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대로도 좋은걸 - 킬리옥의 행복한 고민
안 브루이야르 지음, 김자연 옮김 / dodo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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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도 좋은걸. 안 브루이야르 글그림/김자연 옮김. 도도. 2025.
_킬리옥의 행복한 고민

우선, 킬리옥의 고민에 대한 답이 안 나와있어 좋았다. 킬리옥의 고민은 어느 쪽의 답을 내리더라도 모두 좋은 선택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내 기준으로서의 판단이다. 킬리옥이 지금 이대로 변화하지 않아도 좋고, 지금보다 더 좋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변해도 좋다. 어떤 선택이 되었든 그 선택은 킬리옥이 '행복'할 수 있는 결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의 부제가 킬리옥의 '행복'한 고민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흔히 고민이라고 하면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럽고, 어떻게 해서든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그 고민이 빨리 해결되기를 바라게 되곤 한다. 하지만 지금 킬리옥에게는 이렇게 고민하는 것마저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킬리옥이 변화를 결정해도, 변화하지 않는 걸 결정해도, 혹은 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계속 고민만해도, 이 모든 것이 다 '행복'의 모습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 자치게 킬리옥에게는 소중한, 행복한 삶인 것이다.
킬리옥은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매 순간 이런 행복한 고민을 하며, 자신에게 가장 충실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 나가는 것. 아니, 이런 누군가에 의해 이끌리듯 살아가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속도대로의 자신에게 어울리는 삶의 매 순간을 그저 보내고 있는 것. 이거 자체가 킬리옥의 삶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러니, 아침부터 밤까지, 잠자리에 들어서도 내내 이 고민에 온통 신경을 쏟고 있는 것은, 자신에게 던져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는 것 자체가 이미 삶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 킬리옥에게 있어서 고민은 곧 삶 혹은 일상의 다른 표현일 뿐일 것이다.

"있지, 사실은 바꾸고 싶은 게 맞는지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집은 이대로가 더 좋은 것 같아."
"지금 이대로도 아주 좋지."
킬리옥의 말에 미스테르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두 친구는 한동안 말없이 호수와 숲,
그리고 킬리옥은 집을 조용히 바라보았어요.

이 두 친구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었다. 무언가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렵고 위험한 숙제를 안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두 친구가 말없이 바라보며 앉아있는 그 순간마저도 이들에게는 일상이고 행복한 삶을 테니까 말이다. 그저 흘러가는대로, 놓여져있는대로, 무언가를 꼭 해내지 않더라도 괜찮은, 지금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안심의 이후 어떤 고민의 답이 내려지더라도 크게 킬리옥을 흔들어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킬리옥의 마음은 지금과 변함없이 그저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 생각의 답을 잘 받아들인 후, 그 다음의 질문을 또 자신에게 던지는 것으로 잘 살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킬리옥의 고민은 단순히 집을 수리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나의 삶에 변화를 만들 것인가 혹은 지금의 삶의 모습을 유지할 것인가, 내가 내일 혹은 미래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었던 것 같다. 그런 고민의 답은 당연히 쉽고 빠르게 내려질 수는 없는 법이다. 문제에 대해 때론 가까이에서 직접 확인하고, 또 가끔은 멀리서 관망하는 방법을 쓰면서, 그리고 가까운 지인이나 친구의 조언도 들으면서 진지하게 해 나가는 것이 문제를 잘 해결해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킬리옥은 지금 그런 방법을 모두 활용하며 자신이 내려야 할 결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시간을 충분히 쓰고 있는 중인 것이다.
마치 변화를 거부하고 지금의 자리와 모습을 바꾸지 않으면 발전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면, 이 책은 그렇지 않음을 단단하게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아야 하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바뀌어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다르지 않은 내일이어도 좋다는, 그렇게 선택하는 것도 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잠시 숨을 고르게 되고 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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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미에 손을 넣으면 - 제11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 사계절 1318 문고 149
김나은 외 지음 / 사계절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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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미에 손을 넣으면. 김나은 외. 사계절출판사. 2025.

