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 어느 30대 캥거루족의 가족과 나 사이 길 찾기
구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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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30살을 훌쩍 넘겼다. 40도 훌쩍 넘겨 50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도 이 이야기에 자꾸 마음이 쏠리고 공감이 가는 건 무슨 이유일까. 나의 30대를 떠올려봤다. 나의 독립은 언제였나 생각해봤다. 이 책대로라면 나는 30대에 독립을 한 경우이지만, 이게 진짜 독립이 맞나 싶은 생각도 든다. 젊을 때는 혼자의 삶에 대한 로망으로 독립을 꿈꾸기도 했지만, 지나와 생각해보면 독립은 최대한 미루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생각도 든다. 가끔, 엄마 밥과 잔소리가 그리울 때가 있으니까.

이 책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책에서는 '온실 속 화초'라고 표현했지만, 그런 사랑 안에서 지금에 이르게 된 작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캥거루족이라고 했지만,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것이 무조건 부모에게 자식이 의지하고 살아가는 형태로만 생각하는 것도 한쪽 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란 생각도 든다. 가족의 삶인 것이지, 마치 성인이 되고 어른이 되었다면 반드시 독립을 이루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부모와의 시간을 더 오래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꼭 독립해야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야하지 않나 싶다. 독립이라는 것을 경제적인 자립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더욱, 자립까지 해야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캥거루족이라고 했지만 부모의 품 안에서 마냥 보호만을 받고자 하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함께 모여 아웅다웅거리며 지냈던 시절이 언제였나 싶은 아른함도 함께 느껴진다. 나의 가족이라는 개념이 지금은 나를 부모로 두고 이루어지는 가족의 개념이 되어 버렸고, 이젠 나의 자녀가 독립을 하거나 혹은 안 하거나의 시기가 되어 버렸으니 더욱 책 속에 그려지는 가족의 삶이 그리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30대의 삶이 어떤 고민과 갈등을 안고 있는지도 짐작이 간다. 막 사회에 발을 내딛게 되고, 어느 정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답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야 할 시기. 얼마나 발빠르게 이 사회의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런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혼자 정체되어 뒤로 밀린다는 불안감을 늘 안고 살게 되고,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이루어놓은 것이 없어 갈팡질팡하면서 시간만 허비하고 있는 듯한 마음에 혼자 우울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때야말로 지지와 응원이 필요할 때.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에 '그래라.'라고 선뜻 말해줄 수 있는 든든한 가족이 있다면 이보다 더 독립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또 있을까. 소중한 '수호천사들'.

제목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책을 다 읽고 답을 알았다. 답은,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미 작가는 이 답을 처음부터 알고 이 책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글과 그림이라고 했고 이 역시도 작가는 이미 독립하지 않아도 된다는 전제를 만들어 놓고 가족을 소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독립을 시기가 정해져 있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등떠밀려 해야하는 숙제같은 것으로 정의할 필요가 없다. 만약 작가와 같은 마음이라면, 평생을 독립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때의 독립은 꼭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를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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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 붕괴
해도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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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프로필을 안 볼 수가 없었다. 이런 전문적인 과학적 지식을 듬뿍 담아 쓰고 있는 소설이라니,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는 소설들이었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며 우주과학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가 작가에 대한 설명 첫 문장이다. 아! 한방에 납득이 가는 설명이었다. 그리고 또 한번 생각했다. 우주과학 연구원이면서 소설을 쓰고 있다고 하지 않았다는 것. 괜히 마음에 들면서도 소설을 더 잘 읽어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소설가의 소설을 처음 읽었지만, 앞으로 계속 이 소설가의 소설을 찾아 읽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챙겨 읽어야 할 소설가 목록에 추가다.

