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동물들 - 동물과 함께 살기 위해 시작해야 할 이야기들
최태규 지음, 이지양 사진 / 사계절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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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동물들 #최태규 #이지양 #사계절출판사 #사뿐사뿐

도시의 동물들. 최태규 지음/이지양 사진. 사계절출판사. 2025.
_동물과 함께 살기 위해 시작해야 할 이야기들

부제에 눈길이 간다. 동물과 인간의 공존.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 책을 덮은 순간, 깊은 한숨이 나왔다. 인간은 언제나 동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지만, 동물과 함께 살고 있다는 인식을 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무지했던 것도 사실이고 또 여전히 알려고 하지 않으려 회피하는 것으로 무지를 이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식으로 포장을 해도 결국은, 인간중심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한없이 부끄럽고 속상한 지점이다.
가끔 그림책으로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가 있다. 종종 보여주는 그림책에 고양이국을 먹는 가족 그림이 있다.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대번에, 인상을 쓰고 혐오스러움을 감추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욕을 하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런 반응이 당연하고 옳으며, 또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통해 바람직한 사고와 가치를 갖고 있음을 티내기 위한 방식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그림에 담긴 의도를 아이들에게 질문하면 아이들은 궁색한 답을 찾느라 생각이 복잡해진다. '소고기국은 먹으면서 고양이국을 먹으면 왜 안 되나요?'
'반려'는 '짝이 되는 동무'인데, '반려동물'은, 사람이 정서적으로 의지하고자 가까이 두고 기르는 동물. 개, 고양이, 새 따위가 있다.'를 뜻한다. 짝은 아닌 것 같다. 이미 뜻에서도 '기르는 동물'로 되어 있으니, 기르는 대상이 맞는 듯하다. 물론 자식도 낳아서 기른다고 표현하니까. ('기르다'에 '동식물을 보살펴 자라게 하다'의 뜻과 '아이를 보살펴 키우다'의 뜻이 모두 있다.) 사전에서 이미 '개, 고양이, 새'라는 범위도 제공해주고 있다. 사전이 모두 정답만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니 어느 정도 이해하고, 또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란 언중의 사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니, 사전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곧 지금 우리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고양이국에 아이들이 반응할 수밖에 없던 것도 이해가 가긴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동물을 차별해야할까. 이 책을 읽으며 차별이란 단어를 안 떠올릴 수가 없었다. 동물을 유해와 무해로 나누는 것도 불편했고, 식용과 반려의 구분도 동의할 수 없었다. 채식을 하는 입장에서 자주 듣는 질문에 '생선도 안 먹어요?'가 있다. 육식을 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동물의 범위 안에 물고기는 또 포함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차별적인 것이다.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왜 채식을 하는지. 동물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 선택에 사람들의 반응도 제각각이다. 그 제각각의 반응이 곧 동물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단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 책을 읽고 확실히 알았다. 결국, 알기 위해 공부해야한다.

한국에서 소위 '동물보호'를 위해 펼치는 전략은 '먹지 말자'이다. 다른 말로 하면, 개도 돼지도 닭도 먹지 않으면 동물이 죽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나는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전략이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첫째로는 먹지 않는다고 해서 이미 태어나 살아 숨 쉬고 있는 그들의 존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둘째고, 이런 전략은 낡고 허술하면서도 꽉 짜인 축산 체계 안에서, 그리고 고기를 많이 먹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권력자들의 담합 아래서 얌전하게 소비자로서 선택만 할 뿐이라는 점이다.(...) 내가 동물을 죽였느냐 안 죽였느냐, 혹은 소비했느냐 안 했느냐가 어느 농장에 살고 있는 동물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소비자 정체성에 기대는 불매 운동의 인식론적 한계다.(308-310쪽)

그렇다고 소비하지 않는 노력을 안 할 수는 없다. 아무리 소극적이고 게으른 방식이라고 해도, 지금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것밖에 모르겠으니, 우선은 알고 있는 것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뒷맛이 씁쓸하다.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동물을 대하는 인간 사회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의 생각의 전환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래서, 공부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구나 싶다. 무지한 인간이어서 미안하다고, 동물들에게 사과해야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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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균열내기 - 뒤라스, 카뮈, 에르노를 지나 다만 내가 되기 위해
신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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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균열내기 #신유진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나를 균열내기. 신유진 지음. 한겨레출판. 2026.
_뒤라스, 카뮈, 에르노를 지나 다만 내가 되기 위해

우선, 이 책을 가만히 읽으면서, 이 책을 지금보다 더 천천히 한 글자 한 문장을 음미하며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후루룩 읽어내기에 무척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의 가볍지 않은 생각의 깊이가 느껴져 더욱 그랬을 수 있다. 각 문학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작가 본인에 대한 깊은 성찰이 밑바탕이 깔려 있다보니,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동시에 문학작품을 읽은 저자를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래서 에세이를 읽지, 하는 마음이 절로 들 정도였다.

