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이 사라졌다 - 제25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95
김은영 지음, 메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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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와 해수에게 일어난 일, 하루 아침에 집의 문이 사라졌다! 여기서 문은 창문도 포함. 외부와 통할 수 있는 곳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초등학생 두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어려워 보이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아, 만약 내가 해리 혹은 해수라면, 어떻게 했을까. 처음엔 당황스럽고 놀랍다가, 점점 무서워지고, 나중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두려움에 하루하루를 보내지 않을까, 싶다. 아주 나약하고 소심한 모습.
그런데 이 책 표지 그림의 해리와 해수는 무척 당당한 모습이다. 해수는 살짝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다. 해리의 불끈 쥐고 있는 주먹도 예사롭지 않고.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해쳐나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 뭔가 두둥, 하고 대단한 일을 벌일 것 같은 모습으로 보인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제목과 표지만으로도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 무척 궁금했다. 과연 이 아이들은 어떤 결론에 다다르게 될 지 너무 기대가 됐다.

"무서운 곰에 속지 마. 문을 못 보게 되거든."(124쪽)

우리는 종종 어느 곳 하나 빠져나갈 구멍조차 찾기 어려운, 난감하고 무서운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그저 그 상황 안에서 오도가도 못 하고 있게 될 때 말이다. 그럴 때가 바로 이 아이들처럼 사방이 꽉 막힌 공간 안에 갇힌 기분이 든다. 그러면 두렵고 당황스러워 어떤 곳에서도 나갈 방도를 찾지 못하고 한동안 아무것도 못 하고 갇힌 상태로, 출구를 찾을 수가 없다. 무서운 '곰'이 저 앞에 있는 것처럼, 벌벌 떨며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문이 모두 사라진 집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기만 해야하는 것이다.

"해병이도 꽉 막힌 알에서 껍데기 깨고 나왔잖아. 문이 없으면 우리가 문이 되는 거야."(128쪽)

꽉 막혀 해결 지점을 찾기 어렵다고 미리 포기하거나 좌절하다가도, 결국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점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런 해결 지점은 보통, 매우 가까운 곳에 있으며 또한 지금의 난관에서 벗어날 방법도 자기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다만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내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 다음을 생각하지 못하는 가로막는 것이다. 당황하게 되면 알던 것도 생각이 안 나기 마련이니까.

이 이야기가 인상적인 이유는, 이 아이들은 쉽게 좌절하거나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어른보다 더 현명하게 지금의 상황을 인지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생각하고 해결해 나갔다. 지금의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을 바깥의 누군가로부터 얻으려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스스로 찾아내기 위한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생각만 한 것도 아니고, 실제로 움직이고 실천했다. 이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지금 하는 생각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확신할 수 없음에도 도전하고 한 발 앞으로 나아가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 이 아이들을 칭찬해주고 싶은 지점이다.
그리고, 집 안에 갇혀 있는 동안 내내 두려움에 떨며 아무것도 못 하고 있던 게 아니고, 그 안에서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또 더 재미있는 것은, '해병'이까지 길러냈다는 것이다. 아이들만의 규칙을 만들고 지키고, 또 그 안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고 미래에 대한 기대까지 잃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이 두 아이들이 있는 공간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치 이리저리 벽으로 막혀 있는 미로 안에서 출구를 찾아 나가기 위해, 힘껏 달려나가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달려나갈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가만히 보면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훨씬 더 현명할 때가 많다. 그럴 때 오히려 아이들에게서 많은 걸 배우게 되는데,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지면 좋을 지를 해리와 해수를 통해 한 수 배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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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게 없던 척척박사 후안에게 닥친 끝없는 시련과 고난에 대하여
박연철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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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무척 길다. 내가 갖고 있는 책 제목 중 가장 길지 않을까 싶다. 나중에 어떤 그림책을 읽었냐고 누가 물어봤을 때 한 글자도 안 틀리고 잘 얘기해줄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따져보고 시작해야겠다. 일종의 분석이라고나 할까. 그래야 나중에라도 잊지 않고 잘 얘기할 수 있지. 다른 말로 공부 혹은 암기라고 해도 되겠다.
<모르는 게 없던 척척박사 후안에게 닥친 끝없는 시련과 고난에 대하여>는 우선 '후안'의 이야기다. 후안은 스스로 자신을 '척척박사'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모르는 게 없'으니까. 그래서 '모르는 게 없던 척척박사 후안'이다. 헌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한다. 모르는 게 '없는'이 아니라 '없던'이다. 과거형이다. 이 말은,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거다. 지금은 모르는 게 있다는 뜻이다. 그런 후안에게 일이 생겼다. '시련과 고난'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시련과 고난이 '끝없'이 생기는 거다. 끝없다는 말은 말 그래도 계속이란 뜻이다. 계속 시련과 고난이 '닥친'다. 그런 후안에게 대한 이야기다. 우아! 제목만으로도 너무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후안이 누구인지도 궁금하고, 어떻게 해서 척척박사가 되었는지도 궁금하고, 그런 후안에게 닥친 시련과 고난이 무엇인지도 궁금하고, 이 시련과 고난을 후안은 어떻게 해결했는지도 궁금하다. 우아! 제목만으로도 할 얘기가 무진장 많다. 이럴 수 있나! 표지를 넘기지 않고도 이야기가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이 책, 시작부터 무척 흥미진진하다.

