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어디지?
파트리크 푸펠스키 지음, 유스티나 소코워프스카 그림, 김영화 옮김 / dodo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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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어떤 곳이어야 할까, 집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 집'은 왜 필요할까, 집이란 무엇일까, 진짜 집일 수 있는 조건을 무엇일까, 과연 집에 갈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의 답을 찾아보는 독서였다. 우린 흔히 힘들고 지칠 때 자주 '집에 가고 싶다'라는 말을 한다. 그만큼 집은 휴식, 안식, 편안함을 대표하는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아이들에게도 물으면 제일 가고 싶은 곳, 제일 하고 싶은 것이 집에 가는 것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과연 '집'은 어떤 곳이길래 우린 이토록 집에 가고싶어 하는 걸까.
집은,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안전하고 편안하다. 그렇기 때문에 집에만 가면 숨이 쉬어지고 몸의 긴장을 풀어낼 수 있다. 그래서 집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의식주가 기본이라고 하고 이 중 '주'의 집이 무척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집이 없어 집 밖의 생활을 해야하는 처지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겨운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자신의 집을 두고도 집 밖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조금 더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바로, 전쟁.

"맥스는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 살던 한 소년이 사랑으로 돌보던 달팽이야."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다. 무슨 이야기일 지 너무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가 났다. 왜, 아직도, 여전히, 우린 전쟁 중의 상황을 계속 보고만 있어야 하는지가 너무 답답했기 때문이다. 이건 맥스의 잘못도, 맥스를 키우던 소년의 잘못도, 그리고 이 도시와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잘못 없이 자신의 집에서 쫓겨나야 하는 상황이라니. 이보다 더 안타까울 일이 또 있을까.
집은 단순히 집이라는 물리적인 공간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집에는 가족이 살고,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끈끈한 관계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집이 무너지면 결국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무너지게 되어 있다. 집이 아닌 다른 공간으로 길 위의 생활이 시작되면, 그 길 위에서는 어느 누구도 다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 어려워진다. 함께, 서로, 다같이와 같은 말들이 통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달팽이 맥스나 거북 게르트루다가 자신의 집 혹은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을 등에 짊어지고 다닌다고 해서 다른 이들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강아지 조시카나 도마뱀붙이 코스텍처럼 어떤 것으로부터도 보호받을 수 없는 이들은 아무런 방도가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난 도마뱀붙이라서 등껍질이 없어." 이상하게 여긴 코스텍이 말했겠지.
"그럼 있다고 생각해 봐." 게르트루다는 이렇게 답하지 않았을까."

등껍질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생각의 문제이고 누구와 함께 하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즉, 집이 있어서 혹은 없다고 달라질 것은 아닌 것이다. 어떤 마음으로 누구와 함께 어떤 공간을 채워나갈 것인가가 중요할 것이다.
이 책 속의 이들은 모두 누군가로부터 버려진 이들이다. 사회적 상황과 사건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이들과 떨어져야 할 수밖에 없던 이들이 함께 모인 것이다. 이들은 과거 소중한 인연들과 안타까운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상황에서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무서운 상황에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용기는 서로가 함께 있을 때 낼 수 있었다.

분명 보호막이 필요하다. 외부의 공포와 시련을 막아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집이 될 것이고, 특히 그 집에 함께 살고 있는 누군가가 될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 함께 마음을 나눌 때 그 상황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생겨나기 마련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누구에게라도 안전하고 편안하며, 안심할 수 있는 공간의 '우리 집'이 있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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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의 정원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88
김혜정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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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의정원 #김혜정 #미래인 #청소년문학 #가제본서평단 #서평 #책추천

<솔라의 정원>이라고 해서 예쁘게 꾸며진 정원을 이야기하는 거겠구나, 생각했다. 마치 비밀 정원의 신비하고 궁금한 요소가 이곳저곳에 담겨있지 않을까 살짝 기대도 했다.

