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회의 기초는 보수다 - 현대의 적들과 과격한 친구들로부터 민주주의 지켜내기
다니엘 J. 마호니 지음, 조평세 옮김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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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의 핵심은 민족주의에 있다. 그러나 저쪽의 인간들에겐 민족이 없다. 죄다 친일파 후손이라 그렇다. 이번 삼일절 축사와 세종시 일장기 사태만 봐도 저들은 가짜 보수주의임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독립을 위해 싸운 홍범도 선생의 유해를 누가 본국으로 모셔왔는 지를 생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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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26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젊은 세대에게서는 그 반일의 정신이 100% 혐오를 위한 선동이었음이 다각도에서 드러나온지 오래입니다. 그 철지난 586 정치 선동의 지리멸렬한 셋업에서 벗어나는 지점이 새로운 청년 보수세대의 시작 지점입니다.

Conversion 2025-02-04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수의 핵심이 개인주의이지 왜 민족주의인가

파파 2025-02-04 14:13   좋아요 0 | URL
개인주의는 진보도 표방하는 바거든. 다만 보수의 개인주의가 사유재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진보는 인권 등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근데 민족주의는 그렇지 않거든. 그래서 보수의 핵심을 민족주의에 있다고 본다.

mediocris 2025-03-22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봉오동 전투는 전과조차 불분명한 과장된 항일투쟁일 뿐이다. 홍범도는 1921년 6월 28일 소련군이 독립군 700명 이상을 학살한 자유시 참변의 소련군 협조범 겸 주동범이다. 홍범도는 1922년 1월 21일부터 2월 2일까지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 제1회 극동인민대표대회에 한인대표 56명의 일원으로 선출되어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대회가 끝난 2월 초 홍범도는 한인 무장세력(고려혁명군) 대표 자격으로 레닌·트로츠키와 면담했다. 레닌은 홍범도에게 혁명정권에 협조해준 감사의 표시로서 금화 100루블, 군복 한 벌, 홍범도 이름을 새긴 권총을 선물로 줬다(장세윤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영웅 홍범도 역사공간 2017년 221~223쪽). 자유시참변 이후 홍범도는 휘하 병력 300명을 소련 적군에 편입시켰고 자신은 소련군 제5군단 합동민족여단 대위로 편입됐다. 홍범도는 장군이 아니라 소련군 대위였다. 1945년 8월 29일 소련군 대위로 입북한 김일성과 흡사하다. 홍범도는 1923년 소련군 대위로 제대했고 1937년 스탈린의 악명높은 한인들의 중앙아시아 강제추방 당시 카자흐스탄으로 옮겼으며 극장의 수위로 지내다가 1943년 10월 25일 사망했다.

파파 2025-03-22 10:17   좋아요 0 | URL
당시 코뮌은 제국주의(제국주의 기본 작동 원리에는 ‘자유‘의 개념이 도사려 있었음)와 맞서 싸우기 위해 지역의 민족주의를 후원했는데, 일본 제국주의와 싸우던 우리나라 독립군들은 1920년대부터 서구 제국주의와 싸우기 시작한 러시아인들의 활동으로부터 공통적인 면모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음.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의 전과가 불분명한 이유는 홍범도 선생을 제외한 채 연구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임.

mediocris 2025-03-22 11:15   좋아요 0 | URL
댁의 답변은 저의 댓글과 맥락이 전혀 닿지 않습니다. 다시 올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