아무리 사회가 변하고, 새로운 생명체나 세계가 펼쳐져도, 기계나 로봇의 존재가 인간의 삶에 변화를 준다 해도, 그래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본질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절대 인간이 흔들릴 수 없도록 만드는 분명한 것이 있다. 바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마음, 그리고 그런 연결을 가능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접촉, 닿아서 알게 되는 따뜻한 온기와 사랑, 이 모든 것이 만들어 주는 관계. 이것이 바로 인간이어서 좋은, 그래서 절대 어떤 세상이 도래해도 바뀌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일 수 있는 당위성을 얻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이 작품집을 읽으며 깨달은 부분이다.

유나가 먼저 내 아가미에 손을 넣으며 나를 배웅하면, 그다음 내가 유나의 다섯 가닥을 꼬옥 잡는 그 순간을. 우리가 친구가 되었다고 유나가 말했을 때 귀가 뜨거워질 정도로 가슴이 쿵쾅거린 건 그래서였을 것이었다.(19쪽_'아가미에 손을 넣으면' 중)
내가 윤화의 기억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그 애의 표정을 관찰해썬 것처럼 꼼꼼히, 그러나 천천히 배우면 될 거라는 믿음. 나는 조심스럽게 윤화의 양손을 잡았다.(58쪽_'나란한 두 그림자' 중)
나인의 손가락 사이로 정후 손가락이 미끄러져 들어갔다. 정후의 손이 축축해서 나인은 흠칫 놀랐다.(119쪽_'고백 시나리오' 중)

어쩌면 세상이 변하고 시대가 달라지면서 우리가 불안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인간으로서 나눌 수 있는 따스함의 체온을 잃고 살아가게 될까봐는 아닐까 생각해보게 됐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감정을 나누고 교류하며, 그 관계 속에서 사랑, 우정 등의 감정을 확인하고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존재인 듯하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사라지게 될까봐, 느끼지 못하고 지내게 될까봐 겁이 나서 더욱 긴장하고 경계하게 되는 건 아닐지.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그런 사실을 인지하고 더욱 감정을 공유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들면 되지 않을까. 잃지 않도록, 잊지 않도록 말이다.

물론 이 소설집의 소설들이 지금 2025년의 사회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지금의 사회를 말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다. 여전히 우리는 이 많은 불안과 걱정의 상황에 놓여 있으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모색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모습을 가정한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소설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대처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인간의 다급한 모습이 반영되어 있는 듯도 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이런 변화에 대한 대처를 외부의 다른 것으로부터 찾지 않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 본성에서 찾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마빈 박사가 편지를 서랍에 넣었다. 베티 할머니와의 만남이 하룻밤 꿈 같았다.(147쪽_'플루토' 중)

이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도록, 마음의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인간에 장착되어져 있는 장치가 바로, 감정일 것이다. 감정을 저버리지 못하고 내내 가슴 한켠에 간직하고 있는 그 마음이, 결국 우리 사회에서 지켜져야 할 소중한 가치일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들을 그런 가치가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들을 읽으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런 감정을 아직은 가지고 있는 인간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무리 험난하고 위험한 상황이 오더라도 우리가 긍정적 희망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힘이 무엇인지, 이 소설들에서 답을 얻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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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행님 신인류 사랑 - 말과 글로 빚어낸 국어 시간
구자행 지음 / 양철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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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행님 신인류 사랑. 구자행님. 양철북. 2025.
_말과 글로 빚어낸 국어 시간

이제 2025학년도 1학기가 마무리되는 시기다. 그렇다면 구자행 선생님의 교사 생활도 마무리가 되는 시기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뭉클하면서도 많은 감정들이 밀려온다. 아마도 30년 이상 교직에 계셨을 것이고, 그 많은 시간 국어라는 교과 안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오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과의 일들을 기록하셨다.
우선,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든다. 만나뵙지 못했지만 마치 만나뵌 적이 있는 것처럼, 글 안에서만으로도 충분히 어떤 교사셨을 지가 눈에 그려진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교직에 계실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는, 무슨 이야기일까 궁금하기만 했다. 신인류는 또 뭐고, 그런 사랑은 뭘 말하는 걸까 싶어서. 이젠 알겠다. 구자행 선생님의 교직에서의 마음은 온통 '사랑'이었구나, 하는 것을. 사랑이 아니고서는 쉬이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아이들과의 교감도 만만치 않고 말이다.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 기록이 남다르게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일에서 가장 뿌듯할 때가 사실은, 아이들로부터 긍정적인 마음을 전달받을 때다. 복도에서 손으로 반하트를 만들며 다가오는 아이에게 나도 손으로 반하트를 만들어 그 손에 연결해주면, 진짜 그 사랑의 하트가 온통 퍼지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이 맛에 일을 하지, 싶은 마음까지 들 정도로 말이다. 구자행 선생님이 보여주신 모습이 바로 그런 마음의 모습이란 생각이 들어, 읽으면서 내내 미소가 지어졌다.

