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J 달달 옛글 조림 1
유준재 지음 / 웅진주니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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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J #유준재 #웅진주니어 #그림책 #서평

루돌프J. 유준재. 웅진주니어. 2025.

연달아 두 번을 읽었다. 읽고 또 읽으면서도 내내 마음이 먹먹해졌다. 괜히 울컥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쓸쓸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작게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그런 뒤, 이 그림책을 다 읽은 후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바로 '쓸모'였다.
쓸모를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막말로 하자면, 쓰임이나 필요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의미나 가치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쓸모는 사전적으로 '쓸 만한 가치'의 뜻을 갖고 있으니까. 어쨌든, 루돌프J의 쓸모가 어디까지인가를 거듭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과연, 쓸모라는 것은, 그 존재의 가치라는 것은 무엇으로 매겨질 수 있는 것일까.
루돌프의 역할이 산타의 썰매는 끄는 일이라고 한다면, 썰매를 끌 수 없게 되는 것은 존재의 가치가 사라지는, 즉 쓸모가 없어지는 일이 될 것이다. 매우 중요하고 커다란 쓸모가 사라진다면 더 이상 존재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는 듯이, 누군가 찾지도 혹은 함께하지도 않는 외로운 존재가 되는 쓸쓸함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이들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며 자신이 남들과 같아질 수 없음에 모든 힘을 잃게 될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존중감을 상실하고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된 상태로 자신을 놔두려고 할 것이다. 더더욱 빛을 잃게 되는 것이다.

제발 한 번만... 희미한 빛이라도...

자신의 빛은 어떻게 해야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일까. 두 번째 질문을 하게 됐다. 또한 자신의 빛을 잃는다는 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는 것과 어떻게 같고 다를 것인지,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누군가는 분명 앞서 말했던 것처럼 쓸모가 있음에 따른 인정이 곧 빛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의 방향성을 살펴보면, 그 생각의 시작이 나 자신이 아닌 타인으로부터 비롯된 생각이라 할 수 있다. 그럴 때 이 생각이 과연 옳은가, 하는 것이다.
루돌프J는 타인으로부터 정의되는 쓸모는 잃었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내는 마지막 빛은 스스로 만들어냈다. 기적같이 쓸모가 다시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제힘으로 잃었던 빛을 다시 단 한 번 제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에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마음이 늘 지금까지의 쓸모가 하던, 다른 이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에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렇다면, 겉으로 확인할 수 있는 빛은 진짜 중요할까. 그 빛을 잃고 상심하고 또 외롭고 쓸쓸했던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것이다.

네 빛은 사라지지 않아.
네 안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지.

누구나 자신의 쓸모가 다 하는 날이 올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쓸모를 잃고 빛이 꺼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런 순간에 우린 어떤 마음이여야 할 것인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런 순간에 쓸모의 빛은 사라질지 모르나 존재의 빛은 사라지지 않고 늘 우리의 존재 안에서 빛나고 있을 것이다. 이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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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가해자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손현주 지음 / 우리학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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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가해자 #손현주 #우리학교 #가제본서평단 #서평

친밀한 가해자. 손현주 장편소설. 우리학교. 2026.

불편했다. 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과정도 불편했는데, 일이 벌어진 이후의 일들도 무척 불편했다. 그리고, 이 일련의 일들 속에서 소설 속 인물들의 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더 깊이는, 인간의 본성의 가장 밑바닥엔 무엇이 있으며, 그 밑바닥을 드러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지면 얼마나 끔찍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심지어는 무섭기까지 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두를 속일 수는 없다는 것.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것. 너무 뻔하고 당연한 결론일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는 그런 진실의 결말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이 이야기가 어떤 결말을 향하게 될 것인가, 소설을 읽는 중간중간 무척 걱정이 됐다. 과연 내가 짐작하고 있는 결말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준형은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발걸음은 무겁고 걸음걸이는 비틀거렸다. 목이 탔다. 사막에는 아무도 없이 오직 준형 홀로 서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불현듯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넌 지금 어디로 가고 있니?"(174쪽)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자신이 어디를 향해 어떻게 가고자 하는 것인가를 자기 스스로 명확히 알고 살아가는 것이다. 누군가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그 흐름에 휩쓸려 가는 삶이란, 자신의 주관이나 관점 없이 그저 그래야한다는 듯 판단력을 잃어버리는 삶이 될 것이다. 좋은 삶이라 할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이유는 어쩌면, 자신이 살고 싶은 모습대로 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말과 행동, 하루 하루의 삶에 대해서, 자기 나름의 이유가 분명히 있어야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묻는 저 목소리는 다르게 표현하면,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주 근본적인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는 순전히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의지와 관점에 달려있다.

