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새벽이 샘터어린이문고 78
허혜란 지음, 안혜란 그림 / 샘터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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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책을 만났다. 읽으면서 자꾸만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림도 귀여웠고, 내용은 더 귀여웠다(이렇게 말하면 작가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려나~). 과연 새벽이가 어떻게 엄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갔다는 걸까, 궁금했다. 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마음을 쓸어내렸다. 새벽이도 새벽이가 만난 새벽이도, 참 다행이라고 안심했다. 괜히 내 마음도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이건, 엄마의 마음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내 아이를 낳던 그 때가 문득 떠올랐다.

"미안해, 아가야."
"용서해 주렴."
"너는 아무 잘못이 없단다."
"사랑해, 사랑해."
"살자, 아가야! 우리 같이 살자!"

뱃속에 아기를 품어보았던 사람은 안다. 그 아기에게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사랑'을 전하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아기가 무사히 건강하게 세상으로 나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는 것을. 나도 아기가 탈없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바라며 울기도 웃기도 했던 그 순간들이 있었다. 지금은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지만, 당시에는 너무도 초조하고 불안해 제대로 눕지도 잠을 자지도 못했었다. 그런 시간들을 모두 잘 견디고 나온 아기는 쌔근쌔근 편안한 숨을 쉬고 품 안에서 편안히 먹고 자고 쌌다. 그리고 엄마 덩치보다 더 큰 아이로 성장했다. 열세 살의 새벽이처럼.

왕자님 말고, 왕자님의 친구 중 한 명이거나 왕자님의 신임받는 신하가 더 편하겠다. 주인공 말고 조연. 주목받는 것도 불편하고 드러나는 것도 싫다. 그냥 이대로, 여러 사람들 속에 묻혀서 그럭저럭 사는 게 편하다.(9쪽)

1번 자리보다는 2번 자리를 더 선호하고, 의견을 내기보다는 동조해주는 쪽을 택하고, 드러내기보다는 숨으려 노력하는 쪽에 가까웠다. 아마 새벽이처럼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겠지 싶다. 나도 그랬고 나의 아이들도 그렇고, 마주치는 아이들 중 대다수가 이런 마음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물론 이 마음이 잘못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다만 2번 자리에서도, 동조해주면서도, 숨어서도 자신에 대한 단단한 마음과 자존감을 잘 이어나갈 수 있으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때가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럴 때, 어떻게하면 좋을까 고민이 되곤 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어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 지점이 있었다. 바로 모차르트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

"자, 우리 모두 엄마와 아기를 응원해 주자고. 허튼소리 하지 말고, 한숨도 쉬지 마. 생명력이 가득한 음악을 틀어 두고. 산모를 봐. 빠른 속도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잖아. 아기를 지키려는 강한 본능이라고. 다들 아침에 밝은 얼굴로 보자고! 알았어?"(71쪽)

응원해주는 것.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강한 긍정의 믿음으로 있는 힘껏 지켜봐주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격려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것. 어쩌면 새벽이 '엄마와 아기에게 생명을 북돋워 주는 좋은 산부인과 의사 아저씨?'라고 꿈을 말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 있지 않을까 싶다.

정말 나는 왕자다. 수지도 정말 공주다. 공주처럼 예쁘고 똑똑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공주다. 다른 아이들도 그렇다. 우리는 모두가 정말로 왕자이고, 공주이다. 우리 엄마도, 이모도, 이모의 배 속에 들어 있는 작은 아기도. 나는 고개를 들어 높고 높은 천장을 보았다. 화려한 조명이 박혀 있었다. 수많은 왕자와 공주를 비춰 주는 불빛들이 일렁거렸다.(102쪽)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살려낸 경험이 있는 새벽이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변화일 것이다. 어두운 물길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스스로 주문을 외우고 안간힘을 써봤기 때문에 얼마나 그 과정에서의 자기 자신이 자랑스럽고 기특할까. 존재 자체로서 무척 소중한 한명 한명임을 몸소 깨달을 수 있던 경험이었을 것이다.
새벽이 새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 덕분에 새벽은 당당하게 제 몸을 세우고 세상을 바로 볼 줄 아는 시선과 태도를 배워 갖출 수 있었다. 누군가 그저 대수롭지 않은 꿈이었던 게 아니냐고 딴지를 걸어도, 이미 새벽이 거쳐온 시간은 달라지지 않으므로, 새벽은 새벽으로서 단단해질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또한 대견하고 기특하기만 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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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 - 마치 세상이 나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금정연 지음 / 북트리거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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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와 일기.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일지(日誌) 그날그날의 일을 적은 기록. 또는 그런 책
일기(日記)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

