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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없는 낙관주의 - 무너진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토미 비링하 지음, 유동익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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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없는 낙관주의. 토미 비링하/류동익 옮김. 어크로스. 2026.
_무너진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제목부터가 이미 역설적이다. 희망없는 낙관주의라니. 희망이 없는데 어떻게 낙관주의일 수가 있을까. 낙관주의란, 앞으로의 일 따위가 잘되어 갈 것으로 여기는 생각이나 태도라는 뜻이다. 철학에서는, 인생이나 사물을 밝고 희망적인 것으로 보는 생각이나 태도라는 뜻으로 쓴다. 이미, 단어 뜻 안에 '희망'이란 뜻이 포함되어 있다. '잘 되어 갈 것으로 여'긴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떻게 낙관주의가 희망이 없을 수가 있을까. 아니, 희망이 없는데 어떻게 낙관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여기부터가 질문 폭발이었다. 또 하나, 부제에 '무너진 세계'라는 단어가 보였다. 아, 이 세상을 이미 무너졌다고 생각하고 들어가고 있으니 더더욱, 낙관주의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너진 세계에 희망이 없는 게 맞지 싶었다. 그러니 더 호기심이 생겼다. 희망 없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굳이 밝히고 있는 낙관주의가 무엇인지 꼭 알고 싶어졌다.
그러나 나를 벙어리로 만드는 그 두려움은 내가 이미 오래전에 죽어 묻힌 뒤에도 내 딸들이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야 할 미래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물려줄, 살 수 없는 땅에 대한 두려움이다.(18쪽)
아! 처음 부분을 읽기 시작하면서 눈이 번쩍 뜨였다. 세계가 무너졌다고 하는 것이 바로, 지금의 우리의 기후 위기 생태계 변화 지구의 위태로움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인정! 나도 이미 두 딸이 있고, 지금의 아이들 세대에게 곧잘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있으니, 저자가 말하고 있는 저 두려움을 익히 나도 확인했고 또 인식하고 있기도 했다. 손 쓸 방도를 미처 찾기도 전에 무자비한 속도로 무너졌다고 있는 지금의 지구, 우리의 세계가 안타까우면서도 무서운 것이 사실이니까. 그리고, 이 모든 자연의 변화는 곧 우리가 아닌 우리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게 될 게 뻔하니까.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른들이 미안하다고. 아이들은 너희들의 잘못 없이도,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서, 이런 지구를 물려주게 돼서 미안하다고.
예전 환경 관련한 독서 토론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지금의 이런 세계에서는 자식을 낳을 수 없다고. 그래서 딩크족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 불확실한 미래와 점점 무너져가는 세상에 무책임하게 살아남으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놀랍기도 했고 그렇게까지 연결짓는 것이 맞나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이내 이유를 들으며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사과하는 마음과 비슷하지 싶기도 했던 것이다.
경제 생산성의 최적 기온은 평균 섭씨 13도다. 그해 여름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온도는 섭씨 48보였다. 가까운 미래에 섭씨 50도 이상도 올라갈 것으로 예측된다.
캠핑객, 기후 난민.
북쪽으로의 대이주가 시작되었다. 크롭스볼데에는 점점 더 몸집이 작아진 이탈리아인들이 텐트를 치게 될 것이다.(63-64쪽)
올 여름 무척 더웠다. 아니, 덥다. 아직도 여름, 현재 진행형이니까. 내년 여름은 더 더울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아마, 그 다음 해, 또 그 다음 해는 더 더 더, 덥겠지. 앞으로 기온이 떨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 지금 최대한의 노력을 하면 그저 현장유지 정도, 더 이상 심해지지만 않을 뿐이라고. 지구의 온도가 낮아지는 것은 이제 불가능이라고 하셨던 좋아하는 교수님 말씀이 생각난다. 이제 이런 지경에 온 것이다. 그러니, 기후 난민, 텐트를 점점 더 북쪽으로 쳐나갈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희망은 더 이상 쓰레기와의 모험을 이끄는 동력이 아니다. 그것은 지향점 없는 낙관주의의 근본 태도다. 세상을 최선으로 보는 철학적 낙관이 아니라 보고도 눈감는 낙관이다. 그래야 행동할 수 있다. 더 나아지거나 더 나빠질 거라는 어떤 기대로 없이. 강력하다.(...) 환경과 기후 위기 속에서 희망이 지속적 행동 원리를 제공하지 못할 때 희망 없는 낙관주의가 지속적 추진력을 가진다. 즉각적 보상 없이도 올바른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한다.(131-132쪽)
왜 희망 없는 낙관주의가 필요한지 명확히 알게 됐다. 그냥, 희망은 없지만 하라는 것이다. 항상 환경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한숨으로 끝나게 된다. 우리의 이런 개별적인 행동이 얼마나 지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좋아질 가능성이 없는데도 계속 했다가는 데에서 지친다는 말을 하게 된다. 그때, 이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렇다고 나빠진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그저 계속하면 된다는 것. 철학에서 말하는 희망적인 태도 없이, 즉각적으로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도, 계속 쭉 해나가자는 말.
어디에서도 응원받지 못하는 고독한 싸움이라 생각했는데, 다시 행동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은 듯한 느낌이다. 외롭고 지난한 싸움이 될지라도, 그저 묵묵히 '행동하기'! 그럴 수 있기 위한 힘을 낼 수 있게 도와주는 든든한 책을 만났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