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모든 공이 좋아! 도넛문고 12
이민항 지음 / 다른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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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모든공이좋아 #이민항 #다른출판사 #서평단 #서평 #책추천

야구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즐겨보지도 않는다. 야구에 대해 모르지는 않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야구에 대한 관심은 적은 편이다. 만약 야구를 좋아하지 않아서 이 책을 읽을 수 없는 거라고 한다면 진작에 이 책을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은 입장에서 본다면, 이 책은 굳이 야구 이야기라고 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저 야구는 거들 뿐, 진짜는 야구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마치 말장난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진짜 이 아이들의 이야기다. 이 아이들이 어떤 마음을 먹고 또 어떤 내일을 꿈꾸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 면에서 참, 건강한 이야기다.

희수의 루틴이 재밌기는 했다. 처음에는 대윤이처럼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희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모르지 않기에 희수의 루틴이 그저 웃기기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짠하고 안쓰러운 느낌이 들기도. 무언가에 대한 간절함이 어떤 결심과 행동을 만들게 되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으니까, 희수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희수에게 있어서 야구는, 그저 하기 위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꼭 해야할 수밖에 없는 전부일 테니까 말이다. 그런 마음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비춰질 지에 대한 것조차 제대로 생각하지 못한 채 자신의 일에 전부를 걸고 있는 희수. 그런 희수에게서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그럴 때가 있다. 나에 대한 생각이 너무 무거워 그 외에 다른 것을 차마 함께 생각할 수 없는 순간. 그런 순간은 아무리 다른 이가 곁에 있어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도 한다. 어쩌면 희수가 그런 마음이었지 않았을까. 너무도 절실한 마음에 주변 누구도 풀어줄 수 없었을 것이다. 나 하나를 품는 것조차 버거웠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 또한 너무도 당연한 일. 그리고 보통은 이런 일이 반복되며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또 좌절하게 되는 순서로, 그마저도 갖고 있던 자신감을 서서히 잃게 되는 것이고.
하지만, 희수에게는 대윤이가 있었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조금이나마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순수하고도 정직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대윤이. 희수에게 있어서 대윤이와의 만남과 조합-보조 배터리-은 다행한 일이었고,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고 포기하려는 순간, 다시 해볼 수 있는 마음을 먹을 수 있도록 자극해 준 고마운 존재이기도 했다. 가만 보면, 친절한 것보다 냉정한 것이 때론 더 나을 때도 있다는 것을, 이 아이들을 보며 알게되기도 했다. 정확하게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때론 무척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것을, 대윤이가 희수에게 해주는 여러 조언과 도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 자주 하게 되는 생각인데, 왜 꼭 이런 시련이나 고민을 통과해야만 다음으로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바로 그거다. 힘든 시기를 지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는 것처럼, 한번씩은 꼭 힘든 과정을 견디고 버텨 통과해야만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특히 청소년 시기의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이 과정이 꼭 지날 수밖에 없는 통과의례와 같아서 안 거치고는 어른이 될 수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굳이, 이런 과정을 잘 통과해야만 하는 것일까. 안 겪거나 혹은 통과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의 수는 왜 없을까. 희수에게도 또 대윤에게도 그리고 그 외 많은 청소년들에게도, 이들 모두에게 이런 과정이 어떤 상처를 만들고 또 그 상처가 아물면서 어떤 또 다른 사건들을 마주하게 될지. 그 마주하는 시간이 너무 깊은 상처를 만들어 그 상처가 오래도록 남지만 않는다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럼에도 여전히 변함없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또 어떤 것을 향해 나아가야할 것인가를 놓치지 않는다면 결코 자신의 목표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라는 거다. 희수가 여전히 야구를 할 수 있었던 힘은, 다른 무엇보다도 희수 본인이 자신의 마음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려고만 하고 또 자신만의 것을 찾지 못했다면 그 다음의 희수는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희수는, 자신이 무엇을 잃지 말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노력을 이어나가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며 놓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방향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고달플 것이다. 쉽지 않을 것이고. 건너야 할 장애가 무척 많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계속 새로운 상처가 남을 수 있다. 그럼에도! 희수는 그 다음을 향해 달려나갈 것 같다는 믿음이 있다. 넘어져보았기 때문에 어떻게 일어나면 되는지, 그 방법을 어떻게든 찾을 것이다. 그러니, 그것만으로도 됐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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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골동품점
범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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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골동품점 #범유진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0기 #서평단 #서평 #책추천