"이 책을 펼까 말까 고민하고 있나요?
그럼 당신도, 끝없는 딜레마의 세계에
들어설 준비가 되었습니다."

뒷표지에 적혀있는 문구다. 앗!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지? 표지만으로도 한참을 이렇게 저렇게 궁리하고 생각하고 살펴보느라 책을 넘겨 펼치지 못하고 있는 그 마음을 단박에 눈치채고 딱 맞는 말을 하고 있다. 정말, 기가 막힌 책이구나 싶다. 그리고 눈여겨 볼 단어가 보인다. '딜레마'. 아, 이 단어를 제대로 확인해봐야겠다 싶다. 사전적 의미로는 '선택해야 할 길은 두 가지 중 하나로 정해져 있는데,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곤란한 상황.'이다. 딱이다! 둘 중 하나의 답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둘 중 무엇을 선택해도 찜찜하다. 완전한 답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무엇을 선택해도 곤란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말이다. 머리를 아프게 하는 지점이다. 가끔 아이들과 대화하다보면 이런 말을 할 때가 있다. 딱 떨어지는 답이 없는 문제가 제일 어렵다고. 그래서 수학은 괜찮은데 국어는 어렵다고, 아이들이 하소연할 때가 있다. 아, 이런 느낌인가보다 싶다. 헌데 이건 철학의 문제라서 한 차원 더 높다.

"후안,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드디어 나왔다! 후안을 딜레마에 빠지게 한 그 첫 번째 질문! 그런데 너무 낯익은 질문이다. 어렸을 때 한 번 쯤은 받아 본 질문이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가 있는 아이라면 이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게 딜레마구나, 한번에 알아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제목대로다. 척척박사라도 이 질문에는 답을 쉽게 할 수가 없다. 이유는, 답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딱 떨어지는 답을 갖고 있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과연, 척척박사는 어떤 사람일까? 또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무엇이든지 묻는 대로 척척 대답해 내는 사람.'이 척척박사다. 앗, 그렇다면 후안은 척척박사가 아니었나? 어쩌면 여러 방면의 척척박사가 있을 텐데 후안은 딜레마 쪽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니 '시련과 고난'에 빠졌지.

"후안, 뭔가 어려울 때는 네 안을 곰곰이 들여다보렴.
해답은 그 안에 있을 수도 있단다."