제목이 <친밀한 가해자>다. '친밀하다'는 '지내는 사이가 매우 친하고 가깝다'란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다. 처음에는 할머니와 준형 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엄마 아빠, 혹은 준형과 동생 채원의 관계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현서와 준형의 관계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다면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더욱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런 불편함을 드러내 이야기할 수 있는 소설이라는 것이 매우 의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은 불편해서 피하거나 숨기는 것이 예사이기 때문이다. 불편하다고 외면하는 것이 답은 아니다. 그러니 이런 이야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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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게 거기 있었어
샤를로트 파랑 지음, 최혜진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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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게거기있었어 #샤를로트파랑 #문학동네 #뭉끄6기 #서평

그때 그게 거기 있었어. 샤롤로트 파랑 글그림/최혜진 옮김. 문학동네. 2026.

가끔 어느 한 가지 분야에 오래 머물러 일을 하다보면, 그 분야의 모든 일을 내가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오히려 혼자서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티를 내거나 혹은 강하게 이야기하게 되고, 그럴 때 여지없이 나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되는 때가 오게 된다. 마치 다 아는 것처럼 큰소리 쳤지만, 그렇게 큰소리 친 것에 대해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물론,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런 순간에 맞닥뜨려졌다고 해서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혼자일 때 그 부끄러움은 더욱 커지기도 한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 그리고 혼자이지만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계속 되새김질하며 쉴새없이 질책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한 나 자신을 쉽게 받아들이고 넘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집착이거나 혹은 자책이거나. 이런 감정에 한번 휩싸이게 되면 그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참 어렵다.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참 두려워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순간에 '아, 그게 이거였구나' 하고 알게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러지 못하고 그저 모른다는 사실만을 받아들이고 그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한 채 미지의 그걸 한아름 끌어안고만 있어야 하는 것이다.

"뮈리엘은 집으로 돌아옵니다.
침대에 누워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해요.

잠이 오지 않아요."

뮈리엘이 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지 너무도 잘 알 것 같다. 그게 뭔지 알고 싶지만 알 수 없어 답답하고 힘든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그게 뭐라고 누가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확연하게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로 형상화되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니까. 그저 막연하게 그런 존재가 있음을 느끼고 있을 뿐, 그 이상의 무엇이라는 확실한 모습을 나 스스로도 만들어내기 힘든 것이다. 그러니 답답하고 불편한 감정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익숙하지 않은 상황, 답을 찾을 수 없는 상황, 그게 무엇인지 답하지 못하는 상황을 인정해야하는데, 인정하기까지가 쉽지 않아서 힘든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받아들이는 것. 받아들인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 나 자신이 무너지거나 혹은 크게 다치거나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지 않는다는 것을, 나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 그냥 미지의 그 상태로 나 자신을 놔두는 것이야말로, 다 아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중대한 부분일 것이다.

다행히도 뮈리엘은 그 답을 찾은 듯 보인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그 답을 찾았을까. 이 책을 읽고 나 자신을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지금껏 내가 갖고 있는 삶을 대하는 태도는 과연 적절했는지. 어느 순간 내가 나 자신을 속이고 또 착각하며 나의 지금의 상태와 방향에 대해 나 스스로의 눈을 가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나 자신을 한없이 안절부절못하는 상황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고 된다. 책을 읽는 시간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한없이 점점 더 길어진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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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서울 - 공간·사람·정치로 빚어낸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김진애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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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서울 #서울다움 #서울러 #김진애 #서울