애정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이렇게 뜻이 나와있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날마다', '겪은', '생각, 느낌 따위', '개인의'에 있었다. 일지와 일기의 차이. 왜 일지 같지만 일기여야 하는지는 여기에서 분명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날마다 빠짐없이 겪은 개인의 생각과 느낌이 포함되어야 일기인 거니까.

사실 처음엔 일지였다. 일기라는 이름에는 어쩐지 낯간지러운 구석이 있다.(16쪽)

나도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지를 써볼까?' 싶은 충동이 일었다. 지금의 나의 일기(라기 보다는 작은 수첩 크기의 다이어리)와 비교했을 때, 좀 더 촘촘하게 하루의 기록을 남겨보는 것은 어떨지, 그렇다면 손으로 쓰는 것은 무리가 있고 어떤 공간을 활용해서 쓰면 좋을까 진지하게 고민도 했다. 헌데 이 책을 점점 더 읽어가면서 나의 문장과 글쓰기 능력, 그리고 나라는 사람의 매일의 기록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회의가 들었다. 누구에게 읽힐 것도 아니고 또 그런 마음이라면 나라도 읽어줘야 하는데, 과연 나는 과거의 기록을 하나씩 들춰보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싶어서. 또 하나의 핑계는 매일이 비슷한 일들의 반복이고 지금 그 작은 수첩 크기 일기장에 쓰는 내용도 매일이 거기에서 거기인 느낌을 뿐인데, 더 자세한 일지가 나에게 소용이 있기는 할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덮으며, 일지를 써보겠다는 마음도 우선은(그래도 마음 한켠에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살짝 남겨두고), 접었다.

겨울에서 다시 겨울, 그리고 '다시 봄'에서 또 가을까지. 여덟 계절을 거쳐 한 사람의 일기를 훔쳐보는(일기는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딱 알맞다!)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봄에서 겨울까지, 그리고 다시 봄에서 겨울까지가 아니라, 겨울에서 가을까지, 그리고 다시 겨울을 맞이했을 작가의 삶을 상상하며 또 다시 봄에 나온 책을 손에 들고 있는 기분도 좋았다. 겨울의 찬 기운이 코끝을 알싸하게 만들며 번쩍 눈 뜰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시작인 것 같기도 해서 상쾌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기여서 좋은, '생각, 느낌 따위'에 공감하는 내가 보였다. 괜히 일기 안에서 문장을 고르고 싶어지고 고른 문장을 나의 문장으로 만들고 싶어지는 마음도 생겼고, 그러면서 살짝 불안하고 조급했던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책을 읽으면 고민했던 부분이 있있으니까. 과연 일기는 내가 어떻게 읽어내야 제대로 독서했다고 할 수 있을까. 고요서사에서 진행된 워크숍에서 일기를 함께 읽으며, 과연 그 안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론은, 자서전이 아닌 일기를 읽고 있는 것이니, 그 사람을 말아야겠다는 생각 말고, 그 날마다의 일상 속에서 드는 하루하루의 마음을 그냥 따라가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나의 일상도 매일 반복되어도 그날그날의 마음과 생각까지 반복되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일상에서의 나를 타인의 삶을 관찰하며 알아채게 되는 법이니까.
가령, 이런 부분들에서.

그러니까 사람들이 왜 책을 읽는지, 그리고 나는 왜 책을 쓰는지...(99쪽)
_그러니까. 나는 왜 책을 읽을까. 가끔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 책을 못 읽는 시간에 마치 금단증상이 일어나는 듯 불안하고 해야할 것을 다 하지 못한 찝찝함이 들기도 하니까.