어머나, 이 집 화단 좀 봐. 어쩜 이렇게 잘 가꾸었을까. 길을 가던 사람들이 우리 집 앞에서 멈춰 서곤 했다.(...)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꽃과 나무들을 찾아 벌, 나비와 새가 날아오고 벌레들이 보여들었다. 길 잃은 개와 고양이도 찾아왔다.(...) 나는 우리가 하나의 풍경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가꾸고 보살피는 정원의 풍경 말이다.(16-17쪽)

하지만 이 정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정원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었다. 꽃보다 더 예쁘고 사랑스러운, 그래서 더 소중한 아이들이 '솔라' 할머니가 가꾸어 나가는 '정원'이구나 싶었다. 그런 면에서 '솔라의 정원'은 아름답고 멋지고 훌륭한 정원이었다. 모두가 모일 수 있는, 누구라도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그런 정원. 그리고 이것은 모두 솔라 할머니로부터 비롯될 수 있는 소중하고 값진 사랑이었다.

"뭐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그게 뭐예요?"
"자신을 사랑하는 거. 그러면 뭘 해도 잘할 수 있어. 사랑하는 자신을 위해 하는 거니까."
가슴 깊은 곳을 건드리는 말이었다. 모두 그 말을 곰곰 되새기는 표정이었다.
"또 있어. 지금처럼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거."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였다.(103쪽)

이 소설을 한 단어로 표현해보라고 한다면, '사랑'일 것이다. 어떤 가치보다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랑'. 솔라 할머니로부터 시작된 사랑은 결국 많은 아이들에게로 전달되었고, 그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들은 또다시 그 사랑을 나누고 가꿀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이때의 사랑은, 다른 사람들을 향하는 것 말고도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가꿀 줄 아는 마음을 포함한다. 그래서 이 아이들은 이런 사랑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에 더욱 자신을 바로 세우는 단단한 아이들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남들은 쉽게 말할 수 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고 가볍게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을 실천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또 다른 이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내 안으로 품을 줄 안다는 것 말이다. 특히 남이라고 생각하는 타인에 대한 것이라면 더욱 그럴 수 있다.

"개똥 철학자 아저씨. 우리 가족, 좀 이상하지 않아요? 할머니와 이모, 아이 다섯."
가영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이상하기는, 아름다운 가족이지."
가족이란 서로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 주고 돌보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꼭 혈연이 아니라도 가족이 될 수 있었다.(67쪽)

가족이란 개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우린 아직도 좁은 사고방식으로 가족을 생각하는 건 아닐지. 가족과 가족 아닌 자를 구분하고 선을 그어놓고 있는 것은 아닐지 말이다. 우리의 가족의 개념을 이제는 다르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돌봄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갖고 있던 사고로만 바라보고 대처하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솔라의 정원'을 두고 어느 누가 가족이 아니라고 쉽게 단정지어 말할 수 있을까.

<솔라의 정원>, 마지막이 너무 궁금해졌다. 과연 희아는 얼마나 더 단단해지고 사랑 가득한 마음이 되었을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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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점심시간 다봄 어린이 문학 쏙 5
렉스 오글 지음, 정영임 옮김 / 다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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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 <불편한 점심시간>인데, 읽는 내내 내 마음도 참 불편했다. 이 이야기를 끝까지 잘 이루어낼 수 있을까 스스로 염려하면서 읽었다. 중간에 멈추고 책을 덮기도 했다. 이야기일 뿐이라고 스스로 마음을 다독였지만, 작가의 실제 이야기가 담겨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저 단순히 급식을 무료로 먹는다는, 그리고 가난을 스스로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밝혀야한다는 불편함만이 아니었다. 한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의 태도, 말, 행동, 그리고 모든 환경이 과연 아주 작은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인 것인가에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다. 그리고 사실은, 다양한 폭력 안에 너무도 쉽게 노출되어 있으며, 그런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서 순간순간 무섭고 떨리기도 했다. 어른이 되어 읽는 이야기임에도 공포심에 심장이 두근거렸다고 하면 이상할까. 그러면서도 이 아이가 어떻게 그 다음을 살아내고 또 어른이 되었을까가 너무 궁금해 책을 손에서 쉽게 놓을 수는 없었다.

