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행님 신인류 사랑 - 말과 글로 빚어낸 국어 시간
구자행 지음 / 양철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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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행님 신인류 사랑. 구자행님. 양철북. 2025.
_말과 글로 빚어낸 국어 시간

이제 2025학년도 1학기가 마무리되는 시기다. 그렇다면 구자행 선생님의 교사 생활도 마무리가 되는 시기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뭉클하면서도 많은 감정들이 밀려온다. 아마도 30년 이상 교직에 계셨을 것이고, 그 많은 시간 국어라는 교과 안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오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과의 일들을 기록하셨다.
우선,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든다. 만나뵙지 못했지만 마치 만나뵌 적이 있는 것처럼, 글 안에서만으로도 충분히 어떤 교사셨을 지가 눈에 그려진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교직에 계실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는, 무슨 이야기일까 궁금하기만 했다. 신인류는 또 뭐고, 그런 사랑은 뭘 말하는 걸까 싶어서. 이젠 알겠다. 구자행 선생님의 교직에서의 마음은 온통 '사랑'이었구나, 하는 것을. 사랑이 아니고서는 쉬이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아이들과의 교감도 만만치 않고 말이다.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 기록이 남다르게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일에서 가장 뿌듯할 때가 사실은, 아이들로부터 긍정적인 마음을 전달받을 때다. 복도에서 손으로 반하트를 만들며 다가오는 아이에게 나도 손으로 반하트를 만들어 그 손에 연결해주면, 진짜 그 사랑의 하트가 온통 퍼지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이 맛에 일을 하지, 싶은 마음까지 들 정도로 말이다. 구자행 선생님이 보여주신 모습이 바로 그런 마음의 모습이란 생각이 들어, 읽으면서 내내 미소가 지어졌다.

이 책에는 '다행이다'라거나 '마음 아팠다' 같은 선생님의 감정이 드러난다. 이 글은 '교단일기' 같은 느낌인데 그런 교단에서 선생님이 어떻게 아이들을 대하고 바라보고 계신지가 잘 느껴졌다. 특히 이 아이들을 '신인류'라고 정의하고 있는 부분에서 단박에, 아이들을 한 명도 눈 밖으로 내보낸 적이 없는 분이시겠다는 생각을 했다.

첫째, 이들은 평화주의자들이다.
둘째, 남이 하는 일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셋째, 학교 공부에 별 뜻이 없고 점수와 동시에 그다지 마음 쓰지 않는다.
넷째,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다.
다섯째, 해가 갈수록 이 새 종족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것 같다.(41-42쪽)

이렇게 모아보면, 아마 선생님들은 다 감이 잡힌다. 이 아이들이 어떤 행동을 보이고 있는 아이들인지 말이다. 그런데 구자행 선생님은 이들에게 이런 마음을 갖고 계셨다.

아무튼 나는 이 신인류를 문제로 보지 않기로 오래전부터 마음먹었다. 애써 바꾸어 보겠다는 마음이 없다. 그저 바라봐주기로. 내 잣대로 저울질하지 않고 내 틀에 맞추어 판가름하지 않기로. 다만 아주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기는 하다.(43쪽)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런 마음이라면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가 없다. 그러니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과 지금까지 지내고 계실지, 눈에 다 그려지는 듯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선생님의 국어 수업이 흥미로웠다. 아이들과 함께 한 수업, 아이들의 글,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도록 해주고 있는지에 대한, 일종의 노하우들에 관심이 갔다. 사실 아이들은 교실에서 뭐든 하기 싫어한다. 이제는 모둠으로 활동하는 것도 흥미를 잃었다. 특히 글을 쓰라는 것, 그것도 자기 이야기를 담아 쓰라는 건 더 하기 싫어한다. 신인류족에게는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일들이다. 그런 아이들과 선생님이 해 나가신 수업이 인상적이었다. 담임교사로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신 부분도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여러모로 대단하신 선생님이시라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그리고 하나 더, 이런 기록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교실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많은 이야기들 속에 어떤 기억할만한, 그리고 어떤 기록할만한 이야기가 있었는지, 그냥 흘려보냈던 그 수많은 장면들이 이제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나도 구자행 선생님처럼 기록을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그 기억을 다시 훑어보며 미소지을 수 있도록.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아이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도 구자행 선생님처럼 나이를 다 채우고 물러날 수 있을까. 그럴 때까지 어떻게 국어 시간을 보내면 좋을지 다시 고민해봐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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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 Entanglement 얽힘 2
김이설.이주혜.정선임 지음 / 다람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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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 김이설/이주혜/정선임. 다람. 2025.