이토록 서울. 김진애. 창비. 2025.
_공간 사람 정치로 빚어낸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서울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서울 나들이조차 즐기지 않는 편이다. 어쩔 수 없는 일정에 서울을 가게 된다면 언제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볼일이 끝나면 최대한 빨리 집으로 돌아온다. 서울은 내가 갈만한 곳이 못 된다고 생각하며 다음을 기약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가장 편안하다는 생각을 하며 안심한다. 어쩌면 이런 생각은 나라는 사람이 도시에 최적화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를 사랑하고 그 도시의 화려함과 다양함, 활기와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나라의 도시 중 당연히 첫번째 도시로 서울을 꼽을 것이다. 그 외 상징적인 의미도 있으니 더욱, 서울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득 담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맞지 않는 생활 스타일이라고 해서 이 책에 재미없었냐 하면 또 그건 아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저자가 진짜 찐 서울 팬이구나, 서울을 진짜 사랑하는구나,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저자가 기억하는 서울, 좋아하는 서울, 간직하고 유지하고 싶은 서울, 바뀌었으면 좋겠는 서울 등. 서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를 모두 총망라해서 서울에 대한 사랑고백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헌데 가만히 계속 읽어나가다보니, 저자의 서울 사랑은 당연한 것이지만, 한편으로 이 책은 또한 도시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저 서울이라는 지역성만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어떤 공간이 자리잡고 또 살아오면서 그 공간에 담겨졌던 역사와 사람과 또 시대의 변화와 그 안에서의 의미까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진짜 의도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한 도시를 소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도시를 설명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것들, 해결해야 할 문제들, 추구해나가야 할 미래들까지를 총체적으로 들여다봐야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정치까지도.

W자에서부터 시작해 서울의 공간을 그림으로 그려나가는 저자의 모습을 보며, 그런 공간에 대한 감각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조망할 수 있을 때 진짜 공간과 사람이 연결되어 진짜 삶이 펼쳐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은 서울을 소재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저 타지의 사람이 바라보는 서울이라기보다는 진짜 그 공간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은 단순히 서울을 겨냥한 책으로만 읽히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자와 같은 마음으로 공간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면 아마도 '이토록 OO'과 같은 다른 도시나 지역을 소재로 한 책들이 이후에도 계속 나와야 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한 생각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만을 이야기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어쨌든 대한민국에서 서울이 갖고 있는 의미가 분명 있고, 그런 서울이 단순히 수많은 도시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서울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성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이 책은 우리나라의 사회적 특징을 확인해볼 수 있는 책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서울 사람 아니니까, 하고 한발 물러나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 또한 서울의 이모저모에서 풍겨나는 특성들을 종합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맥락 중 하나가 어떤 방향으로 도시를 개발하고 구축해나갈 것인가를 결정하고 추진해나가는가였다. 이때 알았다. 이 책이 왜 정치까지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지. 결국 정치가 갖고 있는 힘이 어디까지 미치게 되느냐에 따라 도시와 공간에 대한 의미가 달리 활용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얼마나 바람직한 방향의 지향점을 갖고 있는가의 의식의 차이가 결과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광화문광장에 자꾸 여러 조형물을 놓는 게 그리 마땅치 않다. 광장은 광장으로서 가만히 배경으로 있어 주는 게 최고다. 광장은 무대이고 사람이 주인공이다. 뭘 자꾸 채우려 드는 건 불안해서거나 다른 불순한 목적이 있어서이기 십상이다.(230쪽)

광장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직접 목격한 바도 있거니와, 저자의 말대로 공간은, 사람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 맞다. 자꾸 무얼 만들어 채우고 싶은 이들, 아무래도 진짜 불안하거나 불순한 게 맞는 것 같다. 광화문광장. 참 멋진 공간이다.

진화하는 서울다움이 유독 뿌듯한 것은, 나는 우리 도시의 특성인 잡종성, 혼종성, 변종성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서울 고유의 도시성으로 보자고 주장했는데 그게 드디어 실현되고 있는 현상이 무척 반갑기 때문이다.(316쪽)

내가 생각하는 서울다움은, 정신없음이다.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다. 이때 정신없음은, 부정적인 의미만을 갖고 있지 않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세련되고 위트있는 모든 것이 한곳에 뒤섞여 있어 잠시만으로도 모든 특성을 쉽게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저자가 말하는 잡종, 혼종, 변종의 특징과도 유사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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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왕국 - 식물은 어떻게 문명과 권력을 설계했는가
데이비드 스펜서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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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왕국 #데이비드스펜서 #흐름출판 #서평 #책추천

뿌리 왕국. 데이비드 스펜서 지음/배명자 옮김. 흐름출판. 2025.
_식물은 어떻게 문명과 권력을 설계했는가

살아 움직이는 식물의 모습을 상상하며 읽었다. 뿌리가 뻗어나가고 있을 그 흙과 땅속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며 읽었다. 마치 지금도 저 땅속에서는 무수히 많은 생명과 균, 그리고 다양한 화학 작용과 소통 등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마치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땅의 아래가 꿈틀거리는 듯한 느낌, 미약한 인간은 감히 알 수도 없을 정도의 거대하고도 은밀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겠다는, 한편으로는 가슴 떨리는 느낌을 받으며 읽었다. 한 권의 책을 읽은 것이지만, 마치 한 편의 다큐 영화를 본 듯한 감흥이 남았다. 식물과 자연이 만들어내고 있는 신비가, 물론 신비가 아니라 너무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은 그저 한없이 작고도 어리석은 동물이구나, 반성도 하면서.