우선, 재밌다. 무척 재밌다. 하나 하나의 이야기가 넘어갈 때마다, 그 다음이 궁금해 마음이 급해졌다. 깔깔거리며 웃는 그런 재미가 아니라, 슬그머니 파고드는 은근한 재미가 있었다. 유쾌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속 시원하기도 해지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어느 지점을 겨냥한 이야기인지 그 방향을 찾아 따라가다보면 만나게 되는 답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뒤로 갈수록 읽을 수 있는 책장이 줄어드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이야기가 무척 촘촘하게 짜여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투루 앞과 뒤를 맞춰놓은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된 이야기의 구조 속에서 각 인물들의 말과 행동이 맞아 떨어져나간다는 느낌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만났을 때 독자는 기분이 좋아진다. 쿵짝이 맞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각 인물들 간의 관계가 얽혀들면 들수록, 이야기가 절정으로 가면 갈수록 오히려 불안감은 줄어들고 기대감이 더 커졌다. 그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풀려나갈지에 대한 궁금증과 흥미가 커지면서,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그리고 제일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권선징악이었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 어떤 마음으로 살았느냐가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자신의 잘못은 반드시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것을 이 소설에서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해를 가하고 그럼에도 악행을 저질렀다는 인식조차 없는 이들에 대한 징악이 이 소설에서 보였다. 우리 고전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제의식을 현대적 감각으로 다시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통쾌함이 느껴졌던 이유. 분명 잘못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어떤 방법으로 그들의 잘못을 알려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게 해줄 수 있을까, 억울하고 속상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데, 그런 모든 것을 한순간에 풀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이것이 이 소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이었다.

물건에는 그 물건을 사용했던 사람의 기운이 깃든다고 생각한다. 특히 오래될수록 더욱 간절하게 그 기운이 남게 되는 건 당연할 것이다. 누군가가 소중하게 사용하고 간직했던 물건, 그리고 그런 물건을 통해 많은 시간과 기억이 쌓이게 된다면, 그런 물건을 통해 말하고 싶은 혹은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담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할 듯. 호미가 그런 역할을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청소라고 하지만 정화의 느낌이었다.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것. 우리가 한바탕 울어 눈물을 흘린 후 속이 시원해지는 감정 정화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물건에 깃든 이야기를 풀어내고 정화하여 청소가 이루어지고 나면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들고 아팠던 감정들이 말끔해질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런 감정이 다른 누군가를 향해 또다시 악한 기운을 만들어내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이 호미가 하고 있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호미의 역할이 신의 영역 안에 들어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극히 인간의 영역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험하다고 하는 물건을 통해 벌을 주려는 것이라고 보단 그 물건을 통해 사람들에게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를 보여주기만 할 뿐이라는 것. 가만히 보면 이유요가 하고 있는 것은 그저, 그 물건들이 다니는 길을 따라 가만히 지켜보며 그 물건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만 해주고 있을 뿐이다. 그 이상을 관여하지도 또 직접 힘을 행하지도 않는다. 가만히 이야기를 전해주며 또 그 사람과 물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일. 어쩌면 들어줄 수 있는 힘이 강하기 때문에 이 호랑골동품점을 이끌어나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호랑골동품점이 보여도 들어가보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각 물건들 하나하나에 깃든 이야기를 내가 다 감당할 자신이 없다. 호미이기 때문에 이 모든 이야기를 다 품고 지낼 수 있는 것일 듯.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무수히 많은 물건들이 나에게도 있다. 그리고 그 물건 하나하나를 주의깊게 들여다보며 생각한다. 이 각 물건들에도 혹시 나의 이야기가 담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 물건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이 물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또 보듬어주어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물건들에 담길 나의 이야기가 무엇이 될 지는 나에게 달려 있다. 그러니 나 또한 나의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해야겠다. 앞으로 어떤 물건이 또 나에게 오게 될 지도 모를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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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클 - 제18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34
최현진 지음 / 창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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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클 #최현진 #창비 #가제본서평단 #서평 #책추천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왜 누구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시행착오라는 것을 해야 하는 걸까. 왜 고난과 위기의 순간을 반드시 넘어야만 그 다음으로 향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힘든 시기를 겪지 않고도 순조롭게 그 다음을 꿈꿀 수는 없는 걸까. 아픈 다음에야 그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만들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특히, 지금의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자주 들었다. 힘겹게 이 시간들을 참고 견뎌야만 한다는 강박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듯한 아이들. 이런 과정 없이 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유리가 안고 있던 무게는 무겁기만 했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겉으로는 티내지 않으려는 건 유리뿐만이 아니었다. 할머니도 엄마나 아빠도, 이미 5년 전부터 늘 무겁게 내리 누르는 무게감을 덜어내지 못하고 빛의 방향도 찾지 못할 만큼 어두운 터널을 걸어가는 기분으로 한기를 참아내고 있었다. 죄책감. 살려내지 못했다는, 보호하지 못했다는, 그리고 나 때문에의 죄의식이 결국 이들 모두에게 힘겨운 시간을 견뎌내라고 강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들이 증상으로 나타나게 되고 유리의 눈에 맺히는 눈송이가 되었을 것이다.
어른은 어른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참고 견디는 쪽을 택했다. 물론 그 마음 안에서 어떤 소용돌이가 치고 또 어떤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 곪게 만들었을 지는 짐작할 수 없다. 다만 유리의 마음을 통해 그 상처의 깊이는 무척 컸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동생 영을 사랑하지만 차마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아픔. 겁이 나면서도 슬프기도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 상황은 스스로 극복해내기에 너무 버거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이 상황에 있는 모두가 아프고 각자 자신의 상처들이 너무나 컸으니까. 그저 이 시간을 견디는 것. 이 상황을 버티는 것으로 서로의 안부를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배영' 하고 부르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상상 속에서는 영이 '왜에!' 하며 짜증을 낸다. 상상 속의 영은 아직도 어린 내 동생이다.(64쪽)

