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많은 곳에서 일합니다 - 생존이 곧 레퍼런스인 여자들의 남초 직군 분투기
박진희 지음 / 앤의서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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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에 성에 따른 구분이 없어야 한다는 건 머리로는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제는 이런 말조차도 너무 당연한 말이어서 여러 번 하는 것이 새삼스러울 지경이다. 우리사회의 이 뿌리깊은 성에 따른 차별은 언제나 사라질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지금의 아이들은 직업에 대한 기존의 차별적 의식에서 벗어나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을 정도까지 와 있는 것일까.
얼마 전 아이에게 어떤 직업이나 일에 대해 해야 하거나 혹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부모인지, 누가 물었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한번도 하고싶다는 일에 그건 아니라고 하거나 혹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도록 말해본 적이 없다. 아이가 하고싶다면 그러라고 한 게 전부. 어떨 때는 너무 무책임한 엄마인가 생각했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그 결정에 따라 자신이 삶을 만들어나갈 권리가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이 책이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이와 비슷한 책을 읽었다. <나, 블루칼라 여자>(박정연 글, 황지현 사진. 한겨레엔)가 그 책. 그 책에도 '남초 직군 생존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흔히 '여자가 무슨!'이란 말로 무시당하는 직업군에서 여자가 어떻게 자신의 소신을 갖고 일을 해 나가고, 그런 과정에서 인정을 받게 되었는지를 인터뷰를 통해 소개하는 책. 이 두 책이 너무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연결은 결국 '연대'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성으로서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에 의구심 혹은 부정하는 시선들을 받아온 것? 뭐 지금도 비일비재한 일이고요.(24쪽)
"힘들죠?" 하고 물으면, 저는 직업 자체에 대한 고단함을 물어보는 줄 알고 대답했어요. 그러면 "아니, 그게 아니라 여자라서 힘들지 않냐?"는 거예요.(43쪽)
처음 연습할 땐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단원들이 제 말에 대놓고 비웃기도 하고,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 해요.(67쪽)
여자라는 이유로 배제를 당하는 일 앞에서 계속 자기를 증명해내는 것과 자신이 서 있어야 할 곳을 직접 찾아야 하는 것은 서글픈 일일지도 모르나, 결과적으론 수민 씨가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94쪽)

대부분 무시일 것이다. 여자는 남자에게 무시의 대상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직업군에 매우 깊숙하게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이들은 직업적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성장시키고 증명하기 위해 남자들이 하지 않는 것을 여자라는 이유로 계속 해야하는 것이다. 그럴 때 대부분 뒤에서 '독하다'는 소리를 함께 듣게 될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자신이 하고싶은 것을 하려는 노력이지만 남들에게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분투기'이니,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불편함이 쌓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지금까지의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하루이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 이상, 바꾸기 위한 노력도 하루이틀로는 어림도 없다. 그러니, 우선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시작은 단 하나, 계속 말하는 거다. 계속 알리고 어떤 분야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의 일을 해내고 있는지를 말하고 소개하고 또 함께 나누는 거다. 이게 바로 '연대'이지 않을까.
사회적 약자의 선입견에서 벗어나야한다. 힘과 체격으로 등급을 매기는 시대는 벌써 지났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자리와 위치에서 그 일에 알맞은 사람이 있으면 된다. 그 사람이 꼭 어떤 성별을 갖고 있어야한다는 기준은 이제 필요없다. 이런 책들이 속상한 가운데 꼭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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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하게 멀리서 온 마음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탁경은 지음 / 우리학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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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과연 얼마나 멀리서 온 마음이길래 '어마어마하게'라는 수식어가 붙었을까. 어떤 마음이면 그 멀리서부터 온 걸까 궁금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 멀리 우주에서 날아온 운석을 말하는 걸까, 그 운석이 어떤 마음을 안고 왔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이 소설을 우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SF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읽었다. 결론은, 그렇게 아주 멀리서부터 우리한테까지 왔어야만 했던 마음인 것만은 확실하다는 거다. 운석을 찾아 갔던 이 아이들의 마음이 사실은, 그 '어마어마하게 멀리서 온 마음'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 마음을 알아채는 것이 참 쉽지 않았구나 하는 마음도. 어른인 내가 지금 그 마음을 되짚어보더라도 그랬다.