환경과 자연에 진심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싶은 마음으로, 죄 짓는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식물, 동물(인간 빼고)과 관련한 이야기라면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 뭐든 알고 싶고 또 각성하고 싶은 마음으로 쫓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이 책 역시 그런 마음으로 읽었다. 식물은 동물에 비해서도 훨씬 잘 알지 못하는 생명이란 생각을 한다. 동물과 같은 즉각적은 행동 반응이 보이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 식물의 생명, 생존, 번성 등이 늘 궁금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궁금증이 조금 해소가 됐다. 아니, 해소가 된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느낌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런 책을 읽고 나면 꼭 드는 생각 중 하나가, 나도 과학을 잘 아는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결국 과학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 과학이 만들어내는 그 수많은 현상에 대한 진실에 눈을 떠야 한다는 것, 그래서 앞으로 우리의 세계가 과학과 더불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저자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과학에 우리가 지금껏 배제하거나 등한시했던 것들이 모두 담겨 있으니까 말이다. 이 식물들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인간은 지금이라도 잘 알아야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인간이 너무 모르니까.

인상적인 구절이 너무 많았다. 분명 과학자의 책이면 내용이 어려워서 금방 지치거나 힘들어해야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책은 달랐다. 자꾸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게 되고 심지어는 책을 읽으며 웃기까지 했다. 과학자의 유머가 나한테도 먹히다니.

"용량이 독을 만든다!" / 나는 이 명언을 지치지 않고 인용한다.(29쪽)
최소한 이쯤에서 우리는 식물도 공동체가 필요하고 다른 식물과 조화를 이루며 서로 의존한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활발한 가족 단체대화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크고 작은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원활한 의사소통이다.(92쪽)
인권비가 하루 2유로면 충분하다고 해서 먼 나라에서 재배되고, 이미 살충제와 엄청난 양의 식수가 없으면 재배할 수 없는 과도하게 개량된 꽃이 우리에게 필요할까? 우리의 토종 꽃들이 정말 그렇게 볼품없을까? 어쩌면 꽃의 언어에서도 리셋이 필요한 것 같다.(115쪽)
간략히 요약하면, 의미에서 세쿼이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식물의 90퍼센트 이상이 이런 공생 관계를 맺고 산다.(123쪽)
어쨌든 논란의 여지없이 확실한 건, 기후 위기라는 변화무쌍한 시대에도 안정적이고 환경 친화적인 방식으로 먹거리를 계속 생산하려면 토양생물을 지원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134쪽)
결론적으로 말해, 식물과 인간은 함께일 때 강하다. 그러니 내면의 향을 모두 모아, 조금이나마 평화와 사랑을 퍼뜨려보자. 무장, 호전적 언어, 해충과의 생물학적 전투에도 불구하고, 결국 식물은 역시 사회성 생물이다.(187쪽)
식물과 인간은 종종 서로 경쟁하는 거대 집단이다. 하지만 둘이 협력한다면, 무적이 된다.(260쪽)

어쩌면 내 관심으로만 책의 내용을 쏙쏙 골라 읽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했다 하더라도 너무 감동이었다. 인간이 형성해놓은 사회라는 구조와 욕망이 식물의 세계 안에서는 너무도 하찮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식물은 묵묵히 자신이 맡은 몫의 부분을 수행해내고 있었다. 그에 비해 인간이 그 보조조차 맞추지 못하고 있었고 말이다. 왜 단순히 식물의 뿌리, 뿌리의 생태 혹은 삶 정도로 설명하지 않고 <뿌리 왕국>이라고 지칭했는지 알 것 같았다. 물론 이 모든 표현이 인간 중심의, 인간적인 표현인 것은 사실이나 이런 비유가 인간의 삶과 대등한 세상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적절한 표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괜히 더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왜 우리에게 과학이 필요한지 제대로 알았다. 과학자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하는 이유를 다시 깨달았다. 앞으로 찾아 읽어야할 책의 분야가 확실해졌다.

덧_
<사실은 의견일 뿐이다>의 옌스 포엘이 동료라니! 이 두 책을 모두 읽있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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