이 책에는 '다행이다'라거나 '마음 아팠다' 같은 선생님의 감정이 드러난다. 이 글은 '교단일기' 같은 느낌인데 그런 교단에서 선생님이 어떻게 아이들을 대하고 바라보고 계신지가 잘 느껴졌다. 특히 이 아이들을 '신인류'라고 정의하고 있는 부분에서 단박에, 아이들을 한 명도 눈 밖으로 내보낸 적이 없는 분이시겠다는 생각을 했다.

첫째, 이들은 평화주의자들이다.
둘째, 남이 하는 일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셋째, 학교 공부에 별 뜻이 없고 점수와 동시에 그다지 마음 쓰지 않는다.
넷째,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다.
다섯째, 해가 갈수록 이 새 종족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것 같다.(41-42쪽)

이렇게 모아보면, 아마 선생님들은 다 감이 잡힌다. 이 아이들이 어떤 행동을 보이고 있는 아이들인지 말이다. 그런데 구자행 선생님은 이들에게 이런 마음을 갖고 계셨다.

아무튼 나는 이 신인류를 문제로 보지 않기로 오래전부터 마음먹었다. 애써 바꾸어 보겠다는 마음이 없다. 그저 바라봐주기로. 내 잣대로 저울질하지 않고 내 틀에 맞추어 판가름하지 않기로. 다만 아주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기는 하다.(43쪽)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런 마음이라면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가 없다. 그러니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과 지금까지 지내고 계실지, 눈에 다 그려지는 듯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선생님의 국어 수업이 흥미로웠다. 아이들과 함께 한 수업, 아이들의 글,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어떻게 풀어낼 수 있도록 해주고 있는지에 대한, 일종의 노하우들에 관심이 갔다. 사실 아이들은 교실에서 뭐든 하기 싫어한다. 이제는 모둠으로 활동하는 것도 흥미를 잃었다. 특히 글을 쓰라는 것, 그것도 자기 이야기를 담아 쓰라는 건 더 하기 싫어한다. 신인류족에게는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일들이다. 그런 아이들과 선생님이 해 나가신 수업이 인상적이었다. 담임교사로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신 부분도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여러모로 대단하신 선생님이시라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그리고 하나 더, 이런 기록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교실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많은 이야기들 속에 어떤 기억할만한, 그리고 어떤 기록할만한 이야기가 있었는지, 그냥 흘려보냈던 그 수많은 장면들이 이제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나도 구자행 선생님처럼 기록을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그 기억을 다시 훑어보며 미소지을 수 있도록.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아이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도 구자행 선생님처럼 나이를 다 채우고 물러날 수 있을까. 그럴 때까지 어떻게 국어 시간을 보내면 좋을지 다시 고민해봐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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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 Entanglement 얽힘 2
김이설.이주혜.정선임 지음 / 다람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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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 김이설/이주혜/정선임. 다람. 2025.

익숙한 지역이 나와서일까, 자꾸만 내가 알던 그 지역을 머릿속으로 더듬어가게 되는 경험을 했다. 송도유원지로 소풍을 갔고, 자유공원으로 사생대회를 갔었다. 그 일대는 익숙했고 또 지겹기도 했다. 차이나타운은 익숙하지 않지만 동인천과 그 바닷가는 낯설지 않았다. 지금까지 인생 중 절반은 그곳에서 살았고, 또 나머지 절반은 다른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그곳에서 다녔던 학창시절과 다른 곳에서의 직장생활은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런 여러 기억과 느낌을 가지고 소설들을 읽다보니, 소설의 일부가 나의 일부인 듯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은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다. 괜히 더 잘 알고 있는 척을 하고 싶어지는 마음이라고나 할까. 누가 물어보지도 않지만 혼자, 괜히 그 공간의 이야기 안에서 나도 함께 앉아있고 싶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할리는 고등학생 로사가 등굣길에 타고 다녔던 버스가 항구에 정차할 때마다 당장 내려 먼바다로 달아나고 싶었다는 간밤의 고백을 떠올렸다. 다음 여행에는 로사와 함께 인천항에 내려 오래오래 바다를 바라보리라 다짐했다.(...) 당분간은 가능한 한 낯선 방향으로 갈 것이다.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50-51쪽_'할리와 로사' 중)