어마어마하게 먼 곳에서 이곳까지 여행 온 우주의 조각. 태양계가 처음 생겨난 때부터 존재해 온 물질을 가지고 있는 돌덩어리. 대기권을 통과할 때 활활 타 버리지 않고 끝까지 버텨 살아남은 소행성의 부스러기. 저 운석을 어떤 여정을 겪었을까. 얼마나 많은 것을 보았을까.(128-9쪽)

멀리서부터 왔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을까. 아마도 분명, 그렇게까지 오랜 시간과 긴 거리를 통과해 이 아이들에게 도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 아이들의 마음에서 무언가를 확인했어야 했으니까. 어떤 진심의 마음, 어떤 간절한 마음, 어떤 사랑의 마음이 아 아이들의 마음에서 자라나고 있는지, 스스로 알 수 있도록 해주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 어마어마한 여행을 통해 이곳에까지 오게 되었겠지. 또한 그 마음을 알아챌 수 있는 것도 역시나 진심, 간절함,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했던 것.
분명 우리 지구는 힘들어하고 있다. 언제 어느 때 우리 지구가 지금과 달라질 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지구에서 인간은 끝까지 자신이 하고싶은 것에 대한 간절함을 안고 있다. 이 부분은 조금 안타깝기도 하다. 그렇게 지구를 만든 장본인인 인간들을 끝의 끝까지도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을 간절하게 바라면서 살고 있구나 싶어서.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다. 지금 이 중학생들은 지금의 지구에 대한 책임이 별로 없으니까. 다 어른들의 욕심이 지금의 이런 지구를 만든 것이니, 이 아이들이 꿈꿀 수 있는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어른의 탓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의 간절한 그 소원들을 이루어주고 싶은 마음이, 그 멀리서부터 날아온 것은 아닐까도 생각된다.
그리고 이 건강한 아이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간절하게 바라고 있는지를 자기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물론 그 간절함만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미래의 자신을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서툴다. 그런 서툴고 조심스러운 마음과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이번 양양 행 여행은 이 아이들 모두를 성장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자신을 볼 줄 알고 또한 다른 이와 어떻게 마음을 나누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으니까. '성찰을 통한 성숙'. 요즘 가장 많이 했던 말인데, 이 소설에서 여지없이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수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고은이 자신 때문에 이런 설렘과 흥분을 한 번이라도 느꼈다면 그건 굉장한 일이라는 것을.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일은 기적 같은 일이라는 것을.(161쪽)
유림은 생각했다. 어쩌면, 우주가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과학자들의 존재를 오래도록 기다려 온 것처럼 자신 또한 아주 오래전부터 이 운석을 기다려 왔는지도 모른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얼마든지 행복하게 기다려 준다. 그것이 사랑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167쪽)
"괜찮아."/봄이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곳까지 혼자 온 것도, 이렇게 홀로 바다 앞에 서서 모래를 밟는 순간까지 모두 사랑이라는 것을.(...) 휘청거리는 걸음걸이로 이별의 고통을 참아내는 것까지 빠짐없이 모두, 사랑의 여정이라는 것을. 사랑은 그런 것이라는 것을.(181쪽)

아이들은 분명 자랐다. 괜히 내 마음이 다 뿌듯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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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힘없이, 토론! - 정답을 넘어 우리의 세계를 넓히는 16가지 논쟁 토론하는 10대
박정란 지음 / 북트리거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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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출산, 셰어런팅, 반려동물 보유세, 가상인간
등교 시간, 학교 채식 급식, 야간 자율 학습, 학생인권조례
주 4일 근무제, MBTI검사 채용, 도시 철도 노인 무인승차, 현금 없는 매장
대통령 피선거권 나이 제한, 탄소세, 도시의 고도 제한 규제, 의사 조력 자살

