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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끝
김성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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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끝. 김성일 장편소설. 한겨레출판. 2026.
무서웠다. 이런 세상이 온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도 함께 하면서 소설을 읽어나갔다. 소설 속의 이야기야, 하고 소설로 읽어야 하는데, 자꾸만 실제와 혼동이 됐다. 때때로 현실로 돌아와 안심하려는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만큼 현실처럼 여겨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아주 허무맹랑하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괜히 밤에 읽다가 주변을 둘러보게 됐고, 밤하늘의 달을 찾게 됐다. 파괴된 달, 달의 파편을 보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온전하게, 안전하게 떠 있는 달을 보며 한참을 안심했다. 유독 이 소설이 나를 소설 속으로 더 깊게 데려가고 있었다.
형사, 교주, 수학자. 이들의 순환구조를 마지막에 눈치채고, 너무 놀랐다. 1차 시간과 2차 시간 안에서 이들이 만들어내는 시간이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게 되는지를 살피며, 소름이 돋았다. 심박수가 빨라지고 이들의 운명을 가늠하기 위해 빠르게 머리를 써야한다는 긴박감이 생겼다. 내가 대신 해결해줄 수 있는 지점이 있지도 않은데, 이 수학적 계산식 안에서 이들이 어떤 삶의 운명으로 톱니바퀴가 돌아가고 있는지, 그 운명이 참 모질다는 생각도 했다.
과거와 현재도 미래도 요그 소토스 안에서 하나다.
요그 소토스. 궁금해서 찾아봤다. 크툴루 신화의 우주적 존재(외부신)로, 시공간 바깥에 있으면서 동시에 모든 시공간을 포함하는 것. 모든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며, '그 문을 아는 자', '관문 그 자체', '열쇠이자 문지기'로 불리며, 과거 현재 미래가 그 안에서 하나로 이어진다고 묘사된다고 한다. <<네크로노미콘>>, 크툴루 신화에 등장하는 가상의 책이자 마법의 책, 그 책에 적혀 있는 주술. 그래서 이 주술을 통해 시간은 끝없이 돌고 도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영과 지호는 이 운영의 소용돌이 안에서 1차, 2차 시간 속을 헤매게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은 시간의 끝까지 함께하기로 맹세합니까?"
결월산 교수는 몰골과 달리 침착하고 낭랑한 처음으로 말한다. 수영과 지호는 동시에 대답한다.
"네."
"네."
"이제 두 사람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수영과 지호는 서로 꼭 안고 입을 맞춘다. 그때 가슴께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느껴진다. 이정래를 찔렀을 때와 똑같은 기분이다.(227쪽)
어쩌면 이 꿈이 두 사람의 운명의 끈을 이어주는 열쇠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뒤늦게 했다. 이들은 결국 끝까지 함께할 수밖에 없는 운명 안에서 각 시간은 넘나들며 그들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끝의 순간이 오기 전에는 이 모든 것을 알아채지 못할 것이겠지만, 그 끝의 순간에서 다시 시작되는 운명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이끌어나가야한다는 것만은 이들이 모두 충분히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을 이어주는 끈은 결코 끊어지거나 사라지지 않을테니까.
이 소설에서 궁금했던 지점은, 그래서 달은 왜 파괴된 것일까였다. 누가 파괴했으며, 파괴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달이 파괴되어 파편으로 하늘에 떠있다는 것은 기존의 달이 하고 있던 역할도 조각된 상태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그렇다면 달을 통해 만들어졌던 하루의 시간 간격이나 한 달의 개념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하루의 시간 안에서 결국 시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그 모호해지는 사이에 1차 시간과 2차 시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그 사이에서의 어지러운 시간 간의 혼선이 자연스레 시간의 끝이면서 동시에 시작을 만들어내는 통로, 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그 모든 시간의 어그러짐의 시작이 달의 파괴였을 거라는 게 나의 추측이다. 그러니, 내내 달에 집착하고 그 달의 형태에 따라 많은 사건이 펼쳐지고 그 안에서 시간과 시간을 넘나들어 다시 시간의 끝으로 수렴되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굉장히 잘 짜여진 소설 한 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수많은 소설을 읽었지만 최근 읽은 소설 중 단연, 플롯과 사건 간의 유기적 구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 독자가 긴장을 늦출 수 없도록 만들어주고 있는 소설이었다. 다 읽은 후 와, 하는 감탄이 자연스레 나올 정도였다. 읽는 내내 만들어냈던 공포의 분위기와 두려움의 감정, 후반부로 가면서 끌려다니게 되는 높은 강도의 긴장, 다 읽은 후 감탄까지. 한 순간도 쉽게 독자를 내버려두지 않는구나, 싶었다. 덥하고 습한 여름에 정신이 번쩍 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