과학을 잘 모른다. 하지만 요즘 들어 과학을 잘 알고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특히 이런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 결국 과학에 의해 좌우되지 않을까 싶어서 더욱 그렇다. 이 소설집의 소설들이 그랬다. 앞으로 우린 어떤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인가, 우리가 살아갈 세상에서 과연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우리의 다음 세상을 준비하고 대비해야 할 것인가, 이런 세상을 향한 과학의 발전은 어디까지 이루어지게 될 것인가. 소설을 읽었지만 자꾸만 우리의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분명 지금의 지구는 달라질 것이다. 달과 우주, 천체의 움직임에 따라 우리의 삶의 패턴과 양식은 달라질 것이다. 인간에 대한 많은 과학적 실험도 늘어날 것이고 심지어 복제까지도 가능한 시대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과학적 현상 안에서 신비하면서도 무서운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마지막까지도 잃지 말아야할 것이 인간다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유토피아, 결국은 어디에도 없는 공간에 대한 환상은, 진짜 환상이기만 할 뿐이어서 더 이상 진정한 삶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의미심장한 부분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가짜의 세상이 붕괴되고 진짜의 세상이 다시 오기를 바라게 되는, 지금의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듯해 섬뜩하기도 했다. 기계는 발전할 것이고 요즘 흔히 많이 언급하게 되는 AI의 시대는 상상 그 이상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 변화가 어떤 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인가는 어쩌면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지점이 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의 중심에는 분명 인간이 있다는 것. 인간의 마음이 있고 인간의 사고와 가치관이 있으며, 얼마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잃지 않고 있는 것인가가 중요해 보였다. 결국 최후의 상황에서 인간은 자신을 위한 잔인함을 드러낼 수도 있다는 것.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남을 해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인간의 추한 속성이 여지없이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두 그렇지는 않다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할 지점이기도 했다. 마지막까지도 그 존재를 소중히 하기 위한 선택을 했던 이들의 이야기 또한 의미있게 다가오기도 했다.

소설을 읽은 게 맞다.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내용만 보면 재밌다고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빠져들어 읽었다. 우리의 미래 사회를 다루는 소설이나 SF소설들을 지금껏 많이 읽어왔지만 이 소설들은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가만히 아무것도 모른 채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만 솔깃해서 살아가다가는 나의 진짜 삶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더욱, 우리 사회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과학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세상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 중 큰 힘을 갖고 있는 것이 과학의 발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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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지 할머니 건전지 가족
강인숙.전승배 지음 / 창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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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지할머니 #강인숙 #전승배 #그림책 #창비 #추천도서 #책육아 #독서 #서평단 #서평 #책추천

동구가 동구 할머니를 찾아가듯, 건전지 어린이들이 건전지 할머니를 찾아가듯, 나도 할머니를 찾아가 사랑을 듬뿍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뭉클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그림책을 읽어나가는 내내 잔잔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든든한 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들의 마음이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덩달아 어깨를 바로 펴고 힘을 주어 단단해져야겠다는 마음을 먹어 보게 되었다. 할머니들의 사랑의 힘이 나에게까지 힘을 주는 듯한 기분이었다.

동구 할머니와 건전지 할머니의 손발이 척척 맞아 떨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힘을 발휘해야 하는지를 특히, 건전지 할머니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동구에게, 그리고 동구 할머니에게 일어나는 일에 건전지 할머니가 펼치는 활약은 놀라운 감탄을 자아내기에 딱 알맞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들을 지켜내겠다는 다부진 마음과 각오가 한눈에 확인되는 순간들이었다. 특히 위기의 상황에서 발휘되는 능력은 어느 때보다도 건전지 할머니의 힘이 왜 필요한 지 한번에 알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 이런 할머니라면 마음을 놓아도 좋을 것 같다. 또한 동구 할머니도 예사롭지 않았다. 동구에게 있어서는 둘도 없는 친구이면서 보호자이면서, 사랑을 듬뿍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려주는 존재였다. 따뜻하면서도 강한 우리의 동구 할머니. 이런 할머니라면 동구도 마음껏 커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두 할머니가 만났으니, 이들 같은 누구든 안전할 수밖에. 두 할머니의 조화가 예사롭지 않으면서도 괜히 마음 뿌듯, 기분 좋아지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할머니들만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것은 아니다. 동구도, 그리고 건전지 아이들도 할머니들에게 힘을 준다. 어쩌면 두 할머니에게는 이 아이들이 찾아와 기쁘게 반겨 안기는 것만으로도, 함께 즐겁게 웃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만으로도, 그저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만으로도 할머니들을 기운나게 만드는 것일 수 있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와의 시간이 더할나위 없이 기쁘고 행복할 수 있는 건, 그런 서로의 마음이 서로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고, 그런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동구 할머니도 건전지 할머니도 오히려 힘이 불끈 솟고 기운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동구 할머니의 집 마당에서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누는 와중에 홀로 돌아가는 건전지 할머니가 조금은 쓸쓸하단 생각을 했다. 모두들 하루를 잘 마치고 모여 하하호호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중에 건전지 할머니만 혼자 남겨졌다는 생각에 외로워 보였다. 하루의 일을 잘 마치고 돌아서는 홀가분함보다는 조금은 허전한 느낌이 더 컸다. 함께하지 못하고 혼자만 떨어져 돌아오는 발걸음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런 건전지 할머니에게 쏟아져 들어온 건전지 아이들! 이때 제일 활짝 웃었던 것 같다. 건전지 할머니에게도 기운을 듬뿍 나눠 줄 아이들이 찾아왔다는 것만으로도, 그래서 북쩍이며 시끌시끌, 할머니와 알콩달콩하는 모습을 보며 되려 안심을 했던 것 같다. 그럼, 뭐니뭐니해도 이렇게 정신없어도 함께 할 때 기운이 더 나는 법이지.

