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자꾸만 가슴 한 쪽이 뻐근해지는 책이었다. 사실 이 책은 눈물을 쏙 뽑을 만큼 절절하게 슬픈 구절이 없다. 그런데도 난 이상할 정도로 여러 번 슬펐다. 엄마와 위녕, 둥빈과 제제, 서저마 아주머니와 막딸 아주머니,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에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 한 마디로 비정상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들이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일상이 어느 누구의 삶보다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여러 번 눈물을 흘렸었다.

 

돌아오는 길에 벌써 바람은 아주 차가웠다. 엄마의 팔짱을 끼고 걸어오면서 나는 문득 가족이란 밤늦게 잠깐 집 앞으로 생맥주를 마시러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팔짱을 끼는 사람들, 그리고 편안히 각자의 방에서 잠이 드는 그런……사람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사랑스럽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참으로 여러 번 이들이 참 사랑스러운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그 중에서도 단연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은 엄마였다.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가진 여성, 이미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써낸 프로페셔널한 작가는 이 글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소녀 같았다.

 

엄마의 뺨은 보기 좋게 상기되어 있었다.

“엄마 술 먹었어. 늦어서 미안해……. 그러니까 우리 춤출까?”

미안해, 에서 그러니까 춤출까, 라는 논리의 비약은 또 뭔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엄마는 내가 뭐라 대답할 새도 없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내 앞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반쯤 일으킨 채로 엄마가 촌스런 포즈로 춤을 추는 것을 보았다. 대체 저런 춤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 “어때? 엄마 춤 잘 추지?”

 

그녀의 사랑스러운 면모는 그들이 고통스럽고 힘겨운 시기를 지나오고 있을 때 비로소 진가를 발휘하는 듯 보였다. 예를 들면, 딸이 냉전 중이던 아빠의 집을 예고 없이 찾아 나섰을 때 혹은 난생 처음 보는 여자에게서 난데없이 인신공격을 당했을 때 또는 이혼한 전 남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에서 이혼녀와 그 가족에 대해 비난하는 신부님의 강론을 들었을 때 등등이 있겠다.

 

그때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엄마, 내가 조금 있다가…….”

내가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엄마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위녕, 다시 말하지만 저희 새엄마랑 아빠가 너를 또 무지막지하게 야단치는 거니? 어서 말을 해. 엄마는 걱정이 되어서 바다도 보이지가 않아. 엄마가 말했잖아. 어려우면 뻐꾸기나 제비로 대답하라고. 뻐꾸기는 예이고 제비는 아니오……. 가만있어봐, 아까는 제비가 예였고 뻐꾸기가 아니오였나……? 모르겠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위녕, 그럼 다시 하자. 짧게 끊어서 꿩! 꿩이 좋겠다. 꿩이 예고, 또 한 글자 새가 뭐가 있니? …… 그래, 매 하면 아니오야. 너 지금 아빠한테 혼나고 있지? 응? 꿩? 매?”

 

얼마간 힘든 일이 닥친다 해도 엄마는 언제나 이렇듯 낙천적으로 그 일을 해결해 나간다. 책에서도 언급 되었듯이 고통스러운 시간들에는 언제나 약간의 유머가 필요하다. 이 책이 사랑스러운 이유도, 책 속의 인물들이 사랑스러운 이유도 거기에 있는 듯하다. 그들은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한결같이 유쾌하다.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쉽지 않았던 이들의 인생이 그들을 이렇듯 성숙하게 길러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내내 나는 눈물을 닦으며 나 또한 이들과 같이 성숙한 가족을 품에 안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들의 가정이 사회적으로 비뚤어졌다하여 비난받을지언정 나는 그들이 꾸려가고 있는 가정이 한 없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서로를 자유롭게 놓아줄 용기를 지녔으며, 한 편으로는 서로가 영원히 결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아마도 저자가 새로운 시대에 제시하는 새로운 가족의 의미는 이렇듯 아름다운 형태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감히 헤아려보자면, 아마도 새 시대에 걸맞은 가족의 형태는 ‘평범한’ 가족일 것이다. 그들의 성이 모두 다르다 하여도, 혹은 인종이 모두 다르다 하여도 그들은 그 자체로 평범한 가족이며, 사랑스러운 가정일 것이다. 누구도 그들을 틀에서 벗어난 비정상이라 칭할 자격은 없는 것이다. 다만, 그들이 그 자체로 유쾌하고 아름답게,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으로 가족은 이미 형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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