바보 배영. 바보라고 하면서도 그런 동생의 행동을 따라하고, 늘 자신의 생각에 동생의 생각을 덧붙이며, 동생의 시간을 자신의 시간과 함께 계산하는 유리야말로 사실은 바보다. 하지만 이런 바보여서 다행이다. 이런 바보였기 때문에 기 시간의 방황에서 결국 다시 어느 길을 찾아가야 하는지를 잘 찾아낼 수 있있으니까.

이 소설을 읽으며 울컥하게 되는 장면들이 있었다. 왜 순간 눈물이 차오를까, 왜 감정이 흔들릴까, 왜 이 부분이 안쓰럽고 속상할까. 별다른 말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저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정도만으로도, 그저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찡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건너야 할 삶의 장애물 같은 지점들은 이렇게나 많은 감정들을 만나 쌓이게 만드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들을 문득문득 마주하면서 성장하고 커 나갈 수 있는 거구나 싶었다. 결국 우리가 나아가는 삶이란 결국 이런 과정이 쌓여서 그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단단함을 선물하는 것이구나. 그래서 아픔과 슬픔, 역경이나 시련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겠구나.

눈의 결정은 하나같이 다른 모양을 지니고 있다. 어느 것 하나 같을 수 없으며 우리의 삶과 인생, 우리의 모습 또한 같은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눈의 결정(結晶)이 결정(決定)되어 내리는 것이 아니듯,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어느 것도 결정(決定)된 것은 없다. 그저 자신만의 결정(結晶)을 만들어나가면 되는 것일 뿐. 그러니, 이제 알게 된 이상 묵묵히 나아가는 수밖에. 그러다 또 다른 지점을 만나게 될 지라도, 이젠 그런 지점들을 잘 건너갈 수 있게 될 테니, 걱정 없다. 이런 마음으로, 유리와 시온이를, 그리고 엄마와 아빠를, 할머니를, 그리고 우리의 바보 영을 응원한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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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아 - 제8, 9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 사계절 1318 문고 142
채은랑 외 지음 / 사계절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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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않아 #채은랑 #연어름 #김두경 #존프럼 #이새벽 #나현 #사계절출판사 #한낙원과학소설상작품집 #사뿐사뿐 #교사서평단 #서평 #책추천