낯선 방향으로 가기 위한 삶의 여정의 끝이 어쩌면 다시 익숙한 공간으로의 귀향은 아닐까 살짝 생각해보게 된다. 당분간은 그렇게, 지금까지의 기억을 잠시 묵혀둔 채 잘 알지 못하는 방향으로의 나아감을 위한 삶을 지속해나가겠다는 마음. 여전히 아직도 그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의 생각으로 잠시 멈칫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그 다음을 기약해도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명확히 어느 것 하나 분명할 것 없지만, 그렇다고 또 딱히 그래야만 한다는 것도 아닐테니, 그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의 판단을 고수해나가는 수밖에. 그렇게 그 다음을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홉 명의 합주는 무사히 잘 마쳤으나 결국 빈 소리를 내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빈 소리를 그대로 둔 채 연주했다. 관객들은 그게 우리 전체의 소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의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비었다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럼 상관없었다. 어저면 소리를 내지 않은 사람이 제일 떨리고, 두렵고, 어렵고, 힘들고, 외로웠을지도 모른다.(137쪽_'최선의 합주' 중)

소리를 내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티 내지 않으면서 그 안에 함께하고 싶어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하지만 비어있다는 것은 그 만큼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기에, 소리를 내지 않는 이상 그 빈 공간의 소리는 티가 날 수밖에 없고, 그 빈 소리는 다른 무엇으로 채우기 힘들어지는 것일 수 있다. 합주라는 것 혹은 가족이라는 것 안에서 그 소리를 가득 채우기 위한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쉽게 소리를 낼 수 없는 건 당연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은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해 온 그 합주가 사실은 최선이었고, 아무리 연습을 한다 해도 더 이상 좋아질 수는 없다는 것.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진짜 빈 소리의 합주를 할 수밖에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시시하다.
시시하다고. 시시하지 않은 사랑이 있는 줄 아니. 지금 너를 온통 뒤흔들어도 그런 건 삶이 아니야, 라고 미연은 말해주고 싶었다. 언젠가 후회하게 될 거라고. 그런데 그 시시한 것은 어떻게 시작되는지 알 수도 없는데 이유 없이 돌연 끝나버리기도 하고 이유가 있어도 영영 끝나지 않기도 한다고.(95쪽_'해변의 오리배')

그럼에도 그 시시한 사랑을 위해 오리배 정도는 타줘야하는 게 아닐까. 어떤 모양이 될 지 알 수 없는 그 마음을 쫓느라고 모든 애를 다 써야 하는 줄을 알면서도, 그리고 그 끝이 어떤 형태로 빚어지게 될 것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는 채 그저 따라 달려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랑이지 않을까. 명확한 정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하는 대답들에 모두 오답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정답이 없으니 오답도 있을 수 없는 법. 모든 답을 앞에 펼쳐놓고 그 안에서 다시 자신만의 답을 찾는 수밖에. 그러니 누가 가르쳐줄 수도 이끌어줄 수도 없는 게 사실인 것이다.

뭔가 각 소설들 안의 관계가 다시 소설을 간의 관계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각 관계들이 다시 각자의 갈 길을 찾아 나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분명 다른 작가의 다른 이야기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의 흐름의 본질한 유사해 보였다. 그래서 얽힘이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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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책 - 괴테에서 톨킨까지, 26편의 문학이 그린 세상의 정원들
황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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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책. 황주영 지음. 한겨레출판. 2025.

