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잠 선물 가게, 기적을 팝니다 꿀잠 선물 가게
박초은 지음, 모차 그림 / 토닥스토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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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잠 선물 가게, 기적을 팝니다. 박초은 장편소설/모차 그림. 토닥스토리. 2025.

자도 꿀잠 선물 가게에 가고 싶다. 불면이라면 할 말 참 많은 사람으로서, 오슬로와 자자를 만나러 가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 꼭 맞는 선물을 추천받아 사오고 싶다. 과연, 나의 잠도 해결이 될는지. 너무 오래된 불면으로 이젠 웬만해서는 피곤하고 힘든 줄도 모르고 지내고 있으니, 어느 정도는 그러려니 하고 지내기도 한다. 이런 나에게도 알맞은 물건이 있을지. 가능한 하다면 나도 당장 달려가 꿀차 한 잔 마시고 싶다. 꿀차의 달달함으로 나의 긴 불면을 끝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인간의 마음은 왜 이렇게 어려운 거예요? 이해가 안 가요. 난 부엉이라고요. 아저씨 말고는 말할 수 있는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는데...... 왜 그렇게 혼자 슬퍼하고 힘들어해요? 제가 들어줄게요!"(149쪽)

자자의 말에 마음이 울렁거렸다. 그러니까 말이다. 인간의 마음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어려워서 인간 본인들도 제대로 잘 모르고 살아간다. 어쩌면 그래서 '꿀잠 선물 가게'가 필요한 지도 모르겠다. 인간들은 참, 자기 이야기를 잘 안 하기도 하니까. 생각해보면, 인간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괜찮아'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 힘들어 보이고, 아파 보여서 괜찮냐고 물으면, 두말 없이 괜찮다고만 한다. 나도 자주 하는 말이고, 또 다른 주변 사람들로부터도 자주 듣는 말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그 속이 어떤 지 직접 보지 않고는 쉽게 꺼내놓지도 못하니. 또 꺼내놓을 대상도 방법도 잘 없다. 그저 혼자 속으로 삭이는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래서, 오슬로와 자자를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모든 이야기를 참 잘 들어주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불면을 결국 마음의 문제인가보다 싶다. 마음이 흔들려서, 어지러워서, 암담하고 속상해서, 그리고 아파서. 이런 감정을 모두 자신 안으로만 끌어안고 있으니 어떤 형태로든 몸에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반응에 대부분은 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기기 쉽고. 그러면서 점점 그 마음의 골이 깊어만 갈 수도 있다. 별 거 아닌데 말이다. 괜찮지 않다고, 아프고 슬프다고 솔직하게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울까. 근데, 말이 쉽지, 실제로는 참 어렵다. 그래서 여러 사람도 필요 없이 딱 한 사람, 딱 한 사람만 있어도 된다.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딱 한 사람. 그 역할을 '꿀잠 선물 가게'가 대신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꿀잠 선물 가게에 와서 제 솔직한 마음을 다 터놓으니 훨씬 가벼워졌어요. 감사해요."(197쪽)

자신의 마음을 직접 들여다보고,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진단하여 처방해주기란 너무 어렵다. 자기 마음 하나를 잘 모르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리고, 실체 없는 모호하고도 추상적인 마음이란 것을 어떤 말로 정의내린다는 것이 웬만해서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 다른 이의 도움이 꼭 필요한 것이다. 정작 다른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적절한 선물을 선택해 권해주고, 그 마음을 위로하고 보듬어주는 역할을 하는 오슬로마저도 제 마음은 잘 모른다.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그저 아파하기만 한다. 그러니, 우리의 마음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게 맞을 것이다. 그래서 오슬로에게도 자자가 꼭 필요한 것이다.

혼자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다고, 어떤 도움도 필요 없다고, 내 마음은 내가 알아서 한다고, 아무렇지도 않고 다 괜찮다고 하는 사람의 말을 믿지 말자. 오히려 지금 마음이 아파 어떤 것도 그 다음을 생각할 수 없을 지경이란 말을 반대로 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으니까. 가만히 나의 경우도 돌이켜보면, 그랬던 적이 있었다. 어떤 누구에게조차 손을 내밀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순간, 억지로라도 그 굴레에서 끌어내려 손을 이끌었던 누군가가 무척 소중했다는 것을, 지금은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곁에서 가만히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는 '꿀잠 선물 가게'가 참 소중한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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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속도
이진경 지음 / 이야기꽃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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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속도. 이진경 그림책. 이야기꽃. 2025.

