런 춤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 “어때? 엄마 춤 잘 추지?”

 

그녀의 사랑스러운 면모는 그들이 고통스럽고 힘겨운 시기를 지나오고 있을 때 비로소 진가를 발휘하는 듯 보였다. 예를 들면, 딸이 냉전 중이던 아빠의 집을 예고 없이 찾아 나섰을 때 혹은 난생 처음 보는 여자에게서 난데없이 인신공격을 당했을 때 또는 이혼한 전 남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에서 이혼녀와 그 가족에 대해 비난하는 신부님의 강론을 들었을 때 등등이 있겠다.

 

그때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엄마, 내가 조금 있다가…….”

내가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엄마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위녕, 다시 말하지만 저희 새엄마랑 아빠가 너를 또 무지막지하게 야단치는 거니? 어서 말을 해. 엄마는 걱정이 되어서 바다도 보이지가 않아. 엄마가 말했잖아. 어려우면 뻐꾸기나 제비로 대답하라고. 뻐꾸기는 예이고 제비는 아니오……. 가만있어봐, 아까는 제비가 예였고 뻐꾸기가 아니오였나……? 모르겠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위녕, 그럼 다시 하자. 짧게 끊어서 꿩! 꿩이 좋겠다. 꿩이 예고, 또 한 글자 새가 뭐가 있니? …… 그래, 매 하면 아니오야. 너 지금 아빠한테 혼나고 있지? 응? 꿩? 매?”

 

얼마간 힘든 일이 닥친다 해도 엄마는 언제나 이렇듯 낙천적으로 그 일을 해결해 나간다. 책에서도 언급 되었듯이 고통스러운 시간들에는 언제나 약간의 유머가 필요하다. 이 책이 사랑스러운 이유도, 책 속의 인물들이 사랑스러운 이유도 거기에 있는 듯하다. 그들은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한결같이 유쾌하다.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쉽지 않았던 이들의 인생이 그들을 이렇듯 성숙하게 길러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내내 나는 눈물을 닦으며 나 또한 이들과 같이 성숙한 가족을 품에 안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들의 가정이 사회적으로 비뚤어졌다하여 비난받을지언정 나는 그들이 꾸려가고 있는 가정이 한 없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서로를 자유롭게 놓아줄 용기를 지녔으며, 한 편으로는 서로가 영원히 결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아마도 저자가 새로운 시대에 제시하는 새로운 가족의 의미는 이렇듯 아름다운 형태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감히 헤아려보자면, 아마도 새 시대에 걸맞은 가족의 형태는 ‘평범한’ 가족일 것이다. 그들의 성이 모두 다르다 하여도, 혹은 인종이 모두 다르다 하여도 그들은 그 자체로 평범한 가족이며, 사랑스러운 가정일 것이다. 누구도 그들을 틀에서 벗어난 비정상이라 칭할 자격은 없는 것이다. 다만, 그들이 그 자체로 유쾌하고 아름답게,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으로 가족은 이미 형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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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언제나 기적을 꿈꾸며 살아간다. 특히 어렵고 힘겨운 상황에 처해 있을수록 기적은 절박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삶이 그러하듯 대부분의 기적은 일어날 확률보다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 우리의 인생은 수많은 실패들과 가끔의 성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희망의 노래를 부르기 보다는 절망스러움에 고통스럽고, 두려우며,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발견한 것은 ‘기적’보단 ‘수용’에 관한 이야기였다.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병을 앓고 있는 이들 혹은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의 가족이었다. 또는 불의의 사고로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이들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 이미 왼쪽 폐가 없는 상황에서 오른쪽 폐에까지 암이 전이되고 있는, 긴박한 상황의 양호교사, 대지진으로 인해 네 명의 가족을 한 순간에 잃어버린 어머니, 인생에서 가장 빛날 시기에 백혈병에 걸려버린 어린이들. 이 책의 모든 이들은 우리가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직 젊은 나이인데 말기암과 뇌경색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어요.

