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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틈새 ㅣ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5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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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틈새. 이금이 장편소설. 사계절출판사. 2025.
어떤 삶이든 슬픔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있을까. 슬픔을 밑바탕에 두고 그 다음을 이야기하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할 것이다. 그러니 해방 전후의 사할린 역시 슬픔을 전제하지 않고는 그 이야기를 온전히 다 할 수 없고, 그런 슬픔의 삶과 시간 그 사이, 즉 틈새에 사랑이 비집고 들어와 슬픔을 단순한 슬픔이 아닌, 또 다른 차원의 슬픔으로 만들어준다. 이것이 우리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우리 역사의 무게이고 그 역사 속 사람들의 삶의 무게인 것이다.
사할린. 그동안 대략적인 이야기로 알고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제대로 그들의 삶이 어떤 굴곡 속에 놓여있었는지를 자세히 알아보려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시작이 어떤 끝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한평생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는지, 사회와 역사의 문제 안에 놓여 개인의 삶이 달라지게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짚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단옥의 삶을 통해, 그들에게 어떤 삶만이 허락될 수 있었는지, 어떤 삶을 살도록 강요받았던 것인지를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어쩌면 요즘 아이들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왜 강제로 어느 지역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지, 국적이라는 것을 얻지 못하고 무국적자로의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왜 그토록 자신의 뿌리, 고향의 공간으로 가고자 하는 것인지, 의아하면서도 이해가 안 간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행기만 타면 갈 수 있는 곳을 한평생 갈 수 없었다는, '억류'라는 단어 안에서 이들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할 수많은 이야기 속에는, 지금 우리가 감히 함부로 이렇고 저렇다고 판단하여 결론내리면 안 되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숨어 있는 이야기를 우리는 기꺼이 끄집어내어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자세인 것이다.
단옥은 가끔 자기 이름의 변천사를 생각해보곤 했다. 주단옥에서 야케모토 타마코, 다시 주단옥에서, 그리고 올가 송...... 이름이 바뀔 때마다 한동안 헷갈렸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혼란스러웠다. 다른 한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바뀐 이름들만큼이나 굴곡진 인생이었다.(323쪽)
이 소설을 읽으며 <꺼삐딴 리>가 연상되기도 했다. 당시를 살아내야만 했던 이들에게 있어서 일본, 소련, 미국 등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의 운명과 정세의 변화에 대책없이 무방비상태로 놓일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삶이란 어떤 것이었을지, 솔직히 짐작도 쉽지 않을 정도인 것이다. 이인국 박사와 단옥의 삶이 같은 방식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개인이 자신의 삶을 개인적으로 감당하며 되는 상황이 될 수 없었다는 것, 세상과 세계의 움직임에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일정 부분 혹은 그 이상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기를 지나온 사람들이라면 모두, 그 당시의 상황을 자신의 자유 의지로 판단 혹은 선택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즉, 이들의 잘못이나 문제가 전부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삶을 우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바로, 역사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삶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로서 접근해 살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사가 어떻게 지금의 우리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도 함께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들의 삶은 그들의 몫, 우린 우리의 삶을 살면 된다는 식의 발상은 안 된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역사는 기억해야 하고 또 그 기억이 바탕이 되어 그 다음의 삶이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살아내고자 한다면, 우리의 삶을 더 잘 살아내려고 노력 중이라면, 지금의 이 모든 삶의 이야기를 잘 확인하고 아는 것이 시작인 것이다. 이들의 삶이 곧 우리 삶의 밑바탕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다 읽고, 가만히 단옥의 삶을 머릿속으로 되짚어보게 된다. 만약 단옥이 그런 삶을 살게 될 거라는 걸 미리 알았다면 이처럼 살아낼 수 있었을까.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길고도 고단한, 굴곡 많은 삶을 잘 살 수 있었을까. 그건 바로, 가족이 있어서, 친구가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또, 이 모든 순간에 대한 진심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린 그 마음을 소중하게 간직해야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