이 소설에서는 대단한 영웅은 존재하지 않지만, 끝까지 자신이 맡을 일을 해내는 인물들이 있다. 거대한 혁명적 제스처가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고, 세계가 인간의 고통에 응답하지 않아도 그 침묵에 굴복하지 않으며, 부조리를 없앨 수 없지만, 그 조건 속에서 끝까지 인간답게 살기를 택하는 것. 아마도 이것이 카뮈가 세계를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30쪽)

어찌보면 각 작품들이 담아내고 있던,그리고 그 작품의 작가들이 말하고자 했던 근본적인 사상과 철학, 사고와 질문을 소개하고 있는 듯도 싶지만, 사실 그런 소개를 통한 자기 자신을 찾아나가는 문장들의 나열이 우리가 잊고 살아가기 쉬운 소중한 감정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이 갖는 의미와 가치, 그 속에서 나와 문학 간의 거리감을 줄이기 위한 과정이 이 책 곳곳에서 보이는 듯했다. 아니, 오히려 문학과 나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직접 작품과 그 작품 작가의 삶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려는 마음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러다보니, 저자의 마음을 따라가기만해도 각 문학작품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몰리나르가 그랬듯이 악몽에서 나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그 꿈속에서 무언가를 길어올릴 수 있다면, 이미 나는 그 악몽에서 벗어난 것이리라.그서기 위해서는 공포와 매혹을 온전히 수락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어쩌면 그 이야기는 나를 통과하여, 또 나와 한 몸이 되어 어떤 '있음'을 증명하려 하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되돌아가려는 본성과 싸워 이기는 일이 쓰는자의 몫이니까. 어째서 이러한 수고가 필요한지를 묻는다면, 몰리나르의 말로 다를 대신하겠다. 다만, 내가 되기 위해.

'나'를 향한 과정과 방향이 온전히 각 작품들을 통과하며 나오는 결론이어서 좋았다. 마치 나도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 파리의 어느 한 골목에서 이 작품들을 하나씩 만나게 되는 느낌이었다. 마치 그 나라를 걸으며 경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분명 각 문학작품에 대한 이야기이고 또 그 안에 담긴 저자의 생각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나라를 경험하게 하는 색다른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욱, 천천히, 이 책을 음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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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파티 : 파티원 구함
노에미 볼라 지음, 송섬별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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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파티_파티원구함 #노에미볼라_글그림 #송섬별_옮김 #문학동네 #뭉끄6기

인생파티: 파티원 구함. 노에미 볼라 글그림/송섬별 옮김. 문학동네. 2026.

그런 날이 있다. 혼자 있기 싫은 날, 누군가와 북적이며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날, 재밌고 싶고 또 마주 즐겁고 싶은 날. 그래서 뭐라도 무료함을 달래줄 수 있는 일을 벌이고 왁자지껄 시끄러워도 좋을 것 같은 날이 있다. 그럴 때면 당연하다는 듯, 누군가를 찾기 마련이다. 누구랑 놀까, 누가 나랑 놀아줄까. 누군가에게라도 '나랑 놀자~!' 하고 툭 문자 보내놓고 그 답을 기다리게 되는 그런 날이 있다.

그날은 정말이지 심심했거든.

그래서 이 마음이 어떤 마음일지 짐작이 간다. 누구라도 좋으니 함께 이 심심함을 달래고 싶은 마음. 혼자서는 달래지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어서 함께 할 누군가를 찾게 되는 마음이다. 그럴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당연히, 친구들!
친구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주는 마음의 안정이 있다.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 주는 온기가 있어 함께 무엇을 하면 제일 신날 것 같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툭, 지금의 마음과 심정을 툭, 전달하고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게 된다.

다들 좀... 바쁜가보더라고.