"으라차차! 할머니 충전 완료다."

할머니들을 '충전'시켜드리는 것이 어쩌면,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도 당연해서 그동안 쉽게 잊고 있었던 것. 그리워하고 보고싶어하고, 그래서 만나 반갑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것.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때마침 5월이고,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에 충분한 날들이 가득하니, 이번 기회에 우리 할머니들 충전 좀 시켜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덩달아 할머니의 기운도 좀 얻어 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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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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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다음 #희정 #장례 #죽음 #르포르타주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0기 #서평단 #서평 #책추천

장례식장을 다녀온 다음에는 꼭 화장실에 먼저 들렀다고 집에 들어오라고, 부모님이 당부하셨다. 어렴풋이 그게 집 안으로 함께 들어오지 않고 하려는 미신의 행동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말을 지키려고 했다. 물론, 언젠가부터는 지키지 않고 있지만. 가깝게 외삼촌은 장례식장만 다녀오면 며칠 크게 앓아 누우신다. 거의 실신할 정도로 많이 아파 몸을 움직이지 못하신다. 어릴 적 장례식장에서 몹쓸 것을 보았다고 표현하시는데, 그 이후로 어떤 장례식장이든 그렇다고 하셨다. 그래서 무섭다고. 그럼에도, 가족 친지의 장례식장에 빠지지 않고 오신다. 그게 할 도리라면서. 장례식장은 늘 익숙해지지 않는다. 죽음 또한 삶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삶을 대하는 자세가 이토록 엄숙하고 슬프고 무겁고 아플 수가 없다. 물론 이보다 더 힘겨운 삶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무게로 보았을 때 죽음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아직까지는. 그래서 죽음 이후를 다루는 이 책도 처음에는 너무 힘겹게 읽어 나갔다. 괜히 이 책을 펼쳐 들고 있으면 마음 또한 슬퍼지는 듯했고, 마음을 경견하게 다잡아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책 읽기의 속도가 조금 더 더뎌질 수밖에 없었던. 죽음은 아직까지도 나에게는 커다란 또 다른 삶의 숙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장례 노동 현장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장례를 겉으로만 그리고 어쩌다 가끔씩만 생각하게 되는 우리와 그들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게 되었다. 일이라는 말에 공감이 갔다. 언젠가 지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늘 슬프고 아픈 사람들만을 보며 일을 해야 하니,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마음이 힘들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또 그렇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이 되고 또 그 이상의 사명이 되면, 마냥 감정으로만 그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닌, 일로서 혹은 전문가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이 더 커질 것 같다. 그러니 누구나 자신의 일 앞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몸과 마음을 모두 쏟는 것처럼, 이들도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에도 동의한다. 일로서 접근한다고만 생각하면 누구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일도 일 나름일 것이다. 누구라도 쉽게 이 현장에 들어가 일하겠다고 말하기가 과연 쉬울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이 일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 오랜 세월 누군가를 위한 마음을 내려놓지 않고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래야만 한다는 자신들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이들의 마음이, 단순히 일이라는 것을 넘어선 또 다른 차원의 정성으로 보였다. 정성. 어쩌면 이 말이 맞는 말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정성을 들이는 것, 정성을 다하기 위해 작은 것까지도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하려는 바로 그 마음.
죽은 이와 산 자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도 맞는 말이다. 우리가 지금 숨쉬며 살고 있는 이 공간 아래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죽은 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린 그런 죽은 이들 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비어있는 유리잔에 비유해서 이야기하고 있듯 비어있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왔던 시간들 속에서 태어나고 죽는 과정이 반복되어왔을 것을 생각해보면, 당연하게도 비어있기만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공존. 이 말이 맞아 보인다. 비어있든 채워져있든 결국 어떤 식으로든 함께하고 있다는 것은 맞는 것 같다.