그때 난 깨달았다.
'엄마가 망가졌구나.'
모르겠다. 엄마가 이런 성격으로 태어난 건지, 무언가 쭉 엄마의 성격을 망가뜨린 건지. 어쩌면 가난해져서 엄마가 망가졌을 수도 있고, 어찌 됐든 엄마가 무너진 건 확실했다. 엄마의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는 한 엄마는 영영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내 마음껏 엄마를 싫어할 수가 없다. 엄마는 우리 엄마니까.(...) 이제 엄마와 싸우는 걸 그만둬야 한다. 엄마를 도우려고 애써야 한다.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알았으면 좋겠다.(266-7쪽)

아,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었을까. 나와 비교해봐도, 어느 누구와 비교해봐도 이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화가 나고 아프고, 속상하고 억울한데도,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모습을 먼저 봐줄 줄 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것도 그 많은 폭력을 보여준 엄마에게. 그저 가족이라는 이유로 감싸안을 수밖에 없었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었다. 이건, 렉스 오글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생각과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 어른들이 자주 하게 되는 말이 떠올랐다. '잘 컸네.'

"그래. 이 바보야. 모든 상황을 단정해서는 안 돼. 이 봐, 누구에게도 완벽한 인생은 없다고. '완벽한 인생' 그런 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그건 그냥 머릿속에 존재하는 말뿐이야."(316-7쪽)

이게 중학생들 사이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가 싶어 당황스러웠다. 애어른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피식 웃었다. 다른 사람을 보며 나와 다른, 그래서 더 나아 보이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만 만들어내는 허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어느만큼의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도 물론 중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가 또 흔히 하는 말에, 부자라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모두 불행한 것은 아니며 어떤 생각과 태도로 살아낼 수 있는가에 따라 삶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렉스는 자기 스스로 이것을 너무 잘 알아챈 것이다.

렉스의 시간은 마치 어둡고 긴 터널 속을 걷는 시간과 비슷했다는 생각이 든다. 저 끝에 불빛조차 보이지 않는 것 같은 깜깜함 속에 놓여 그저 앞으로 걷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이 렉스에게 있었다. 하지만 다행이었던 건 그런 렉스에게도 함께 걸어줄 수 있는, 손을 잡아주고 무서움을 견딜 수 있도록 해준 이들이 주변에 있었다는 거다. 늘 든든하게 할머니가 계셨고, 보살펴줘야하는 동생이지만 또한 사랑스러운 포드가 있었고, 먼저 다가와 친구가 되어 준 이든이 있었다. 물론 신경질적이고 폭력적이었지만 엄마와 샘 아저씨가 계셨고, 편견으로 학생을 온전히 평가하지 못했던 윈스테드 선생님도 계셨지만, 이들 또한 결국 렉스가 스스로 잘 걸어나갈 수 있도록 이끈 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렉스는 혼자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혼자에게만 불행이 닥쳤다고 괴로워하고 힘들어 했지만, 사실은 혼자에게 닥친 불행이 아니었고 이런 불행마저도 함께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렉스는 이 시기를 극복하고 홀로 당당히 자신을 세울 줄 아는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렉스 스스로 갖고 있는 본성과 마음이 누군가를 힘들게 하거나 괴롭히는 쪽에 있지 않았다는 것도 한몫 했다. 어느 누구도 고통받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는 착한 마음이 렉스 스스로를 이 긴 터널에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이다.

계산원을 마주했지만, 계산원을 재촉하지 않고 소리치거나 짜증을 내거나 답답해하지 않았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끄덕. 이제 난 새 출발을 할 준비가 되었다.(321쪽)