하지만, 친구들이라고 늘 기다렸다는 듯 나의 제안에 응해줄 수는 없다. 각자의 일이 있고 또 사정이 있고 또... 이럴 때 난감하다. 한편으로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실망하게도 되고 기운이 쭉 빠지고 속상하다. 잔뜩 기대하고 또 마음을 먹고 친구들과 신날 수 있는 일을 상상하고 그런 시간을 기대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을 때의 심술이 생기기도 한다. 이대로 더 깊은 심심함의 감정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럴 때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포기하게 된다. 나와 놀아줄 사람이 없구나, 혼자서는 심심함을 이길 수가 없어, 하고 말이다. 그냥 심심해지는 쪽을 선택하는 수밖에.

난 이제 혼자가 아니야.
소개할게. 내 파티에 온 여섯 명의
개성 만점 친구들을.
벌리 볼리 빌리 버비 벌린 그리고 나, 애벌레. 나는 알지?

웃음이 빵 터졌다. 애벌레가 보여주고 있는 이 대응이 어찌나 귀엽고 재치있고 기발한지. 아,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칠 정도였다. 혼자라서 심심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함께해야만 심심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되고 또 허전하다는 마음을 다른 외부에서 채우려는 것 대신 나 자신에게서 채우려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애벌레를 통해 알게 됐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됐어.

물론, 혼자 있어도 상관 없는 것은 아니다. 매번 혼자이기만 해서 좋은 것도 아니다. 혼자일 때가 필요하고 또 혼자일 수밖에 없을 때가 있는 것이고, 그럴 때 어떻게 그 혼자의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애벌레는 혼자의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낼 수 있는지를 스스로 잘 깨우친 것이다.

이제 곧 친구들을 다시 불러야겠어.
아침 먹으러 오라고 말이야!

이때의 친구들은 어떤 친구들일까. 물론 나의 마음 속 답은 있다. 애벌레가 이제 친구들과 즐거운 아침 식사를 하게 되겠구나 싶고, 혼자의 시간과 함께의 시간을 모두 잘 보낼 줄 아는 애벌레가 되었다는 것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나도 오늘, 친구를 불러볼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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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파란 - 제19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청소년문학 147
유지현 지음 / 창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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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파란. 유지현 장편소설. 창비. 2026.

파란(波瀾)
「1」잔물결과 큰 물결. =파랑.
「2」순탄하지 아니하고 어수선하게 계속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나 시련.

궁금하면 사전을 먼저 찾는 버릇이 있다. 이 책의 제목인 <파란 파란>이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사전을 찾았다. 아마도, 이 책의 제목에 쓰인 '파란'은 저 2개의 의미가 모두 쓰인 제목이겠구나 싶었다. 잔물결과 큰 물결이 넘실거리는 와중에, 순탄하지 않고 어수선한 시련이 나타나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이 아이들이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하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소설. 표지 그림에서처럼 소용돌이치는 물살과 그 가운데를 향해 나아가는 한 아이의 모습이 그대로 소설의 제목과 내용을 암시해주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과연 이 아이는 자신의 앞에 주어진 넘실거리는 물결의 시련을 어떤 방식으로 맞부딪혀나갈 것인지. 예의 주시하며 책을 읽게 됐다.

사는 곳이나 생활 방식은 완전히 다르지만 우리가 하는 고민은 어딘가 닮아 있었다. 수림과 나는 자신의 인생인데도 한 치 앞조차 내다보지 못했다.(33쪽)

모파와 수림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심해종과 고산종? 어떤 종이든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든, 이 시기를 지나야하는 청소년의 시기라면, 이 시기의 특징을 비슷하게 보인다는 건 너무도 당연한 게 아닐까. 결국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인지, 그래서 어떤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청소년들이 꼭 거치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숙제가 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지 짐작 가능하다.

이모의 충격 발언으로 인해서 이모 같은 어른도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고 무슨 일을 할지 고민한다는 걸 알게 됐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기가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방황하는구나.(79쪽)

하지만 청소년들만 하는 고민이 아니다. 어른도 자신에 대한 고민의 끝은 나이를 먹어도 끝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며 이 부분이 너무 와닿았다. 어른이라고 자신의 진로를 확신하고 살아간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내가 가야할 길이 이 길이 맞는지, 과연 그 다음은 어디고 방향을 돌려야 할지, 때론 지금으로부터 다시 반대 방향으로 달려나가야 한다는 절망과 갈등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기도 한다는 걸, 어쩌면 지금의 아이들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단순히 우리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정과 그 결정을 향해 나아가는 도전과 용기는 누구하는 대상이 정해져있는 게 아니라는 것. 아이들 어른이든, 언제라도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항로를 개척해나가야 한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멈추지 말아야 할 가장 애써야할 지점이 아닐까.