나눔과 나눔이 하는 건, 장례라는 예식을 건네어 존엄을 지키는 일이다.(282쪽)

'왜 장례를 치르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존엄'. 존재를 인정하는 일. 요람에서 무덤까지라고 했던 것처럼, '무덤'까지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할 수 있는 존엄이 장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 존재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것, 그것이 장례겠구나. 그러니, 장례가 필요하겠구나, 누구나에게 차별 없이 평등하게 말이다.

'고복, 반함, 성복, 발인, 반곡, 이제, 졸곡'. 장례가 어떤 과정과 순서로 진행되는지에 대해 진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르포르타주의 장점이기도 할 텐데, 책 속에서만 보아오던 장례 문화의 각 명칭이 실제 사람 손에 의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또한, 사는 것의 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이와 산자의 연결, 어찌보면 죽은 이가 산 자를 살리는 것이 산 자의 손에 의해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어쩌면, 여전히 우린 장례를 통해 죽은 이를 잘 보내기 위한 과정을 거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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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힐 스토리에코 2
하서찬 지음, 박선엽 그림 / 웅진주니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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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힐 #하서찬 #박선엽 #청소년소설 #웅진주니어 #가제본서평단 #서평 #책추천

섬뜩하다. 공포스럽기도하다. 이런 상황에 놓이는 상상조차 무섭기만 할 정도이다. 이 상황에 놓인 지훈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과연 무엇이어야 할까. 가정에서의 폭력, 믿고 의지했던 형의 사고, 낯선 나라에서의 괴롭힘과 친구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마치 이 소설을 읽는 지금, 내 눈 밑으로 입 안으로 서걱거리는 모래가 들어와 까끌거리는 듯 불편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지훈에서 남은 선택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지. 이 아이에게 있어 어떤 희망이라도 존재하는 것이 맞기는 한 것인지.

쥐도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쫓아야 한다. 어느 한 구석이라도 숨 쉴 수 있는 구석이 있어야 한다. 지훈에게는 형이 그런 공간이었고, 형과 찾은 동굴이 그런 집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지훈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모래 구덩이에 몰아놓고 올라오려할 때마다 구덩이는 점점 힘없이 무너져 더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함정과 같은 것이다. 이 구덩이에 몰아놓은 것은 결국 어른들일 것이다. 어른들의 문제가 고스란히 지훈에게 닿았고, 그런 과정에서 지훈이 할 수 있는 것은 더 깊은 구덩이에 빠지는 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요리사도 조각가도 포기했어. 꿈보다 탈출이 먼저야. 너도 데려갈게. 야자수 밑에서 콜라나 마시자.(26쪽)

아이들의 꿈 이야기가 이렇게 치열해야만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의 상황에서 기댈 수 있는 희망이 이것 하나뿐이라는 사실에 몸서리가 쳐질 정도다. 어떻게해서든지 도망치기 위한 방법만을 머릿속에 가득 담고 살아가야 했던 현실에서 과연 형은 벗어난 것이 맞는지. 그런 형을 지켜보며 지훈 또한 현실에서 어느 만큼이나 도망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깜깜한 암흑같은 느낌일 뿐이다.

하지만, 지훈이 내내 이렇게 도망만 치면서 살 수만은 없을 것이다. 계속 모래 구덩이를 밟을 때마다 무너지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모래 구덩이지만 그 사이 어디라도 조금 단단한 곳을 밟고 올라갈 수 있는 땅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 구덩이에서 진짜, 탈출을 해야 하는 것이다. 온 힘을 다해 도망치기보다는 다시 살기 위한 방향으로 온 힘을 다해야 한다. 과연 지훈은 그 방향을 잘 찾아 다시 달려나갈 수 있을지. 사실은,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방법을 잘 찾아 지금의 상황에서 빠져나오기만을 바라는 마음뿐이다.

덧-
이 아이들은 어쩌면 내내, 도와달라고 외치고 있었던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훈이 찰흙으로 조각을 하나씩 만들어 나갔던 것도, 라희가 '선배님'에 집착했던 것도, 사실은 살려달라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간절하게 외치는 말들이었던 것이다. 다만, 이 외침을 어느 누구도 들어주지 못했다는 것, 도움을 줄 수 있는 손길 하나 내밀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라희에게 지훈이, 또 지훈에게 라희가 그나마 나약한 손을 내밀어주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아이들이 서로에게 조금이나마 온기를 줄 수 있는 유일한 손길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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