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현아는 매대 뒤로 돌아가 신발을 벗고 스타킹 위로 발을 주무른다. 하루 8시간, 선채로 일해야 하는 매장 근무는 20대 초반인 그녀에게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언젠가 고용주는 자신과 같은 근무여건의 사람들에겐 의무적으로 의자를 제공해야 한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었지만 여기선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다. 그녀가 일하는 곳은 하루에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오가는 대형 서점의 소설 코너였다. 따로 의자를 놓은 공간도 마땅치 않았고 그나마 잠깐 앉을 수 있는 공간들도 대부분 손님들 차지였다. 직원용 휴게실이 있었지만 눈치가 보여 오래 쉴 수도 없거니와 그 곳의 자리도 언제나 누군가 앉아있기 마련이었다. 지압을 하듯 발바닥 안쪽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그녀는 매장을 둘러보았다. 평일 오후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상당수는 대학생이나 수업이 끝난 초,중등생 꼬마들이었다. 책을 사러 온 것 보다는 시원한 매장 내에서 시간을 죽이며 바로 위층에 있는 극장의 영화 시간을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일 터였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서서 책을 읽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30대 후반 쯤 되었을까 웨이브를 넣은 긴 머리에 수수한 차림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꽤나 미인이다. 우울해 보이는 얼굴과 미간의 주름만 아니라면 훨씬 어려보이고 예쁠 것 같다. 아마도 젊었을 적엔 남자들 꽤나 꼬였을 것 같았다. 그녀 역시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매대 여기저기를 옮겨가며 이책 저책 살피고 있었는데 조금 전부턴 책 한권을 잡고선 열중하고 있었다. 뭔가 기분 나쁜 것이라도 보았는지 한껏 인상을 찌푸린 채 페이지를 넘기던 여자의 손이 어느 순간 빨라지기 시작한 걸 현아는 감지했다. 마치 화풀이라도 하듯이 거칠게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멀리 떨어진 그녀의 귀에도 들렸다. 저러다가 책이 손상이라도 되면 낭패라는 생각에 현아는 벗었던 신발을 다시 신고선 매대 쪽으로 향했다.

“손님 제가 도와드릴까요?”

현아가 말을 걸었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여자는 책만 들여다볼 뿐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여자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자의 얼굴은 뭔가 끔직한 것이라도 본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고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손님?”

심상치 않음을 느낀 현아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여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순간 매장 안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아아!”

여자는 현아의 팔을 뿌리치며 책을 집어던지더니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매장안의 사람들이 모두 놀란 얼굴로 두 사람 쪽을 바라보았다. 현아는 마치 자신이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바라보는 시선에 당황하며 그런 게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매장 반대편에서 건장한 체구의 박 대리가 황급히 뛰어오는 게 보였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현아가 난감해하는 찰라 갑자기 여자의 비명이 멈췄다.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있던 여자의 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진다. 그리곤 여자의 몸이 기울어지더니 그대로 진열대에 부딪힌 뒤 바닥에 쓰러졌다. 진주색 타일 위에 드러누운 여자의 몸 위로 진열대 위에 있던 책들이 쏟아져 내렸다. 현아는 당황하며 주저앉아 쓰러진 여자를 살폈다. 반쯤 뜬 여자의 눈은 초점을 잃고 풀어져 있었다. 정신을 잃은 듯 보이던 여자의 입에서 쉰 소리가 새어나왔다.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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