"누가 그러는데,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은 많고 그중에서 내가 처음부터 잘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봐야 한다더라."(...)
"그래서 나도 뭐든지 해 보려고. 당연히 못할 거라는 생각으로."(243쪽)

이 결론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 그 과정을 알지 못한 채 이 말만 듣는다면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못할 거를 당연하게 생각하라는 말을 오해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모파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이 말이 얼마나 소중하고 무게감을 지니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파란한 일이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인정하고, 그 어떤 파란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갖고, 그 파란을 겁내지 않을 수 있게 된 이들을 응원하게 된다. 모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운하도 유일, 유이, 수림이도, 그리고 이모도 모두 다, 자신에게 다가올 파란을 오히려 긍정적인 자세로 맞부딪힐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이, 괜히 뭉클했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은 나도! 나에게도 파란 가득한 삶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마음이 필요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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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빈자리에 - 괴물, 여성, 망자,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
권혁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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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빈자리에 #권혁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_괴물, 여성, 망자,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

처음 제목과 부제를 보고,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내용은 공포인가? 괴물에 망자라니. 하지만 그 사이에 여자가 있었다. 이 세 단어 사이의 관련성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그리고 그 다음 중에 쓰인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이란 말에서 좀 슬퍼졌다. 결국, 괴물로 불리거나, 망자가 되어서도 제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다는 것이니까. 그 와중에 여자도. 여자라는 이유로 호명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삶이라고 한다면, 이런 삶을 무엇이라 정의내릴 수 있을까. 여자로서 끔찍한 지점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하도록 만든 책이 <이름의 빈자리에>이다. 그러면서 제목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됐다. 이름의 자리가 비어있다는 것이니, 어디에서라도 이름을 가져다가 채워넣어야할텐데, 어느 이름을 가져다가 넣으면 좋을까. 그 빈자리 채워넣고 싶은 이름들이 많아지겠구나, 싶었다.

생전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스스로 지은 순간이다. 그 이름으로 불린 첫 순간이다. 큰딸은 지치지 않는다. 저 소리는 나를 부르는 것이다. 나를 부르면 얼른 돌아서서 마주보면 된다.(...) 이름을 부르고 대답하는 걸 하염없이 반복하는 두 사람, 이름 없'던' 자매의 얼굴을 나는 거의 울면서 보았다.(29쪽)

자신의 존재적 의미를 비로소 인지하게 된 순간의 감격이 얼마나 소중하고. 누구나에게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 무척 고통스런 결과를 낳게 되더라도 그럼에도 기꺼이 감수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것, 그래서 생명과 맞바꿀 정도로 간절하다는 것. 이름이 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로의 인정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존엄하고 숭고한. 어떤 것보다도 상위에 존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름인 것이다.

작은 존재는 바로 티티우가 된다. 티티우는 몇 번이고 새로 지어 받은 이름 '티티우는'를 소리 내어 불러본다. 티티우, 티티우. 둘이서 함께, 티티우, 티티우. 밤 숲이 다 울릴 만큼, 펄쩍풀쩍 점프하면서 외친다. 굉장한 이름이야, 티티우. 덤블링 하면서도,티티우. 저다지도 기쁠까.(80-81쪽)

기쁠 것 같다.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경험을 이름을 얻은 후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다른 사람이 더 많이 부르게 되는,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부르며 기뻐하는 저 장면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저 장면의 앞뒤로 더 이상 티티우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만큼 이미 이름을 얻은 후이니, 그 이후에는 이름을 위한 여행이 아닌 이제 진짜 자기 자신을 위한 여행을 시작했을 것 같다.

별 거 아닌 것같은 이름이 갖는 무게와 그 깊이, 필요성과 소중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롭고 중요하구나. 이름이 그 존재의 가치를 어떻게 빛내줄 수 있는지, 그런 빛남을 우린 얼마나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그저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다는 시 구절이 생각난다.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주어야만 비로소 다가가 꽃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이름이 그 존재를 존재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그런 이름을 어찌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의 이름을 다시 불러보고, 다른 이들의 이름을 소중히 불러보게 되고, 여러 작품속에서 이름을 어떻게 부르고 있는지를 살피게 될 것 같다. 이제 한동안 이름을 신경쓰며 지내게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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