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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골목의 끝에, 첼시 호텔 ㅣ 문학동네 청소년 76
조우리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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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골목 끝까지 걸어갔을 때 마주치게 되는 곳이 첼시 호텔이라면, 과연 그 문 안으로 들어설 용기는 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먼저 든다. 그렇게 끝까지, 정말 더 이상 갈 수 있는 곳이 없을 것 같은 그 끝까지 다 갔을때, 열고 들어설 수 있는 문이 첼시 호텔이 유일하다면, 과연 그 끝에서 주저앉게 될지 혹은 이곳의 문을 열지. 다시 돌아설 힘도 남아있지 않고 또 그렇다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고 뾰족한 수가 나오지도 않을 테니, 어쩌면 낯선 문을 여는 선택을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 문 안에 어떤 장면에 펼쳐지고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 떨림과 기대를 안고, 살며시 그 문을 열게 되겠지. 그리고 그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그 다음은 첼시 호텔에 그저 나를 맡기는 선택을 하게 될 듯하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곳에서 나오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언제까지고 그곳에 첼시 호텔이 있는 한은.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 침묵을 지우기 위해 맥주를 마시는 것이다. 마치 쉼표처럼. 다 마신 병을 쿵 내려놓으면 마침표.
나는 그들이 만드는 문장과 쉼표, 마침표를 바라본다. 과연 문장이 길어질수록 취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65쪽)
어른이라고 실수가 없고 고통이 없고 또 포기가 없을까. 그저 그렇게 보이지 않게 위해 애쓰고 괜찮은 척을 하는 것일 뿐. 계속 나아갈 힘이 언제나 가득 채워지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저 어떻게든지 나아가는 삶을 멈추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지. 하지만 그런 나아감에 있어서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그리고 멈출 수 있는 핑계가 필요하다. 그냥 한순간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있을 수는 없으니까. 잠시 쉬고 또 멈추는 핑계를 대기 위해, 첼시 호텔이 필요한 것이다.
하물며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더, 쉬고 멈추는 핑계가 필요할까. 실제로는 그렇게 잠시 서서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어른보다 더 많이 필요할 것이다. 문제는 그런 때 댈 핑계가 많지 않다는 것. 핑계를 대는 순간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면 걱정 근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어느 누구에게서도 이해받지 못하고 외로운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감히 섣불리, 핑계를 만들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난 늘 잘 참고 견디는 성격이었다. 그게 어렵지도 않았다. 초등학교 1하면 때 아이들이 책상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해 돌아다니고 바닥을 기어다닐 때도 반듯하게 앉아 있는 게 더 쉬웠다.(140쪽)
락영이가 그랬던 것 같다. 그저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야만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주변을 돌아볼 여유조차 갖지 못했던 시간의 연속. 반듯함이 자신의 몫인 듯 의심하지 않고 채워나갔던 시간들. 목표지점 하나만을 만들어 놓고, 그 목표를 향한 시선 외에는 없는 삶을 살아내고 있었던 듯 보였다. 그러던 순간,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상황의 변화가 자신의 삶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모든 것을 한순간 뚝, 멈추게 된 것이다.
멈춘다고 금방 멈춘 자신을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한참을 가만히 있어봐야, 멈춰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멈춘 후에야 가만히 나를 살필 수 있다. 어디에서 어느 만큼의 통증이 자라고 있었는지를. 그 통증이 어떤 상처를 만들었고 그 상처는 얼마나 있어야 아물 수 있는지를 말이다. 락영이에겐 그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엄마에게도 또 아빠에게도. 지유에게도 마찬가지.
정지유도, 너도, 나도 각자 아무도 모르는 사정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잖아. 우리 셋뿐만이 아니고 모두가. 모두가 공평하게 외로워.(170쪽)
김도영의 말이 딱 맞다. 남들은 모르는 사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거고, 그런 사정 안에서 우리는 모두 공평하다. 그러니 누가 더 나은 삶인지 더 못한 삶인지를 저울질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 모두 외로우니까. 하지만 그런 외로움을 각자 갖고 있다는 공평함을 알기에 또 괜찮은 것이기도 하다. 누구나 나만큼의 외로움을 갖고 있다는 것에서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하니까. 그런 안심을 발판삼아 다시 그 다음의 외로움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결심을 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첼시 호텔이 필요한 것 같다. 각자의 외로움을 한 곳에 모아 모두의 외로움을 승화시키는 공간,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또 그런 곳 한 군데 정도는 있어야, 우리 삶이 쉼과 멈춤을 잠시 허락해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다시 문을 열고 나와 또 가던 길을 갈 수 있을 테니까.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끝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공간으로의 첼시 호텔, 기꺼이 문을 열고 들어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