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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움직인다 ㅣ 창비시선 519
손택수 지음 / 창비 / 202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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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움직인다. 손택수 시집. 창비. 2025.
천천히 읽게 된다. 시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고 싶어진다. 시의 문장들에서 문득 시선을 멈추게 되고, 그 문장과 단어들의 조합과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시인의 느낌이 있겠으나, 나는 나대로의 느낌으로 문장을 만나고 생각을 고친다. 이렇게 읽어도 되나 하는 생각은 잠시, 이대로도 괜찮다는 안도감으로 시를 따라가고 또 따라가지 않는다. 무엇 하나 쉽게 넘어갈 수 없으니, 그저 마음이 가는대로 읽을 수밖에. 이 시집, 느낌이 참 오묘하다. 자꾸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짓는 것 중에 으뜸은 저녁이지
짓는 것으로야 집도 있고 문장도 있고 곡도 있겠지만
지으면 곧 사라지는 것이 저녁 아니겠나
사라질 것을 짓는 일이야말로 일생을 걸어볼 만한 사업이지(32쪽_'저녁을 짓다' 중)
저녁을 짓고 싶어졌다. 저녁 짓는 일이 무척 귀찮고 부담되는 일이었는데, 이 저녁 하나를 위해 이렇게나 해야 하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저녁 하나 정도이기 때문에 이렇게 그 이상을 해도 되겠다는,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겠다는 마음이 새겼다. 어쩌면 짓는 것 중 그나마 해볼 수 있겠다 싶은 것이 저녁이겠지, 하는 알량한 마음도 있다. 뭐 이유가 어떻게 되든, 그 이유는 저녁을 지으며 생각해보면 될 일이지 싶다. 이 시집이 이런 식이다.
심심하다는 말, 외롭다는 뜻이었군
외로움을 호소하진 못하고
심심해서 죽겠네
그런 거였구나(62쪽_'심심하다는 말' 중)
심심할 때가 있다. 누군가와의 대화 메시지 창에 심심해라는 말을 입력하고 한참을 기다린다. 나의 심심함을 어떻게 설명해주고 또 달래줄 것인가, 내심 기대하면서. 이제 와 저 시를 만나니, 이제 심심하다는 말을 어느 때 어떤 의도로 사용할 것인가의 고민이 생긴다. 또 무슨 수로 이 심심함을 해소해줄 수 있을까를 고려하게 된다. 별 거 아닌 말 한 마디가 가져온 파장이 무척 길다. 이 시집이 이렇다.
누굴 미워하면 몸부터 아파오는 나이,
몸을 사람이라 외면한 이의 모친상에 갔다가
슬픔에 말갛게 씻긴 얼굴 앞에서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네(중략)
잃지 않고 알 수 없는 것
슬픔의 깊이 속에서
솟고 솟아 정한 물방울
상가를 나오며
그 물방울을 잊지
말자 하였지(71쪽_'오래 미워한 자를 위한 문상' 중)
이젠 몸이 감당하지 못하는 일들이 생긴다. 마음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되는 일이 되는 것이다. 몸을 위해서라면 더더욱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나도 모르는 새 비어져나오는 눈물을 감추는 데에만 급급할 필요 없다.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몸도 따라가게 놔두면 되는 것이니까. 그러니,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 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몸이 먼저 반응하기 전에 마음을 먼저, 몸이 편한 방향을 만들어 가기 전, 앞으로 나아갈 마음의 자세를 먼저 들여다 보아야 한다.
이 시집이 이러니 나도 모르는 사이, 자꾸만 시에서 말하는대로의 삶과 철학, 가치관이 어떻게 만들어져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가만히 시를 들여다보며 내 마음도 따라 점검하게 된다. 그래서 이 시집은, 천천히 읽어나가야 한다. 허투루 함부로 책장을 넘길 수 없도록 독자를 꽉 쉬어잡고 있다. 분명, 무겁고 또 어둡고, 분위기 자체에서 만들어지는 내용과 상황이 있다.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무게감이 있다. 무게감 있는 이야기는 그 무게를 스스로 감당하며 시를 읽어야한다. 이 부분이 참 재있는 지점인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