과학소설상 작품집다운 이야기들 가득이었다. 신기하고 신비롭고, 예상하지 못하는 엉뚱하기도 또 놀라운 이야기들이었다. 우리의 미래와 삶이 어떤 모습을 하게 될 지 아무도 알 수는 없지만, 예상이 이와 비슷하다면 우린 과연 어떤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며 살아야 할까. 어떤 모습을 유지하고 또 변화시켜나가기 위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버리지 말아야 할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미래 사회를 소개하고 있는 글들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우리의 미래는 정말, 사람이 사람과 소통하지 못하는 사회가 기반이 될까. 코로나19 때의 사회처럼 우린 각자의 개인적인 삶 외에 누구와와 함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사회를 살아가게 될 것인가. 생각도 고민도 많아지는 부분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이 소설들을 읽으며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다. 결국, 아무리 우리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고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도래한다 해도, 결국 직접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고 소통하고,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겠다는 생각이다. 이 소설들 안에서는 여러 다양한 사회적 문제와 상황에 의해 각자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의 삶과 모습, 그리고 그런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과 방향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결같이, 사람을 찾고 싶어하고 그리워하고, 그 사람과의 시간을 애타게 소망하고 있었다. 가장 안전하고 평온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 사회가 변화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변화에서 결코 버릴 수 없는 것이 사람과 사람의 유대이고 우정, 사랑이며 또 약속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 동안의 오랜 시간 속에서 켜켜이 쌓였던 경험과 기억이 바탕이 되어 마들어지는 것을 테고 말이다.

알겠다. 언니는 말끔히 사라지지 않았다. 언니가 있었다는 걸 내가 알았다. 그리고 이제, 내가 언니의 방 문을 열심히 두드릴 차례였다.(56쪽)
하지만 준희도 연우도 알았다. 가장 강력한 보안 프로그램은 '함께'인 것임을.(92쪽)

분명 현재의 우리 사회도 과거에 비해 굉장한 첨단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져 있으며, 앞으로는 더 발전에 발전이 거듭되면서 변혁에 가까운 변화가 일아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인간의 수명 연장이나 로봇의 상용화이 뒤따르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사회 환경은 점점 극단의 상황으로 몰리게 되면서 우리는 가상의 공간에서의 삶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이 모든 것은 자연스런 삶의 형태가 될 것이다. 의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절대 놓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살아가는 데 거창한 목표나 사명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좋아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길고 긴 삶이 지루하거나 혼란스러울 때도 있겠짐나, 나는 이미 방법을 알고 있었다.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기나긴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203쪽)

어떤 삶을 살아나가고 싶은 가에 대한 스스로의 의지와 생각. 사회의 변화와 전환은 무척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에 따른 자신의 생각과 가치도 따라 바뀔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니까. 어쩌면 끊임없이 의심하고 확인하고 또 혼란스러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삶을 떠나 삶으로 살아낼 것인가의, 스스로의 의지와 각오. 그것이 사회의 시스템과 상관없이 자신을 지켜나갈 수 있는 힘이 될 테니까. 그래야 절대 열어보지 않을 것 같은 문도 열고, 오랜 시간 쌓아왔던 자신의 정체성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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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골목의 끝에, 첼시 호텔 문학동네 청소년 76
조우리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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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골목의끝에첼시호텔 #조우리 #조우리장편소설 #문학동네 #서평단 #서평 #책추천