주말은 늘 정신이 없다. 나윤이랑 놀아 주고 밥 먹고 정리하고 놀아 주고 그러다 보면 또 먹을 시간이 오고 정리하고 놀아 주고 그러는 내내 나윤이는 무언가를 요구하고 요구하고 또 요구한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114쪽)
_나도 육아 경험이 있으니, 어떤 마음일지 충분히 공감된다. 그런데 이 때 갑자기 생각났다. 얼마 전 어느 시인이 말했다. 아이는 우리에게 온 선물이라고. 그래서 어떤 것도 모두 다 요구해도 된다고. 시인의 말대로라면, 나윤이의 요구를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자정이 넘어 다들 돌아갔고, 지은이가 잠에서 깬 나윤이 재우러 들어간 사이, 나는 설거지하고 또 한가득 쌓인 재활용품 분리수거했다. 미루지 않기. 조금 늦었지만 그걸 올해 목표로 삼아야겠다.(189쪽)
_자정 넘은 시간 새벽에, 부지런히 설거지에 쓰레기 정리까지. 요즘 저녁밥만 먹으면 온몸의 기운이 하나도 없는, 체력 바닥의 상태가 되는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 심지어 얼마 전에는 밥 먹은 밥그릇 하나와 수저 한 벌이 전부인 설거지도 자고 일어나 아침으로 미룬 나였기에, 반성했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미루지 말아야겠구나, 싶으면서도 벼락치기가 이미 한몸이 된 지 오래되어 쉽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아찔하기보다는 막막한, 비명이 터져 나오기보다는 이대로 작은 신음이 새어 나오는, 어떤 거대한 체념과도 닮은 그런 기분. 다시 생각하니 그건 일이 잔뜩 밀렸는데 도저히 제 시간에 해낼 길이 없을 때 느끼는 기분과 닮았다. 다시 말해, 나는 늘 그런 기분이라는 거다...(214쪽)
_일이란 하나가 끝나고 그 다음 하나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우선순위 없이 급급한 상태로 계속 하나의 일로 다른 일을 밀어내는 형상이니 말이다. 숨 쉴 틈도 고민과 생각의 여지도 주지 않고 밀려드는 기한을 맞추기 위해 형식적으로 손과 몸을 움직여야만 겨우 해낼 수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시즌제로, 그렇지 않은 시기가 있어야 회복할 수 있는 법인데, '늘 그런 기분'이면 너무 힘들기만 할 것 같다.

그래도 날마다 매일, 반복같지만 또 그렇지만은 않은 일상을, 작가처럼 나도 살아가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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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연 지음 / 북트리거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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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와 일기.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일지(日誌) 그날그날의 일을 적은 기록. 또는 그런 책
일기(日記)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

애정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이렇게 뜻이 나와있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날마다', '겪은', '생각, 느낌 따위', '개인의'에 있었다. 일지와 일기의 차이. 왜 일지 같지만 일기여야 하는지는 여기에서 분명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날마다 빠짐없이 겪은 개인의 생각과 느낌이 포함되어야 일기인 거니까.

사실 처음엔 일지였다. 일기라는 이름에는 어쩐지 낯간지러운 구석이 있다.(16쪽)

나도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지를 써볼까?' 싶은 충동이 일었다. 지금의 나의 일기(라기 보다는 작은 수첩 크기의 다이어리)와 비교했을 때, 좀 더 촘촘하게 하루의 기록을 남겨보는 것은 어떨지, 그렇다면 손으로 쓰는 것은 무리가 있고 어떤 공간을 활용해서 쓰면 좋을까 진지하게 고민도 했다. 헌데 이 책을 점점 더 읽어가면서 나의 문장과 글쓰기 능력, 그리고 나라는 사람의 매일의 기록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회의가 들었다. 누구에게 읽힐 것도 아니고 또 그런 마음이라면 나라도 읽어줘야 하는데, 과연 나는 과거의 기록을 하나씩 들춰보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싶어서. 또 하나의 핑계는 매일이 비슷한 일들의 반복이고 지금 그 작은 수첩 크기 일기장에 쓰는 내용도 매일이 거기에서 거기인 느낌을 뿐인데, 더 자세한 일지가 나에게 소용이 있기는 할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덮으며, 일지를 써보겠다는 마음도 우선은(그래도 마음 한켠에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살짝 남겨두고), 접었다.