얼마 전 러닝화를 선물받았다. 이제 달리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만 먹고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매일 핑계를 달고 사는 내가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러면서도 선뜻, 운동화를 신고 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럴 때 <나의 속도>를 알았다.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북펀드에 바로 참여! 드디어, <나의 속도>를 만났다.

오래 망설였지?
그냥 시작하면 되는 건데.
그래, 다른 사람들처럼.

나한테 하는 말 같다. 오래 망설이고 있다. 이렇게 망설일 건가 싶을 정도로, 오래 망설이고 있는 중이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그냥 시작하면 되는 건데.' 말이다. 이렇게 쉬운 게 그토록 어려울 건가 싶어 여러 번 이 문장을 반복해서 읽어본다. 그냥 하면 된다. 떨리는 마음, 걱정하는 마음, 모두 잠시 내려놓고 우선은 몸을 움직이면 된다. 그 시작만 하면 그 다음이 어렵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니까.

오르막을 만나면
온몸에 땀이 차 오르고
다리가 점점 무거워져.
그럴 땐 떠올려 봐.
저 언덕 위에서 만날
파란 하늘과 시원한 바람,
신나는 내리막길.

달리기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 달리는 순간 숨이 턱 막히고 땀이 차오르며 한 발, 그 다음 발을 내딛는 다리가 무겁고 그 순간 멈추고 싶어진다. 모든 일이 비슷하지 않을까. 한계라고 생각되고 힘에 벅찬 순간이 오면, 그 순간 주저앉고 포기하고 싶어진다. 좌절하고 나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그럴 땐, 한없이 올라가야하는 그 언덕이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넘지 못하는 벽으로만 느껴진다. 하지만, 그 높은 곳도, 험난한 곳도 끝도 없이 오르기만 하는 건 아니다. 올랐다면 언젠가는 다시 내려와야 하는 법. 그리고 내려오는 순간만큼은 두 배 이상의 달콤함을 맛보게 된다. 그 달콤함을 생각한다면 오르기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빠른 사람은 빠르게, 느린 사람은 느리게.
중요한 건, 어쨌든 달리고 있다는 거야.

주변의 누군가와 나를 견줄 필요 없다. 나는 '나'일 뿐. 나는 <나의 속도>로 나를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시작이 중요하다. 그리고 물론 당연히 끝도 있다. 오르막길 다음은 내리막길.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그 과정은 온전히 '나'의 달리기가 된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온 정신을 나에게 모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된다.

행복과 만족감, 삶의 지향과 성취를 생각하며 산다.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하고 스스로 답을 찾으려고 한다. 늘 유혹은 뒤따른다. 남들이 이룬 성과, 남들이 가고 있는 방향, 남들의 시선과 또 남들의 인생까지. 나를 가만두지 않고 남들의 이야기로 나를 흔들 때가 많다. 그럴 때 나를 단속하고 단단하게 묶어놓을 무기가 필요하다. 어쩌면 그런 무기로 달리기는 제격이지 않을까.
달리는 순간 내가 쉬는 숨, 내가 앞뒤로 흔드는 팔, 그 다음 발을 내딛기 위해 힘을 주는 다리와 구그는 발. 이렇게 내 몸에만 집중해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혼미해지는 정신을 바짝 부여잡게 된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의 마음이었다. 그저 앞으로 가는 것, 무사히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 멈추지 않을 수 있도록 숨과 호흡을 고르고 정돈하며 다시 그 다음의 달리기를 준비하는 것, 그것만을 생각하는 달리기였다. 그렇게 달리고 난 다음 내 몸의 반응에, 뜻밖의 상쾌함과 개운함을 경험했던 것까지. 이것이 달리기였다.

'나도 달리고 있다.'

알람을 맞춘다. 새벽, 몸을 움직여 나를 깨우기부터 시작. 숨을 고르고 준비 운동을 하며 몸을 가볍게 만들고, 가만히 나의 몸 상태를 확인한다. 그리고, <나의 속도>로 달린다. 나에게 빠르지도 또 느리지도 않은 딱 알맞은 나만의 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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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은 205마크입니다 사계절 1318 문고 148
조은오 지음 / 사계절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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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은 205마크입니다. 조은오 장편소설. 사계절. 2025.