정원과 독서, 무척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이 둘은 그 단어만 들어도 살며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참 좋다. 누구의 강요 없이도 자연스레 마음과 몸이 향하게 되는, 그런 단어들이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둘이 우리에게 주는 공통점이 있고, 그 공통점이 이 책에 각 책터로 묶여있다. 치유, 사랑, 욕망, 생태. 정원의 책을 통해 배우고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가치와 태도들인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 이 가치들이 어떤 작품과 어떤 장면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하나씩 다시 확인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에 대한 관심과 흥미까지 덧붙여 주고 있기도 했다. 지금은 아쉬운대로 방 안에서 작은 화분들을 바라보며 이 책을 읽었지만, 다음에는 더 넓은 정원 안에서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아마 분명, 지금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해보지 않아도 익히 당연하게 짐작할 수 있다. 정원은 너무나 그런 곳이니까.

메리에게 비밀의 정원을 들여다보고, 죽은 풀과 잡초를 제거하고, 새싹을 심으며 돌보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 일이었다.(...) 메리가 정말로 회생시키려 한 것은 정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을 것이다.(30쪽)

자기 자신과 정원 둘 모두를 회생시키려 수 있는 것.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정원인 것이다. 그러니 정원에서는 가장 중요한 생명, 즉 삶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상처받고 아프고, 그래서 사그러지는 듯한 생의 기운을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가 정원이고, 그런 정원을 가꾸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의 마음을 가꾸며 회복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른 생명을 통해 자신의 생을 보살피고 돌보는 것. 나도 모르는 사이, 그렇게 마음이 치유되는 것이 가능해지는 정원의 독서인 것이다.

그는 이제 아름다운 정원도, 폴리아도 없는 현실로 돌아왔다. 얄궂게도 그날은 사랑의 계절인 5월의 첫날이었고, 그는 혼자다. 이는 키테라섬과 그곳의 영원한 봄의 정원 또한 좋으나 어디에도 없는 장소인 유토피아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그 좋은 장소를 꿈꾸고 누리기 위해 폴리필로의 낙원을 떠올리게 하는 정원을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니, 꿈처럼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계속 꿈을 좇으니까.(104쪽)

그러니까 말이다. 유토피아, 어디에도 없는 곳, 그래서 더욱 동경하고 갈망하게 되는 공간, 바로 그 꿈과 같은 공간. 분명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곳을 좋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지점이 있는 것이다. 그런 공간으로서의 정원, 그 정원을 통해 꿈꾸는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곧 사랑일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득 안고 또 다시 정원을 찾아 이곳저곳을 다니게 되는 것이겠지. 어쩌면 그런 마음의 여정이 곧 삶인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만해지는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사실 이런 '작은 집'은 이런 목적으로, 유혹을 위해 설계되었고, 정원 또한 외 공간이지만 나무와 강 등으로 여러 겹으로 둘러싸여 있어 연인들을 아늑하게 지켜주는 닫힌 공간이다. '작은 집'의 정원은 사랑의 정원, 유혹의 무대다.(165쪽)

밖이면서 안이고, 열려있으면서 닫혀있는 공간으로서의 정원. 그래서 한편으로는 무척 내밀하고 고혹적인 공간, 그래서 사람의 가장 일차원적인 욕망의 발현이 이루어지도록 만들어내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사랑이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이고 소중한 감정이고 그런 감정이 또 다른 욕망과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갈망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그러니 끊임없이 이런 유혹의 과정 안에 사람은 놓이게 되는 것이고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곳이 정원이 되는 것이다.

정원이 이토록 다양하게 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정원은 정원으로서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이지만, 인간이 이 모든 것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 뿐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는 것이 정원의 또 다른 매력이고, 그런 정원이 그래서 여전히 인간의 삶과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말대로,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없어 직접 쓰는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 책을 다 읽고나서 느껴졌다. 어디서 이런 <정원의 책>을 볼 수 있을까 싶다. 그러니, 저자의 이 책이 갖는 의미 또한 분명하겠구나, 싶다. 괜히 이 책을 만난 내가 더 뿌듯해지는 듯하다.

덧-
각 부분에 담겨 있는 정원의 그림들이 좋았다. 각 부분의 내용에 대한 잠시 쉬며 정리해볼 수 있는 여유도 함께 주는 것 같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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