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 ㅣ Entanglement 얽힘 2
김이설.이주혜.정선임 지음 / 다람 / 2025년 7월
평점 :
#가능하면낯선방향으로 #김이설 #이주혜 #정선임 #얽힘 #얽힘2기 #서평단 #서평 #책추천
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 김이설/이주혜/정선임. 다람. 2025.
익숙한 지역이 나와서일까, 자꾸만 내가 알던 그 지역을 머릿속으로 더듬어가게 되는 경험을 했다. 송도유원지로 소풍을 갔고, 자유공원으로 사생대회를 갔었다. 그 일대는 익숙했고 또 지겹기도 했다. 차이나타운은 익숙하지 않지만 동인천과 그 바닷가는 낯설지 않았다. 지금까지 인생 중 절반은 그곳에서 살았고, 또 나머지 절반은 다른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그곳에서 다녔던 학창시절과 다른 곳에서의 직장생활은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런 여러 기억과 느낌을 가지고 소설들을 읽다보니, 소설의 일부가 나의 일부인 듯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은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다. 괜히 더 잘 알고 있는 척을 하고 싶어지는 마음이라고나 할까. 누가 물어보지도 않지만 혼자, 괜히 그 공간의 이야기 안에서 나도 함께 앉아있고 싶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할리는 고등학생 로사가 등굣길에 타고 다녔던 버스가 항구에 정차할 때마다 당장 내려 먼바다로 달아나고 싶었다는 간밤의 고백을 떠올렸다. 다음 여행에는 로사와 함께 인천항에 내려 오래오래 바다를 바라보리라 다짐했다.(...) 당분간은 가능한 한 낯선 방향으로 갈 것이다.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50-51쪽_'할리와 로사' 중)
낯선 방향으로 가기 위한 삶의 여정의 끝이 어쩌면 다시 익숙한 공간으로의 귀향은 아닐까 살짝 생각해보게 된다. 당분간은 그렇게, 지금까지의 기억을 잠시 묵혀둔 채 잘 알지 못하는 방향으로의 나아감을 위한 삶을 지속해나가겠다는 마음. 여전히 아직도 그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의 생각으로 잠시 멈칫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그 다음을 기약해도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명확히 어느 것 하나 분명할 것 없지만, 그렇다고 또 딱히 그래야만 한다는 것도 아닐테니, 그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의 판단을 고수해나가는 수밖에. 그렇게 그 다음을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홉 명의 합주는 무사히 잘 마쳤으나 결국 빈 소리를 내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빈 소리를 그대로 둔 채 연주했다. 관객들은 그게 우리 전체의 소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의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비었다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럼 상관없었다. 어저면 소리를 내지 않은 사람이 제일 떨리고, 두렵고, 어렵고, 힘들고, 외로웠을지도 모른다.(137쪽_'최선의 합주' 중)
소리를 내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티 내지 않으면서 그 안에 함께하고 싶어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하지만 비어있다는 것은 그 만큼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기에, 소리를 내지 않는 이상 그 빈 공간의 소리는 티가 날 수밖에 없고, 그 빈 소리는 다른 무엇으로 채우기 힘들어지는 것일 수 있다. 합주라는 것 혹은 가족이라는 것 안에서 그 소리를 가득 채우기 위한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쉽게 소리를 낼 수 없는 건 당연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은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해 온 그 합주가 사실은 최선이었고, 아무리 연습을 한다 해도 더 이상 좋아질 수는 없다는 것.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진짜 빈 소리의 합주를 할 수밖에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시시하다.
시시하다고. 시시하지 않은 사랑이 있는 줄 아니. 지금 너를 온통 뒤흔들어도 그런 건 삶이 아니야, 라고 미연은 말해주고 싶었다. 언젠가 후회하게 될 거라고. 그런데 그 시시한 것은 어떻게 시작되는지 알 수도 없는데 이유 없이 돌연 끝나버리기도 하고 이유가 있어도 영영 끝나지 않기도 한다고.(95쪽_'해변의 오리배')
그럼에도 그 시시한 사랑을 위해 오리배 정도는 타줘야하는 게 아닐까. 어떤 모양이 될 지 알 수 없는 그 마음을 쫓느라고 모든 애를 다 써야 하는 줄을 알면서도, 그리고 그 끝이 어떤 형태로 빚어지게 될 것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는 채 그저 따라 달려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랑이지 않을까. 명확한 정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하는 대답들에 모두 오답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정답이 없으니 오답도 있을 수 없는 법. 모든 답을 앞에 펼쳐놓고 그 안에서 다시 자신만의 답을 찾는 수밖에. 그러니 누가 가르쳐줄 수도 이끌어줄 수도 없는 게 사실인 것이다.
뭔가 각 소설들 안의 관계가 다시 소설을 간의 관계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각 관계들이 다시 각자의 갈 길을 찾아 나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분명 다른 작가의 다른 이야기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의 흐름의 본질한 유사해 보였다. 그래서 얽힘이구나, 싶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