익숙한 지역이 나와서일까, 자꾸만 내가 알던 그 지역을 머릿속으로 더듬어가게 되는 경험을 했다. 송도유원지로 소풍을 갔고, 자유공원으로 사생대회를 갔었다. 그 일대는 익숙했고 또 지겹기도 했다. 차이나타운은 익숙하지 않지만 동인천과 그 바닷가는 낯설지 않았다. 지금까지 인생 중 절반은 그곳에서 살았고, 또 나머지 절반은 다른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그곳에서 다녔던 학창시절과 다른 곳에서의 직장생활은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런 여러 기억과 느낌을 가지고 소설들을 읽다보니, 소설의 일부가 나의 일부인 듯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은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다. 괜히 더 잘 알고 있는 척을 하고 싶어지는 마음이라고나 할까. 누가 물어보지도 않지만 혼자, 괜히 그 공간의 이야기 안에서 나도 함께 앉아있고 싶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할리는 고등학생 로사가 등굣길에 타고 다녔던 버스가 항구에 정차할 때마다 당장 내려 먼바다로 달아나고 싶었다는 간밤의 고백을 떠올렸다. 다음 여행에는 로사와 함께 인천항에 내려 오래오래 바다를 바라보리라 다짐했다.(...) 당분간은 가능한 한 낯선 방향으로 갈 것이다.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50-51쪽_'할리와 로사' 중)

낯선 방향으로 가기 위한 삶의 여정의 끝이 어쩌면 다시 익숙한 공간으로의 귀향은 아닐까 살짝 생각해보게 된다. 당분간은 그렇게, 지금까지의 기억을 잠시 묵혀둔 채 잘 알지 못하는 방향으로의 나아감을 위한 삶을 지속해나가겠다는 마음. 여전히 아직도 그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의 생각으로 잠시 멈칫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그 다음을 기약해도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명확히 어느 것 하나 분명할 것 없지만, 그렇다고 또 딱히 그래야만 한다는 것도 아닐테니, 그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의 판단을 고수해나가는 수밖에. 그렇게 그 다음을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홉 명의 합주는 무사히 잘 마쳤으나 결국 빈 소리를 내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빈 소리를 그대로 둔 채 연주했다. 관객들은 그게 우리 전체의 소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의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비었다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럼 상관없었다. 어저면 소리를 내지 않은 사람이 제일 떨리고, 두렵고, 어렵고, 힘들고, 외로웠을지도 모른다.(137쪽_'최선의 합주' 중)

소리를 내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티 내지 않으면서 그 안에 함께하고 싶어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하지만 비어있다는 것은 그 만큼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기에, 소리를 내지 않는 이상 그 빈 공간의 소리는 티가 날 수밖에 없고, 그 빈 소리는 다른 무엇으로 채우기 힘들어지는 것일 수 있다. 합주라는 것 혹은 가족이라는 것 안에서 그 소리를 가득 채우기 위한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쉽게 소리를 낼 수 없는 건 당연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은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해 온 그 합주가 사실은 최선이었고, 아무리 연습을 한다 해도 더 이상 좋아질 수는 없다는 것.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진짜 빈 소리의 합주를 할 수밖에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시시하다.
시시하다고. 시시하지 않은 사랑이 있는 줄 아니. 지금 너를 온통 뒤흔들어도 그런 건 삶이 아니야, 라고 미연은 말해주고 싶었다. 언젠가 후회하게 될 거라고. 그런데 그 시시한 것은 어떻게 시작되는지 알 수도 없는데 이유 없이 돌연 끝나버리기도 하고 이유가 있어도 영영 끝나지 않기도 한다고.(95쪽_'해변의 오리배')