안나같은 사람 한 명을 잘 알고 있다.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나가는 사람, 의리와 정의감이 넘쳐 무조건 참견하고 보는 사람, 힘들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하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 자신은 보호하지 않아도 남들은 열심히 보호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이 소설 속 안나도 딱 이런 사람이었다. 그러니, 뛰쳐달려나가는 선택을 할 수밖에. 예전 읽은 책에서 성격이 팔자라고 했다. 안나는 이런 팔자인 거다. 그리고 그 덕분에 지구는, 지구인은 또 살았다.

"우리는 아직 서로를 돕고 있을 거야. 그게 당연한 일이니까."(48쪽)

대단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하는 행동일 필요도 없다. 그저 자연스럽게 생기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그 마음이 전달되고 돌고 돌아,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헌데 생각해보면, 진짜 그게 '당연한 일'인 게 맞는 것 같다. 누군가는 거창하게 성선설,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세상은 이런 돕는 마음이 기반이 되어 친절하게 흘러가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안나와 안나가 지금껏 만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이런 마음을 믿고 함께 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런 마음이 정착될 수 있어 너무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소설을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다 읽어버렸다. 그 정도로 속도감이 있고 몰입감이 상당했다. 이렇게 빠른 전개가 가능한가 싶을 정도고, 안나 스스로도 하루 정도의 시간 안에 이런 많은 일이 있을 수 있다니, 생각할 정도였으니 읽는 독자는 어땠을까. 책장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일과 사건이 벌어지고 또 그 안에서 새로운 인물들을 만나고 또 그 인물을 통해 새로운 각성이 이루어지고, 이 모든 이야기가 끝에는 한결같이 안나가 존재하고 있으니, 흥미를 잃을 수가 없었다.
물론 처음 시작은 아주 익숙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래서, 또 이런 지구의 이야기구나, 싶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환경 오염과 이상 기후로 인해 지구는 점점 망가져갔다.(7쪽)
"이상 기후는 사라졌어요."(195쪽)

이제 이런 우리의 지구는 기본값이구나, 싶어 씁쓸했다. 이와 반대되는 미래의 지구는 상상 속에서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지구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지구를 떠나야 하는 것인가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아직 남아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희망'. 안나와 친구들이 다시 지구로 돌아가 새로운 지구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이 '희망'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그 가치를 믿고 따르려는, 당연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들처럼 우리도 쉽게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만든 세상은 부서졌어요. 나 같은 사람들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어떻게든 희망을 발견하는 사람들이요."(191쪽)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을 테니까요. 당신 같은 사람이 수십 번 세상을 망가뜨려도, 우리는 언젠가 오늘처럼 승리할 거예요."(192쪽)

어른들이 갖고 있는 사회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이 어떻게 사회를 더 망가뜨리는가를 잘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지금의 현실이 형편없는 부조리와 부정한 권력의 힘에 얼마나 좌우되는가는 익히 잘 알고 있다. 또 이런 사회가 쉽게 변하지 않을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을 거라는 회의감만을 갖고 다 포기하기에는, 우리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고 이런 부정함만을 물려주는 것은 맞지 않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나누고 차별하며 공고히 구축해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힘만을 보호하려고 든다면, 이건 비겁한 것이다. 더 이상 이런 비겁함만을 안고 살아가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소설을 읽었는데, 재밌게 읽었는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 사회,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흥미롭게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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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개가 왔다
정이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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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개가 왔다. 정이현 산문. 한겨레출판. 2025.

바둑이 루돌이에 대한 책. 이 책의 마지막에 이런 문구가 있다. '이 책의 저자 인세 일부는 전남 구례의 유기견 구조 단체인 산수유독의 활동을 위해 기부됩니다.'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책이다. 이런 책의 인세가 아주 아주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긴다. 그리고 이 책을 가만히 읽다보면, 나도? 라는 생각도 생긴다. 지금의 나는, 작가의 루돌이와의 삶 이전과 비슷하니까.
가만히 서 있는 개를 봐도 무섭다. 산책 중 만나기라도 하면 옆으로 비켜 조심히 걷는다. 혹여나 개의 심기를 건드이게 될까봐 걱정하며 눈치를 본다. 누군가의 집에 방문할 때 혹시라도 개가 있다면, 대놓고 티는 내지 않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선뜻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경우는 없다. 쓰다듬기? 당연히 불가능이다. 왜 이런 내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상태다. 분명, 어린시절 개를 키우려는 시도도 있었고, 그런 개를 먼저 떠나보낸 기억도 있다. 그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왜 이리 많은 것에 겁쟁이가 됐을까. 헌데, 작가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이런 겁쟁이에게도 희망은 있겠구나 싶다. 이런 마음이 들 정도라면, 이 책의 효과는 제대로다.