어딘가 골목 끝까지 걸어갔을 때 마주치게 되는 곳이 첼시 호텔이라면, 과연 그 문 안으로 들어설 용기는 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먼저 든다. 그렇게 끝까지, 정말 더 이상 갈 수 있는 곳이 없을 것 같은 그 끝까지 다 갔을때, 열고 들어설 수 있는 문이 첼시 호텔이 유일하다면, 과연 그 끝에서 주저앉게 될지 혹은 이곳의 문을 열지. 다시 돌아설 힘도 남아있지 않고 또 그렇다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고 뾰족한 수가 나오지도 않을 테니, 어쩌면 낯선 문을 여는 선택을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 문 안에 어떤 장면에 펼쳐지고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 떨림과 기대를 안고, 살며시 그 문을 열게 되겠지. 그리고 그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그 다음은 첼시 호텔에 그저 나를 맡기는 선택을 하게 될 듯하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곳에서 나오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언제까지고 그곳에 첼시 호텔이 있는 한은.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 침묵을 지우기 위해 맥주를 마시는 것이다. 마치 쉼표처럼. 다 마신 병을 쿵 내려놓으면 마침표.
나는 그들이 만드는 문장과 쉼표, 마침표를 바라본다. 과연 문장이 길어질수록 취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65쪽)

어른이라고 실수가 없고 고통이 없고 또 포기가 없을까. 그저 그렇게 보이지 않게 위해 애쓰고 괜찮은 척을 하는 것일 뿐. 계속 나아갈 힘이 언제나 가득 채워지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저 어떻게든지 나아가는 삶을 멈추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지. 하지만 그런 나아감에 있어서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그리고 멈출 수 있는 핑계가 필요하다. 그냥 한순간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있을 수는 없으니까. 잠시 쉬고 또 멈추는 핑계를 대기 위해, 첼시 호텔이 필요한 것이다.
하물며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더, 쉬고 멈추는 핑계가 필요할까. 실제로는 그렇게 잠시 서서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어른보다 더 많이 필요할 것이다. 문제는 그런 때 댈 핑계가 많지 않다는 것. 핑계를 대는 순간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면 걱정 근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어느 누구에게서도 이해받지 못하고 외로운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감히 섣불리, 핑계를 만들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난 늘 잘 참고 견디는 성격이었다. 그게 어렵지도 않았다. 초등학교 1하면 때 아이들이 책상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해 돌아다니고 바닥을 기어다닐 때도 반듯하게 앉아 있는 게 더 쉬웠다.(140쪽)

락영이가 그랬던 것 같다. 그저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야만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주변을 돌아볼 여유조차 갖지 못했던 시간의 연속. 반듯함이 자신의 몫인 듯 의심하지 않고 채워나갔던 시간들. 목표지점 하나만을 만들어 놓고, 그 목표를 향한 시선 외에는 없는 삶을 살아내고 있었던 듯 보였다. 그러던 순간,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상황의 변화가 자신의 삶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모든 것을 한순간 뚝, 멈추게 된 것이다.
멈춘다고 금방 멈춘 자신을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한참을 가만히 있어봐야, 멈춰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멈춘 후에야 가만히 나를 살필 수 있다. 어디에서 어느 만큼의 통증이 자라고 있었는지를. 그 통증이 어떤 상처를 만들었고 그 상처는 얼마나 있어야 아물 수 있는지를 말이다. 락영이에겐 그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엄마에게도 또 아빠에게도. 지유에게도 마찬가지.

정지유도, 너도, 나도 각자 아무도 모르는 사정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잖아. 우리 셋뿐만이 아니고 모두가. 모두가 공평하게 외로워.(170쪽)

김도영의 말이 딱 맞다. 남들은 모르는 사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거고, 그런 사정 안에서 우리는 모두 공평하다. 그러니 누가 더 나은 삶인지 더 못한 삶인지를 저울질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 모두 외로우니까. 하지만 그런 외로움을 각자 갖고 있다는 공평함을 알기에 또 괜찮은 것이기도 하다. 누구나 나만큼의 외로움을 갖고 있다는 것에서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하니까. 그런 안심을 발판삼아 다시 그 다음의 외로움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결심을 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첼시 호텔이 필요한 것 같다. 각자의 외로움을 한 곳에 모아 모두의 외로움을 승화시키는 공간,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또 그런 곳 한 군데 정도는 있어야, 우리 삶이 쉼과 멈춤을 잠시 허락해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다시 문을 열고 나와 또 가던 길을 갈 수 있을 테니까.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끝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공간으로의 첼시 호텔, 기꺼이 문을 열고 들어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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