그럼에도 그 시시한 사랑을 위해 오리배 정도는 타줘야하는 게 아닐까. 어떤 모양이 될 지 알 수 없는 그 마음을 쫓느라고 모든 애를 다 써야 하는 줄을 알면서도, 그리고 그 끝이 어떤 형태로 빚어지게 될 것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는 채 그저 따라 달려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랑이지 않을까. 명확한 정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하는 대답들에 모두 오답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정답이 없으니 오답도 있을 수 없는 법. 모든 답을 앞에 펼쳐놓고 그 안에서 다시 자신만의 답을 찾는 수밖에. 그러니 누가 가르쳐줄 수도 이끌어줄 수도 없는 게 사실인 것이다.

뭔가 각 소설들 안의 관계가 다시 소설을 간의 관계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각 관계들이 다시 각자의 갈 길을 찾아 나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분명 다른 작가의 다른 이야기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의 흐름의 본질한 유사해 보였다. 그래서 얽힘이구나, 싶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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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책 - 괴테에서 톨킨까지, 26편의 문학이 그린 세상의 정원들
황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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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책. 황주영 지음. 한겨레출판. 2025.

정원과 독서, 무척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이 둘은 그 단어만 들어도 살며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참 좋다. 누구의 강요 없이도 자연스레 마음과 몸이 향하게 되는, 그런 단어들이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둘이 우리에게 주는 공통점이 있고, 그 공통점이 이 책에 각 책터로 묶여있다. 치유, 사랑, 욕망, 생태. 정원의 책을 통해 배우고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가치와 태도들인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 이 가치들이 어떤 작품과 어떤 장면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하나씩 다시 확인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에 대한 관심과 흥미까지 덧붙여 주고 있기도 했다. 지금은 아쉬운대로 방 안에서 작은 화분들을 바라보며 이 책을 읽었지만, 다음에는 더 넓은 정원 안에서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아마 분명, 지금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해보지 않아도 익히 당연하게 짐작할 수 있다. 정원은 너무나 그런 곳이니까.

메리에게 비밀의 정원을 들여다보고, 죽은 풀과 잡초를 제거하고, 새싹을 심으며 돌보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 일이었다.(...) 메리가 정말로 회생시키려 한 것은 정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을 것이다.(30쪽)

자기 자신과 정원 둘 모두를 회생시키려 수 있는 것.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정원인 것이다. 그러니 정원에서는 가장 중요한 생명, 즉 삶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상처받고 아프고, 그래서 사그러지는 듯한 생의 기운을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가 정원이고, 그런 정원을 가꾸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의 마음을 가꾸며 회복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른 생명을 통해 자신의 생을 보살피고 돌보는 것. 나도 모르는 사이, 그렇게 마음이 치유되는 것이 가능해지는 정원의 독서인 것이다.