겨울에서 다시 겨울, 그리고 '다시 봄'에서 또 가을까지. 여덟 계절을 거쳐 한 사람의 일기를 훔쳐보는(일기는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딱 알맞다!)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봄에서 겨울까지, 그리고 다시 봄에서 겨울까지가 아니라, 겨울에서 가을까지, 그리고 다시 겨울을 맞이했을 작가의 삶을 상상하며 또 다시 봄에 나온 책을 손에 들고 있는 기분도 좋았다. 겨울의 찬 기운이 코끝을 알싸하게 만들며 번쩍 눈 뜰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시작인 것 같기도 해서 상쾌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기여서 좋은, '생각, 느낌 따위'에 공감하는 내가 보였다. 괜히 일기 안에서 문장을 고르고 싶어지고 고른 문장을 나의 문장으로 만들고 싶어지는 마음도 생겼고, 그러면서 살짝 불안하고 조급했던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책을 읽으면 고민했던 부분이 있있으니까. 과연 일기는 내가 어떻게 읽어내야 제대로 독서했다고 할 수 있을까. 고요서사에서 진행된 워크숍에서 일기를 함께 읽으며, 과연 그 안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론은, 자서전이 아닌 일기를 읽고 있는 것이니, 그 사람을 말아야겠다는 생각 말고, 그 날마다의 일상 속에서 드는 하루하루의 마음을 그냥 따라가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나의 일상도 매일 반복되어도 그날그날의 마음과 생각까지 반복되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일상에서의 나를 타인의 삶을 관찰하며 알아채게 되는 법이니까.
가령, 이런 부분들에서.

그러니까 사람들이 왜 책을 읽는지, 그리고 나는 왜 책을 쓰는지...(99쪽)
_그러니까. 나는 왜 책을 읽을까. 가끔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 책을 못 읽는 시간에 마치 금단증상이 일어나는 듯 불안하고 해야할 것을 다 하지 못한 찝찝함이 들기도 하니까.

주말은 늘 정신이 없다. 나윤이랑 놀아 주고 밥 먹고 정리하고 놀아 주고 그러다 보면 또 먹을 시간이 오고 정리하고 놀아 주고 그러는 내내 나윤이는 무언가를 요구하고 요구하고 또 요구한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114쪽)
_나도 육아 경험이 있으니, 어떤 마음일지 충분히 공감된다. 그런데 이 때 갑자기 생각났다. 얼마 전 어느 시인이 말했다. 아이는 우리에게 온 선물이라고. 그래서 어떤 것도 모두 다 요구해도 된다고. 시인의 말대로라면, 나윤이의 요구를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자정이 넘어 다들 돌아갔고, 지은이가 잠에서 깬 나윤이 재우러 들어간 사이, 나는 설거지하고 또 한가득 쌓인 재활용품 분리수거했다. 미루지 않기. 조금 늦었지만 그걸 올해 목표로 삼아야겠다.(189쪽)
_자정 넘은 시간 새벽에, 부지런히 설거지에 쓰레기 정리까지. 요즘 저녁밥만 먹으면 온몸의 기운이 하나도 없는, 체력 바닥의 상태가 되는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 심지어 얼마 전에는 밥 먹은 밥그릇 하나와 수저 한 벌이 전부인 설거지도 자고 일어나 아침으로 미룬 나였기에, 반성했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미루지 말아야겠구나, 싶으면서도 벼락치기가 이미 한몸이 된 지 오래되어 쉽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아찔하기보다는 막막한, 비명이 터져 나오기보다는 이대로 작은 신음이 새어 나오는, 어떤 거대한 체념과도 닮은 그런 기분. 다시 생각하니 그건 일이 잔뜩 밀렸는데 도저히 제 시간에 해낼 길이 없을 때 느끼는 기분과 닮았다. 다시 말해, 나는 늘 그런 기분이라는 거다...(214쪽)
_일이란 하나가 끝나고 그 다음 하나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우선순위 없이 급급한 상태로 계속 하나의 일로 다른 일을 밀어내는 형상이니 말이다. 숨 쉴 틈도 고민과 생각의 여지도 주지 않고 밀려드는 기한을 맞추기 위해 형식적으로 손과 몸을 움직여야만 겨우 해낼 수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시즌제로, 그렇지 않은 시기가 있어야 회복할 수 있는 법인데, '늘 그런 기분'이면 너무 힘들기만 할 것 같다.