우리가 한번씩을 다뤄볼 말한 주제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어쩌면 이렇게 딱, 필요한 주제들만 골라 넣어 놓았을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가끔 무슨 이야기 끝에 아이들은 쉽게 말한다, 우리 토론해요! 아이들은 과연 토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우선은 당장의 수업을 피해보겠다는 심리가 작용했겠지만, '토론'을 어렵게 여겼다면 수업을 대신할 놀이 정도로 토론을 말했을 리가 없다. 어쩌면 지금 아이들에게는 토론이 각 잡고 앉아 정식으로 해야할 대단한 것이기보단, 어느 상황 어느 곳에서도 쉽게 하나의 주제로 충분히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토론이 된다는,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 거라면 대찬성! 서로의 의견을 나눌 수 있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들이라면, 토론을 안 할 이유가 없으니까.
가족, 학교, 사회, 제로를 큰 틀로 삼고 그 안에서 다루어야 할 이야기를 나눠놓았다. 아무래도 당장 교실에서 해보고 싶은 주제에 먼저 눈이 가는 것이 사실. 제일 먼저 '반려동물 보유세, 도입해야 할까?', '학교 채식 급식, 확대해야 할까?', '탄소세, 도입해야 할까?' 부분을 들춰보았다. 현재 아이들과 지구 환경 관련 동아리활동을 운영 중인데, 아이들에게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여 이야기를 끌어내면 좋을지 고민이었다. 많은 교육 자료가 있지만 실질적으로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가려면 아이들이 스스로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고민 속에 아이들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번에도 토론을 하자고. 좋다! 다음 동아리 수업 때 저 3개의 주제로 우선 토론을 해봐야겠다. 아이들의 생각과 반응은 어떨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직장인으로서 관심이 간 주제는 뭐니뭐니해도, '주 4일 근무제, 도입해야 할까?'였다. 근무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자면 결국 근로기준법, 노동의 가치, 경제와 빈부 격차 등을 언급할 수밖에 없겠다 싶다. 그리고 결국 일을 통한 삶, 삶을 위한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야만 토론이 가능할 것 같다. 그럼 결국 일을 통해 삶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겠구나 싶었다. 주제는 하나이지만 결국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좋은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논제에 대한 길지 않은 설명, 참고가 될 만한 질문과 자료, 그리고 찬반에 따른 예시 의견이 제시되고 있는 구조가 참 알맞았다. 특히 중학교 아이들과 토론을 준비하고 있는 입장에서, 이 책의 효용이 매우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책을 얻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요즘은 수업에 써먹을 수 있는 책을 만나면 무척 만족스럽다. 이 책은 당장의 활용도 100%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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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름에게 에세이&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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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전에 잠깐 비가 오더니 곧 갰다. 그리고는 다시 점점 더워지고 있다. 이제 금방 여름이 오려나보다. 오늘도 최고 기온이 영상 27도. 곧 30도가 되고 40도가 되겠지. 무척 더워질 것 같은 이번 여름이 오히려 반갑다고 하면 내가 이상한 걸까. 왠지 이 책을 읽고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름이 오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 그리고 시인에게는 더욱 여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상 나도 그랬으니까.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이 좋았고, 강하게 내리꽂듯 내리는 비도 좋았으니까. 여름이 되어서야 비로소 겨울과 봄을 지나온 내가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래서 그런 여름을 좋아하게 되었으니까.