그는 이제 아름다운 정원도, 폴리아도 없는 현실로 돌아왔다. 얄궂게도 그날은 사랑의 계절인 5월의 첫날이었고, 그는 혼자다. 이는 키테라섬과 그곳의 영원한 봄의 정원 또한 좋으나 어디에도 없는 장소인 유토피아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그 좋은 장소를 꿈꾸고 누리기 위해 폴리필로의 낙원을 떠올리게 하는 정원을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니, 꿈처럼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계속 꿈을 좇으니까.(104쪽)

그러니까 말이다. 유토피아, 어디에도 없는 곳, 그래서 더욱 동경하고 갈망하게 되는 공간, 바로 그 꿈과 같은 공간. 분명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곳을 좋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지점이 있는 것이다. 그런 공간으로서의 정원, 그 정원을 통해 꿈꾸는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곧 사랑일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득 안고 또 다시 정원을 찾아 이곳저곳을 다니게 되는 것이겠지. 어쩌면 그런 마음의 여정이 곧 삶인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만해지는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사실 이런 '작은 집'은 이런 목적으로, 유혹을 위해 설계되었고, 정원 또한 외 공간이지만 나무와 강 등으로 여러 겹으로 둘러싸여 있어 연인들을 아늑하게 지켜주는 닫힌 공간이다. '작은 집'의 정원은 사랑의 정원, 유혹의 무대다.(165쪽)

밖이면서 안이고, 열려있으면서 닫혀있는 공간으로서의 정원. 그래서 한편으로는 무척 내밀하고 고혹적인 공간, 그래서 사람의 가장 일차원적인 욕망의 발현이 이루어지도록 만들어내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사랑이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이고 소중한 감정이고 그런 감정이 또 다른 욕망과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갈망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그러니 끊임없이 이런 유혹의 과정 안에 사람은 놓이게 되는 것이고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곳이 정원이 되는 것이다.

정원이 이토록 다양하게 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정원은 정원으로서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이지만, 인간이 이 모든 것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 뿐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는 것이 정원의 또 다른 매력이고, 그런 정원이 그래서 여전히 인간의 삶과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말대로,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없어 직접 쓰는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 책을 다 읽고나서 느껴졌다. 어디서 이런 <정원의 책>을 볼 수 있을까 싶다. 그러니, 저자의 이 책이 갖는 의미 또한 분명하겠구나, 싶다. 괜히 이 책을 만난 내가 더 뿌듯해지는 듯하다.

덧-
각 부분에 담겨 있는 정원의 그림들이 좋았다. 각 부분의 내용에 대한 잠시 쉬며 정리해볼 수 있는 여유도 함께 주는 것 같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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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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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기. 황정은 에세이. 창비. 2025.

2024년 12월 3일, 계엄이란 상황을 인지하게 된 그 순간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다른 일을 하고 있던 중에 전해들었다. 말도 안 된다고, 거짓말하지 말라고 큰소리 쳤는데, 사실이어서 황당했다. 2024년에, 우리가 역사에서나 배웠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고, 어이가 없었고, 또 한편으로는 공포스러웠다. 무섭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작가가 날짜와 시간대별로 일기로 정리해놓은 글을 읽으니, 다시 그때의 그 기억이 되살아났다.
물론 지금은 그와 관련한 일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새로운 정부도 들어서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많아, 끝까지 더 지켜봐야하는 일이 되었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해프닝 정도로 생각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후에 밝혀지는 사실들에서 단순히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 정도로 생각할 수 없는 정황들이 많았고, 철저한 계산과 무서운 목적이 전제되어 있었던 계획이었다는 점에서 더 큰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런 일들 또한 시간이 지나면 역사 속 사건이 될 것이고, 그런 역사의 사건으로서 진실을 알기 위해선 이런 기록이 무척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일기'라는 형식을 띠고 있다. 아마 실제로 작가가 일기로 작성해 정리해놓았던 이야기를 책으로 묶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기를 통해 이 사건에 대해 갖고 있는 작가의 판단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보통 일기는 내밀한 특징을 갖고 있는 글이어서 누군가에게 읽히기도 위해 쓰이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기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일기를 쓰게 되고, 그 일기는 독자를 염두해두고 작성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솔직한 이야기가 담기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이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과 느낌, 생각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며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탄핵에 대해 진심이었고, 이번 일을 바라보며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위한 어떤 행동과 실천이 이루어졌는지도 솔직히 전달하고 있었다. 서울과 파주를 오가면서까지 어떤 간절함을 갖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설명이라고나 할까. 이는 이를 보는 우리한테까지도 어떤 일들을 통해 지금의 결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기록이 중요하단 생각을 했다. 꼭 국가의 공식적인 기록물이 아니더라도, 개인의 이런 기록까지도 하나의 사건이 어떤 과정과 결과를 만들어냈으며, 그것을 바라보는 각 개개인의 관점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도 무척 중요한 부분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기준에 따라 공식적으로 만들어내는 역사적 기록과는 별개로, 각 개인이 다양한 자신의 관점과 판단을 바탕으로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을 기록하고 확인해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고 그 생각을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이 곧 민주주의의 기본 바탕이며, 이를 통해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우리 민주주의가 건강하다는 증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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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 창비청소년문학 135
이라야 지음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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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 이라야 장편소설. 창비. 2025.