그래도 날마다 매일, 반복같지만 또 그렇지만은 않은 일상을, 작가처럼 나도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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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저택
김지안 지음 / 창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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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을 보며 떠오르는 기억들...
하나, 태어나서 대학시절을 보낼 때까지 한 집에서 살았다. 주택이었고 주택가 골목의 가장 끝 코너집이었고, 그 코너 담에는 빨간 넝쿨장미가 가득했다. 이맘 때쯤이면 담을 타고 자라난 장미의 향이 진동했고, 우리집은 늘 넝쿨장미집이었다.
둘, 직장 뒤뜰에 커다란 목련 나무가 있었다. 너무도 탐스럽고 아름답게 꽃을 피워내어 저절로 고개를 뒤로 젖혀가며 목련을 감상하곤했다. 때마침 행사 사진 찍는 담당이 되어 커다란 카메라를 무겁게 목에 걸고 곳곳을 누비고 다녔는데, 그때 이 아름다운 나무를 사진에 남겼다. 그리고 몇 달 안 지나 누군가가 나무의 가지들을 댕강댕강 다 잘라버렸다. 너무도 충격적이고 공포스럽기까지했다.
셋, 어렸을 때부터 제일 좋아하는 꽃이 장미였다. 언제나 변함없이 장미가 제일 좋아했고, 그 중에서도 노란 장미를 무척 사랑했다. 노란장미 화분을 선물받아 잘 키워보려했지만, 실내 베란다 화분에서는 잘 자라지 못했다. 진딧물도 너무 많이 생겨, 결국 실패했다.

지나 생각해보니 그 각각의 순간들에서 이 모든 꽃들을 사랑했던 거였다. 나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 사랑에 또한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장미 저택>의 장미들은 정성을 다 하는 멧밭쥐들과 멍멍 씨 덕분에 제 빛깔과 향기로 다시 피어날 수 있었고, 그렇게 피어난 모든 장미들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아마 미미 씨도 그런 사랑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어 결국 다시 장미를 가꿀 수 있게 된 것이겠지. 사랑은 주머니에 넣은 송곳처럼 어떻게 해도 티가 나는 법. 그러니 미미 씨가 혼자 방 안에 있기에는 사랑의 마음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숨길 수 없는 마음, 사랑의 마음.

멍멍 씨, 잠깐만요.
자르지 말고 그냥 둘까요?
조금 작더라도 괜찮을 것 같아요.
모두 함께 피면 좋겠어요.

꽃으로 피어나기 전의 봉우리만으로는 어떤 꽃이 피어나게 될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느 누가 앞으로의 일에 대해 단정지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저 제 힘으로 잘 피어날 수 있도록 지켜보는 수밖에. 그러면 제각기 다른 속도와 크기대로 크겠지만, 꼭 알맞은 자신만의 모습으로 꽃은 피어나게 될 것이다. 이때 조금 작아도,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꽃이 될 것이다. 잘 돌보고 보살피며 기다려주기만 한다면.

미미 씨와 멍멍 씨가 멧밭쥐들의 도움 없이도 다시 장미 정원을 잘 가꾸어나갈 것이다. 특히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넘치는 사랑의 마음을 잘 표현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장미를 가꾸며 얻은 가장 소중한 깨달음은 사랑을 감추지 않고 있는 힘껏 표현하며, 그 자체의 있는 그대로를 아낄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누구와도 함께 나눌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장미 저택에 초대받아 가는 이들의 표정과 마음이 어느 때보다 들뜬 이유가, 미미 씨의 그 마음이 모두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것, 그 마음을 마음껏 표현하며 모두와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이야기가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유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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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의 시선 (반양장) - 제17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25
김민서 지음 / 창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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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율은 어떤 시선을 갖고 있다는 걸까 궁금했다. 세상은 자신이 보려는 방향으로 보게 되어 있으니까. 그렇다면 율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다는 걸까. 세상을 보는 시선은 어떻게 그리고 누가 만들어 주었으며, 왜 그런 방향의 시선을 갖게 되었을까.