과연 나라면 어떤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과연 이 문제는 여섯 살의 후안이었기 때문에 겪은 시련과 고난이었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지금의 나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도 망설이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한참 고민할 테니까 말이다. 이건 나이의 문제도, 경험의 문제도 아니다. 그저 이런 질문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느냐의 문제. 그리고 어떤 자세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다. 그런 면에서 후안은, 해답을 찾을 수 있는 태도와 자세를 찾은 듯하다. 그렇다면, 나도 질 수 없지! 나도 이런 문제에 어떤 해답을 찾아 나갈 것인가, 그 태도와 자세를 찾아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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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차별 - 그러나 고유한 삶들의 행성
안희경 지음 / 김영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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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차별 #그러나고유한삶들의행성 #안희경 #김영사 #서평단 #서평 #책추천

<인간 차별>이란 제목이 공격적으로 들렸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들인데도, 이렇게 단정지어 말하니 감정을 찌르는 느낌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왜 사람들은, 아니 인간들은, 인간들을 '나'를 기준으로만 판단할까. 이건 생존 본능일까, 아니면 그렇게 습득한 결과일까. 어쩌면 그렇게 습득하도록 짜여진 구조물이 인간인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봤다. 그만큼 인간의 판단과 기준, 편견과 차별, 의식과 가치관이 무서울 정도였다.
제일 무서운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누군가를 겨냥한 차별의 언어라는 것이다. 나는 차별하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흔히 또 별 생각없이 쓰던 말들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지, 그에 대한 생각조차 하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결국 비효율적으로, 자신이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결코 알지 못한다는 것이, 인간의 너무도 단순하고 어리석은 지점인 것이다.
몰라서 그랬다고 하면, 알기만 하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알고도 그런 차별을 공공연하게 하기도 한다. 은연중에 내비치는 차별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너와 다르다, 다른 부류이니 나한테 잘해라, 내가 너보다 위다, 내가 하는 것이 다 옳다 등을 표내고 싶어 모르는 척을 가장하여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이게 모르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인간인 것이다.

상대를 이루는 '존재의 성질'을 어디에 하나로 묶지 않으려는 자세. 상대를 고유함 그 자체로 새로이 받아들이는 느린 마음이다.(45쪽)

모든 것의 시작은 여기에서 출발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A, 너는 B, ...... 그리고 나머지는 다 Z, 이런 식으로 구분하고 이름을 붙이려고 든다면, 그 기호 안에 사람들을 억지로 욱여넣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욱여넣는 것 자체가 차별인 것이다. 무척 단순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굳이 이름을 붙이고 싶다면 이 세상의 사람들을 구분하려는 구분 기호가 끝도없이 만들어지면 가능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미 사람에게는 그 부분 기호가 있는데. 김춘수의 '꽃'이란 시에 나온다.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라고. 각 사람의 이름이 곧 구분하려는 기분 기호인 것이다. 바로, 각 사람의 '고유함'을 있는 그대로 봐주면 된다.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이 인정이 그리도 어렵나?

한 공간에서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다른 공간에서 아내를 생각하고, 또 다른 공간에서 이주노조에 대해 생각하는 저를 마주했습니다.(...) 사람 속에 주머니가 늘수록 생각과 표현이 다양해집니다. 슬픔을 느낄 때, 내 안의 어느 주머니에서 생각을 꺼내 극복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한테 나누어줄 수도 있어요.(175쪽)

어쩌면 하나의 주머니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자기 주머니 안에 넣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것이 차별인 건 아닐까 생각해봤다. 많고 다양한 생각의 주머니를 갖고 이런 저런 경우일 때마다 각기 다른 주머니를 꺼내어 생각한다면, 각 주머니별로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는 더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의 주머니들이 쌓여 '고유함'을 볼 줄 아는 나를 만들어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많은 생각의 주머니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새크라멘트 분향소를 만들면 좋겠어요."(220쪽)
함께 준비하는 가운데 사회에서 받은 불신과 상처가 위로받기 시작했다고.(223쪽)

사람이 어리석어,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은 알지 못한다면, 기꺼이 경험해보면 된다. 말을 하고 실천해보면 알게 된다.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누군가를 위한다고 한 것이 결국은 자신을 위한 일이 될 수도 있고, 함께 한다는 것 안에서 서로가 얽혀있는 사회의 연결망과 연대를 확인할 수 있다.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떤 생각의 주머니를 갖고 살아가면 좋을지, 그 생각의 주머니를 키우고 새롭게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는 내가 머무는 그곳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나와 남이 레드우드 잔뿌리가 엉키며 지탱하듯 서로 얽히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240쪽)