하람이의 삶이 짠했다. 아이들을 1차적으로 가정의 부모로부터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사회에서 지탱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하는데, 하람이는 그것이 불가능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부모가 부모로서 아이를 보듬어주지 못하고 자신의 슬픔과 불행 안에 갇혀 지내기만 했다는 건, 어찌보면 아이를 방치한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람이의 처지가 안타까운 것을 넘어 화도 났다.
물론, 엄마 아빠의 아픔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옛말처럼, 예찬이를 향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있다면 하람이에 대한 사랑과 책임도 있어야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른이 해야할 몫인 것이다. 하지만 하람이의 엄마는 그 어른으로서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물론 아빠도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른의 아픔을 치유하려는 노력은 했으나 아이가 상처를 받고 아파하고 있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최소한 이 애가 잡고 버틸 만한 애정의 끄나풀 정도는 내밀어줘야 할 거 아니에요. 그것까지 외면하면 어떻게 버티라고. 어른이 왜 그렇게 모질어요."(...)
"그렇잖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가 자기를 얼마나 탓했겠냐고요. 내 잘못으로 엄마가 화났다, 내가 엄마를 슬프게 했다고 하면서 얼마나 자책했겠냐고요."(158쪽)

속이 다 시원했다. 권 경위의 말이 어쩌면 권 경위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대놓고 쓴소리를 날릴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주는 어른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어른들은 어떤 면에서는 아이들보다도 더 비겁할 때가 많으니 말이다. 자신의 상처 안으로 숨기 바쁘고 다른 이들에게는 상처만 보이며 모든 것에서 도망치려고만 하고. 이런 어른에 대한 권 경위의 뼈 있는 말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무하, 원지는 왜 이렇게 착한지, 권 경위는 어쩌면 이렇게 다 챙겨주는지, 체육관의 관장도 원지 엄마도 이해하고 도우려는 마음이 이렇게도 강할 수 있을까 싶었다. 카페 사장님과 감초 삼촌까지도 모두가 그랬다. 버스 정류장에서 처음 보는 이들에게 옷을 건네주던 할머니마저도. 지금까지 아빠와 엄마가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보상이라도 해주듯, 하람이가 이제 마음을 놓고 진짜 삶을 편안하게, 그것도 웃으며 살아볼 수 있도록 해주는 이들이었다. 이보다 더 다행인 것은 없겠다 싶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상처를 주고받는 사이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거리가 있을 것 같았고, 위로와 힘을 주는 관계에서는 서로의 마음이 같다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200-201쪽_'작가의 말' 중)

무하랑 셋이 있는 단톡방을 만들고 이름까지 지었다. '파이트!'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이 구호가 우리의 시작도 알리는 거라고 했다.(180쪽)

하람이 말고도 무하, 원지까지. 이 아이들이 나아갈 세상은 어떤 어른의 비겁함도 없는,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나가도 되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지금까지 갖혀 있는 마음의 굴레는 여기서 끝!

'파이트!' 이제 다시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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