"루돌이는 내 거라고! 공식 서류가 증명하잖아!"(190쪽)

공식 서류가 증명한 작가의 개? 물론 그런 의도를 쓴 말은 아닐 것이다. 진짜 '엄마'가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작가의 의도는 분명하니까. 다만 반려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늘 걸리는 지점 중 하나가, 주인? 누구 거? 이런 개념이다. 자식도 다르지 않다. 자기 자식이라고 부모의 것인 것처럼 마음대로 자식을 휘두르려는 점도 없지 않으니까. 그런 점에서라면 다 매한가지인 것 같다. 누구의 것이 어디있나. 다 각자의 존엄으로 존재할 뿐이지. 다만, 보호의 의무를 해야할 보호자의 역할이 있을 뿐이지.
그런 면에서, 작가는 착하고 참 좋은 보호자다. 식물도 동물도 생명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부터, 어떤 생명이라도 끝까지 책임져야한다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감당'할 줄 아니, 이런 보호자라면 기꺼이 마음을 놓아도 좋은 것이다. 게다가 모른다면 알기 위해 노력하고 공부하는 자세까지. 작가다우면서도 생명을 대하는 마음이 남다르구나 싶어 더 애정이 간다. 그래서 그런 엄마를 둔 루돌이가 참 행복하겠다는, 루돌이는 참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나는 용기를 내어 축 처진 바둑이에게 손을 뻗었다. 머리를 손끝으로 한번 쓰다듬어보았다. 그것이 녀석에 대한 나의 첫 번째 직접적 접촉이었다. 바둑이의 꼬리가 천천히 흔들렸다. 낯선 장소에서 이 아이가 우리를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다.(70쪽)

'접촉'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냥 곁에 있다는 것과, 그런 곁에서 어떤 접촉을 통해 체온을 나눈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간에도 마찬가지일테지만 반려 동물과의 관계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여러 번 환경의 변화를 겪고 또 낯선 이들과의 시작이 어려웠던 어린 개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이때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작가의 마음을 바둑이도 알았던 것이 아닐까. 아직은 서로 서먹하고 어색하지만, 그래도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은 바둑이도 알아챈 것이겠지. 쓰다듬는 작은 행위 안에서도 지켜주겠다는 마음의 신호가 전달된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개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위장하지 않으니까. 그 절대 순수의 세계를 이제 나도 알게 되었다. 나의 '어린 개' 덕분에.(222쪽)

개는 감추지 않고 위장하지 않는다는 거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이런 개의 모습은 작가가 내밀어 준 작은 손길에 대한 '어린 개'의 답일 것이다. 언제까지라도 그 손길에 있는 그대로 답하겠다는 마음의 표현이지 않을까 싶다. 마음 따뜻해지고 몽글몽글해지는 지점이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이런 표현을 대놓고 받고 있는 작가가 말이다. 이런 솔직한 표현을 대놓고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매순간 충분히 행복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도?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인 것이다. 물론 산책길에서 마주치게 될 빌런만 없다면 말이다.

그동안 내가 개 없이 살아온 '그저 보통의 세계'는 사실 더없는 환대의 세계였음을 알았다. 많은 여성 견주가 이 비슷한 일들을 경험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폭력의 뒤끝은 길고 상처는 잘 아물지 않는다.(140-141쪽)

이 세상은 약자가 너무 많은 폭력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이유도 모른 채 폭력을 당하는 경우도 흔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똑같이 폭력으로 대응할 수 없으니 더 억울하게 당할 수밖에. 폭력을 가하는 것이 힘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일까. 어떤 것이 진짜 힘인지 모르는 이들의 생각을 바로잡아 줄 좋은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을 한방 먹여주고 싶은 마음도 살짝 드니 말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이런 '어린 개'와 같은 존재가 더 많다. 그래서 여전히 아름답고 가슴 뭉클하며 안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 구해서 이런 날이 오네요.
봉사자의 댓글을 읽으며 눈물을 닦았다.(186쪽)