저는 결코 불행하지 않습니다.

 

인간이란 참으로 신비한 존재이다.

 

그러나 이들은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이었다. 아침마다 화장을 하고, 비싼 옷을 사거나 맛 집을 찾아 거리를 전전하는, 육체가 건강한 어떤 이들보다 훨씬 참답고, 보람차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이 충분히 빛나고 있다고 믿고 있었으며,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했다. 육체만 건강한 이들보다 사회에 공헌하고 있었으며, 낙천적인 사람들이었다.

 

인간에게는 죽음과 마찬가지로 피하지 못하는 일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시궁창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그 곳에서 별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찰리 채플린과 시인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다. 그렇다. 좌절과 절망에 고통스러운 시간들은 언젠가 지나가게 마련이다. 거창한 기적이 나타나주지 않더라도 언젠가 흘러가게 마련인 것이다. 때문에 언제 나타날지 모를 기적에 연연하는 삶은 무의미하다. 대신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비극을 온전히 수용하고, 스스로 기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책의 저자가 말하는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내던지지 않고, 지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어쩌면 우린 스스로 기적과 같은 일을 행하고 있는 이들에게서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분명 이 책이 지금 절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위로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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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날들이 지루하거나 똑같은 하루들의 반복이라고 느껴질 때, 나는 주로 아주 신선하고 색다른 설정들의 소설을 읽는다. 이 책 역시 그러했다. 실제로 <흑장미 마녀의 7가지 마법>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읽음으로써 대단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짜임새 있는 구성에 읽는 동안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종류의 것도 아니었다. 다만,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에 조금 지쳐있던 사람이라면 읽는 동안 충분히 풍성한 간접경험을 해볼 수 있을만한 책인 것은 확신한다.

특히 채식주의자이며, 베란다에서 제비꽃을 키우고, 빗자루 대신 전철과 비행기를 애용하며, 우리들과 다를 바 없이 잠꾸러기인, 130살이 넘은 마녀는 책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상반되게도 매우 친근하다. 여기에 보통의 마녀 이야기와는 다른 이 책만의 매력이 숨어있다. 마녀의 에세이를 읽는 것 같은 느낌.

 

흑장미 마녀의 아파트 베란다에 그 해 처음으로 제비꽃이 피었답니다. 하트 모양의 잎사귀 사이로 서너 송이 달려 있던 봉오리가 일제히 꽃잎을 활짝 터뜨린 거예요.

“와, 맛있겠다! 제비꽃 샐러드를 만들어 먹어야지.”

흑장미는 신이 나서 중얼거렸습니다.

흑장미 마녀는 잠꾸러기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슬슬 점심을 준비할 무렵에야 일어나 느지막한 아침을 먹지요.

 

그녀의 7가지 에피소드들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긴 여운을 남긴 이야기는 바로 천하태평 선배와의 에피소드였다. 시종일관 나를 미소 짓게 했던 그들의 어릴 적 추억과, 마지막 반전은 한 동안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그랬구나.”

불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찌릿하게 아팠던 수수께끼는 이것으로 풀렸습니다.

클리프 하우스에서의 신기한 하룻밤은 천하태평이 보여 준 일생일대의 눈속임……, 마법학교에서 배운 환상술의 집대성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의 소중한 기억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따뜻한 미소를 불러온다. 그러나 그 만남이 온전하지 못한 데서 오는 슬픔은 보다 컸던 것 같다. 이 대목에서 나도 어릴 적 함께 했던 오래된 친구들이 많이 떠올랐다.

이렇듯 <흑장미 마녀의 7가지 마법>은 지루하고 쳐지는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을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다. 머리 쓰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마녀 이야기. 또 그녀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마녀만큼이나 역동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종종 찾아오기도 한다. 흑장미의 7가지 마법은 아마도 우리의 삶과 그 관계들에 있어서 꼭 필요한 인간적 감성들이 아니었을까.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뭐, 좋아.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겨 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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