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의 따님이신 나민애교수님께서 동아일보에 10년째 [시가 깃든 삶]이라는 주간 시평을 연재하고 계신데 연재한 시 중 우리 시대의 감수성과 어울리는 시 77편을 찾아 옮겨놓으셨고 시마다 독자의 이해를 높기 위한 따뜻한 시평도 옮겨두신 아주 읽으면 행복해지는 시집이다.
나민애 교수님은 서울대 강의 평가1위 교수님으로 요즘 각종 매체에서 자주 뵐 수 있는데 나는 자녀국어교육관련한 컨텐츠를 통하여 처음 뵙게 되었다.
교수님이라고 어렵고 딱딱한 분이 아니라 영상속에서도 너무 소탈하고 따뜻한 분임이 느껴지는게 꼭 옆집 언니 같은 푸근함이 있다.
표지마저도 감성적인 이 도서를 읽어보면서 나는 언제 시를 접하였는지 생각에 잠겨보았는데, 중학교때가 마지막이었다. 물론 국어시간에 학습을 위해 접한 건 제외하고.
내가 감수성이 한참 예민했던 사춘기 중학교시절에는 원태연 시인의 시를 많이 읽고 울고 웃고 행복했었는데, 이 시집을 읽으면 그때의 열다섯 소녀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 아득하게 느껴지는 세월을 거슬러 나는 어린 소녀가 되었다. 시는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처음 맛보는 시], [작은 위로가 필요한 시], [사랑을 곁에 두었다.], [가을이나 바람처럼 쓸쓸한 것들], [나에게 말을 건네는 시] 이렇게 다섯부분으로 분류하여 시 한편을 싣고 그 옆 페이지는 공백을 두어 독자에게 필사해볼 수 있도록 되어있고 뒷장에는 나민애교수님의 따뜻한 시평이 있어서 시를 더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되어있다.
시를 한 편씩 읽으면서 울고 웃고 아련하고 아늑해지고, 따뜻해지고.. 정말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중 마음에 와닿는 시는 윤진화님의 안부라는 시다.
40대중반을 넘어가다보니 나이 먹는 것에 늙어감에 여러가지 상념이 드는데 이 시가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기도 위로해주기도 했다.
왜 아름다운 것들은 이기는 편이 아니라 지는 편일까요.
잘 늙는다는 것은 잘 지는 것이겠지요.
~~ 중략~~~
부끄럽지 않게 봄을 보낼 겁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다음 계절을 기다리겠습니다.
교수님이 시평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시를 읽고 '어? 여기에 내 마음도 있네.'라고 생각되었다. 나도 늙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지. 설레이는 봄을 보내듯이 늙음도 나이듬도 부끄러워하지 말고 기쁘고 행복하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시는 너무 유명한 대문호 이어령 시인님의 [정말 그럴 때가]라는 시도 자식을 키우는 엄마이다보니 마음속에 깊이 박혀 눈물도 조금 그렁그렁하게 나왔다. 아직도 나에게 이런 마음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니 신기하기도.
젊고 푸른 청춘의 20대를 지나 서른 쯤 결혼하고 삼십대 초반에 연이어 출산을 하다보니 정말 지금 돌이켜보면 나의 30대가 통채로 사라진 느낌이다. 어떠한 기억도 추억도 없었던 30대였다. 독박육아로, 친정엄마의 병간호로 정말 정신 차려보니 어느덧 40대중반이 된 중년의 내가 보였다. 열심히 살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앙다문 입술에서 누가 옆에서 "괜찮니?"라고 말을 걸어주면 무너질 것 같은 내가 있는 것이다.
살면서 외로움은 늘 친구같이 내 곁에 있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고 그 외로움을 친구삼아 견디는 삶이 진정한 나의 삶이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이 시를 읽고 나니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너도 나도 다 외롭다. 나만 그런게 아니니 괜찮다.
산문이나 수필과는 다른 시 만의 감성이 있다. 너무 오래 전 느껴본 이런 감성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고 내안에 아직도 그런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이 남아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너무 감사한 책이다.
일상을 바쁘게 습관처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은 위로도 건낼 수 있고 격려도 할 수 있고 지난 날들을 추억할 수 있게 도와주니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예쁜 만년필이나 필기감이 좋은 필기구를 새로 장만하여 한 편, 한 편 다시 읽고 느리게 느리게 필사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