우리는 모두, '얽히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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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셋 2025
김혜수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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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셋2025 #김혜수 #이서희 #김현민 #이지연 #양현모 #전은서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0기 #서평단 #서평 #책추천

이 소설집의 작가들을 기억해두어야겠다. 그리고 이 작가들의 다음 소설들을 찾아 읽어야겠다. 이 책의 소설들을 한 편씩 읽어 나가며 이 마음을 굳혔다. 이게 이 책을 읽으며 제일 많이 한 생각. 새로운 작가들을 알게 되고, 그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 읽으며 그 작가의 색깔과 맛을 알아가는 재미가 너무 좋으니까. 그만큼 기대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순간 숨을 헙, 멈추게 하기도 하고 때론 생각과 마음을 뒤엉키게 만들기도 했다. 유행가 가사처럼, 들었다 놨다 한다는 느낌. 또 다른 긴장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여름방학_김혜수
소리 내 읽어봤다. "아사지식도소 차샂지시..." 나는 안 되겠다 싶었다. 은진이와 세희만 가능했던 건가. 나는 종교가 없다. 여기저기 따라가 구경해본 적은 있지만 사람이 삐딱했는지 마음도 삐딱해졌다. 나에게도 세희와 같은 친구가 있었다면, 제대로 삐딱해졌을까 아니면 어느 것에서도 무엇으로도 나를 침범할 수 없게 만드는 대범함이 더해졌을까. 그 시기를 지나오며 은진에게 쌓인 것은 무엇일까. 그 시기를 모두 카세트테이프 안에 담아 '영영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하고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쌓아나갔던 것은 아닐까.

#지영_이서희
대학 시절이 자꾸 떠오른다. 혼자 있기만 하면 어김없이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 대화의 끝이 무엇인지 궁금해 길게 이야기나눠본 적도 있다. 결국 삶과 죽음이었고, 죽음을 대하는 산 자의 마음이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들의 말을 납득할 수 없어 대화를 잘 마무리하고 돌려보냈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를 뿐이다. 각자 갖고 있는 마음과 태도가 다를 뿐이다. 규호와 지영은 그런 것일 뿐이다. 규호는 마음으로 지영은 생각으로 서로를 대했던 것이겠지. 그런 삶이 있는 것이다. 모두가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으니까. 지영을 바라보는 규호의 태도가 이것이 아닐까.

#동물원을탈출한고양이_김현민
생각이 많아진다. 해연이 엄마를 어떤 마음으로 돌보고 있는 것일까. 의무, 책임, 아니면 죄책감? 해연이 갖고 있는 트라우마가 어쩔 수 없이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견뎌야하는 이유가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트라우마는 엄마에게도 남아 있고. 결국 두 인물 모두 마음의 상처를 고스란히 끌어안고 살 수밖에 없다. 트라우마란 그런 거니까. 어쩌면 한편으로 다행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둘이니까. 해연과 엄마. 모두 돌봄이 필요하고 때론, 서로가 서로를 돌보기도 할 테니까. 하지만 견디는 것만이 답일까에 대해서는 또 다른 생각을 만들기도 한다.

#아이리시커피_이지연
아. 이런 죽음을 이젠 마주하기가 무척 어렵다. 소설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읽기 너무 힘들었다. 그저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은 자꾸만 희수의 선택들을 되짚게 만들었다. 어쩌면 희수도 같은 생각일까. 자신이 한 선택들이 결국 소미에게 닥친 불행으로 이어졌다는 생각. 희수도 어쩌면 이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건 희수의 잘못도 소미의 잘못도 아니다. 대부분의 사건은 잘못 없이 피해를 당하게 된다. 소미도 그랬던 것일 뿐, 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되풀이의 질문을 희수는 내내 안고 살아가겠지 싶었다.