우리가 다 아는 소설 <데미안>(헤르만 헤세)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이번 에세이는 시인에게 아브락사스이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이지 않을까.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 시인에게 시가 또한 아브락사스였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시인의 이야기가 슬프거나 안쓰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과정을 담담하게 스스로 적어나갈 줄 아는 시인의 그 마음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시인을 바라보는 조금 더 어른의 시선일 수도 있다. 이미 시인은 어린 시절에 벌써 깨고 나와 너무도 일찍 어른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깨야 할 알을 수없이 갖고 있는 나로서는 이렇게 하나씩 깨나가고 있는 시인의 모습에서 오히려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담담하게 써 내려가는 글은 시인이 순간순간 알아채가는 자신의 마음이고 또한 진실이었고, 그런 진실을 하나씩 알아보는 나의 마음 또한 함께 알을 깨는 순간순간이었다. 내가 아직도 깨고 나가야 할 많은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이면 될지를 가만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시인은 또한 '사랑'이라고 강조해 말했다. 사랑 맞다. 어느 곳 하나 사랑이 아닌 곳이 없었다. 할머니와 아버지, 후배와 언니들에 배우자까지. 그리고 늘 곁을 맴도는 검은 개와 흰 개, 그리고 계수나무 숲까지. 시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과 장소와 시간이 모두 사랑이었다. 그 외에 다른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우리가 함부로 결론내릴 수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이 고백하고 있는 시인의 말과 마음과 생각이 모두 옳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 마음 그대로를 응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의 시집을 다시 꺼내 읽어야겠다. 그리고 잠시나마 좋은 날씨의 햇빛을 맞으러 산책을 다녀와야겠다. 걸으며 살짝 땀이 나도 좋겠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걸어봐야겠다. 기분이 한결 좋아질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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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 - 부마민주항쟁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다드래기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 창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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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16일. 이 날짜를 기억해야겠다. 잘 기억할 수 있다. 그동안은 모르고 지나쳤어도, 이제부터는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를 기억하고 세세하게 따지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미 몸으로 체득했다. 지난 일이라고 얼렁뚱땅 넘기려 들고 과거를 제대로 되짚지 못하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잘못은 인정하고 바로 잡을 것은 고쳐가며 앞을 향해 가야한다. 누군가는 이미 다 지난 일이라며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혹은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특히 지금의 어린 아이들에게는 역사책에서나 접하게 되는, 시험을 위해 외워야 할 한 줄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한 줄이 적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이 그 안에서 무너지고 짓밟혔는지를 지금의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의 현재가 어떤 과거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 애써 알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지금에 와서 우리가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할수 있는 최선은, 잘 알고 기억하는 것이다.

제목이 왜 <불씨>인지는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작은 불씨라도 바람을 타면 멀리 날아가기 마련이다."

어렸을 때 불조심에 대한 교육을 받으며 꼭 이 말을 했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꺼진 불인줄 알았지만 그 안에 아주 작은 '불씨'가 남아 있으면 다시 불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다시 활활 타오를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이 말을 누군가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하라고, 작은 불씨가 얼마나 큰 불이 되어 타오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그러니, 그 불씨가 다시 터져나오기 전에 그런 불씨를 만드는 일부터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싶어졌다. 어디에 대고 말하면 이 말이 들릴까.

부마민주항쟁은 5.18민주화운동이나 6.10민주항쟁에 비해 잘 알지 못하는 우리의 역사란 생각이 든다. 왜 그럴까. 이번 책을 읽으며 부마민주항쟁이 그 분명한 시작의 불씨였고, 이 불씨를 통해 그 다음, 또 그 다음의 민주화운동이 가능할 수 있었다. 국가라는 거대한 힘을 상대로 작고 힘없는 시민들이 나서서 더 큰 힘을 만들어 들고일어났던 항쟁이었음에도 역사적으로도 또 국가에서도 그 의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라도, 재난이나 사건은 숫자로 기억된다는 말이 여기에서도 적용된 것은 아닐지. 우리의 역사를 다시 잘 들여다보고 꼼꼼하게 살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과?

화가 나는 지점 중 하나가, 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있지만 가해한 이는 없는 것인지. 누군가의 잘못으로 일이 벌어졌다면, 그 잘못을 인정하고 빠르게 사과하는 것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어느 누구도 먼저 잘못했다며 사과하는 경우를 볼 수가 없다. 분명 맞았는데 어느 누구도 때리지 않았다고 하니, 맞은 사람만 억울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말이다. 억울하고 화가 나고 속상해도 어디 가서 하소연조차 하지 못한 채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분들에게 이제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뒤늦게나마 과거의 문제를 제대로 확인하여 옳고 그름을 명확히 판단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으려면, 우리가 제대로 기억하고 의미를 되새기는 것부터 해야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 사회가 쉽게 만들어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싶다. 특히 민주화는 너무 많은 희생과 고통의 시간들을 거쳐 겨우 지금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았던 시절, 그 당연한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아야했던 그 용기는, 아직도 내가 할 수 있으리라 자신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무척 대단하고 경이로우며 또 화가 나고 너무나도 억울할 수밖에 없다. 권력과 힘을 손아귀에 쥐고 누구든 함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는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끔찍하다. 그러니, 이 모든 일들이 쉽게 잊히지 않기를 바란다. 화만 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지금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할 수 있어야겠다.
그리고 작은 '불씨'를 멀리까지 보낼 줄 알았던 모든 분들의 용기와 행동에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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