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의 시선 창비청소년문학 125
김민서 지음 / 창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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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율은 어떤 시선을 갖고 있다는 걸까 궁금했다. 세상은 자신이 보려는 방향으로 보게 되어 있으니까. 그렇다면 율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다는 걸까. 세상을 보는 시선은 어떻게 그리고 누가 만들어 주었으며, 왜 그런 방향의 시선을 갖게 되었을까.

나는 지금껏 나와 같은 사람을 본 적 없었다. 예를 들어 나는 사람을 발로 인식한다. 나는 어릴 적부터 사람의 눈을 보는 게 싫었다.(14-15쪽)

아래를 향하는 율의 시선은, 더 정확히 사람의 눈을 보지 않는 율의 시선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 놓여있었던 과거의 경험이 만들어 낸 마음의 행동이었다. 자신을 향하고 있는 타인의 시선은 닿지만 그 시선에서 어떠한 따뜻함은 느낄 수 없었던 율에게 있어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었다. 비극적인 극단의 상황에서 누구 하나 자신을 온전히 봐주지 않고 있다는 차가운 단절은, 다시는 그 시선을 믿지 않겠다는 불신, 바로 비정상의 상태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런 율의 시선에 대한 책임이 율에게 있지 않다는 것도 너무나 명확했다.

강약약강. 강한 사람에게는 약하게, 약한 사람에게는 강하게. 그것이 내가 사는 방식이었다.(9쪽)
물이 들어 있을 때는 가지고, 비어 있을 때는 버린다. 잔뿐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일까.(74쪽)

사람에게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상대를 자신의 필요 여부에 따라 쥐었다 놓았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쉽고 또한 가능할 수 있는지를 율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과 행동을 했을 때 상대를 자신의 뜻대로 둘 수 있는지, 얼마나 그 관계를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 율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가식적이고 거짓 투성이인지,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도 가식적이고 거짓말 투성이로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오히려 율에게는 더 자연스럽고 편했던 것일 수도 있다.

"거짓말."(...)
"잘하는 거나 좋아하는 게 뭐냐며. 네가 물어봤잖아. 나 거짓말 잘해."(83쪽)

그래서 율이 선택한 생존 방식이, 거짓말이었지 않을까. 거짓말을 통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도 또한 받지도 않겠다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그런 율에게 소설를 쓰라고 추천을 해 주는 이도해는 과연 어떤 아이인 걸까. 오히려 도해는 율과 반대로 하늘만 본다. 하늘을 구름, 별을 통해 도해는 어딘가로 숨고싶어 한다. 이도해가 아닌 북극성. 사람들이 길을 잃었을 때 길잡이가 되어 주는 반짝이는 별. 그런 도해와 율의 만남은, 서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본능적으로 알아볼 수밖에 없었던 인연이었을 것이다.

새는 계속 쪼아 댔다. 틈새를 쪼고 또 쪼아 댔다. 고목이 있던 곳에는 까맣게 썩어 버린 톱밥만 간간이 흩날릴 뿐이었다. 새는 절망했다. 더 이상 먹이를 찾아 날 힘이 없었다.(104쪽)
모두가 외계인이라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헐뜯고, 그리고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을 찾아 평생을 헤매는 것이다.(142쪽)

도해의 추천으로 쓰기 시작한 율의 소설은, 이제 더 이상 강한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는 어떤 힘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챌 수 있도록 해 주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외계인 같은 서로를 알아봐주기를 위한 거짓이 아닌 진실의 마음을 열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안율, 너 좀 변한 거 알아?"
"어디가?"
"눈. 눈빛이 아주 재수 없어졌어."
눈빛? 내가 되묻자 서진욱은 내가 요즘 대화할 때 발이 아니라 눈을 본다고 말했다.(212쪽)

그리고 드디어 발이 아니라 눈을 볼 줄 아는 율의 성장. 중학교 졸업장은 무척 얇고 가벼워 금방 바람에 날아가지만, 그런 졸업장을 잡아주고 챙겨주는 가족,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으니, 율은 이제 고등학생이 되기에 충분할 정도로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율의 눈빛이 얼마나 재수 없어졌는지 보고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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