#호날두의눈물_양현모
아직도 기억난다. 호날두가 날강두가 됐던 그 경기를. 돈의 문제를 떠나서 그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사랑과 염원을 무참히 짓밟고 많은 적을 만들고 사과도 없이 훌훌 떠나버린 그 축구 선수를. 남자들의 이야기 중 군대 이야기, 축구 이야기,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는 참 유명하기도 한데, 이 선수의 이름이 못지 않게 유명한 이야기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축구 이야기, 그런 축구에 얽힌 그 남자의 이야기. 좀 씁쓸한 느낌이 내내 남는 이야기였다.

#경유지_전은서
이런 경우를 뭐라고 받아들여야할까. 만약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과연 선뜻 그러겠다 대답하고 다녀왔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사랑, 즉 마음이 하는 일이고 또 그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의미가 부여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예은이 상민을 배웅하는 일. 그것이 어쩌면 한 인생에 대한 예은이 해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예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감당해야 하는 마음의 무게는 오로지 예은의 몫이 되었지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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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폴라 일지
김금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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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폴라일지 #김금희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0기 #서평단 #서평 #책추천

딱 1년 전의 이야기였다. 작년 이맘 때쯤 작가는 남극에 있었구나. 그리고 그 남극을 작가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또 더 많은 시선들로 옮겨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고, 우린 그 시선들을 가만히 따라가며 다시 남극의 경험할 수 있었구나. 작가의 남극 생활을 따라가다보니, 한 자리에서 읽기 시작해 끝을 봤다. 이렇게 읽기가 쉽지 않은데, 한번에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남극에 최소한의 자취만 남기는 게 과학자들의 룰이거든요."(277쪽)

이전에도 북극이나 남극 관련 책은 종종 읽었었다. 내 전문 영역이 아니어서 과학자들의 연구와 생활이 어떤 내용과 의미를 갖고 있는지 다는 알지 못하지만, 그들이 묵묵히 해나가고 있는 삶이 어떤 가치를 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익히 잘 알고 있다. 기를 쓰고 비닐 봉지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달려나가는 모습만 보더라도, 과학자들이 갖고 있는 신념이 얼마나 대단하고 철저한 지에 대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노력하는 이들의 마음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강사는 과학 연구를 목적으로 한 방문이라도 우리의 발자국은 남극에 남는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현재 남극에서는 미세플라스틱 농도가 증가하고 있는데 체류 인원들이 사용하는 치약, 샴푸, 화장품, 샤워젤 같은 일상용품이 원인 중 하나라고 했다.(19쪽)

이 부분을 처음 읽고 시작했던 거라, 어쩔 수 없이 이 생각에서 벗어나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이 지구상 어느 곳도 인간의 흔적이 닿지 않는 곳은 이젠 없구나, 하는 씁쓸함도 함께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과연 이 연구는 누구를 위한 어떤 목적의 연구들인 것일까. 정말, 이곳의 환경을 해치면서까지 하는 연구는 과연, 지구를 위한 것인지 인간을 위한 것인지.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시선으로 모든 사물과 동식물을 바라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인간은 사물에도 이름을 붙이고, 사물을 마치 살아있는 인간과 같이 취급하기도 한다고. 그래서 이 책에서도 남극의 펭귄들이 인간들에 대한 인상을 마치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할 것 같다는 상상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더욱 생각해보고 싶은 것이다. 남극의 변화에 대해서.

그건 남극의 아직 '되어가고' 있는 장소라는 증거다. 완전히 동결된 땅이 아니라 언제든 변화를 일으킬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는, 그렇게 해서 지구의 미래를 조정해 가는 뜨거운 대륙.(229쪽)

작가가 어쩌면 우리에게 답을 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극은 결국, 우리 지구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여전히 살아있고 변화 가능한 힘을 내포하고 있는 곳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더욱 남극에 집중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 지구를 위하고 또 그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을 위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또한 작가가 말한 '공동생활'도,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힌트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연대하고 협력하는 과정에서 공생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남극은 이런 답들을 우리에게 주는 곳이기도 한 것이다.

읽기 전에는 이 책이 펭귄에 대한 이야기일 줄 알았다. 하지만 틀렸다. 이 책은 남극의 사람들에 대한 책이었고, 우리의 삶에 대한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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