어떤 어른으로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고 도와주어야 할까. 힘들지 않은 척 감추려 노력하며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발버둥치는 아이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살며시 다가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최소한 혼자 힘들어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그 아이의 곁을 가만히 지켜주는 것부터가 시작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아이와 눈을 맞추고 인사를 나누며,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다정하게 웃어주는 것부터 하면 좋을 것 같다. 올 3월에는 웃으면서 시작해야겠다. 누구에게라도, 활짝.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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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계절 - 박혜미 에세이 화집
박혜미 지음 / 오후의소묘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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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계절'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봤다. 각 계절은 어떤 색과 느낌, 그리고 어떤 사람과 이야기가 남아 있는지 곰곰이 떠올려봤다. 지금은 겨울이지만 이렇게 시간을 들여 각 계절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각 계절 속으로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봄이라고 또 여름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계절이 품어내고 있는 분위기가 그대로 전달되었다. 어느 지점에서의 바람, 어떤 풍경 속에서 마주했던 인연, 그리고 그 안에 가만히 숨쉬고 있었던 모든 시간. 그런 시간들을 따라가다보니 그 계절들을 고스란히 따라 지나고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이 책만이 갖고 있는 매력인 것 같다.
그냥 에세이가 아니라는 점이 그 매력을 더해주었다. 어떤 책이든 글에 삽화가 더해지면 그만큼 더 시간을 들여 읽게 되어 있다. 글은 설명해주고 있지만 그림은 직접 설명해야 하니까. 나만의 설명으로 만들어 채워나가야 하기 때문에 더 공을 들여 읽게 된다. 그림을 읽는 것이다, 그것도 더 정성스럽게. 이 책이 그랬다. 글에 시선이 머물고, 그림에 시선이 더 오래 머물렀다. 그림과 글을 연결시키고, 또 그림을 따로 떼어놓고 그 그림에 나의 이야기를 연결시켰다. 그저 그림을 생각없이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고, 또 그림 속에 나를 세워두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그림의 글을 천천히 읽었다. 그때 글은 또 다른 느낌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뜨겁고 단 커피로 언 몸을 녹이며,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에 쌓인 흰 눈을 봤다. 어느새 내려온 밤에 닿아 투명하게 반짝인다. 차갑기만 했던 바람이 한 발짝 다가와 둥그렇게 휜 등을 쓸어줄 때, 지하철역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이 떠오르며 내내 입속을 맴돌았던 말이 혼잣말처럼 튀어나온다.(11쪽)

빠르게 읽어 내용을 파악해야 하는 문장들이 아니었다. 이 글을 읽으며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서 있었고, 아름답게 반짝이는 흰 눈이 보였고, 바람이 등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속으로 혼잣말을 뱉었다. 차가우면서도 따뜻해지는, 허하면서도 따뜻한 옷으로 몸을 감싸며 온기를 가두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가만히 몸을 숙여 풀어진 신발끈을 천천히 다시 묶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서걱서걱 걸을 때마다 어딘가에 붙어 있던 모래알들이 이유 없는 곳에 떨어져 새로 자리 잡는다. 어쩌면 이런 계속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호주머니가 여름으로 불룩하다. 이 계절이 지나갈 때까지 모래알들이 여기저기 기억처럼 떨어질 거다. 어떤 건 지워져서 아쉽고, 어떤 건 잊혀서 아쉽고, 어떤 건 가벼워서 아쉽고, 그리고 어떤 건 사라지길 바라도 털어지지 않아 무겁고.(59쪽)

나의 여름은 어떤 것으로 호주머니가 불룩했을까. 반짝이는 윤슬 사이로 눈이 부시게 빛났던 나의 계절은 어떤 아쉬움과 무거움을 남겨두었을까. 어쩌면 떨어져나가기를 바라지 않고 있어 점점 더 불룩해지는 주머니를 끌어안고 그 시기를 묶어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했다. 이런 건가. 누군가의 사적인 계절인 나의 사적인 계절로 넘어오는 것. 소리소문없이 은근슬쩍 나의 비밀한 계절이 되었다.

괜찮다는 말을 내가 하고 나만 듣는 게 외로워, 오늘 밤도 너에게 전화를 건다. 서로의 푸념이 포물선을 그리며 지평선 뒤로 사라지고 잠시 공백이 찾아오면, 수화기 너머 허밍에 가까운 노래를 퀴즈처럼 네가 부르고, 나는 정답처럼 찾은 멜로디에 가사를 넣어 따라 불렀다. 쌓이는 음들이 불안을 차분함으로 메워가고, 조급함은 우리의 웃음에 실려 저만치 흐릿해져 갔다.(85쪽)

