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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 박영택의 마음으로 읽는 그림 에세이
박영택 지음 / 지식채널 / 2013년 1월
평점 :
지친 어느날, 그림이 내게로 왔다_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참 삶이 버거운 날이 있는 것 같아요.
어깨에 놓여진 삶이라는 존재가 묵직한 무게로 다가올 때- 그땐 진정한 힐링이 필요하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간다거나,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로 마음의 먼지를 털어낸다거나.
다양한 힐링을 통해 우리는 그 무게를 또 가볍게 만들어 삶이라는 바퀴를 다시 굴려갑니다.
오늘은 그렇게 힐링이 가능한 책 한권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박영택의 마음으로 읽는 그림 에세이 [하루]
지식채널 / \15,000
지친 어느날, 그림이 내게로 왔다_
작가님의 하루에 대한 이야기가 프롤로그처럼 쓰여져 있습니다.
+
매일 반복되지만 이 일상은 다시는 반복될 수 없다.
반복되어짐과 동시에 결코 반복될 수 없다는 것이 공존하는 것이 일상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매 순간순간의 장면은 단 한번뿐인 마지막 '씬'이다.
유일무이한 장면인 것이다.
겉으로는 하등의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경이로운 차이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
늘 반복적이라 생각하지만, 반복적일 수가 없는 하루하루들.
반복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모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복적이지만, 반복되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의 하루가 아닌가 합니다-
+
삶에서 절정의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내 생애에서 가장 귀중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 지금 여기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요, 내일은 다가오는 오늘이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하루를 이 삶의 전부로 느끼며 살아야 한다.
+
언젠가는- 언젠가는-
이라는 말을 늘 되뇌이며 살아온 나에게,
이 말은 오늘 하루를 소중하게 만들라는 충고와도 같습니다.
늘 미래를- 지금과는 다른 곳을 바라보느라,
정작 정말 잘 살아가야 하는 지금이라는 순간을 놓치고 있는건 아니었나, 하는 반성을 해보았습니다.
[나의 하루]라는 작가의 프롤로그가 지나가면 이런 순서대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새벽, 아침, 오후, 밤이라는 시간적인 순서로 하나의 그림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때로는 장난스럽게 때로는 진지하게 담담하게 듣고 있으면 어느새 귀를 기울이게 되고,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생각이 들어요.
# 1 at dawn
아침은 그렇게 기적처럼 찾아온다
# 2 in the morning
마음 한 자락을 들여다본다
# 3 at midday
낯선 존재가 되는 시간
# 4 late in the afternoon
때론, 은밀한 일탈이 낭만적인 이유
# 5 in the evening
하루가 지워지는 일몰의 그 순간
# 6 a late night
고독한 낙원에서 살아남기
# 6 learly
삶의 흔적을 기억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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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차근 읽다보면 마음도 차분해지고, 동감이 되는 이야기도 많아-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 중에 제일 동감이 갔었던 세가지 그림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 오전 11시 41분, 기억의 수집 < 윤정선의 0704 11: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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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란 완전하지도 않고 충분하지도 않다.
기억은 늘 불안하고 미심쩍고 자의적이다.
명료하게 모든 것을 장악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불확실한, 불안한 기억에 의지해 삶을 산다.
반복되는 일상으로 인해 누적된 삶에서 무엇인가를 뽑아내는 것이 또한 기억일 것이다.
기억이 없다면 삶은 없다.
내일은 어제와 오늘의 기억에 의지해 있다.
우리는 늘 기억에 기생해 그 기억을 갉아먹으며 앞으로 조금씩 밀고 나가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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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기억이란 어쩌면 머리속에서 왜곡된 하나의 잔상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유난히 이 기억이라는 존재에 집착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 기억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기억들을 만들며, 이전의 기억들을 조금씩 조금씩 밀어내어 지워버리곤 하죠.
어차피 잊어버릴 기억들을 뭣하러 또 기억하는지 알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기억이 없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를 만들수도, 만들어내지도 못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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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는 것은 일회적 삶을 사는 우리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시간을 상처처럼 떠올릴 때이기도 하고 내가 본 이 풍경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때다. 가끔 내 앞에 있는 저 사람, 대상을 다시는 못 보리라고 분명히 예감할 때 조금 슬프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우리는 사라지기 직전에 기적처럼 살아 걷고 보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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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태에 관한 몇 가지 충고 < 이영춘의 3시 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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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가 무의미하다는 걸 알게 된 사람은 스스로를 죽은 사람 혹은 죄수로 느낀다.
그래서 삶은 '권태'롭고 이 일상에서 그는 '부유'한다.
인간존재의 근원적인 물음과 삶의 제반 현상을 그만의 독특한 화면 공정과 함축적인 형상의 흔적을 통해
가시화하고 있는 작가의 작업은 이 부유하는 삶 속의 부유하는 영혼에 대한 짙은 애증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이러한 애증이 우리에게 은밀하게 말을 걸어온다.
오후 3시 반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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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요즘의 나에게서 느낍니다.
의욕이 없고, 하루하루를 말 그대로 '살아가고만' 있는 상태라고 생각이 들면,
그 순간 허무함이 마음에 사무치게 느껴져요.
물론 언젠가는 떨칠 감정이며, 언젠가는 떨어져나갈 것이라 믿긴 하지만,
그 순간순간 전해지는 권태로움은 사람을 참 힘없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래도 여전히 나는 살아가고 있는 거겠죠.
+ 매일매일을 살아낸다는 것 < 허보리의 완전 피곤 오징어 바디 >
이 그림, 참 재밌습니다.
오징어가 되어 침대에 쓰러져버린 존재.
우리의 삶을 풍자적으로 빗대어 그림으로 그려낸 것 같아요.
집에 들어오자마자 저렇게 쓰러진 날들이 참 많았어요.
사실 그날 많이 힘들지도 않았는데, 집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저렇게 오징어가 되어 풀썩 쓰러져버리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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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이 그림은 매일매일 산다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이며 또한 힘들고 지치는 일인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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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삶을 살아가는건 쉬운 일이 아닌게 맞는거 같죠?
저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
잠시동안 힘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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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진솔하게 '삶'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그림들과 작가의 시선들이 책을 읽고 난 후에 가뿐한 한숨을 몰아쉬게 합니다.
나른하지만, 아예 힘을 빼는 것도 아니고, 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약하지도 않은 이 책은,
바쁘게 살아가고, 힘들게 살아가는 현대의 삶이 힘들긴 하지만 못살아내지는 않을거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쩐지 보다보면, 힘겨운 현실이지만, '그래, 뭐 어때. 또 하루를 살아가면 되는거지.'라는 힘을 전하는 듯 해요.
그래요. 뭐 어때요.
힘들면 힘든대로, 즐거우면 즐거운대로, 버거우면 버거운대로.
그냥 이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을요.
인생 뭐 있나요.
그냥 하늘 한번 쳐다보고, 한숨 한번 쉬고.
또 두 주먹 불끈 쥐고 다시 걸어가는 것이 바로 인생인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