나도 같이 눈물을 닦았다. 이런 마음이 오래, 더 멀리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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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와 밤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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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와 밤. 기욤 뮈소 장편소설/양영란 옮김. 밝은세상. 2025.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생각해봤다. 단연, '사랑'이었다. 사랑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가의 차이만 있을 뿐, 이들이 간직하고 또 말하고 싶었던 것, 그리고 간절하게 지키고 싶었던 것은 모두 다, 사랑이었다.
사랑을 무엇이라고 하면 좋을까. 어떤 모습이나 형태를 누구나 머릿속으로 비슷하게 떠올리기 어려운, 추상적인 대상이어서 딱 하나로 정의내릴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거꾸로, 어떤 것으로도 정의 가능한 것이 또한 사랑이다. 그러면서도 이 세상의 수많은 가치들 중 다른 가치 모두를 이길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랑. 그러니, 고리타분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결국, 사랑이 죄인 거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연쇄작용으로 일어난 것이고, 그 안에는 지금까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생전에는 확인할 수 없었던 사랑이 있었던 것이다.
이 엄청난 사랑의 향연 속에 너무 많은 죽음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사실들이 매우 오랜 시간 잘 감춰져 있다가, 우연한 계기로 혹은 의도된 계획과 전개에 의해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죽음의 사건들을 겪지 않았다면 평생의 비밀이 되어 아무도 모르고 지나갈 수 있었던 사랑이 있었다. 바로, 안나벨과 프란시스의 사랑, 그리고 이들이 목숨을 걸고라도 마지막까지 보호하고 지키고 싶었던 토마를 향한 사랑. 그리고, 리샤르의 토마에 대한 사랑까지.
솔직히 리샤르의 토마에 대한 마음이 어떤 것일까 궁금하다. 어떤 마음으로 토마를 위해 자신을 던질 수 있었을지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들의 사랑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도 한다. 어떤 충동과 판단이 어떤 행동과 사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는지도 이해해볼 수 있다. 하지만 제일 궁금한 마음이 리샤르다. 평생을, 아내와 아내의 연인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아이가 아닌 토마를 바라보면서 어떤 사랑이 생겼을지 말이다.

이제, 우리 가족의 운명은 당신 손에 달려 있어. 당신이 토마를 보호하고 구해줄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가진 마지막 생존자니까.(367쪽)

안나벨이 남긴 마지막 문자메시지에 고민 없이 달려가는 그 마음이 애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마저도 모두 다 리샤르의 품고 있던 사랑의 모습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들에서 사랑을 깨닫고 느낄 수 있었던 인물로 토마 외에 한 사람을 더 들라고 한다면 단연, 리샤르라고 할 것 같다.

소설의 시작은 빙카의 이야기였고, 빙카에 대한 사랑이 결국 이런 비극적인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었구나 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읽어 나갔지만, 이 소설의 사랑의 주인공은 빙카가 아니었다. 빙카는 어쩌면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을 것 같다. 오히려 그에게만 향하고 있던 토마나 알렉시의 서로 다른 모습의 사랑이 더 강렬했다. 더 솔직하고 순수했던 쪽이 토마, 이기적이고 욕심 가득했던 쪽이 알렉시. 이 둘의 사랑이 오랜 시간을 거쳐 이어지면서 이 모든 사건의 전말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지점에서 더 큰 사랑을 알게 된 것이고.

내 부모와 프란시스 아저씨가 살아온 여정은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세 분의 인생은 고통과 환희,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들은 때로 용기를 내 희생을 택했다. 그들은 살고, 사랑하고, 사람을 죽였다. 그들은 이따금 정념 때문에 이성을 잃기도 했지만 그런 순간마저도 나름 최선을 다했다.(...) 그들의 인생을 따라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가 물려받은 유산을 지키고, 교훈을 오래오래 간직할 결심이었다.(...) 삶은 불확실성이 관장하는 영역이고, 인간의 마음은 바람 부는 날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게 마련이니까. 우리는 그저 창조주의 섭리에 따라 모든 일들이 결국 제자리를 찾아가기를 바라면서 세상의 온갖 혼돈을 잘 견디고 있는 척하는 것 말고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397쪽)

결과적으로 잘못에 대한 죄값을 치르고 있는 사람은 리샤르를 제외하면 없다. 죽음이 죄값의 대신이라면 목숨을 잃은 사람은 있으나, 정작 토마와 막심, 파니는 조용한 일상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어찌보면 정의가 살아있지 않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아직 이들에게 주어진 숙제는 남아있을 테니, '척하는 선택'을 한 이들의 삶을 계속 지켜보고 싶어진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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