마치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이 문장들을 가만히 듣고있는 듯했다. 고요하고 차분한 말투를 소리죽여 가만히 듣고 있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온통 마음이 편안함으로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수화기 너머 허밍의 노래가 감미롭게 들려오는 듯한 따스함까지 연성됐다고 하면 과장일까. 그런 바람을 갖고 있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었다. 읽다보면 내 마음이 함께 움직여다녔다. 말 그대로, 감성을 건드리는 책이었다. 이 계절에도 다음 계절에도 어울리는 책이었다. 마음에 드는 책을 오랜만에 만났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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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빙허각 창비아동문고 340
채은하 지음, 박재인 그림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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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허각 이씨. 이런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이 동화를 읽지 않았다면 <규합총서>라는 책에 대해서도 몰랐을 것이다. 조선 유일의 여성 실학자. 대상을 지칭하는 말 앞에 '여성'이란 단어가 붙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조선시대를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감안하고 볼 문제이긴 하다.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가 어땠을 지에 대해서는 익히 배워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서 '여성'이란 단어가 따로 붙고, 특히 그 앞에 '유일'이란 말까지 함께 쓰이고 있다는 것은, 빙허각이 어떤 삶을 살았을까에 대해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면을 종합적으로 살펴본다면, 대단한 분일 거라는 점은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내가 그 시대에 빙허각을 마주쳤다면 덕주처럼, 한번의 마주침만으로도 충분히 그분을 따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 뜻을 본받아 나의 길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줄 수 있는 분명하고도 힘 있는 분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네 눈에는 불이 담겨 있거든. 새벽 언덕에서 마주칠 때부터 알아봤지."(86쪽)

눈에 불이 담겨 있음을 한번에 알아챈 빙허각. 그리고 그런 불을 눈에 담고 있던 덕주. 어쩌면 비슷한 사람을 알아보고 서로 끌렸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말을 붙여보지 않아도, 서로 구체적으로 묻지 않아도 모습과 눈빛만으로도 어떤 사람일지를 짐작해볼 수 있는 혜안을 빙허각은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덕주 또한 남들보다 더 적극적인 열정을 갖고 제 삶에 대한 고민을 할 줄 아는 아이이므로, 당연히 범상치 않은 빙허각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런 면에서 이 둘의 공통점을 찾아본다면 단연, 눈에 불이 담겨있는 이들이라는 것. 그런 불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고, 결국 자신이 결심한 것을 끝까지 이루어내는 강단 있는 주체성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갖고 있던 모습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역량이지 않나 싶다. 주체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해 나갈 것인가를 스스로 분명히 할 줄 알고 노력하여 끝내 이루어낼 줄 아는 것. 주체적으로 자신의 자아를 확인하고 스스로 미래를 설계해나갈 줄 아는 것. 이것이 특히 지금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자질이니까 말이다.

나는 거꾸로 그 무엇에도 기대지 않는 이름을 지은 거야. 물론 아무 데도 매이지 않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 그때 나는 무척이나 헛헛하고 갑갑했거든. 지금 너처럼.(121쪽)

빙허각이란 호에 담긴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느 것에도 기대거나 매이지 않고 싶다는 갈망이 담겨 있다. 이는 거꾸로 봤을 때 당시 무언가가 매우 강하게 얽어매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덕주의 아버지가 하는 말들만 보더라도 '여인은'으로 시작하는 말들이 무척 불편한 감정을 만들어 낸다. 이는 당시 여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대우가 어땠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덕주와 같은 결심과 실천이 무척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고, 그런 대단한 삶을 가능하도록 도와준 분이 빙허각이라는 것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또 한 명의 인물을 새롭게 알게 된 것이다.

"왜 쓰느냐. 그 답은 네가 한 말 속에 있겠구나. 내가 일평생 해 온 일이고, 내가 가장 잘 아는 일이니까. 설령 누군가는 고작 여인의 일이라 깎아내리고, 또 그 일이 거칠고 고되다고 외면하더라도 그 속에는 내 경험과 삶이 들어 있으니까. 그건 어떤 책에서 읽는 글귀보다 취하지 않겠니."(151쪽)

나라를 구하는 일이라거나 혹은 대단히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한 일이어야 의미있고 값진 것은 아니다. 남들에게는 별 거 아닌 것 같은 것이라도 자신이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면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값진 것이다. 빙허각의 말을 통해 그 가치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일평생 해온 일', '가장 잘 아는 일', '내 경험과 삶에 들어 있'는 일이라면 이미 그 자체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우리가 해 나가야 하는 일이 결국은, 이런 일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 삶을 통틀어 가장 잘 알고 내내 앞으로도 해 나갈 일, 그런 일에 나의 힘과 정신을 모두 쏟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생각을 덕주가 고스란히 배운 것이고, 그래서 덕주는 제 스스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결국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덕주가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빙허각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나는 어떤 삶을 살아오고 있으며 또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됐다. 우리 아이들이 읽는다면 더욱,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재밌으면서도 의미있는 동화를 만나 기분이 좋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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