나는 지금껏 나와 같은 사람을 본 적 없었다. 예를 들어 나는 사람을 발로 인식한다. 나는 어릴 적부터 사람의 눈을 보는 게 싫었다.(14-15쪽)

아래를 향하는 율의 시선은, 더 정확히 사람의 눈을 보지 않는 율의 시선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 놓여있었던 과거의 경험이 만들어 낸 마음의 행동이었다. 자신을 향하고 있는 타인의 시선은 닿지만 그 시선에서 어떠한 따뜻함은 느낄 수 없었던 율에게 있어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었다. 비극적인 극단의 상황에서 누구 하나 자신을 온전히 봐주지 않고 있다는 차가운 단절은, 다시는 그 시선을 믿지 않겠다는 불신, 바로 비정상의 상태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런 율의 시선에 대한 책임이 율에게 있지 않다는 것도 너무나 명확했다.

강약약강. 강한 사람에게는 약하게, 약한 사람에게는 강하게. 그것이 내가 사는 방식이었다.(9쪽)
물이 들어 있을 때는 가지고, 비어 있을 때는 버린다. 잔뿐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일까.(74쪽)

사람에게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상대를 자신의 필요 여부에 따라 쥐었다 놓았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쉽고 또한 가능할 수 있는지를 율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과 행동을 했을 때 상대를 자신의 뜻대로 둘 수 있는지, 얼마나 그 관계를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 율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가식적이고 거짓 투성이인지,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도 가식적이고 거짓말 투성이로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오히려 율에게는 더 자연스럽고 편했던 것일 수도 있다.

"거짓말."(...)
"잘하는 거나 좋아하는 게 뭐냐며. 네가 물어봤잖아. 나 거짓말 잘해."(83쪽)

그래서 율이 선택한 생존 방식이, 거짓말이었지 않을까. 거짓말을 통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도 또한 받지도 않겠다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그런 율에게 소설를 쓰라고 추천을 해 주는 이도해는 과연 어떤 아이인 걸까. 오히려 도해는 율과 반대로 하늘만 본다. 하늘을 구름, 별을 통해 도해는 어딘가로 숨고싶어 한다. 이도해가 아닌 북극성. 사람들이 길을 잃었을 때 길잡이가 되어 주는 반짝이는 별. 그런 도해와 율의 만남은, 서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본능적으로 알아볼 수밖에 없었던 인연이었을 것이다.

새는 계속 쪼아 댔다. 틈새를 쪼고 또 쪼아 댔다. 고목이 있던 곳에는 까맣게 썩어 버린 톱밥만 간간이 흩날릴 뿐이었다. 새는 절망했다. 더 이상 먹이를 찾아 날 힘이 없었다.(104쪽)
모두가 외계인이라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헐뜯고, 그리고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을 찾아 평생을 헤매는 것이다.(142쪽)

도해의 추천으로 쓰기 시작한 율의 소설은, 이제 더 이상 강한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는 어떤 힘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챌 수 있도록 해 주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외계인 같은 서로를 알아봐주기를 위한 거짓이 아닌 진실의 마음을 열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안율, 너 좀 변한 거 알아?"
"어디가?"
"눈. 눈빛이 아주 재수 없어졌어."
눈빛? 내가 되묻자 서진욱은 내가 요즘 대화할 때 발이 아니라 눈을 본다고 말했다.(212쪽)

그리고 드디어 발이 아니라 눈을 볼 줄 아는 율의 성장. 중학교 졸업장은 무척 얇고 가벼워 금방 바람에 날아가지만, 그런 졸업장을 잡아주고 챙겨주는 가족,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으니, 율은 이제 고등학생이 되기에 충분할 정도로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율의 눈빛이 얼마나 재수 없어졌는지 보고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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